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표지가 무척 마음에 드는 설터의 책들.

책장에 쟁여 두다 얼마전 부고를 듣고야

아 이제 좀 읽어야 겠다라고 생각하는 게으름.

디테일하면서도 설명에 불친절하달까.

감정의 골은 무자비하게 보여주고 실패와 절망은 대수롭지 않은 태도로 보여준다.

피와 살이 튀지 않을 뿐 이것이 하드보일드.

무척 마음에 들면서도 쉽게 읽히지는 않는 리얼한 인생.

2015. Jul.

나머지는 그리 강렬하지 않았다. 삶을 꼭 닮은 장황한 소설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다 어느 날 아침 돌연 끝나버리는. 핏자국을 남기고. - p. 186. 어젯밤 중.

그는 오래된 모자이크 타일이 장식된 그 입구로 나왔다. 사람들은 계속 들어왔다. 밖은 아직도 밝았다. 저녁이 오기 전 투명한 빛이었다. 고원을 향해 난 천 개의 창문 위로 지는 해가 빛났다. 한때 노린이 그랬던 것처럼 하이힐을 신은 젊은 여자들이 혼자서 또는 어울려서 길을 걸었다. 그들과 언제 점심이라도 하긴 힘들 것이다. 그는 그의 인생 한가운데 거대한 방을 가득 채웠던 사랑을 생각했고, 다시는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길 위에서 그는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p. 151, 플라자 호텔 중.

우린 취향이 같았다. 처음부터 그랬다. 취향이 다른 사람과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난 항상 취향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건 아마도 옷을 입는 방식이나 또는, 같은 이유로, 벗는 방식으로 전해지는데, 취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그건 학습되고 어느 순간에 도달하면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얘기를 가끔 했다. 무엇을 바꿀수 있고 또 바꿀수 없는가에 대해서. 사람들은 언제나 뭔가, 말하자면 어떤 경험이나 책이나 어떤 인물이 그들을 완전히 바꾸어놨다고들 하지만, 그들이 그전에 어땠는지 알고 있다면 사실 별로 바뀐 게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p. 99, 포기 중.

그녀는 열다섯이었고 그는 매일 아침 그녀의 몸을 안았다. 그 때는 그게 삶의 시작이었는지, 아니면 삶을 망치고 있는 건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사랑했고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p. 42, 스타의 눈 중.

그는 식탁 위로 몸을 구부려 턱을 손에 괴었다. 누군가를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녁을 함께 먹고 카드를 몇 번 쳤다고 생각하겠지만 당신은 실제로 아무것도 모른다. 언제나 놀라게 된다.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 -p. 19, 혜성 중.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면서 잘한 게 없다고, 순서조차 틀리게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인생을 망쳤다. -p. 21, 혜성 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짜 팔로 하는 포옹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기저기서 이미 다 읽은 단편들.

다 읽은게 맞나? 한개 쯤은 안 읽은 것 같기도.

그럼에도 다 읽었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김중혁의 스타일이라는 것 때문일 것이다.

김중혁 첫 연애소설집이라고 뻔뻔?하게 인쇄된 띠지를 빼면 만족스럽다.

연애소설집이라고 이름 붙이고는 첫 단편 상황과 비율의 첫 문장이

포르노시장은 매년 가파른 성장률을 기록했다. 인 것은 개그일까? ㅋ

지친 사람들의 오랜 소원같은 시시하고 밋밋한 그런 연애들. 그걸 연애라고 부를 수 있다면.

2015. Jul.

저기 지그소 퍼즐 있잖아.
규호는 벽에 걸린 반 고흐의 그림을 가리켰다.
아, 저제 지그소 퍼즐이야?
정윤은 고개를 빼서 그림을 보았다.
내가 저거 자주 해봤는데 모네의 그림이었는지 마네의 그림이었는지, 2천 조각짜리 퍼즐 맞추는 데 꼬박 한 달 걸렸어.
인간 승리네.
인간 승리지. 그런데 막상 끝내고 나면 승리한 거 같지 않고, 오히려 진 거 같은 기분이 들어. 왜 그런지 알아?
나야 모르지.
그림을 다 맞추고 나면 새로운 걸 완성했다는 기분이 들지 않고, 그냥 원래 있어야 할 것들을 제자리에 놓아둔 기분이야. 아버지는 밥상 뒤집어 엎고 나가고, 나 혼자 남아서 반찬이며 밥이며 국물이며 사방에 엎질러진 걸 다 정리해놓고 소주 마실 때의 기분이랄까. 내가 지금 여기서 대체 뭐하고 있지? 그런 기분이 갑자기 들어. 다 맞춰진 퍼즐을 보고 있으면.
무슨 소린지 대충은 알겠다.
잘 모를거야. 해봐야 알아. 그건.
- p.92, 가짜 팔로 하는 포옹 중.

릴케의 책 [말테의 수기] 첫 문장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정확하게 떠올릴 수는 없다. 찾아볼 곳도 물어볼 사람도 없다. 내 기억으로는,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이곳으로 오지만 실은 여기에서 죽어갈 것이다`라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책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오직 시작 부분만 떠올랐다. 나도 마찬가지다. 시카고를 떠나 살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나는 여기에서 죽어갈 것이다. 죽어갈 것이다, 라고 소리내어 발음하면 오히려 마음에 안정이 찾아오기도 한다. 죽어갈 것이다. 곧 죽어갈 것이다. 인간이란, 스스로 죽을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 동물인가. -p. 204, 보트가 가는 곳 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끄적끄적 길드로잉 - 일상과 여행을 기록하는 나만의 그림 그리기
이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끄적끄적.

오랫동안 그리는 걸 잊고 살았네.

환기가 되는 책.

2015. Ju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마도 아프리카 창비시선 321
이제니 지음 / 창비 / 201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선의 바람

기억의 숲에서 망각의 바람까지 우리의 목소리는 더이상 어두울 수 없을 만치 어두워 숲으로 감추고 바람으로 속이고 숲에서 바람까지 나무에서 구름까지 감추고 삼키고 속이고 숙이고 죽이고 묻히고 말리고 밀리고 우리는 뒤에서 우이는 목소리 뒤에서 우리는 우리의 죽은 목소리 뒤에서 몇발짝 뒤에서 간신히 어제에서 어제로 사라져가는 시간 속에서 숲으로 바람으로 구름에서 종이까지 어쩌면 거기에서 어쩌면 여기로 나선의 숲에서 나선의 바람까지 어둠은 더이상 어두울 수 없을 만치 어두워 죽음의 숲에서 기억의 바람까지 어쩌면 이제는 아직도 적어도 걸어서 기어서 숲에서 숲으로 곁에서 곁으로 의지와 망각과 불과 춤과 어둠과 죽음과 거기에서 여기로 여기에서 거기로 이미 드디어 우리는 죽었고 나선의 바람과 숲의 불과 물의 춤에게 드디어 우리는 아직도 우리는 숲과 숲으로 망각과 망각으로 우리의 목소리는 더이상 조용할 수 없으리만치 조용히 우리는 죽었고 나선의 바람에서 기억의 불까지 아직도 이미 벌써 또다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마도 아프리카 창비시선 321
이제니 지음 / 창비 / 201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상상의 경계가 무한한 시.

그래서 따라잡기 힘들기도.

매력적인데 간혹 자꾸 딴 생각을 하게 된달까.

몇 번을 더 읽어야 할듯.

2015. Jul.

분홍설탕코끼리풍선구름. 멋진 이름이다. 어제부터 슬픔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 분홍 설탕 코끼리 중

그래봤자 결국 후두둑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일 뿐. 오늘부터 나는 반성하지 않을 테다. 오늘부터 나는 반성을 반성하지 않을 테다. 그러나 너의 수첩은 얇아질 대로 얇아진 채로 스프링만 튀어오를 태세. 나는 그래요. 쓰지 않고는 반성할 수 없어요. 반성은 우물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너의 습관. 너는 입을 다문다. 너는 지친다. 지칠 만도 하다. - 후두둑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일 뿐 중.

온 힘을 다해 살아내지 않기로 했다. 꽃이 지는 것을 보고 알았따. 기절하지 않으려고 눈동자를 깜빡였다. 한 번으로 부족해 두번 깜빡였다. 너는 긴 인생을 틀린 맞춤법으로 살았고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었다. - 밤의 공벌레 중.

먼지 같은 사람과 먼지 같은 시간 속에서 먼지 같은 말을 주고받고 먼지같이 지워지다 먼지같이 죽어가겠지. 나는 이 불모의 나날이 마음에 든다. - 별 시대의 아움 중.

나는 울지 않는 사람이니까 거리를 달리면서 휘파람을 불었다. 휘파람을 불 줄 몰랐지만 쉬지 않고 휘파람을 불었다. - 창문 사람 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