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딩, 턴
서유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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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다 무덤덤해지다 헤어지는 이야기.

지원과 영진은 랄라와 진이라는 별명으로 스윙댄스 동호회에서 만난 평범한 인물이다.
스파크가 튀는 운명적 만남이라기 보단 현실적인 친밀감으로 서서히 스며드는 인연.
명백한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서서히 멀어지는 과정, 그 안의 지리멸렬한 감정들을 다소 쓸쓸하게 묘사했다.

사실 살아가는 일은 극적인 사건 보다는 이런 일상과 작은 웃음, 작은 분노같은 감정이 더 큰 비중이지 않나 싶다.

심난한 봄날 읽어서 몰입이 잘되었다.


- 지원은 쪼그리고 앉아 청소기의 먼지 통을 비웠다. 주먹만한 먼지 뭉치와 자잘한 부스러기들이 바닥에 쏟아졌다. 청소기를 청소하는 일, 물걸레를 빠는 일, 드러나지 않지만 생활을 가능하게 만드는 일을 할 때면 산다는 게 사소하고 무의미하고 반복적인 노동으로 굴러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 41

- 불행과 비극에는 명백한 이유가 있는 편이 견디기 수월하다. 딸꾹질을 하다가 죽었다거나 접시 물에 코 박고 죽었다는 것보다 교통사고나 암 투병 끝에 죽었다는 얘기가 모두를 의심 없이 안전한 비극으로 이끈다. - 47

- 흩어지고 사라질 웃음이지만 위로가 되었다. 마음이 무너질 때 사람을 끝까지 지탱하고 보듬어주는 게 있다면 유머와 애정일 것 같았다. - 123

- 지원은 다시 누군가와 결혼해서 산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지만 어떤 종류의 평화와 행복은 실패를 지나가야만 얻을 수 있다는 점에 공감했다. - 166

2023. apr.

#홀딩턴 #서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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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드는 법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안현주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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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최애는 루스와 로사 조합이다.

스리파인즈의 아기자기한 주민들은 늘 사랑스럽고, 그 와중에 의뭉스러우면서 즐겁다.

클라라와 피터의 관계는 진작에 이렇게 될 예정이였다고 늘 생각해와서 놀랍지 않지만, 일단 다음편에 이어질 내용이라 또 다른 기대가 된다.

망가진 듯 보이는 살인 수사과도 뭐 결국엔 괜찮아 지겠지 싶은 확신도 있어서 생각보다 고구마는 아닌 전개였다.
견고한 믿음으로 조직을 움직이는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과거의 그릇된 선택에 여전히 발담그고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더러운 집단들은 어디에나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징그럽게도 청산되지 않는 친일 매국노 집단 처럼....

- “삼십 년 동안 죽음을 다루고 나서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 아나?” 가마슈가 수사관에게 몸을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수사관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숙였다.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배웠네.” - 29

- 살인을 유발하는 무언가가. 크고 명확하게 보이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대개는 아주 작은 것이었다. 쉽게 묵살되는.
그 때문에 가마슈는 자신이 면밀히, 주의 깊게 봐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수사관들이 연극처럼 땅을 조사하다 앞으로 뛰쳐나갈 때, 아르망 가마슈는 시간을 들였다. 사실, 누군가에게는 그런 모습이 무기력하게 보이기까지 한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걷기, 허공을 응시하며 공원 벤치에 앉아 있기. 비스트로나 식당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듣기.
생각하기. - 175

- “보부아르는 어디 있지?” 루스가 물었다. “다른 임무니 하는 헛소리는 지껄일 생각 마시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자세한 건 말씁드릴 수 없습니다.” 가마슈가 말했다. “제가 말할 내용이 아닙니다.”
“그럼 오늘 밤엔 왜 왔어?”
“걱정하시는 걸 아니까요. 그리고 당신이 보부아르를 아끼신다는 것도요.”
“그는 괜찮나?”
가마슈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엄마 노릇 좀 해줘?” 루스가 물었고, 가마슈가 웃는 사이 그녀는 차를 따랐다. 이윽고 그는 장 기에 대해 그가 말할 수 있는 만큼 루스에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는 짐이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 290

- 테레즈는 자신의 미니 마우스 손을 올렸고, 가마슈는 입을 닫았다.
“둘다 틀렸어요. 당신은 멈추기 두려웠고, 난 계속하기 두려웠죠.”
“내일은 우리가 덜 두려울까요?” 그가 물었다.
“덜 두렵진 않겠지만,” 그녀가 말했다. “더 용기가 생길지 모르죠.” - 358

- 아르망 가마슈는 늘 예스러운 믿음을 간직하고 있엇다. 그는 빛이 그림자를 지우리라 믿었다. 친절함이 잔임함보다 더 강하다고. 가장 절망적인 곳에조차 선의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는 악에는 한계가 있다고 믿었다. - 409


- 루스는 그 옆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로사가 있던 자리의 따뜻함을 느끼며 무릎에서 오리를 들어 올렸다. 루스는 조심스럽게 장 기의 무릎에 로사를 올려놓았다.
그는 알아차리지 못한 듯 보였지만 잠시 후 손을 올렸고, 로사를 쓰다듬었다. 부드럽게. 부드럽게.
“아시겠지만 목을 비틀 수도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알아.” 루스가 말했다. “제발 그러지 마.”
그녀는 로사의 까만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로사의 등 깃털을 어루만졌던 장 기의 손이 긴 목으로 가까이, 가까이 다가갈 때, 로사는 루스를 보았다.
루스는 로사의 눈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마침내 장 기의 손이 멈췄고, 그 자리에 머물렀다.
“로사가 돌아왔군요.” 그가 말했다.
루스가 끄덕였다.
“기쁘네요.“ 보부아르가 말했다.
”집까지 먼 길을 왔지.“ 루스가 말했다. ”어떤 이들은 그래, 알겠나. 그들은 길을 잃은 듯이 보이지. 이따금 그들은 잘못된 길에서 헤매는지도 몰라. 그들이 영원히 가 버렸다며 많은 사람이 포기하지만 난 그걸 믿지 않아. 어떤 이들은 결국 집을 찾는 데 성공해.“ - 569

- 아르망은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야. 은퇴할지는 몰라도 그만두지는 않을 거야. - 604

2022. sep.

#빛이드는법 #루이즈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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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0
커트 보니것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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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분열적이어서 슬프다.
시공을 뒤흔들며 여기저기로 원치않음에도 옮겨지는 빌리의 정신이.
그 혼돈 속에 사는 삶이.

뭐 그런거지.. 라고 자조적으로 말을 맺을 때마다 헛헛함이 밀려왔다.

세계대전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대체로 심드렁한 반응을 가지게 되는 것은 우리 나라가 피해당사자 국가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참상과 아픔과 상실들에 가슴이 아프긴 하지만.

커트 보니것의 책을 여러권 읽었고, 그 때마다 취향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제5도살장은 그 중에선 가장 잘 읽혔다.


- 이 모든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대체로는. 어쨌든, 전쟁 이야기는 아주 많은 부분이 사실이다. - 13

- 그렇게 그렇게 끝없이 계속된다.
오랜 세월 동안 내가 만난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고, 그럴 때면 대개 내가 주로 하는 일은 드레스덴에 관한 책을 쓰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한번은 영화 제작자 해리슨 스타에게도 그렇게 말했더니, 그는 눈썹을 추켜올리며 물었다. “그거 반전 책이오?”
“네.” 내가 말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반전 책을 쓰고 있다는 얘기를 들을 때 내가 하는 말이 뭔지 아쇼?”
“아니요. 대체 무슨 말을 하나요, 해리슨 스타?”
“이렇게 말한다고 ‘대신 반빙하 책을 서보지 그러오?’”
물론 그가 한 말의 의미는 전쟁은 늘 있는 것이고, 전쟁을 막는 일은 빙하를 막는 일과 같다는 것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설사 전쟁이 빙하처럼 계속 오지는 않는다 해도, 평범하고 오래된 죽음은 계속 있을 것이다. - 16

- 나는 또 아들들에게 학살 기계를 만드는 회사에서는 일하지 말고, 우리에게 그런 기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경멸하라고 말해왔다. - 34

- 우리 트랄파마도어인은 그것을 하나씩 차례로 읽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한꺼번에 읽습니다. 그 모든 메시지들 사이에 특별한 관계는 없습니다. 다만 저자는 모두 신중하게 골맀지요. 그래서 모두 한꺼번에 보면 아름답고 놀랍고 깊은 삶의 이미지가 나타납니다. 시작도 없고, 중간도 없고 끝도 없고, 서스펜스도 없고, 교훈도 없고, 원인도 없고, 결과도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책에서 사랑하는 것은 모두가 한눈에 들어오는 수많은 경이로운 순간들의 바다입니다. - 116

- 있잔나 - 우리는 여기에서 전쟁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네. 우리처럼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고 상상했지. 전쟁은 아기들이 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거야. 새로 면도한 저 얼굴들을 보았을 때 충격을 받았네. ‘맙소사, 맙소사-’ 나는 혼잣말을 했지. ‘이건 소년 십자군이로구나.’“ - 137

- 많은 새로운 것이 미국에서 나왔다. 이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것, 선례가 없는 것은 위엄을 잃은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다. 그들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 - 165

2023. mar.

#제5도살장 #커트보니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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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3-07 1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커트 보니것 첫 책으로 픽해서 들여놨어요^^
젤 잘 읽히셨다니 저도 곧 읽어야겠습니다~~~

hellas 2023-03-07 18:09   좋아요 1 | URL
빌리의 착란을 같이 경험한 기분이 들어요. 재밌게 읽으시길:)
 
나이트 스쿨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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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질질 끄는.. 대체 그래서 팔려는게 뭔데! 싶은데 뭔지 뻔한데도 숨기고숨기는게 웃김.

독일 인구의 3퍼센트가 인터넷을 사용하는 시절의 전쟁통에 숨겨진 보물?에 대한 이야기.

조금 지루했다.

- 그는 예전에 독일 경찰들을 다뤄본 경험이 있다. 헌병과 경찰 모두 쉽지 않았다. 기본적인 인식의 차이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독일인들은 나치로부터 자신들의 조국을 되찾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심부름꾼이 딸린 초대형 군사 기지를 구입했다고 생각한다. - 115

2023. mar.

#나이트스쿨 #리차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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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거짓말 오늘의 젊은 작가 11
전석순 지음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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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으로 점철된 관계라는 점이 이상스럽게 짜증을 유발한다.
나한테 뻥치는 것도 아닌데. 구라라고 처음부터 알려줬는데도.

- 거짓말은 하는 게 아니라 치는 거라고 알려 준 건 아버지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친다는 건 그다지 좋은 의미가 아니었다. 이를테면 뺑소니를 친다거나 사기를 친다거나. 그러니까 거짓말을 친다는 건 두루두루 나쁜 짓이었다. 사람을 친다는 의미로 봐도 뒤로 치고 들어간다는 의미로 봐도 달라지지 않았다. - 9

- 거짓말과 진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영원하지 않다는 점이다. 둘은 언제고 돌변해서 입장을 바꾼다. 어제까지만 해도 거짓이었던 게 순식간에 진실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하나를 선택하는 것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영원한 척 굴다가 누가 언제쯤 다른 가면을 쓸지는 아무도 모른다. - 23

- 예전엔 거짓말이면 누구든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아무도 될 수 없다는 뜻인지도 몰랐다. - 165

2023. mar.

#거의모든거짓말 #전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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