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차일드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 스스로 밝혔듯, 옥타비아 버틀러는 근본적으로 장편 작가다.

단편이 담아 낼 수 있는 것 보다 많은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고 권두에 밝혔는데,

읽으면서 완벽하게 와닿았다.

존재하지 않는 어떤 존재와 현상을 다루는데 단편은 너무 촉박하다.

그래서 7편의 단편과 2편의 에세이 말미에는 후기가 짧게 붙어 있다.

단편 중엔 ‘말과 소리‘가 좋았다.

에세이 두편도 좋았고.

2017. Jan.

"얘야...... 검둥이는 작가가 될 수 없어."
"왜요?"
"그냥 안 돼."
"아니에요, 될 수 있어요!"
나는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를 때 제일 단호했다. 열세살이 되도록 읽은 인쇄물 중에 흑인이 썼다는 글은 단 하나도 없었다. - 265, 긍정적인 집착 중.

미국 문화의 현실과 상충하는 마음 아픈 불문율이 하나 있는 것 같다. 당신이 흑인으로서, 흑인 여성으로서 정말로 열등 할 수도 있지 않으냐는 의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다. 충분히 똑똑하지 않을지도, 충분히 빠르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당신이 원하는 일을 할 만큼 뛰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해선 안 된다...... 그러나 물론 당신은 의심할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누구 못지 않게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모른다 해도 그 점을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 근처에 있는 누군가가 그런 사실을 인정하면, 얼른 그들의 자신감을 북돋아서 입을 다물게 해야 한다. 난감한 대화가 되겠지만 말이다. 다부지고 자신감 있게 행동하고, 자신의 의심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라. 의심을 상대해본 적이 없다면 영영 의심을 없애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상관없다. 모두를 속여라. 자기 자신까지 속여라.
나는 나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 나는 내 의심에 대해 많이 말하고 다니지 않았다. 나는 조급한 위로와 칭찬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을 많이 했다. 같은 생각을 하고 또 했다. 그런데 내가 누구란 말인가? 내가 글을 통해 하는 말에 왜 누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나? 나에게 할 말이 있기는 한가? 맙소사, 나는 sf와 판타지 소설을 쓰고 있었다. 당시 직업으로 sf를 쓰는 작가는 거의 백인 남자였다. 아무리 sf와 판타지를 사랑한다 해도, 내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글쎄, 어쨌든 그만둘 수 없었다. 긍정적인 집착이란 두렵다거나 의심이 가득하다는 이유만으로 멈출 수 없다는 뜻이다. 긍정적인 집착은 위험하다. 그것은 아예 멈출 수 없다는 뜻이다. - 271, 긍정적인 집착 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스트 Axt 2017.1.2 - no.010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월
평점 :
품절


문학잡지는 꽤 여러 종류를 구독, 구매해서 읽었었는데.

아무래도 자꾸 밀리는 데다 집중도가 좀 떨어지는 편이어서 구독은 모두 그만 두었다.

악스트와 릿터는 매번 사보는 편이고, 가격면에서 부담이 없으니 책 주문하면서 주문하게 되고...

그러나 밀리는 경향성은 언제나 마찬가지.

이번 호에는 존 버거의 특별기고가 있어 우선 읽었다.

가장 와닿는 기고는 나쓰메 소세키의 <문>에 대한 김영주의 리뷰였다.
당장 문을 읽고 싶어질 만큼.

정이현의 새 연재 <그 밖의 사람>도 좋다.

2017. Jan.

운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다. 속수무책으로 휘말려서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면 달리던 트랙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일. 일어나서 달리던 트랙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고 살아내야 할 시간은 너무 많이 남았을 때,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남은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까. 
(....)
소스케와 오요네는 함께 산 6년 동안 말다툼 한 번 한 적이 없을 정도로 금슬이 좋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에는 외부가 없다. 간혹 그들의 대화에 타인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타인의 삶은 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거나 지나가는 에피소드일 뿐이다. 두 사람의 삶은 서로의 내부로 깊이 침잠하고 얽혀들어서 "두 사람의 정신을 구성하는 신경계는 최후의 섬유에 이르기까지 서로 껴안고 있는" 상태이다. 그들은 함깨 고립되었기 때문에 일상을 겨우 견딜 수 있다.
(....)
많은 것들을 잊었다. 인생을 걸고 싶었던 일을 포기하던 순간을 잊었고, 평생을 같이 하고 싶었던 사람을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잊었다. 이제 그런 일들은 소설을 읽는 것보다 훨씬 희미하다. 이제 나는 소설의 인물들을 실제 인물처럼 느낀다. 나의 인생과 그들의 인생이 다르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구원은, 소설을 읽고 소설 속의 인물들에게서 얻는 정확한 위로와 가장 가깝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도 더 이상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한마디도 말하지 않고도 나는 구원받을 수 있다.
- 나쓰메 소세키 <문> 리뷰, 김영주 ‘벼랑 아래의 삶‘ 중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깨비 2017-01-15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스트와 릿터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문학잡지는 한번도 사 본 적이 없어서 어떤 게 좋은지 모르겠어요.

hellas 2017-01-15 17:10   좋아요 1 | URL
글쎄요. 일단 전반적인 구성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리뷰와 에세이 단편 연재 로 구성되니 각자의 색깔이랄까 그게 조금 다른데 아무래도 디자인에서 일단 크게 드러나는듯. 디자인면에선 릿터가 명료한 편이라면 악스트는 좀 모던한편? 애매하죠? 결국 접해보고 결정하시길 추천할수밖에.... 기존의 계간 잡지에 비해서 볼륨이 부담스럽지 않은건 좋은데. 전 계간지도 좋아요 훨씬 묵직한 이야기들을 감당하기도 하니까. :)

북깨비 2017-01-15 18:06   좋아요 0 | URL
하아. 이거 결국 두 권 다 한번씩은 사봐야 하겠군요. ㅎㅎㅎ

hellas 2017-01-15 18:16   좋아요 1 | URL
결국은 그런 이야기로 ;ㅂ;
 
메갈리아의 반란
유민석 지음 / 봄알람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성혐오에 대응하는 언어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하는 책.

주디스 버틀러의 난해한 문장들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준 듯한 글.

이미 페미니즘 연구에 있어 존재하는 이론과 분석철학을 메갈리아와 연결지어 이야기 했다.

침묵 당하고(발화효과행위적 좌절),
안전에 대한 두려움이 여성들의 발화를 강제하고 있다는 것.
혐오의 메세지가 이견을 제시하지 못하도록 억압하고 있다는 것.
증오를 선동하기 위한 혐오발언에 대한 이야기들.

일베식의 여성혐오 발언이 언어의 사용(use)임에 반해 메갈리아의 미러링은 이미 사용되어진 언어를 언급(mention)하는데 이용되었다는 차이 설명이 두 집단을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없다는 단서가 된다.

양성간의 혐오는 모두 지양되어야 하지만, 남성혐오가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여성혐오와 같다고 기계적으로 간주하는 것은 젠더 권력의 비대칭을 간과하는 것이고, 여성 혐오에 대한 강도와 범위가 비교할 수 없게 차이가 나는 것을 은폐하는 행위라는 것.(p78)

여성 혐오 발언에 이의를 제기하고 여성혐오의 권위를 교란하는 방식으로 여성혐오를 약화시키는 것이 미러링에 대한 저자의 의견이다.

메갈리아에 대한 뜨악한 시선 이전에 여성혐오 발화자에 대한 반성과 각성이 필요하며, 침묵으로 상황을 외면하는 행위 또한 여성혐오에 대한 일말의 책임이 있음을 이야기 한다.

혐오가 권력적 위계관계에서 비롯되며, 혐오발언의 특정 메세지가 작동하는 기제, 주디스 버틀러의 이론, 혐오발언의 사용과 언급의 차이, 마이트라의 분석철학 이론, 메갈리아의 화법이 전복시키는 젠더 체계, 혐오발언에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는 설득이 이 책의 구성이다.

부담스럽지 않은 볼륨에 이론적인 부분도 어려움 없이 다가온다.

한번 읽어볼 만 한 책.

2017. Jan.

여성혐오발언의 수산자들이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대응에 나선 듯 보이는 것은 이들이 혐오에 의해 침묵당해왔지 때문, 혹은 권력의 차이로 인해 이들의 대응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여성이 이미 여성혐오의 메시지에 반발했으며, 실제로 혐오발언에 반박하고 화자를 일깨우는 목소리를 내오기도 했다. 단지 그들의 목소리는 수많은 어려움에 부딪혔고, 제대로 들리지 않았을 뿐이다. 여성혐오에 맞서려는 의지는 항상 존재했다. - 55

상처를 주는 말의 미학적인 재연은 그 말을 사용함과 동시에 언급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어떤 효과를 낳고자 상처를 주는 말을 활용할 뿐 아니라 그런 사용을 동시에 언급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런 말이 인용이라는 주의를 환기시킴으로써, 그런 사용을 인용적인 유산 내에 위치시킴으로써, 그런 사용을 당연시된 일상 언어의 작동이 아닌 성찰되어야 할 명시적인 담론적 항목으로 만듦으로써 말이다. 아니, 미학적인 재연은 그런 말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또한 그것을 진열하며, 지적하고, 어떤 일종의 효과를 낳기 위해 활용되는 언어의 자의적인 실례로서 개괄하는 것일 수 있다. - 75, 주디스 버틀러

메갈리아의 미러링, 아니 남성 혐오발언이 여성혐오발언처럼 과연 역사적으로 억압당한 남성 집단의 트라우마를 상기시키고 열등하게 재종속시키는가? 공론장에서의 남성의 발화 권력을 박탈하고 침묵시키는가? 아니면 젠더 권력 불평등을 강화하고 성차별을 공고하게 영속화하는가? 전혀 아니다. 그렇다면 메갈리아와 일베는 전혀 같지 않은 것이다. -8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의 죄는 야옹 문학동네 시인선 87
길상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애는 있으나, 비극은 아닌.

채도가 낮은 초록의 표지처럼 가만가만하고 차분한 관찰이다.

시가 되지 않은 문장들은 당신에게 교감으로 가닿길 바란다는 시인의 염려?가 있었지만.

내겐 넘치게 시로 다가왔다.

파도는 아무리 뽑아 써도
쉽게 채워지곤 했으므로
너와 나 사이에 드나들던
거짓말도 참말도 점점 희미해졌다 - 물티슈 중

습기 가득한 명찰을 목에 걸고
아침이 두통처럼 무거워졌다
깨끗한 이름으로 살고 싶었으나
희미하게 번지기만 하던 날들,
젖은 이름을 빼 말리려다
나는 그만 찢어지고 말았다 - 아침에 버린 이름 중.

2017. Jan.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뜨거운 피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뜨겁고 비릿한 느와르.

늘 부족하고 늘 허기진 건달 희수 이야기.

정말이지 뻔하디 뻔한 건달 느와른데, 캐릭터의 대사들이 묵직하고 힘있게 이끌어 간 이야기다.

불과 얼마전 또 다른 건달 이야기를 읽어서 내심 시큰둥하는 마음과 추천이 많아서 내심 기대하는 마음이 복닥복닥 섞여 시작한 책인데, 아무래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많은 것이다.

일단은 주인공이 쌩양아치는 아니라서 인지(그 기준이 뭐냐 물으면 애매하지만...)
비정한 정서 때문인지...

좁아터진 동네에서 그들에게 ˝비밀은 없고, 마음은 아타깝고, 피는 뜨겁다.˝(저자의 말이다.)

편하게 읽을 수 없는 폭력이 생생하지만, 그래서 인지 영화 한편을 본 듯한 기분이 든다.

결국 남은 자에게 남은 것은 그저 돌아보면 뼈저리게 아픈 후회 뿐인 정서.

좋아하는 류의 소재도 아닌데 재미가 상당했다.

덧붙여, 농약 먹고는 살아도 나이 먹고는 못산다는 대사가 조금 슬펐다. ;ㅂ;

2017. Jan.

내가 늘 말하잖아. 건달은 그저 쥐죽은듯이 조용히 지내는 게 성숙하고 아름다운 자태라고. 건달이 폼나면 뭘 할거며 유명해져서 이름을 날리면 또 뭐할 거고? 건달이 양복 입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고 나면 갈 데라곤 감옥밖에 없는 기라. 그리고 까놓고 말해서 할 짓이라고는 건들거리는 것밖에 없는 건달한테 양복이 대체 왜 필요하노? - 12

니는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라는 게 뭔지 아나? 그게 전생에 돼지로 태어났다가 다음에 인간으로 태어났다가 뭐 이런다는 게 아니고 인간이 아둔해서 한번 빙신짓을 하면 죽을 때까지 빙신짓만 되풀이한다는 뜻이다. - 88

"니랑 인숙이 사이가 똥구덩이다. 지난 이십 년 동안 안 그랬나? 둘이 좋다고 허우적거려봐야 그냥 똥구덩이 안이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합니다. 내가 바봅니까?" 희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니 바보다. 와 이제 와서 인숙이고? 지금 할 거면 이십 년 동안 와 안 했노."
할말이 없어서 희수는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영감 말이 맞을 것이다. 이 사랑은 똥구덩이일 것이다. 냄새나고 지저분하고 추악한 사랑, 온갖 열등감과 치욕에 사로잡힌 사랑일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220

양동이 바닥으로 담배를 집어던지고 구둣발로 꽁초를 문질렀다.
"희수야, 니한테 뭐가 없는 줄 아나?"
양동이 다시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라이터 불에 비친 양동의 얼굴이 비정했다.
"니는 씨발 정신이 없다."
씨발 정신은 또 뭐냐는 듯 희수가 양동을 쳐다봤다.
"니는 너무 멋있으려고 한다. 건달은 멋으로 사는 거 아니다. 영감님에 대한 의리? 동생들에 대한 걱정? 사람들이 너에 대해서 하는 평판? 좆까지 마라. 인간이란 게 그렇게 훌륭하지 않다. 별로 훌륭하지 않은 게 훌륭하게 살려니까 인생이 이리 고달픈 거다. 니가 진짜 동생들이 걱정되면 손에 현찰을 쥐여줘라. 그게 어설픈 동정이나 걱정보다 뱁배 낫다. 니는 똥품도 잡고 손에 떡도 쥐고 싶은 모양인데 세상에 그런 일은 없다. 우리처럼 가진 게 없는 놈들은 씨발 정신이 있어야 한다. 상대 앞에서 배 까고 뒤집어지고, 다리 붙잡고 울면서 매달리고, 똥꼬 핥아주고, 마지막에 추잡하게 배신을 때리고 우뚝 서는 씨발 정신이 없으면 니 손에 쥘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세상은 멋있는 놈이 이기는 게 아니고 씨발놈이 이기는 거다."
"그렇게 씨발스럽게 이겨서 얻는 게 뭔데요?"
양동이 이 새끼가 아직도 말귀를 못 알아처먹었네, 하는 표정으로 희수를 잠시 쳐다봤다.
"그래야 입에 풀칠이라도 한단 말이다."
양동은 체념이라도 한 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 305

너는 자신을 경멸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거든. 그런 인간이 갈 곳은 딱 두 군데밖에 없다. 저 바닥으로 계속 추락하거나 아님 저 위로 하염없이 올라가서 왕이 되거나. 둘 다 존나게 쓸쓸하고 무의미한 곳이지. 그래도 사람이 죽을 순 없으니까 어딜 가긴 가야 하잖아? 나는 이왕에 떨어지기 시작한 거 저 밑바닥까지 가보려고. 희수 니는 올라가서 왕이 되어라. 더이상 자신을 속이지 말고. - 5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