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 창비시선 485
유수연 지음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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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은 핏방울처럼
조금은 파도처럼
어떤 발버둥은
어떤 파장이 될 수 있다
깊어지려 하지 말자 - 생각 믿기 중

- 사람이 꼭 사랑할 필요가 없듯이
사랑이 꼭 사람의 이유일 필요도 없다
슬픔을 가두는 건 사람의 일이었고
사람을 겹겹이 쌓는 건 사랑의 일이었다 - 작가의 말 중

2023. jun.

#기분은노크하지않는다 #유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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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하나로 충분한 두 사람 식탁 - 국가비 레시피북
국가비 지음 / 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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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두꺼운 레시피 북.

레시피 북으로서의 실용성은 두께에서 조금 실패지만 내용은 실하다.

음식의 레이어링이 중요하다고 다시한번 일깨워줌.

2023. jul.

#팬하나로충분한두사람식탁 #국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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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
금정연.정지돈 에세이 필름 / 푸른숲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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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피식피식하는 헛소리를 잘 늘어놓는 사람들이다. 그 점이 좋아서 계속 읽는다.
이런 만담 파트너를 만날 수 있었던건 둘에게 행운일까?는 잘 모르겠지만. ㅋ

김애란의 추천사에 백배 공감했다.

- 전에는 이들의 유쾌함에 자주 웃었는데, 요즘 내게는 이들이 농담을 즐긴다기보다 슬픔을 잘 드러내지 않는 작가로 다가온다. 그건 스타일이나 기질 이전에 어떤 꼿꼿함이고 그 곧음은 유연함에서 나온다. 직선과 곡선을 한 몸에 지닌 나사못처럼, 혹은 밤새 숲을 헤매다 같은 자리로 돌아온 설화 속 인물처럼 - 빙글빙글 텍스트 주위를 도는 문장들.
그러나 그 못은 지상의 표면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회전하며 깊이를 도모하고, 가끔은 자신과 같은 운동 중인 다른 못과 부딪혀 찰나의 섬광을 만들어 낸다. 가능한 한 시치미를 떼면서.
빛보다 분진 쪽으로 주의를 돌리며, 긴 시간, 먼 데서 그 빛을 목도한 나는 문득 ‘지향’과 ‘행보’라는 말을 떠올리고. 그간 이들이 구사한 농담 안에 결국 삶과 예술을 향한 의문과 피로뿐 아니라 어떤 헌신과 사랑이 깃들어 있음을 깨닫는다. 이 책은 그 오랜 회전과 반복 그리고 사랑의 기록이다. 드문 헤맴이고 귀한 행보다. - 김애란 추천사

- “내 인생이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나는 결코 알아낼 수 없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영화가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날 것인지 우리는 결코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는 가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길 바란다. - 12

- 나는 K정연에게 다음 문장으로 끝나는 긴 메일을 보냈다. “...... 건강하고 밝은 사람으로 살고 싶은데 그건 무리겠죠? 격일로라도 밝게 살았으면 좋겠다.” - 67

- 셀제로 감독은 카메라를 바라보며 시네마와 내 얼굴을 마주하겠다, 대적하겠다, 내 얼굴을 보여주겠다, 뭐 이런 다짐을 몇 차례 반복하잖아요. 그런 감독의 행위가, 정확히 말하면 그런 감독의 얼굴이 영화에 진정성을 주입하는 거죠.
저는 사실 그 부분이 싫더라고요.
진정성을 주입하는 부분이요?
카레마로 자기 얼굴을 찍는 부분이요. - 103

- “꼭 읽을 책을 사. 그래서 그 책을 깊이 만나. 정말 싸우듯이 그렇게 만나야 돼, 책하고.”
알겠죠, 정연 씨? 꼭 읽을 책을 사세요. 샀던 책은 그만 사시고요. - 119

2023. aug.

#우리는가끔아름다움의섬광을보았다 #금정연 #정지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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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적 낙관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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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닝을 통해 깨닫는 삶의 지혜. 조용하게 서술되는 에세이.

- 모양이 안 멋지더라도 잎들이 무성하게 자라나기만 하면 일단 나는 흐뭇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가드닝에 있어서는 꽤 낙관주의자인 셈이다. 적어도 식물을 대할 때는 마음이 느슨해지고 어느 면에서는 무덤덤해진다. 정확히는 의심하지 않는 마음이 든다. 쓸 때나 읽을 때나 심지어 스스로 펼쳐나가고 있는 생각의 연쇄 속에서도 정말 그런가, 옳은가, 착시가 아닌가를 붇는데 식물들 앞에서는 그런 날카로운 반문을 할 필요가 없다. 거기에는 내가 알 수 없는 질서로 움직이는 완전한 세계가 있으니까. 나의 몫으로 남는 건 의혹이나 불신이 아니라 경탄과 그를 통한 일종의 발심이다. - 28

- 식물을 통해 내가 얻은 가장 좋은 마음도 그런 안도였다.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식물들이 피고 지는 숱한 반복을 하며 가르쳐주는 것은 뭐 그리 대단한 경탄이나 미적 수사들이 아니라 공기와 물, 빛으로 만들어낸 부드럽고 단순한 형태의 삶의 지속이었다. 그런 식물의 놀록함이 우리에게 지혜로서 머물기를, 녹록지 않은 순간에도 고개를 돌려 나무 한 그루, 잎 한 장에 시선을 맞출 수 있는 용기가 새해엔ㄴ 마음속 포트에 늘 담겨 있기를 바랐다. 바로 그 전환의 용기야말로 식물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빛나는 마음이라는 것을 한 해의 끝에서 나는 어느 때보다 기쁘게 깨닫고 있으니까. - 173

2023. jun.

#식물적낙관 #김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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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20세기 - 고리키에서 나보코프까지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이현우 지음 / 현암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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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20세기 문학 작가들은 상대적으로 잘 모르고 있었는데, 쉽게 알려주는 강의록이다.

대체로 냉전시대 첨예한 대립의 시기의 작가들이라서, 살얼음판같은 창작 환경에서 살아남은 작가들의 면면들을 볼 수 있다.

가장 흥미로운 작가는 소련 문학의 권력자로 자리매김한 숄로호프인데, 사실 그의 대표작 <고요한 돈 강>은 사두고 아직도 읽지 않았지만, 이 책을 살 때 우연히 만난 러시아 청년이 이 작가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을 드러냈던 기억이 너무 선명해서 과연 국민 작가라는 사람에 대한 이른바 국뽕이 대단하구나 느낀 경험이 있었다. 고요한 돈 강 이후의 작품이 수준이하라는 평가와 작품표절의혹까지 여러가지 잡음이 있었다는데, 그럼에도 노벨문학상의 후광은 그의 문단 권력까지 무너뜨리진 못했나 보다 싶다.


- 20세기 러시아 문학의 대표작 상당수가 아이러니하게도 당대 동자들이 읽을 수 없었던 비공식 문학입니다. 반면 미하일 숄로호프는 공식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였습니다.- 18

- 숄로호프 다음으로 소련을 대표했던 작가는 소수민족 출신인 친기즈 아이트마토프입니다.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출신의 작가로 국내에도 <하얀 배>, <백년보다 긴 하루> 등의 대표작이 번역돼 있습니다. 구소련은 다민족 국가였기 때문에 소수민족 할당제 같은 게 있었어요. 문학 예술 분야에서도 러시아인만 득세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소수 민족 작가들을 배려했습니다. 한국계(고려인) 작가로는 아나톨리 김이 그런 경우 입니다. - 20

- 혁명은 도처에, 모듬 것에 존재한다. 그것은 무한하다. 마지막 숫자가 없듯이 마지막 혁명도 없다. 사회혁명은 무한수의 한나일 뿐이다. 혁명의 법칙은 사회 법칙과 전혀 다르다. 그것은 에너지 보존과 에너지 소멸(엔트로피)의 법칙이 그렇듯이 무한히 큰,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법칙이다. 언젠가는 혁명법칙의 공식이 수립될 것이다. 1923, 자먀틴<문학, 혁명, 엔트로피 등에 관하여> - 65

- 작가로서 자신이 쓴 작품이 출간 금지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반혁명주의자, 부농의 앞잡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으르 때 플라토노프는 스탈린과 고리키에게 “저는 계급의 적이 아닙니다. 노동자 계급은 제 고향이며, 제 미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함께할 것입니다”라고 해명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읽어봐도 플라토노프만큼 사회주의 이념에 투철한 작가도 보기 드문데, 왜 이런 비판을 받게 되었을까요. 그건 플라토노프의 작품을 당시 소련의 공식 문학에서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작품이 소련의 공식 이데올로기가 허용하는 수준보다 더 왼쪽으로 치우쳤던 것이죠. - 91

- 미르크스에 따르면, 사회주의의 정치, 경제적 토대가 만들어져야 그 위에 사회주의적 의식, 즉 상부구조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부르주아 사회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그 토대가 미처 형성되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어요. 사회주의를 시작하긴 했는데, 그 토대가 형성되지 않아 사회주의 의식도 없고 영혼도 아직 없는 겁니다. 말하자면 <코틀로반>에서처럼 ‘전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집’을 짓는 데 아직 기초공사가 되지 않아 구덩이만 파놓은 격이랄까요. 사회주의적 정신, 사회주의적 영혼이랄 게 없으니 사람들이 과연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갖게 되는 정서가 슬픔과 연민입니다. 플라토노프는 바로 그 정서에 가장 깊이 천착한 작가죠. 자먀틴이나 파스테르나크 같은 작가들은 이행하는 과정에서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돌아섰습니다. 반면 플라토노프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지만 그 대신 슬픔과 우울, 혹은 연민의 정서에 천착하게 되었습니다. - 92

- 부재하는 공간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작품이 <고요한 돈 강>입니다. 사실 숄로호프의 작품 목록에서도 거의 유일무이한 작품이죠. 그런데 숄로호프가 더는 이런 작품을 쓰지 않았다는 것도 특이합니다. 쓸 수 없었는지, 아니면 쓸 능력이 없었는지 모르지만 여러가지로 궁금한 작가입니다. - 208

- 19세기와 20세기에 들어 근대소설이라는 장르가 위대한 문학이라는 이름에 합당한 사회적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작가들은 단지 글쟁이에 머물지 않고 사회 변혁의 사명을 짊어진 지식인의 책무를 수행했어요. 그런 시대가 끝났다는 게 근대 문학 종언론의 요지입니다. 그러니 아직도 작가들이 소설을 쓰는데 종언이라는 무슨 소리냐고 반박한다면 맥을 잘못 짚은 것이죠. 문학이 끝났다는 게 아니라 ‘위대한 문학’의 시대가 끝났다는 얘깁니다. 상품으로서 문학은 얼마든지 번창해나갈 수 있겠지만, 더 이상 위대한 책무를 떠맡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221

- 소련에서는 부조리 문학이라는 게 따로 필요 없습니다. 현실 자체가 부조리하니까 현실을 그대로 표현하면 바로 부조리 문학이 됩니다.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 235

2023. jun.

#로쟈의러시아문학강의 #20세기고리키에서나보코프까지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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