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나는 종이다. 사람 없는 오래된 절에 있는, 미리 스위치를 눌러두기만 하면 시간과 횟수 정확하게 지켜 울리는 전자동 종이다. 오늘 나는 평소와 달리 자정이 조금 못 되어 제야를 알리기 위한 중후하고 엄숙한 소리를 마호로 마을로 보낸다.” _12월 31일 토요일, <나는 종(鐘)이다>에서, "나는 기계다."  


소설 『천일의 유리』(전2권)는 구성 자체가 독특하고 난데없는 에피소드를 만나, 따분할 때마다 펼치는 책이다. 이게 소설이 맞나, 여느 독자의 첫인상도 필자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하루에 한 꼭지씩 무려 1,000개의 퍼즐들의 첫문장은 ‘나는 □□이다’로 시작된다. 여기서 ‘□□’은 시점이며, 화자(話者)이다. 이번에는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 자정 즈음에 울리는 ‘종(鐘)’이 관찰자(시점)다. (내 구조의 비밀은 세상에 죄 알려지고 말아) “아무도 내 소리에 옷깃을 여미지 않는다.” 오로지 소년(요이치)과 그의 친구인 파란 새(큰유리새)가 ‘내 소리’에 어김없이 반응하고 “쓸쓸하네,”라며 운다. 이에 그들이 가련하여 나는 고백한다. 


“나는 결국은 괘종시계와 마찬가지로 그저 기계일 뿐이니까. 아무쪼록 가볍게 흘려버리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일부러 한 번, 즉 백아홉 번째 소리를 장치가 부서질 것을 각오하고 내 자신의 의지로, 고오옹, 하고 낸다.”  


#01. '괘종시계와 다를 바가 없다'며 자신을 비하하는 종이 108번 다음 한 번 더 울릴 대한민국 서울 종로의 종각에서는 33번, 일명 보신각 종소리가 울린다. 108번(백팔번뇌)처럼 타종 33회는 불교의 의식과 연관되어 있다. 원래는 절에서 아침저녁으로 종을 108번 울렸는데, 아침과 저녁 예불을 알리는 타종 횟수도 그렇고, 제야의 종도 33회로 간소화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 왜 하필 보신각 제야의 종이 33회인가 그 유래는 조선 건국 초기로 거슬러 오른다. 1396년에 한양성이 완성되고 종루는 1398년에 완공했다. 이때부터 새벽 4시에 33번(28수+중앙 별자리 5수) 타종하여 성문을 열고, 저녁 10시에는 28회(동서남북 별자리인 28수 반영) 타종하여 성문을 닫는 의식이 시작되었다는 것. ‘숭유억불(崇儒抑佛)’ 이념을 실천한 조선이지만 불교가 국교였던 전 왕조의 영향까지 무시할 수는 없지 않았나 싶다. 


#02. 타종 횟수 관련,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친구는 일행과 함께 전북 남원과 경남 함양의 경계에 있는 지금은 퇴락한 사찰을 찾은 적이 있단다. 찻길은 있지만 오가는 중에 차를 만나면 교행하기가 힘든 곳. 2박3일쯤 머무는데, 거기 한 처사(남자 신도)를 만난다. 숙식을 해결하는 대신 절 바깥 살림을 책임지는 사람. 다담(茶談)을 물리고 ‘차곡차곡(茶穀茶穀)’ 절차에 따라 곡차(穀酒)를 마시는데, 주지 스님도 속세에서 공수하는 곡차(막걸리)를 모른 척해주신다는 것. 하루에도 두세 차례씩 예초기를 가동하며 사찰 일원의 시설관리부터 정원사 노릇까지 하는 처사에게 월급을 대신한 일종의 배려였다. “여기서도 하는 일이지만……,” 

곡차를 주거니 받거니 하던 처사가 이전 절에서 머물던 이야기를 꺼냈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사찰인데, 처사는 거기에서도 비슷한 일을 했는데, 중요 일과 중 하나가 조석으로 예불을 알린 타종이었다. 잠시 말을 멈춘 그는 책이라고는 거의 없는 수납장에 가까운 책꽂이에서 종이컵 하나를 꺼내더란다. 구겨진 흔적이 역력한 그 종이컵에는 노란색이 선명한 굵직한 콩이 반쯤 담겨 있었다. 

“새벽에는 스물여덟 번, 저녁에는 서른세 번 종을 쳐야 하는데 내가 몇 번을 치고 있는지 늘 헷갈리는 거요,”

해서 마련한 궁여지책이 33개의 콩알이었다. 저녁 타종 때는 처사의 오른쪽 호주머니에 33개의 콩알이 담겨 있고, 한 차례 타종을 할 때마다 콩 한 알을 왼쪽 호주머니로 옮기는 식으로 숫자를 체크했다. 새벽종을 울리려 나갈 때는 책꽂이에 콩 5알을 남겨 놓고 나가는 식이었다는 것. “누가 세겠어, 그런데 아닙니다. 어느 날 새백, (타종이) 한 번인가 빠진 모양인데, 주지가 그것을 알아차리고 한마디 하더라고요.” 친구는 33개의 콩알 사진을 촬영해 두었다고 보내주었다(사진). 새벽(朝)예불에 28회, 저녁(夕)예불에 33회, 조선의 보신각 타종 횟수와는 정반대다. 여기에도 뭔가 음모가 있는 것인가? 


#03. “백아홉 번째 소리를 장치가 부서질 것을 각오하고 내 자신의 의지로, 고오옹, 하고 낸다.” 원 플러스 원(1+1)도 아니고 투 플러스 원(2+1)도 아니고, 무려 백팔번뇌 플러스 원(108+1)이 새롭게 다가온다. 왜 108일까? 불교의 발생과 전파가, 인도 어디쯤에서 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간 데는 이론은 없을 듯하다. 소설 『천일의 유리』(전2권) 시간 배경은 1987년~1989년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천황이 죽고 새로운 천황이 즉위하여 연호가 바뀌는 격동기다. 그리고 그 종소리는 오늘 우리가 아는 여느 사찰이 아니라 오늘날도 여전한 일본의 절, 신사(神祀)에서 울려퍼진다. 

남산 아래, 해방촌에는 108계단이 있다.(331면) 용산고 뒤편 후암동 옛 종점에서 남산의 남사면 언덕 위로 오르는 긴 계단이 그렇단다. ‘108 계단’이라고 부르니, 108개의 계단이 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막바지에, 이 108계단을 오르면 신사(神社)가 있었단다. 일본제국을 위해 생명을 던진 일본군들의 명복을 기리는 곳, 거기에 조선인들이 ‘신사참배’를 하도록 강요했다. 그 흔적이다. 이제 108이란 숫자가 섬뜩하게 다가온다.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에도 계엄군 지휘본부를 옛 신사가 위치한 자리했다는, 조망이 좋은 산 정상에 설치한다. 전남 구례에 출장을 갔다가 지인의 안내로 손쉬운 등반을 한 적이 있다. 지리산 정상 가운데 하나인, 노고단 정상을 쉽게 오를 수 있다고. 정상 가까이 주차하고, 느리게 걸어도 왕복 두 시간쯤 발품을 팔면 정상에 다녀올 수 있다. 거기 S자 곡선 등산로를 가로지르는 지름길 나무(방부목) 계단이 있는데, 혹시 오를 때는 생각했는데, 내려올 때 따박따박 세어보니 계단 숫자가 108개였다. 숫자에는 의미가 숨어 있다, 그런 숫자가 있다. 


#04. 고대 그리스, 스파르테 정체의 초석을 다진 사람, ‘뤼쿠르구스 전’(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입법자 뤼쿠르고스에 관해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첫 문장)지만 숫자는 의외로 정확히 등장한다. 원로원의 원로는 28명. 그가 창설한 최고 의사결정 기구 원로원(비극의 상원) 원로는 28명.  28인가? 

1)(아리스토텔레스): 뤼코르쿠스와 결의한 30명 중 두 명이 겁이 나서 빠졌다(30-2=28) 

2)(스파이로스, 6*4=28): 처음부터 28명이었다. 7*4=28(28의 약수 중 28을 제외한 나머지 약수 1,2,4,7,14의 합이 28이므로 28은 완전 수)이다. 

그런데 정설은 있다. 이 책에도 있지만, 내(플루타르코스) 생각에, “뤼쿠르코스가 원로원 수를 28명으로 정한 까닭은 28명에 2인의 왕을 합하면 모두 30명이 되기 때문인 듯하다.”(28명+2명=30명의 원로들) 다음이 중요합니다. 28+2인의 왕들(씨족 1명, 부족 1명: 혈연 1인 지연 1인)의 세력(입지)을 반영했다는(플루타르코스 26~27면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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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4 2022-02-23 0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콩알 사진을 올리다보니, 아마도 종이컵채 호주머니에 넣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인터넷 검색 중 해외토픽 하나가 눈에 띈다. “고래 입에서 살아난 미국인, 20년 전 비행기 추락사고 생존자” 주인공은 미국인 마이클 패커드(2021, 56세). <뉴욕포스트>는 2021년 6월 12일 고래 입에서 탈출한 매사추세츠주에 사는 마이클 기사를 익일 보도했다. 기사는 그가 20년 전 경비행기 사고에서도 생존한 ‘행운(?)의 주인’이라는 데 강조점을 찍었지만, 필자의 관심은 두 번째 위기 그 자체였다. 

바닷가재를 잡으러 물에 들어간 패커드를 고래가 삼켜버렸다. 상어인 줄 알았는데 이빨이 없어서 고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다행히 고래는 30초 정도 뒤에 패커드를 뱉어냈다. 고래 입속이지만 잠수 탱크로 숨은 쉴 수 있었다. 구출되어 검진한 결과 크게 다친 데는 없어서 몇 시간 뒤 퇴원했다는 것. 고래 전문가인 필립 호어 영국 사우샘프턴대 교수는(<가디언> 인터뷰) 당시 그를 삼킨 고래도 ‘패닉’에 빠졌을 것이라며 “통상 고래 식도에는 멜론보다 큰 음식은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는 것. 


[02]현실과 동화는 확실히 다른가 보다. 했는데.. 

그때 필자가 읽고 있던 책 중 하나는 『철학 놀이터』(양문덕 지음, 숲, 2020)였다. “철학과 처음 만나는 이들에게 철학마을을 대표하는 철학자들의 사고방식을 귀엽고 상큼하게, 하지만 너무 가볍지 않게 소개하는 책입니다.” ‘여는 글’에 책의 성격이 담겨 있다. 최초 발행은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쯤 독자들에게 철학이란 무엇인지, 필자의 전공 분야인 서양철학을 알기 쉽게 들려주는 식이었다. 이른바 <피노키오의 철학> 시리즈로 상당히 많은 청소년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책이었다. 이번이 세 번째 개정판(출판사)일 듯한데, 이번은 전면 개정판이다. 아마도 고대 서양의 고전들, 특히 플라톤전집을 완역한 천병희 선생의 원전번역서 등을 펴낸 출판사로서는, 서양철학에 관한 안내서가 필요하다, 일종의 독자 서비스 차원에서 펴낸 것처럼 보인다. 

“아이에게 <피노키오>를 읽어주다가 불현듯 어떤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주인공이 인형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진짜 사람 같다고 느껴져서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싶더군요.”(PART1 인간은 무엇인가, 리드문) 피노키오는 인형일 때부터, 사람으로 변한 이후에도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때론 플라톤과 ‘대화편’ 형식으로 등장하는 등 시르즈 전편에 걸쳐 독자들의 감정 이입 대상으로 활약한다. 일종의 ‘캐릭터’가 부여된 주인공인 셈이다. 그런데, 필자는 동화 속 피노키오 이야기와 좀 달라진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 피노키오 줄거리로 피오키오를 공유하자고 한다. 

“천사는 피노키오에게 착한 아이가 되면 ‘진짜 소년’이 되게 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원작과 다르지만 저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줄거리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더 많이 알고 있는 쪽을 예시로 쓰겠습니다). 피노키오는 우여곡절을 겪다가 고래 배 속에 갇힌 할아버지를 구하고 쓰러집니다. 이 장면에서 천사는 피노키오를 진짜 소년이 되게 하죠.” (41면) 

원작과 가장 다른 부분이 할아버지가 고래에게 먹히고 구출되는 부분이다. 

“말썽꾸러기 피노키오를 찾으러 바다에까지 간 제페토 할아버지는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고래 배 안에 갇히게 되고, 피노키오는 그 소식을 듣습니다. ……피노키오는 앞뒤 재지 않고 그 길로 바다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듭니다. ……피노키오가 꾀를 내어 연기를 피우자 고래가 재채기를 하게 되고, 그사이 고래 배 속에서 빠져나와 피노키오와 할아버지는 허겁지겁 도망치죠.”(48면)

덕분에 나무 인형이던 피노키오가 사람이 되었지만,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은 몸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고 진정한 의미의 사람의 도리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설정으로, 철학을 통해 어엿한 어른이 되어가는 피노키오의 사고의 성장과정을 바탕에 깔고 있다. 


[2]1990년대 초반.. 고래 속을 가다.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83∼1945)

직장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어느 날, 누군가 소개한 책을 대형서점(당시 종로서적)에서 찾던 중이었다. 요즘과 같은 검색의 시대도 아니고, 찾다찾다 매장 직원에게 문의를 해도 그 책을 찾지 못하는 것이었다. 대충 기억으로 찾는 <고래 속을 가다>라는 책은 없었다. 결국 구매할 수도 없었고, 도서관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내 아이가 초등학생일 무렵, 견학 필수코스이던 ‘인체대탐험전’과 같은 것을 떠올렸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고래 속을 가다니.. 서점 언니로서도 좀 황당했을가? 

얼마 후에야 그 책을 소개한 친구 얘기를 들으니 ‘고래’가 아니라 <고뇌 속을 가다>(1986년 한국어판 출간)였다는 것. 그러나 동일 제목의 책은 결국 찾지 못하였고, 이후 번역된 한국어판 소설의 제목은 『고난의 길』(전4권, 3부작, 동광출판사)이었다. 작가는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83∼1945) 20세기 러시아 문학사에서 장편소설뿐 아니라 수많은 단편과 중편·역사소설·희곡 등을 남겼고, 특히 러시아인의 독특한 기질과 성격을 깊이 있게 성찰하는 평론가로도 널리 알려져 사람. 〈전쟁과 평화〉·〈안나 카레니나〉로 유명한 레프 톨스토이(1829~1910)라는 대문호의 유명세에 묻히는 바람에 또 한 사람의 러시아 문학의 거장이면서도 덜 알려진 사례다.  

"당신은 제가 괴테 다음으로 좋아하는 문학의 거인입니다. 내가 반하고, 또한 작가로서의 내가 그 누구보다 은혜를 입은 작가지요. 당신이야말로 러시아 문학 전통이 지닌 모든 위대함을 반영하는 러시아적 작가입니다.“  

20세기 독일 문학의 거장 토마스 만(1875-1955)이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에게 쓴 편지(1943.5.8.)의 일부다. 최고의 찬사다. 『고난의 길』 제1권(제1부)은 ‘두 자매’다. 제2권(제2부)은 ‘1918년’ 제3부 ‘음산한 아침’은 상하권으로 발행되었다.(1990, 이상 동광출판사 전4권) 


[3]그 톨스토이 말고 이 톨스토이의 『고난의 길』

얼마 전 대대적인 이사를 하면서 책들을 상당수 버렸는데, 대략 펼쳐놓은 책장에서는 이 소설집을 찾을 수가 없다. 이곳 중고서점에는 재고가 있긴 한데, 전4권이 10만원이다. 단지 오래된 책이라고만 할 수는 없지만 소위 386, 486, 586로 불리는 세대가 대학시절 ‘커리큘럼’에 따라 읽었던 일명 ‘사회과학’ 서적들이 거의 작은 도서관 수준으로 모여 있는 저수지가 하나 있는데, 이 책을 찾기 위해 한 차례 들러야 할 것 같다.


”열아홉 살의 다샤는 페테르스부르그 법대에 갓 입학한 재능 있고 매력적인 처녀다. 다샤는 품위 있고 아름답지만 남들과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텔레긴을 향한 사람의 감정에 눈뜨면서 다샤는 새롭고 성숙해지는 자신을 발견해간다. 한편 명성 높은 변호사 니콜라이의 아내인 다샤의 언니 카챠는 아름다운 외모와 세련된 취미, 능숙한 사교술을 겸비했다. 카챠는 사교계의 모임에서 언제나 주인공이 된다. 하지만 카챠는 행복하지 못하다. 퇴폐적인 생활을 슬퍼한다. 천박한 성격을 지닌 남편에 대한 애정도 식어버리자 연약하고 섬세한 카챠는 파리로 떠난다. 크림반도의 아름다운 여름과 하늘빛으로 반짝이는 바다와 포도주를 즐기며 그것을 행복으로 느끼는 사람들, 그들에게 1917년의 페테르부르그를 움직이는 혁명의 거대한 소용돌이는 술과 사랑과 권태로 흐려진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 그 속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다샤와 카챠 자매의 삶은 이제 어떻게 달라질까?“(제1부 ‘두 자매’ 개요)

   

”그들에게 1917년의 페테르부르그를 움직이는 혁명의 거대한 소용돌이는 술과 사랑과 권태로 흐려진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 작품 속 시간 배경은 1921~1941. 아, 여기서 고뇌 속을 가다가 나왔구나. 고래 속을 가다. 고뇌 속을 가다. 고난의 길. 언젠가 책을 찾는다면, 제대로 된 리뷰를 써볼 생각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그 누구나 고난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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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road 2022-02-10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선정 축하드리려 왔더니 새 글.. 잘 읽고 가요..

초란공 2022-02-10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두 톨스토이를 혼동한 적이 있어요.ㅋㅋ 조지 오웰의 에세이에 나왔던 것 같은데 어떤 ‘눈 밝으신 분‘이 지적해주신 기억이 납니다.^^;

Meta4 2022-02-19 10:42   좋아요 0 | URL
늦었네요. 감사합니다.
 


01. "전가(傳家)의 보도(寶刀)", 무심코 썼는데 일본에서 유래된, 일본의 무사 문화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이해가 바로 온다. 그런데, 이 칼은 실제로 쓰는 칼이라기 보다는 그 존재 자체로 정통성('자부심' 혹은 '자존심')을 입증하는 상징으로, 컬렉션만으로도 영향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길이 보존하세" 말하자면 서양 중세를 떠올리면 등장하는 봉건 영주 가문의 문장(紋章)과도 유사한 것이다. 무심코 받아들이는 '프레임'이란 개념도 그런 것 아닐까? 

02. 

비주얼은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나익주 지음, 2020)의 표지다. 한국 사회에 '프레임'이란 용어 혹은 개념을 유포한 저자가 쓴 일종의 사례집, 열심히 읽었다. 가장 궁금한 대목이 있었는데 나름의 답이다. 

"프레임 형성 이론에서 말하는 '프레임'이란 개념적 은유 이론에서 말하는 '개념 영역'에 해당한다. 물론 '개념 영역'이 적용 범위가 넓고 시간상 안정적이어서 정적인 특성을 가지는 반면, '프레임'은 발화 순간 적용 범위를 한정하고 실시간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동적인 특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개념 영역'과 '프레임'은 미세한 차이를 지니고 있다. 여기(이 책에)서는 두 개념 차이가 초래할 수도 있는 학문적 중요성을 논의하지 않기에, '개념 영역'과 '프레임'을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프레임'은 동(動)적이다. 달리 말하면 의도가 분명하다. 뉴스가 그렇듯 굿 뉴스보다는 배드 뉴스, 곧 내거티브에 익숙하다. 그 자체가 내거티브다. 필자는 이렇게 해석하는데 현실이기도 하다. 

03.

노승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말하기 시작하였다. 

"여기 입구는 좁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깊고 넓어지는 병이 있다. 조그만 새 한 마리를 넣고 키웠지. 이제 그만 새를 꺼내야겠는데 그동안 커서 나오질 않는구먼----- 병을 깨뜨리지 않고는 도저히 꺼낼 재간이 없어. 그러나 병을 깨선 안 돼. 새를 다치게 해서두 안 되구. 자, 어떻게 하면 새를 꺼낼 수 있을까?"

(『만다라』40면) 소설 속 자암 스님 말씀)

04. 

플라톤이『국가』에서 소개한 동굴 우화만큼이나 해석의 여지가 넓은 혼란을 주는 화두다. 

05. 

순간의 꽃, 꽃이 되는 찰나의 관심사는 한 컷의 사진, 한 편의 시, 책의 표지(디자인)인데. 그 사례로 이 표지를 골랐다. '병 속의 새'라는 화두와 프레임(혹은 한 개념을 강조하는 다른 개념)에 빗댄 것까지는 좋았는데, 말아 많았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06. 또 하나의 아쉬움은 필자도 말이 많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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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요즘 OOO 씨나 저를 보고 ‘얼굴 천재’라고 한다.”라며 외모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표출해 웃음을 자아냈다.](<스포츠투데이> 2016년 10월) 언제부터인가 ‘얼굴 천재’라는 말이 일상에서 거리낌 없이 쓰이고 있다. 정확히 그 언제가 언제인지를 알 수 없지만, 인터넷 사전은 “얼굴이 예쁘거나 잘생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풀이한다. 예시로 2016년의 신문 기사를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포털 검색 결과, 주로 연예인들을 다룬 기사들에서 따옴표 처리를 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아직은 이런 말의 쓰임을 견제하는 뭔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반응이 좋았던 드라마나 영화의 명대사로도 시대 흐름을 읽을 수 있는데, ‘얼굴 천재’라는 낯선 말을 처음 접했던 드라마가 떠오른다.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임수향·차은우 주연, JTBC드라마 금토 16부작, 2018.7.27.~9.15)이다. 어릴 적부터 ‘못생김’으로 놀림을 받았고, 그래서 성형수술로 새 삶을 얻을 줄 알았던 여자 ‘미래’가 대학 입학 후 꿈과는 다른 캠퍼스 라이프를 겪으면서 진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성장 드라마. 역시 성형수술이 개입하며 외모지상주의의 반작용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성형술이 세계적인 수준임을 감안할 때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불과 5년 전 드라마인데, 한 10년쯤 전에 방영된 것으로 예상했다는 것이 놀랍다.▲[아래 댓글]


문득 우리 일상어 권으로 진입한 ‘얼굴 천재’

그런데 외모가 한 사람이 가진 자질(특성)로 평가 기준이 되었던 것은 언제부터일까? 그 연원(淵源)은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되었다. 기록으로 인재 등용 기준이 되었던 신언서판(身言書判: 신수·말씨·문필·판단력)은 중국 당(唐 AD618~907)나라, 우리는 통일신라 무렵부터라고 한다. 네 가지 기준 가운데에서도 맨 앞이 ‘신(身)’이다. 여기에서의 신수(身手)가 오늘날의 ‘얼굴 천재’처럼 얼굴의 생김새, 외모 지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용모나 풍채가 인재를, 그리고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오래전부터 작동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제 ‘천재(天才)’라는 단어에 집중한다. ‘선천적으로 보통 사람보다 아주 뛰어난 정신 능력이나 재주’를 뜻하고 ‘그런 것을 가진 사람‘이 천재다. 천재 시인, 천재 과학자,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이처럼 특정한 분야(재주나 정신능력) 앞에 붙어 ’천재‘라는 단어를 쓴다. 물론 ’바이올린 천재‘나 ’과학 천재‘와 같은 쓰임도 가능하므로 ’얼굴 천재‘도 그럭저럭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 어색하다. 그런데, 천재가 ’선천적(先天的‘(↔후천적 後天的)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것‘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천재 성형외과 전문의에 의해 태어나는 성형미인, ’얼굴 천재‘는 이 즈음에서 혼란을 야기한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인재 기준, 통일신라부터 시작

내 아이가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인재 판단 기준으로 보았을 때, 어느 분야든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재능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기를 희망하는 것은 부모들의 한결같은 바람일 것이다. 오래된 서양 고전 중에서 그 노하우를 담고 있는 책이 있다. 바로 거의 모든 학문의 개론서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수사학/시학』이다. 얼굴 천재로 키울 수는 없더라도, 뛰어난 말솜씨와 글솜씨, 우수한 판단력을 가진 자연인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줄 노하우가 알차게 담겨 있다. 그리고 저자는 『시학』(22장)에서 ’천재‘를 직접 언급한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은유에 능한 것이다.) 이것만은 남에게 배울 수 없는 것이며, 천재의 표상이다. 왜냐하면 은유에 능하다는 것은 서로 다른 사물들의 유사성을 재빨리 간파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시학』 22장, 429면)

제호가 ‘시학(詩學)‘이라고 시의 표현법 중 하나인 ’은유(隱喩)법‘에 대한 강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만은 남에게 배울 수 없는 것”이라고 한정한다. 그리하여 앞서 살핀 ’천재‘라는 의미에 충실하게 은유 능력의 특별함을 강조한다. 누구나 노력한다고 가질 수 없는 능력이라는 것. 그러나 “그가 은유의 중요성을 강조하려고 한 과장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이 따라오지 못하게 하려는 '사다리 치우기'로 보인다. 은유는 학습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것이 현대 교육심리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김용규 지음, 『생각의 시대』 161면, 제3부 생각을 만드는 생각들 제1장 메타포라-은유) 김용규는 현대 철학자 폴 리쾨르의 『살아 있는 은유』(1975) 한 대목을 소개한다. 

 "유사한 것을 알아채고 관찰하고 보는 것, 거기에 시학과 존재론을 하나로 만드는 시인들의 그리고 철학자들의 정신적 섬광이 존재한다.“

은유는 유사성을 통해 '보편성'을, 비유사성을 통해 '창의성'을 드러내는 천재적인 생각의 도구라는 것.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배울 수 없는 것‘이라고 한 은유를 리쾨르는 ’배울 수 있는 것‘으로 여기고 ’노력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은유 능력, 남에게 배울 수 없는, 천재의 표상

은유가 가진 힘과 관련하여 또 하나(혹은 한 분야의)의 참고할 책이 있다. 나익주의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2020)다. 언어학자인 저자는 미국으로 유학하여 프레임 이론을 정립, 유포하고 우리 사고 과정과 사용하는 개념이 은유적임을 간파한 『삶으로서의 은유』를 쓴 레이코프와 존슨에게 공부했다. 『프레임 전쟁』을 비롯 대부분의 선생님 저작들을 국내에 번역 소개했으며, 오늘날 숱하게 쓰고 있는 ’프레임‘이란 개념을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은유는 단순히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넘어 우리의 죽고 사는 문제를 결정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교육과 경제, 국제 관계, 성과 사랑, 사회적 재난, 개신교 세계관을 은유로 묘사하는 언어 표현들을 분석함으로써, 추상적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핀다. 물론 이 책도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앞서 소개한 부분을 인용하면서(서장) 시작된다. 

한 권으로 묶인 ’수사학‘과 ’시학‘, 저마다 가진 콘텐츠가 어떻게 공조(共助하고 있는지, 관련된 리뷰를 읽은 기억이 있다. 『생각의 시대』에서는 시 읽기, 낭송하기, 기왕이면 암송하기 등 생각의 도구인 ’은유‘ 능력을 습득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한다(저자의 유투브 강연도 있다).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는 번역과 집필로 우리 사회에 프레임 이론과 은유 이론을 소개하고 있는 저자가 관심 영역을 중심으로, 우리 일상에 스며 있는 은유의 힘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 현실에서 구체적인 실례를 찾는 과정이고, 집필 기간이 좀 길어서인지 유행이 지난 옷을 입는 느낌이지만, 생생한 ’지금 여기‘ 우리 사회 뉴스들에 숨어 있는 불순한 의도를 떠올리노라면 섬짓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수사학/시학』- 『생각의 시대』-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

곧이어 3월, 새로운 학년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다. 필자에게는 지난 이야기가 되었지만, 자녀의 나은 삶을 희망하는 학부모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시작한 책들 소개가 길어졌다. 관련 이론들을 찾아 읽으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좋은 부모 노릇을 위해 어른들부터 읽어야 할 책들이기도 하다. 끝으로 『생각의 시대』 175면 한 대목을 소개한다.


”아이들은 작대기를 말(馬)이라고 타고 다니며, 바나나를 전화기라고 들고 다니고, 새끼줄이 뱀이라고 갖고 논다. 그러다 6세 이후부터 학교에 다니면서 점차 부적절하거나 불합리한 은유를 순화해가는데, 그러면서 은유의 사용도 함께 줄어든다. 

왜 그럴까? 주된 이유는 나이가 들면서 은유 능력이 점차 떨어진다는 데 있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다. 유사성이 아니라 동일성을 기반으로 하는 교육에 의해 아이들이 점차 길들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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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4 2022-02-05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문]▲<얼굴 천재>(by 지에이)라는 웹툰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게임 캐릭터로 변신하는 능력이 생겼다! 그 스킬과, 그 모습이 모두 내 것이다. 나는 이제 언제든 ˝얼굴 천재˝가 된다!” 그런가 하면 <외모지상주의>(by 박태준)라는 웹툰도 연재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드라마는 지금 넷플릭스 드라마(OTT)에서 서비스 중이다.
 

"우린 두렵다고 죽이지 않아. 생명을 구하려고 죽이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위쳐> 시즌2(2화 20분 즈음)에 나오는 대사다. 상황에 따라 ‘워딩’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시즌1에 이어 시즌2에서도 동일 메시지의 대사가 등장한다. ‘위쳐’란 마법이 만든 (인간의) 돌연변이. 세 주인공 중 하나로 ‘위쳐계’를 대표하는 게롤트가 '의외성의 법칙'으로 운명 지어진 시릴라 공주(시리)와 드디어 만나, 공주를 지키기 위해 위쳐들의 안식처인 케어모헨(집)에 이르고 (제거 대상이자 수입원인) 괴물들을 연구하는 실험실에서 둘이 나누는 대화다. 


시리: 훈련도요? 

게롤트: 훈련은.. 위험해

시리: 검은 깃털 달린 투구 쓴 사람도요. 

게롤트: 그자를 죽이고 싶니? 

시리: 네

게롤트: 왜? 

시리: 증오하니까요. 

게롤트: 중요한 얘기다. 우린 두렵다고 죽이지 않아. 생명을 구하려고 죽이지, 알겠니?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소설을 기반으로 한 '위쳐'. 드라마는 게임 시리즈를 원작으로 하기에 갖은 괴물들이 등장하고, 기묘한 마법의 세계가 펼쳐지는 등 판타지적 볼거리가 화려하고, 영상미도 기대 이상이다. 폴란드의 경제학자이자 소설가인 안제이 사프콥스키는 이 소설 하나로 단숨에 유럽을 대표하는 작가로 발돋움하였다. 

아직 원작소설을 읽어보지는 못한 상태인데, 그것이 소설이건 게임 시리즈이건 드라마이건 앞서 인용한 대목에 이 작품의 핵심 주제가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린 (너희 인간들처럼) 두렵다고 해서 그 두려운 상대를 죽이지 않는다.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 생명을 지켜내는 최후 수단으로 '죽임'을 선택한다. 드라마를 보면서 떠올린 한 권의 책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투퀴디데스 지음)이다. 인류 최초의 제국주의 전쟁으로 부를 수 있는 실제 전쟁을 기록한 역사, 전쟁이 왜 일어나는지 그리고 이후로도 전쟁은 왜 일어나게 되는지를 간파한 ‘정세 분석’은 이 책의 백미(白眉)이며, 훗날의 독자들에게(인류) ‘경고한 바’는 지금도 유효하다. 특히 해양세력과 대륙 세력이 만나는 반도라는 지정학적 배경에서 살아가기에 이 전쟁은, 그리고 전쟁사는 전율로 다가온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서양 고전들 대부분을 원전번역한 놀라운 성과를 남긴 천병희 선생에게 그나마 번역상을 드릴 수 있었던 ‘작품’으로, 이 책을 다룬 책(각종 ‘리뷰’를 포함)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라디오 인문 강연으로, 그 강연록을 반영한 강유원의 『소크라테스, 민주주의를 캐묻다』(라티오, 2장, 2021년 11월)는 ‘전쟁사’를 읽기 전후에 살필 책으로 추천할 만 하다. 간명한 정리가 돋보인다. 

두 차례의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헬라스(그리스) 세계는 30년 평화조약을 맺어 전쟁 억지력을 유지하고 있다. 해양세력(해군)을 기반으로 한 아테네 중심의 아테나이 동맹과 육상세력(육군)이 주축인 라케다이몬이 중심인 펠로폰네소스 동맹 간의 팽팽한 긴장. 이들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압도적으로 이기지 못한 상태에서 세력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이런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는 텍스트가 바로 전쟁사의 전반부이며, 곳곳에 같은 맥락의 진단이 등장한다. 정리하고 요약해서 소개하기가 힘들 만큼 텍스트 자체가 명료하다)


  

”그런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상태에서 둘 다 적대적으로 대치하고 있으며 적대감은 상승한다. 공포가 쉽게 적대감으로 번지는 것이다. 일종의 '덫'에 빠진 상태다. 이 덫에 걸리면 공포가 안보 불안을 불러오고 상대방의 전력을 과대평가하면서 급기야는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는 숙명론에 빠지기 쉽다.“(앞의 강유원의 책, 36-37면 요약)


상대방(세력)에 대한 두려움은 공포가 되고, 그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해 처음엔 사소한 듯 보이는 분쟁이 불씨가 되어 전쟁에 돌입하게 되는 것.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des Trap)'에 빠진 것이다. 

『예정된 전쟁』(세종서적, 2018.1.31.)은 '투키디데스 함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미국과 중국을 세력의 중심으로 대결하는) 국제정치판의 상태와 사태를 진단하였다. 



치르고 난 이후 생각하면 인류사의 끊임없는 전쟁의 원인은 무척 원초적인데, 먹거리(경제) 문제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거친 산악지역이라 몇몇 특산(과일)물을 제외하면 기본적인 식량(곡물)을 자급자족하기 힘든 아테나이 제국에게 제해권(制海權)은 생명줄이었다. 이 점을 간파하고 전쟁을 불사하면서까지 그리스의 영광을 이어가고자 한 정치지도자가 페리클레스다. 그가 죽은 다음 차세대 지도자로 등장한 클레온도 이 정책을 지지했으며, 알키비아데스가 시켈리아 원정의 필요성을 역설한 연설도 이 맥락에 닿아 있다. 농업생산이 나라 경제의 기반인 펠로폰네소스 동맹국들에게 제해권을 잡고 날로 페르시아 연안에까지 지중해 곳곳에 식민시를 세우며 팽창하는 아테나이 동맹은 불안감을 부추기고, 아테나이 동맹 입장에서도 그들의 근간인 육지에 잠재적인 적을 남겨둔 채 해외 진출에만 집중하기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들은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로 ’죽이고 죽는‘ 전쟁을 선택한 것이다. 



”아테나이의 영광은 제해권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이 제해권을 추구하면서 아테나이는 몰락했던  것이다“(앞의 강유원의 책, 43면) 전쟁에서 진정한 승자는 없다. 이 전쟁은 결과로만 치면 펠로폰네소스 동맹(라케다이몬)의 승리로 끝나지만 결국 제3의 세력에 의해 두 제국이 주도하던 영광의 그리스의 시대는 몰락하게 된다. 

두려움은 ’다름‘에서 싹트는데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고 서로 다름이 가진 강점으로 협동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돌이킬 수 없는 전쟁으로 이어진다. 생산하는 방식이 삶의 양식을 규정한다. 다른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인정하지 않으면 비극은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의 인용은 시사하는 바가 상당하다.

 "인간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동물입니다. 먹거리를 생산하는 방식이 인간 삶의 양식을 규정하죠. 양떼를 이끌고 목초지를 찾아다니는 유목생활자는 한곳에 정착해 삶을 영위하는 농경생활자와 다른 방식으로 먹거리를 마련합니다. 그 과정에서 유목생활자와 농경생활자는 다른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지요."(양문덕 지음, 『철학 놀이터』 63면, <먹거리 '찾기'에서 '생산'으로> 중) 


드라마 <위쳐> 시즌2의 한 장면. 게롤트는 '의외성의 법칙'으로 운명 지어진 시릴라 공주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간다. 언제까지나 게롤트라는 보호와 보살핌에만 의존할 수 없다. 게롤트도 시릴라공주가 스스로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 있도록 위쳐들이 받는 훈련을 시키게 된다. 시리는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과거보다 성장해가고 또 자신을 둘러싼 비밀 역시 알아가고자 한다. <위쳐> 시즌2는 이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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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4 2022-01-31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한, 어제 5년여 만에 ‘화성-12형‘ 발사..˝정확성과 안전성 확인˝(입력 2022. 01. 31. 06:36) 오늘 자 뉴스.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제로 바꾸면 8년여 만에로 긴장 국면의 주기가 바뀔까? 이 리뷰를 쓴 동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