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투퀴디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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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던가, 페이퍼던가, 알라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은 이가 쓴 서재의 글이 떠오른다. 추석 연휴 5일을 꼬박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완독에 할애했다는 얘기였다. 200퍼센트, 그 이상 공감하는 얘기다. 인류의 역사에, 지성사에 굵은 획을 그은 고전 역작 혹은 대작을 완독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백두대간 종주에 비유할 만하다. 중대 결단과 끊임없는 인내가 필요한 독서라는 얘기다. 

한 차례 완독으로 끝나지 않는다. 전국 100대 명산 중 하나를 한 차례 등반했다고 다시 오르지 않던가! 자주 올라야 그 산이 왜 명산(名山이고 진산(珍山)인지 문득 깨닫게 된다. 처음에는 무심코 명품(名品)을 찾지만 그것을 실제 사용하는 동안 문득 그 물건이 진품(珍品)임을 깨닫게 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고전들을 원전번역으로 펴낸 천병희 선생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도 그런 책 가운데 하나, 애로(崖路)가 곳곳에 깔린 책이다. 그래서일까, 이런 서평이 가장 와 닿는다.


“…투키디데스는 근엄하고 통합적이다. 그는 문화사가라기보다 정치와 군사의 역사가이다. 그는 의심이 많은 데다 매력적이지 못하며, 그래서 읽기가 까다롭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그의 책은 제대로 읽어내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되풀이하여 읽으면 진국이 나오는 작가이다. …그는 권력 정치의 내면을 파악한 최초의 역사가이다." (『평생 독서 계획』, ‘투키디데스' 중, 존 S. 메이저, 클리프턴 패디먼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2010년 10월) 


이 고전의 실체를 간파한 최고의 서평(리뷰)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 산의 정상까지 등반한 후에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소회라고 할 수 있다. 비단 이 책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고대 서양의 고전들을 읽노라면 인명들부터 낯설다. 지명들도 혼란스럽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오늘날 그리스 반도와 과거 페르시아 영토에 해당하는 나라들과 지명들, 지중해에 흩뿌려진 수 많은 섬들, 오늘날 이탈리아반도(당시는 시켈리아)에 이르기까지 지도(지명)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 책 부록으로도 당시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지만, 언젠가 이 책을 펴낸 출판사에 A2 사이즈 정도의 관련 지도를 제작하여 서비스로 제공했으면 하는,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다. 우리말 번역이 깔끔하다. 

잘 읽힌다. 번역으로 인한 피로감은 거의 없다. 본래 이 책의 방대한 스케일 때문에 소화하기가 힘들 뿐이다. 그리고 노고 그 이상의 생생한 교훈, 당면한 현실을 살피는 혜안을 얻을 수 있다. 유시민은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역사의 역사‘라 했다. 이 책에 적용하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전쟁사의 전생사‘라고 하겠다. 달리 말하면 ’전쟁사의 역사‘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기도 했고, 지금도 그런 흐름은 ’진행中‘이다. 

시작(詩作)의 기술 가운데 하나는 수미쌍관(首尾雙關)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핵관련 미사일을 쏘아올려 북미협상 카드를 유리하게 만들려던 북한이 정권 말기에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누가 대권을 잡든 새로운 정부를 길들이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와 닿는다. ’종전 선언‘까지는 해야 하는데.. 정권 말기임에도 역대 최고의 대통령 지지율을 유지하는 여세를 몰아 평화 무드에 쐐기를 박고자 했던 바람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다. 이러듯 한반도 정세는 언제 발생할지 모를 리스크를 안고 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다. 얼마 전 유력한 대선주자가 세계적인 투자가 짐 로저스와의 경제대담을 가졌는데 핵심 키워드는 '한반도 평화'였다. 주식투자의 꿀팁을 묻는 질문에 짐 로저스는 ”꿀팁을 듣지 말라는 것이 팁입니다.“라는 재치 있는 답변을 하기도 했다. "블랙핑크가 38선에서 공연할 정도로 남북관계가 좋아진다면 내가 롤링스톤스를 데려가겠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불러 '빅 파티'를 열자."(짐 로저스)라고 했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 『금강』이었던가,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 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라는 대목이 떠올라 씁쓸했다. 이제는 세계적인 외국인 투자자가 시 한 구절 같은 희망 사항을 얘기하고 있다. 

”우리들은 헤어진 게 아녜요/ 우리들은 나뉜 게 아녜요/ 우리들은 딴 세상 본 게 아녜요/ 우리들은 한 우주 한 천지 한 바람 속에/ 같은 시간 먹으며 영원을 살아요“(달이 뜨거든-아사달 . 아사녀의 노래 2중창 부분) 


’같은 시간 먹으며 영원히 살자!‘ 그럴 수 있다면.. 

2018년 1월(31일).『예정된 전쟁』(세종서적, 2018.1.31.)이란 책이 번역되어 화제를 모았다.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des Trap)'이 국제 정치판에서 전문가들의 입에서, 언론에 회자되먼서 주목받은 책이 발 빠르게 번역된 것인데, 2017년 전후 뜨거웠던 한반도 정세를 새삼 떠오르게 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먼 옛날인 고대 그리스의 ’역사서‘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오늘날에도 생생하게 현재의 당면한 전쟁 위험을 감지하는 책인 것.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사이리도 하니까. 인류사는 곧 전쟁사임을 실감할 수 있는 이색적인 책이 있다. 


’은유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인지언어학의 창시자인 조지 레이코프가 1차 걸프전 발발 직전인 1990년 마지막 날에 배포한 글의 첫머리에 언급한 말이다. 미국 시민들의 반전 여론을 무마하고 전쟁지지 여론을 이끌기 위해 부시 행정부와 보수 언론이 동원한 국제 관계 은유는 [국가는 사람], [세계는 마을], [전쟁은(다른 수단을 사용하는) 정치]. [정치는 사업] 등이었다는 것. 미국의 보수 언론은 [이라크는 악당]이고 [쿠웨이트는 천진한 처녀]이며 [미국은 선한 구원자]라는 은유적 이미지를 미국 시민들의 머릿속에 주입했다는 것. 그 결과 이 전쟁을 반대하는 여론보다 지지하는 여론이 더 높아졌고, 전쟁을 막을 수 없었다.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나익주 지음, 2020년 11월, 전자책은 2021년 5월) 머리말에 나오는 얘기다. 

필자는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학사에서 박사까지 끝내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조지 레이코프에게서 인지언어학을 공부했으며, 조지 레이코프가 언어철학자 마크 존슨과 1980년에 펴낸 『삶으로서의 은유』를 번역했다. 무엇보다 그는 『프레임 전쟁』을 비롯 자신의 선생님 책을 두루 번역하여 우리 사회에 ’프레임‘이란 개념을 유포하고 있다. ’3장 국제 관계를 지배하는 은유(전쟁의 언어, 평화의 언어)‘는 머리말의 첫 문장에서 보듯,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극명하게 드러난 2017년 즈음의 말의 (프레임) 전쟁이 담겨 있다. 굳이 이 책의 이 부분을 언급하는 것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특히 한반도 정세에서 생생하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선 국면이고 어느 세력이 집권하건 미·중, 북·미, 한·미 남·북 관계에서 한반도의 위기 상황은 새로운 버전으로 되풀이될 수 있다. 적어도 안보 문제나 질병(코로나 팬데믹) 대응과 관련해서는 여와 야, 진보의 보수에 따른 이견이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 선을 밟는 세력도, 그것을 부추기는 언론도 역사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아는 것이 병이라고 했다. 아직도 ’휴전 중‘인 한반도의 현실, 지정학적 리스크를 떠올리면서 읽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등반‘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좀 가볍게 다루려고 작정했는데, 무거운 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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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road 2022-02-10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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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4 2022-02-10 19:4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1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리스토파네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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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는 곳이 초등학교 옆이라 좋은 점이 있고 또한 불편한 점이 있다. 유흥업소들이 없어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다는 점이 최고의 장점이라면 교문 앞 작은 사거리의 신호등은 좀 그렇다. 겨우 2차선 축에 드는 길인데, 신호등이 칼 같이 지켜지는 것이다. 오가는 차량도 많지 않아 무시하고 건너면 되는데, 한두 명 혹은 서너 명, 나라의 내일인 초등학생 몇몇이 파란 신호등으로 바뀌길 기다리며 추위를 견뎌내고 있는 것. 나라의 미래들 앞에서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도, ‘녀석들만 없으면 진작에..’라는 생각을 동시에 하는 것인데, 그럴 때마다 그런 자신을 발견하는 것에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이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19세기 영국의 시인 윌리암 워즈워드의 <무지개>라는 시가 그 출처다. 그런데, 이 한마디가 인터넷으로 뉴스를 접할 때마다 떠오르고, 학교 앞 신호등에서의 불편함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종이신문을 언제 읽어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요즘 사람들은 그렇게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뉴스를 접하는데 A/S가 필수인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있다. 포털 상위에 노출되는 뉴스일수록 더욱 그렇다.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특히 부끄럽다. 팩트체크는 기본이 되었고, 팩트체크를 하는 뉴스비평이란 분야가 유투브방송의 주요 메뉴가 되어 묘한 ‘공생관계’에 있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우울한 풍경이 날마다 이어지고 있다. 

그 오염실태가 가장 심각한 곳이 정치뉴스이며 정치권이다. 5년마다 돌아오는 대선판이라서 더욱 그러하다. 으레 그려러니 체념하는 상황이 더 화가 난다. 공짜는 양잿물도 먹는다, 라고 하지만 일주일에 하루쯤은 뉴스는 물론이고 어떤 동영상도 보지 않는, 인터넷 없는 날을 지정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은 아주 낯선 풍경은 아니거니와 거슬러 오르면 여기에도 그 나름의 역사가 있다. 고대 그리스 희극시인으로 정치색 짙은 작품을 쓴 아리스토파네스의 대표작을 떠올리게 된다. 배경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농지가 황폐해지자 고통받는 농민들은(농업국가인 스파르테 진영는 말할 것도 없고 전쟁의 다른 축인 아테나이의 상당수 농민들도 가세, 후자의 입장 반영이 우선이라고 보아야) 평화를 주장하고, 수공업자에서 벼락출세한 선동정치가들은 전쟁을 옹호하는 등 또 하나의 전쟁이 그리스 전역과 식민시에서 진행되던 때이다. 


<구름>(Nephelai/ 라Nubes) 천병희 원전번역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전2권) 중 1권에 첫 번째로 소개되는 작품이다(소설의 첫 문장이 중요하듯, 맨 앞에 수록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아리스토파네스가 썼다는 희극 44편 가운데 11편이 전해지고 있는데, 전집은 현존하는 11편을 완역한 것.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나의 패색이 짙어지자 민심은 동요하고 새로운 질서와 신학문이 등장하며 안정적이고 도덕적이던 아테네는 급변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보수적인 아리스토파네스는 소피스트들의 신식교육을 비롯해 자신이 생각하기에 공동체에 유해한 사실(현상)을 거침없이 비판하고 사람들까지도 실명으로 등장시켜 매섭게 비판하고 조롱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그 도마에는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올라 무참한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구름(BC 422)>에서 소크라테스는 당대에도 후대에도 인정받는 위대한 철학자가 결코 아니다. 돈만 주면 무엇이든 하는, 말장난으로 옳은 것(정론)과 그른 것(사론)을 마음대로 뒤집는 방법을 전수하는 사이비 스승으로 그렇고 그런 소피스트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그런 부류의 대표주자이다. 플라톤이 빚어낸 숱한 대화편들 곳곳에서 그렇게 소피스트를 맹렬하게 비판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날마다 빈둥거리며 살아가는 아들 때문에 막대한 빚을 진 주인공 남자(스트렙시아데스)는 아들이 전차경주에서 진 빚을 떼어먹을 방법을 궁리하다가 소크라테스에게 보내 교묘한 논리와 말솜씨를 배워오게 한다. 그렇게 하여 채권자들을 따돌리고 돈을 갚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 아들이 이번엔 아버지를 두들겨 패고는 소크라테스에게 배운 논리로 자신이 정당함을 입증한다. 훗날 소크라테스가 재판에 회부될 때(<소크라테스의 변론>) 죄목 중 하나가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것인데, 이 작품이 그 근거로 제시된다. 


스트렙시아데스: 사람들이 말하기를, 저기 저 자들에게는 매사에 

                    정론과 사론의 두 가지 논리가 있대. 

                    그리고 그중 하나인 사론은 

                    아무리 나빠도 소송에서는 반드시 이긴대,

                    네가 그 사론을 배우면, 

                    지금까지 너 때문에 진 빚을 나는

                    누구에게나 한 푼도 안 갚아도 되는 거야.(23면, <구름> 112~118행) 

 

이런 설정이다. 플라톤과 다른 견해를 피력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 『수사학/시학』(천병희 옮김, 숲)에서 변론에서 이기는 기술(방법)을 기술하였는데, 아르스토파네스가 <구름>에서 비판한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법기술’을 학문 영역에 편입시킨 것이다. 상당히 흥행하고 요즘은 넷플릭스에서 서비스 중인 드라마 <로스쿨>에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중범죄를 지은 죄인이라도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드라마 안에서 실제로 보여준다. 의뢰인과 관련된 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는, 직업윤리 때문에 피해자나 그를 동정하는 입장에서는 용서하기 힘들지라도, 가해자인 의뢰인을 위한 변론을 해야 하는 것. 

상황은 이렇다. 하지만, ‘A는 B’라는 악의적인 프레임을 만들어놓고, 사실과 거짓을 버무리고, 악의적인 편집을 하고, 가짜(사론)를 진짜(정론)로 만드는 기사들을 읽노라면 토가 나올 지경이다. ‘기레기’라는 말이 세월호 침몰 사건 즈음에 등장했다는 것을 상기한다. 어린이들에게, 아니 자신의 자식들에게 읽힐 수 있는 그런 기사를 써야 하는 것 아닐까? 너무 순진한 생각인가? 초등학교 앞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서 추위에 떨면서 빨간 불을 바라보며 스친 생각들을 정리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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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road 2022-01-24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끈따끈한 글에 잠시 몸을 녹이고 가요. 스트레이트 스트레스도 조금은 해소되는 느낌이었고요. 저는 뉴스비평 중 이상호 기자의 고발뉴스TV를 자주 듣는 편인데, 코너인 <웃기는 뉴스>를 시작하기도 전에 그날의 주요기사들이 너무 웃겨 버퍼링이 나곤 하더군요.

Meta4 2022-01-24 17:42   좋아요 0 | URL
이제 글쓰기를 시작해서 썰렁한데, 자주 찾아와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고발뉴스는 자주 보는 편입니다.
 
굿바이, 욘더 - Good-bye Yonder, 제4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
김장환 지음 / 김영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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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비아, 욘더』, 이준익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 첫 OTT 드라마 원작소설 리뷰. 사는 동안 숱한 만남이 그렇지만 그 수 많은 책들 중에서도 한 권의 책을 만나는 사연도 천태만상이다. 언젠가 지방에 사는 동기가 지인이 소유한 건물 1층을 리모델링하여 카페로 만드는 작업을 돕는다며 며칠 머물러, 가본 적이 있는 데가 있다. 그런데, 작년 7월인가, 그 동기가 카톡을 날렸다. 유명한 영화감독이 드라마를 처음으로 만드는데 그 카페에서 촬영하겠다며 감독과 관계자가 왔다 갔다는 얘기였다. 

원작소설이 『굿비아, 욘더』(김장환, 김영사)라고 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설(작품)을 읽으면 그 작품 원작 영상을 보지 않는다거나 그와 반대의 경우도 삼가곤 하는데(그 이유를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이번엔 예외가 되었다. 2022년 방영 예정인 동영상 서비스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욘더'. 영화 <자산어보>, <박열>, <동주>, <사도>, <꾼>(의 제작진도 참여)을 만든 이준익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이자 첫 OTT(티빙 오리지널) 드라마다. 신하균, 한지민, 이정은, 정진영, 최대성 등 출연진도 화려하다. 

배우 한지민의 인스타그램에 따르면(기사) 얼마 전 1월 7일에 촬영을 마쳤단다. 이준익 감독의 드라마 진출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중문화 콘텐츠 소비자들의 시선이 영화에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옮겨간 흐름과 연관이 깊다. 영화감독들 다수가 드라마 연출에 참여하면서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모호한 콘텐츠가 등장하는 즈음인데, 이준익 감독은 티빙 1주년 간담회에서 “이젠 극장과 OTT 간 간격이 없어져 가는 게 아닌가”라며 ‘영화 같은 OTT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우연으로 만난 소설을 띠지에 적힌 ‘1억원 고료 제4회 대한민국 뉴웨이브문학상 수상작’이란 것만 확인하고 읽었다. 그런데 판권을 보니 초판 발행이 2011년 1월 20일(오늘은 2022년 1월 20일이다)이다. 만으로 11년째 녀석의 생일인 셈이다. 소설의 시간은 30년 후이고 공간은 ‘뉴서울’(통일이 되어 있다)이다. 문학상 수상은 2010년, 감안하면 소설 속 시간은 2040년, “30년 후의 서울, 현실과 사이버 스페이스가 한 데 섞이고 인류가 기계와 어울려 새로운 진화를 꿈꾸는 유비쿼터스 월드에 사는 기자” '홀'이 남자 주인공이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 ‘후’를 잊지 못해 괴로워하다 ‘욘더’(Yonder: 저기, 저편의)라는 가상 공간(혹은 세계)로 아내를 만나러 간다는 설정의, 장르 소설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의 유효기간은 언제 끝났을까, 기억할 수가 없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앞서, 실제로 작품 집필 시기와 출간 시점을 파악하지 못한 채 작품을 읽었다는 점을 거론했는데, 작가가 전제했던 일상이던 ‘메타버스(가상세계)’가 첨단과학과 첨단산업의 화두로 부상한 요즈음을 감안할 때, 필자가 간과해버린 12년쯤의 시차는 각별한 의미이고 발견일 수도 있다. 당시의 미래학(비전)에 기반하여 작품 속 배경이 필자로서는 그렇게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는 얘기다. 아직 뉴서울이 아닌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2040년이면 가능할까?) 문학상 이름에도 있듯이 당시 ‘뉴웨이브’는 지금 ‘웨이브’가 되어 있다, 그런 느낌이다. 

영상과 텍스트 중심의 원작소설은 다르다. 메인 주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지만, 그래픽을 비롯하여 영상은 최신 기술을 동원할 수 있기에 남다른 고민이 있을 것이다. 12년 전에 상상한 2040년의 시간이 이제 20년 남짓 남은 상태인데, 이준익 감독의 영상물은 어디까지 담아낼 것인가, 기대하게 된다. 2011년 개봉되어 745만 명 관객을 동원한 영화 <써니>, 1980년대가 배경인 이 영화의 명대사는 “물을 사 먹는 시대가 온다고 그래라”이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 맴돌던 한마디다.


“'미래가 또 하나의 신화'라는 생각, 그 사소한 아이디어에서 내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수십 년 뒤, 아니 몇 년 뒤에 우리 삶이 얼마나 변해 있을까 생각하는 일은 늘 내게 즐거움을 가져다준다.(328면, 김장환)” 

수상소감에 근거하여 작성한 ‘작가의 말’ 중 일부다. 작가는 ‘미국 오리건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그래서일까. 서양의 신화와 철학 등 고전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이야기의 줄기는 오르페우스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뮤즈의 여신 칼리오페와 아폴론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오르페우스. 그는 에우리디케와 결혼하였는데, 에우리디케가 그만 독사에 물려 죽고 말았다. 슬픔에 젖은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구하고자 저승으로 간다.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11권)나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로마 신화)와 같은 서사시에서도 저승(하데스) 풍경을 엿볼 수 있디. ‘불신지옥’과는 다른 ‘저기, 저편’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심스럽지만 『국가』(동굴 비유), <파이돈>(혼불멸론) 등 플라톤의 주요 대화편이 소개하는 신화적인 발상과도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본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국내산)인데, 제목은 떠오르지 않고 자주 등장하는 대사 하나는 또렷하다. ‘추억은 기억의 전리품’이라고 했던가, 출처를 찾으려고 시간을 할애했으나 실패. 혹시 <굿바이 욘더>가 아닐까(전자책 음성으로 먼저 듣고 종이책을 읽음)? 검색 그러나, 이 소설은 아니다.


”추억은 꼭 과거에 한정된 것이 아니에요. 새로 만들어질 수도 있죠.”(<여보 나 여기 있어>, 23면) 

‘진정한 행복은 기억이 아닌 망각에 있다는 역설’(심사평 중)을 감안할 때 이 짧은 인용마저도 대단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 ‘추억은 기억의 전리품’, 그 출처는 찾지 못했지만 검색 과정에서 발견이 있었다. 이 작품에서 ‘기억’이란 단어는 모두 114번, ‘추억’은 12번 나온다. 원작소설의 설정부터 영상물(드라마) 제작까지, 경계가 허물어지는 묘한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 그런 느낌이다(아래 사진 촬영 당일, 그 카페의 풍경, 카페 주인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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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0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셀베이션salvation’은 '구원'이다. 구원(救援) 혹은 구조(救助). SOS. 119 곳에 따라 911.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셀베이션> 시즌1·2에서 ‘셀베이션’은 새로운 버전의 ‘노아의 방주’(우주선)이기도 하다. 영화 <2012>가 지구온난화로 야기된 인류 멸망에서 선택받은 그들만이 히말라야 부근에 대기중인 ‘방주’를 찾아가는 이야기라면, <셀베이션>은 지구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소행성, 예견된 인류 멸망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종의 재난영화인데, 여기서 화성에서 새로운 삶을 찾게 해줄 우주선 ‘셀베이션’은 또 하나의 방주, 그 배경이 우주. 그래도 태양계 행성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이 멘트는 스포일러). 

<셀베이션> 시즌1. 미국CBS 미국 드라마수 13부작(2017. 7.12~9.20)

[소개]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제작]후안 카를로스/ 프레스나딜로(연출), 엘리자베스 크루거(극본)


<셀베이션> 시즌2 미국CBS 미국드라마월 13부작(2018. 6.25~9.17)

[소개]위와 같음. 

[제작]스튜어트 길라드/ 케네스 핑크(연출), 엘리자베스 크루거(극본)


제작사와 제작자가 바뀌고 연출도 바뀌었다. 극본만 그대로다. ‘박수칠 때 떠나시라’. 나름의 선전(시즌1)에 취해 길이(분량) 조절에 실패한(시즌2) 드라마다. '시즌2' 마지막 회에 '시즌3'이 가능함을 암시하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제대로 된 결말도 없이 종결된 드라마. 드라마 주제(당면한 모두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길이 인간들의 이해관계 욕망 때문에 좌절된다)처럼 드라마도 거기서 끝났다. 좋다. 아니 나쁘지 않다. 오래 전 아리스토텔레스 쌤이(『시학』에서) 어떤 주제를 표방한 이야기는 그에 알맞은 ‘길이’가 있다고 경고한 바 있거니와. 주제 파악하시라. 

균형을 맞추기 위한 강박 때문에, 지금부터는 칭찬. ‘반전’까지는 그렇지만 시즌1 3화(28분 즈음)에서 중요한 결정, 곧 미국 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한 미팅이 진행된다. 백악관 공보관(A)이 대통령 측근인 안보 고문(혹은 ‘자문’)을 만나, 다르우스 텐즈의 차선책(EM 드라이브)이 최선임을 설득하는 과정. 필자는 이 대목이 이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한 장면이라고 보았다. 


A: 다리우스 탠즈를 믿는 건 알겠지만 그자의 팀이 60일 안에 EM 드라이브를 완성할지(는), 모르잖아요? 

B: 최고의 인재들이 연구하고 있단 건 알죠. 도덕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대안을. 

A: 그리스 신화 잘 아세요? 

B: 대학 때 좀 읽었죠. 

A: 그럼 스킬라와 카리브디스의 이야기도 알겠네요. 

B: 신화 속 괴물들이죠. 퀴즈예요? 

A: 오디세우스는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의 좁은 틈을 지나며 둘 중 하나는 마주해야 했어요. 스킬라는 선원 6명을 잡아갈 것이고 

B: 카리브는 소용돌이로 모두를 몰살시킬 수 있죠. 빠져나올 수도 있지만요. 

A: 오디세우스는 6명의 희생을 택했어요. 몰살당할 위험 대신 때론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해야 해요. 다수의 필요는 소수보다 앞서죠. 

B: 우리 삶을 지키기 위해 남의 삶을 파괴하자고요? 생사여탈권을 쥐고. 어쩌면 그렇게 무신경할 수 있어요? 

A: 내가 무신경해요? 나라고 이 현실이 반갑겠어요? 난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해야 해요. ‘최선의 선택은 몇몇 국가를 파괴해서 미국을 지키는 겁니다.’

_시즌1 3화 <진실은 무엇인가> 자막(번역) 이아람. 


그 몇몇 국가가 중국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그리고 러시아도 포함되어 있다. 핵미사일을 쏘아 소행성을 파괴하지만 그 파편들이 미국으로는 오지 않게 하는(미국이 방주다). 이제 원전 번역 해당 부분으로 가자. 희랍어의 영어 표기인 몇몇 인명과 지명부터 바로 잡자. 스킬라는 스퀼라, 카리브디스는 카륍디스, 오디세우스는 오뒷세우스다. 호메로스 서사시 『오뒷세이아』(천병희 옮김, 숲) 12권(299~300)이 출처다.


키르케의 품에서 여독이 아물 정도로 편안하게 지내던 오뒷세우스. 그러나 연인의 설득에도 그는 일행들을 데리고 기어코 떠난다. 집으로 가는 길이다. 안타깝지만 그런 오뒷세우스에게 키르케는 여정에서 만날 위험을 경고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세이렌의 유혹에서 벗어난 다음 위험은 이런 것이어요, 여보. 두 개의 바위 사이의 좁은 해협을 배가 지날 수밖에 없는데, 한 쪽은 스퀼라라는 괴물이고, 다른 한 쪽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소용돌이 카륍디스랍니다. 

 “그러니 그대는 스퀼라의 동굴 쪽으로 다가가서 얼른 배를 몰아/ 그 옆을 통과하세요. 배 안에서 여섯 명의 전우를 잃는 편이/ 한꺼번에 모든 전우를 다 잃는 쪽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까요.” 

선택지는 두 개뿐이다. 전우 여섯 명을 희생하여 다수를 살리느냐, 아니면 자신을 포함하여 모두가 희생될 것이냐? 그런데 욕심 많은 오뒷세우스는 제3의 선택은 없는지 묻는다. 

“혹시 카륍디스에게서 무사히 벗어나면서도/ 스퀼라가 전우들을 빼앗아갈 때 그녀를 물리칠 방법은 없는 건가요?”

혹시? 없다! 키르케는 단호하다. 스퀼라에게서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다. 6명 희생을 선택하라. 세상사에 공짜, 그런 것 없다. 최선만 찾지 말고 차선을 선택하라. 그녀(스퀼라)는 “디룽디룽 매달린 발을 열 개나 갖고 있고 커다란 목이 여섯 개나 되는데 목마다 무시무시한 머리가 하나씩 달려 있고, 머리에는 검은 죽음으로 가득 찬 세 줄로 된 이빨들이 단단히 그리고 촘촘히 나”(299면) 있다. 오뒷세우스 이 바보 여보야, 내가 언제 스퀼라가 한 차례만 공격한다고 말한 적 있어? 한 차례 더 12명, 또 한 차례 더 18명이잖아. 한 차례 공격 여섯 명 희생은 다행 아닌가? 그럼에도 아니 그리고 약인지 독인지, 키르케는 또 하나의 팁을 준다. 이어지는 공격에서 벗어나려면 스퀼라를 낳아준 어머니 크라타이아스를 부르라고. 그러면 스퀼라가 다시 덤벼드는 것을 막아줄 것이라고(피가 물보다 진하다). 

어허 이런 스퀼라(Skylla)가 누구인지, ‘주요 신명’(부록)을 살핀다.

 

“후기 신화에 따르면 스퀼라는 아름다운 소녀였으나 해신 글라우코스가 그녀에게 구혼한다. 그런데 그를 사랑하던 키르케가 질투심에서 그녀를 머리 여섯에 발 열인 괴물로 변하게 했다고 한다.”(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13권 730행 이하 참조) 


오뒷세우스의 당면한 위험인 스퀼라를, 그렇게 만든 당사자가 키르케이며 ‘질투’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사실. 모든 편안함을 제공하였지만 기어이 떠나겠다면 당신도 감당해야 할 페이가 있다. 키르케는 또 한 차례의  질투를, 이번엔 연인 오뒷세우스를 보내고 있는 것. 


최선이 없다면, 차선. 그중에서도 최선처럼 '보이는 혹은 보여지는' 차선의 해를 찾아야 하는데, 그런 줄 알면서도 사는 동안 사람들은 선택 앞에서 절망한다. 그리고 희망한다(안 되는 줄 알면서도 왜 그랬을까?). A에서 벗어나면서 B의 위험에서도 벗어날 방법은 없는 거니? 없다. 그래도 있다고 생각하고 찾으면 안 되는 거니? 글쎄, anyway.. 그 뭔가를 찾기 위해 부질없어 보이는 해답을 끊임없이 찾는, 그가 오뒷세우스이고 그것이 인생 아닐까, 혹시 그리고 문득. 너무 열심히 사는 것도 죄가 돼, 그럴 수도 있어, 강물은 제3한강교(밑을)를 흘러가니까. 


『오뒷세이아』는 그 실체를 파악하기 전, 두려움의 존재였던 바다의 위험을 무릅쓰고 탐사할 용기를 준 서사시다. 그렇게 항해의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했다. 제국의 발견이다. 그리고 괄목할만한 결실이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이다. '시즌2'는 그렇게 북아메리카를 배경으로 오픈했다. 그리고 그 후유증에서 지상의 인류 상당수는 지금도 자유롭지 않다. 다음 이야기다. 아래는 거론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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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road 2022-01-19 0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그리고 무섭네요. 좋다는 얘기 입니다.

Meta4 2022-01-19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간장게장은 밥도둑’이라는데 ‘OTT는 시간도둑’이라고 해야겠다. OTT. '동영상스트리밍플랫폼' 서비스의 일상화로,  이어서 몇 편씩 보기, 모두 몰아보기를 하다가 불현듯 한정된 내 인생 내 시간을 떠올리고 심지어 죄책감(?)이 들곤 한다. 예전 같으면 독서 휴가를 받았구나(대왕세종은 신하들에게 독서휴가를 주었단다), 좋아 좋아, 좋아라하면서 베개(종이책은 나무 재질이니 목침)로 써도 좋을 두께의 고전 읽기에 몰입했을 나. 그런데 몰아보기에 집중하다 보니 이젠 활자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종이책보다는 e-Book에 적응이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하기로 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핑계로 장시간 영상물 시청에 몰입하는 것. 


*드라마의 경우, 미드(를 비롯 서양)의 경우, 시즌 하나에 6부 혹은 8부 혹은 그 이상, 나름 흥행한 우리 드라마의 경우 16부(기본) 이상으로 편성되어 있다. 때문에 주어진 시간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 선택이 무척 중요하다. 시간은 돈이니까, 돈이라고 하니까, 가성비는 여기서도 적용된다. 곳곳에 시간 먹는 하마, 도처에 그렇고 그런 지뢰가 매설되어 있는 전장. 

**그러나 장점도 있다. 알고리듬에 따라 추천되는 동영상을 무심코 시청하노라면 그동안은 접할 수 없었던(참고로 필자는 넷플릭스) 문화권, 언어권, 가지가지 나라들의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 세계 곳곳 여러 나라를 두루 여행하고자 하는 꿈은 이룰 수 없으리라 체념했지만, 배경(나라)과 문화(언어)가 다양한 영상물들을 통해, 국내산(토종) 정서와 다름(틀림이 아니다)과 비슷함(맞음이 아니다)을 확인한다. 

***또 하나의 즐거움은 ‘서양’으로 분류되는 문화권에서 제작한 영상물에서 그들 문화의 원천이었을 서양 고전들이 바탕에 깔린 대사들을 만나는 일이다. 글로벌시장 구축을 위한 제1과제가 언어 장벽 넘기일 것인데, 그런 투자 덕분인지. 번역도 깔끔하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이 아니면, 제대로 된 번역에 적절한 투자가 이뤄질 수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더구나, 번역 영상물 자막은 최대한 간명하기에, 거기에 깃든 배경(스토리, 신화, 에피소드)가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가기 마련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다. 그래서 <See & Read>라는 카테고리를 생성하고 굳이 책(원작)을 기반으로 한 영상물이 아니라도, (서양)고전 읽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발견’들로 페이퍼를 작성하기로 한다. 고대 서양 고전들을 주로 읽었던 독서 경험들이 도움을 줄 것 같고, 여기 집중하는 이유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함도 있지만, 검색으로  확인 가능한 차고 넘치는 관련 정보들은 과감하게 배제한다. 일부러 그런 영상물을 찾아가는 것은 아니기에 얼마나 알찬 콘텐츠가 쌓일 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일종의 브렌딩이다. 


-Mete4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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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4 2022-01-18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어질 글들이 포함될 카테고리의 켄셥을 늘 확인하기 위해 올리는 글. 성격상 ‘페이퍼‘ 형식이 주를 이룰 것 같은데.. 해당 도서에 링크되지 않은 글들도 있을 것임.

Meta4 2022-01-19 0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왜 그랬을까? 1편을 작성하고 편집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