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베이션salvation’은 '구원'이다. 구원(救援) 혹은 구조(救助). SOS. 119 곳에 따라 911.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셀베이션> 시즌1·2에서 ‘셀베이션’은 새로운 버전의 ‘노아의 방주’(우주선)이기도 하다. 영화 <2012>가 지구온난화로 야기된 인류 멸망에서 선택받은 그들만이 히말라야 부근에 대기중인 ‘방주’를 찾아가는 이야기라면, <셀베이션>은 지구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소행성, 예견된 인류 멸망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종의 재난영화인데, 여기서 화성에서 새로운 삶을 찾게 해줄 우주선 ‘셀베이션’은 또 하나의 방주, 그 배경이 우주. 그래도 태양계 행성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이 멘트는 스포일러). 

<셀베이션> 시즌1. 미국CBS 미국 드라마수 13부작(2017. 7.12~9.20)

[소개]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제작]후안 카를로스/ 프레스나딜로(연출), 엘리자베스 크루거(극본)


<셀베이션> 시즌2 미국CBS 미국드라마월 13부작(2018. 6.25~9.17)

[소개]위와 같음. 

[제작]스튜어트 길라드/ 케네스 핑크(연출), 엘리자베스 크루거(극본)


제작사와 제작자가 바뀌고 연출도 바뀌었다. 극본만 그대로다. ‘박수칠 때 떠나시라’. 나름의 선전(시즌1)에 취해 길이(분량) 조절에 실패한(시즌2) 드라마다. '시즌2' 마지막 회에 '시즌3'이 가능함을 암시하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제대로 된 결말도 없이 종결된 드라마. 드라마 주제(당면한 모두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길이 인간들의 이해관계 욕망 때문에 좌절된다)처럼 드라마도 거기서 끝났다. 좋다. 아니 나쁘지 않다. 오래 전 아리스토텔레스 쌤이(『시학』에서) 어떤 주제를 표방한 이야기는 그에 알맞은 ‘길이’가 있다고 경고한 바 있거니와. 주제 파악하시라. 

균형을 맞추기 위한 강박 때문에, 지금부터는 칭찬. ‘반전’까지는 그렇지만 시즌1 3화(28분 즈음)에서 중요한 결정, 곧 미국 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한 미팅이 진행된다. 백악관 공보관(A)이 대통령 측근인 안보 고문(혹은 ‘자문’)을 만나, 다르우스 텐즈의 차선책(EM 드라이브)이 최선임을 설득하는 과정. 필자는 이 대목이 이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한 장면이라고 보았다. 


A: 다리우스 탠즈를 믿는 건 알겠지만 그자의 팀이 60일 안에 EM 드라이브를 완성할지(는), 모르잖아요? 

B: 최고의 인재들이 연구하고 있단 건 알죠. 도덕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대안을. 

A: 그리스 신화 잘 아세요? 

B: 대학 때 좀 읽었죠. 

A: 그럼 스킬라와 카리브디스의 이야기도 알겠네요. 

B: 신화 속 괴물들이죠. 퀴즈예요? 

A: 오디세우스는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의 좁은 틈을 지나며 둘 중 하나는 마주해야 했어요. 스킬라는 선원 6명을 잡아갈 것이고 

B: 카리브는 소용돌이로 모두를 몰살시킬 수 있죠. 빠져나올 수도 있지만요. 

A: 오디세우스는 6명의 희생을 택했어요. 몰살당할 위험 대신 때론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해야 해요. 다수의 필요는 소수보다 앞서죠. 

B: 우리 삶을 지키기 위해 남의 삶을 파괴하자고요? 생사여탈권을 쥐고. 어쩌면 그렇게 무신경할 수 있어요? 

A: 내가 무신경해요? 나라고 이 현실이 반갑겠어요? 난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해야 해요. ‘최선의 선택은 몇몇 국가를 파괴해서 미국을 지키는 겁니다.’

_시즌1 3화 <진실은 무엇인가> 자막(번역) 이아람. 


그 몇몇 국가가 중국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그리고 러시아도 포함되어 있다. 핵미사일을 쏘아 소행성을 파괴하지만 그 파편들이 미국으로는 오지 않게 하는(미국이 방주다). 이제 원전 번역 해당 부분으로 가자. 희랍어의 영어 표기인 몇몇 인명과 지명부터 바로 잡자. 스킬라는 스퀼라, 카리브디스는 카륍디스, 오디세우스는 오뒷세우스다. 호메로스 서사시 『오뒷세이아』(천병희 옮김, 숲) 12권(299~300)이 출처다.


키르케의 품에서 여독이 아물 정도로 편안하게 지내던 오뒷세우스. 그러나 연인의 설득에도 그는 일행들을 데리고 기어코 떠난다. 집으로 가는 길이다. 안타깝지만 그런 오뒷세우스에게 키르케는 여정에서 만날 위험을 경고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세이렌의 유혹에서 벗어난 다음 위험은 이런 것이어요, 여보. 두 개의 바위 사이의 좁은 해협을 배가 지날 수밖에 없는데, 한 쪽은 스퀼라라는 괴물이고, 다른 한 쪽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소용돌이 카륍디스랍니다. 

 “그러니 그대는 스퀼라의 동굴 쪽으로 다가가서 얼른 배를 몰아/ 그 옆을 통과하세요. 배 안에서 여섯 명의 전우를 잃는 편이/ 한꺼번에 모든 전우를 다 잃는 쪽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까요.” 

선택지는 두 개뿐이다. 전우 여섯 명을 희생하여 다수를 살리느냐, 아니면 자신을 포함하여 모두가 희생될 것이냐? 그런데 욕심 많은 오뒷세우스는 제3의 선택은 없는지 묻는다. 

“혹시 카륍디스에게서 무사히 벗어나면서도/ 스퀼라가 전우들을 빼앗아갈 때 그녀를 물리칠 방법은 없는 건가요?”

혹시? 없다! 키르케는 단호하다. 스퀼라에게서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다. 6명 희생을 선택하라. 세상사에 공짜, 그런 것 없다. 최선만 찾지 말고 차선을 선택하라. 그녀(스퀼라)는 “디룽디룽 매달린 발을 열 개나 갖고 있고 커다란 목이 여섯 개나 되는데 목마다 무시무시한 머리가 하나씩 달려 있고, 머리에는 검은 죽음으로 가득 찬 세 줄로 된 이빨들이 단단히 그리고 촘촘히 나”(299면) 있다. 오뒷세우스 이 바보 여보야, 내가 언제 스퀼라가 한 차례만 공격한다고 말한 적 있어? 한 차례 더 12명, 또 한 차례 더 18명이잖아. 한 차례 공격 여섯 명 희생은 다행 아닌가? 그럼에도 아니 그리고 약인지 독인지, 키르케는 또 하나의 팁을 준다. 이어지는 공격에서 벗어나려면 스퀼라를 낳아준 어머니 크라타이아스를 부르라고. 그러면 스퀼라가 다시 덤벼드는 것을 막아줄 것이라고(피가 물보다 진하다). 

어허 이런 스퀼라(Skylla)가 누구인지, ‘주요 신명’(부록)을 살핀다.

 

“후기 신화에 따르면 스퀼라는 아름다운 소녀였으나 해신 글라우코스가 그녀에게 구혼한다. 그런데 그를 사랑하던 키르케가 질투심에서 그녀를 머리 여섯에 발 열인 괴물로 변하게 했다고 한다.”(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13권 730행 이하 참조) 


오뒷세우스의 당면한 위험인 스퀼라를, 그렇게 만든 당사자가 키르케이며 ‘질투’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사실. 모든 편안함을 제공하였지만 기어이 떠나겠다면 당신도 감당해야 할 페이가 있다. 키르케는 또 한 차례의  질투를, 이번엔 연인 오뒷세우스를 보내고 있는 것. 


최선이 없다면, 차선. 그중에서도 최선처럼 '보이는 혹은 보여지는' 차선의 해를 찾아야 하는데, 그런 줄 알면서도 사는 동안 사람들은 선택 앞에서 절망한다. 그리고 희망한다(안 되는 줄 알면서도 왜 그랬을까?). A에서 벗어나면서 B의 위험에서도 벗어날 방법은 없는 거니? 없다. 그래도 있다고 생각하고 찾으면 안 되는 거니? 글쎄, anyway.. 그 뭔가를 찾기 위해 부질없어 보이는 해답을 끊임없이 찾는, 그가 오뒷세우스이고 그것이 인생 아닐까, 혹시 그리고 문득. 너무 열심히 사는 것도 죄가 돼, 그럴 수도 있어, 강물은 제3한강교(밑을)를 흘러가니까. 


『오뒷세이아』는 그 실체를 파악하기 전, 두려움의 존재였던 바다의 위험을 무릅쓰고 탐사할 용기를 준 서사시다. 그렇게 항해의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했다. 제국의 발견이다. 그리고 괄목할만한 결실이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이다. '시즌2'는 그렇게 북아메리카를 배경으로 오픈했다. 그리고 그 후유증에서 지상의 인류 상당수는 지금도 자유롭지 않다. 다음 이야기다. 아래는 거론한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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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road 2022-01-19 0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그리고 무섭네요. 좋다는 얘기 입니다.

Meta4 2022-01-19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