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 "요즘 OOO 씨나 저를 보고 ‘얼굴 천재’라고 한다.”라며 외모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표출해 웃음을 자아냈다.](<스포츠투데이> 2016년 10월) 언제부터인가 ‘얼굴 천재’라는 말이 일상에서 거리낌 없이 쓰이고 있다. 정확히 그 언제가 언제인지를 알 수 없지만, 인터넷 사전은 “얼굴이 예쁘거나 잘생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풀이한다. 예시로 2016년의 신문 기사를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포털 검색 결과, 주로 연예인들을 다룬 기사들에서 따옴표 처리를 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아직은 이런 말의 쓰임을 견제하는 뭔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반응이 좋았던 드라마나 영화의 명대사로도 시대 흐름을 읽을 수 있는데, ‘얼굴 천재’라는 낯선 말을 처음 접했던 드라마가 떠오른다.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임수향·차은우 주연, JTBC드라마 금토 16부작, 2018.7.27.~9.15)이다. 어릴 적부터 ‘못생김’으로 놀림을 받았고, 그래서 성형수술로 새 삶을 얻을 줄 알았던 여자 ‘미래’가 대학 입학 후 꿈과는 다른 캠퍼스 라이프를 겪으면서 진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성장 드라마. 역시 성형수술이 개입하며 외모지상주의의 반작용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성형술이 세계적인 수준임을 감안할 때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불과 5년 전 드라마인데, 한 10년쯤 전에 방영된 것으로 예상했다는 것이 놀랍다.▲[아래 댓글]


문득 우리 일상어 권으로 진입한 ‘얼굴 천재’

그런데 외모가 한 사람이 가진 자질(특성)로 평가 기준이 되었던 것은 언제부터일까? 그 연원(淵源)은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되었다. 기록으로 인재 등용 기준이 되었던 신언서판(身言書判: 신수·말씨·문필·판단력)은 중국 당(唐 AD618~907)나라, 우리는 통일신라 무렵부터라고 한다. 네 가지 기준 가운데에서도 맨 앞이 ‘신(身)’이다. 여기에서의 신수(身手)가 오늘날의 ‘얼굴 천재’처럼 얼굴의 생김새, 외모 지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용모나 풍채가 인재를, 그리고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오래전부터 작동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제 ‘천재(天才)’라는 단어에 집중한다. ‘선천적으로 보통 사람보다 아주 뛰어난 정신 능력이나 재주’를 뜻하고 ‘그런 것을 가진 사람‘이 천재다. 천재 시인, 천재 과학자,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이처럼 특정한 분야(재주나 정신능력) 앞에 붙어 ’천재‘라는 단어를 쓴다. 물론 ’바이올린 천재‘나 ’과학 천재‘와 같은 쓰임도 가능하므로 ’얼굴 천재‘도 그럭저럭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 어색하다. 그런데, 천재가 ’선천적(先天的‘(↔후천적 後天的)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것‘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천재 성형외과 전문의에 의해 태어나는 성형미인, ’얼굴 천재‘는 이 즈음에서 혼란을 야기한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인재 기준, 통일신라부터 시작

내 아이가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인재 판단 기준으로 보았을 때, 어느 분야든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재능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기를 희망하는 것은 부모들의 한결같은 바람일 것이다. 오래된 서양 고전 중에서 그 노하우를 담고 있는 책이 있다. 바로 거의 모든 학문의 개론서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수사학/시학』이다. 얼굴 천재로 키울 수는 없더라도, 뛰어난 말솜씨와 글솜씨, 우수한 판단력을 가진 자연인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줄 노하우가 알차게 담겨 있다. 그리고 저자는 『시학』(22장)에서 ’천재‘를 직접 언급한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은유에 능한 것이다.) 이것만은 남에게 배울 수 없는 것이며, 천재의 표상이다. 왜냐하면 은유에 능하다는 것은 서로 다른 사물들의 유사성을 재빨리 간파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시학』 22장, 429면)

제호가 ‘시학(詩學)‘이라고 시의 표현법 중 하나인 ’은유(隱喩)법‘에 대한 강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만은 남에게 배울 수 없는 것”이라고 한정한다. 그리하여 앞서 살핀 ’천재‘라는 의미에 충실하게 은유 능력의 특별함을 강조한다. 누구나 노력한다고 가질 수 없는 능력이라는 것. 그러나 “그가 은유의 중요성을 강조하려고 한 과장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이 따라오지 못하게 하려는 '사다리 치우기'로 보인다. 은유는 학습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것이 현대 교육심리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김용규 지음, 『생각의 시대』 161면, 제3부 생각을 만드는 생각들 제1장 메타포라-은유) 김용규는 현대 철학자 폴 리쾨르의 『살아 있는 은유』(1975) 한 대목을 소개한다. 

 "유사한 것을 알아채고 관찰하고 보는 것, 거기에 시학과 존재론을 하나로 만드는 시인들의 그리고 철학자들의 정신적 섬광이 존재한다.“

은유는 유사성을 통해 '보편성'을, 비유사성을 통해 '창의성'을 드러내는 천재적인 생각의 도구라는 것.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배울 수 없는 것‘이라고 한 은유를 리쾨르는 ’배울 수 있는 것‘으로 여기고 ’노력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은유 능력, 남에게 배울 수 없는, 천재의 표상

은유가 가진 힘과 관련하여 또 하나(혹은 한 분야의)의 참고할 책이 있다. 나익주의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2020)다. 언어학자인 저자는 미국으로 유학하여 프레임 이론을 정립, 유포하고 우리 사고 과정과 사용하는 개념이 은유적임을 간파한 『삶으로서의 은유』를 쓴 레이코프와 존슨에게 공부했다. 『프레임 전쟁』을 비롯 대부분의 선생님 저작들을 국내에 번역 소개했으며, 오늘날 숱하게 쓰고 있는 ’프레임‘이란 개념을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은유는 단순히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넘어 우리의 죽고 사는 문제를 결정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교육과 경제, 국제 관계, 성과 사랑, 사회적 재난, 개신교 세계관을 은유로 묘사하는 언어 표현들을 분석함으로써, 추상적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핀다. 물론 이 책도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앞서 소개한 부분을 인용하면서(서장) 시작된다. 

한 권으로 묶인 ’수사학‘과 ’시학‘, 저마다 가진 콘텐츠가 어떻게 공조(共助하고 있는지, 관련된 리뷰를 읽은 기억이 있다. 『생각의 시대』에서는 시 읽기, 낭송하기, 기왕이면 암송하기 등 생각의 도구인 ’은유‘ 능력을 습득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한다(저자의 유투브 강연도 있다).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는 번역과 집필로 우리 사회에 프레임 이론과 은유 이론을 소개하고 있는 저자가 관심 영역을 중심으로, 우리 일상에 스며 있는 은유의 힘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 현실에서 구체적인 실례를 찾는 과정이고, 집필 기간이 좀 길어서인지 유행이 지난 옷을 입는 느낌이지만, 생생한 ’지금 여기‘ 우리 사회 뉴스들에 숨어 있는 불순한 의도를 떠올리노라면 섬짓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수사학/시학』- 『생각의 시대』-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

곧이어 3월, 새로운 학년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다. 필자에게는 지난 이야기가 되었지만, 자녀의 나은 삶을 희망하는 학부모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시작한 책들 소개가 길어졌다. 관련 이론들을 찾아 읽으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좋은 부모 노릇을 위해 어른들부터 읽어야 할 책들이기도 하다. 끝으로 『생각의 시대』 175면 한 대목을 소개한다.


”아이들은 작대기를 말(馬)이라고 타고 다니며, 바나나를 전화기라고 들고 다니고, 새끼줄이 뱀이라고 갖고 논다. 그러다 6세 이후부터 학교에 다니면서 점차 부적절하거나 불합리한 은유를 순화해가는데, 그러면서 은유의 사용도 함께 줄어든다. 

왜 그럴까? 주된 이유는 나이가 들면서 은유 능력이 점차 떨어진다는 데 있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다. 유사성이 아니라 동일성을 기반으로 하는 교육에 의해 아이들이 점차 길들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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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4 2022-02-05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문]▲<얼굴 천재>(by 지에이)라는 웹툰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게임 캐릭터로 변신하는 능력이 생겼다! 그 스킬과, 그 모습이 모두 내 것이다. 나는 이제 언제든 ˝얼굴 천재˝가 된다!” 그런가 하면 <외모지상주의>(by 박태준)라는 웹툰도 연재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드라마는 지금 넷플릭스 드라마(OTT)에서 서비스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