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연애 따위를 놀 청소년문학 28
방미진 지음 / 놀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금’ - 19세 초과 금지 연애 소설.

들어는 봤나~ 19세 초과한 사람들은 읽지 말라는 연애 소설?

 

공부, 성적, 진로... 학생이나 청소년이라는 대상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연결되는 단어다. 학생의 본분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 당연히 성적도 좋아야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선택된 대학은 곧장 직업으로 이어지는, 아주 강력한 끈으로 묶여 있다. 그러니까, 그 나이에 해야 할 일이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정해진 법칙 같은 느낌이다. 물론, 공부해야지. 하고자 하는 일, 미래를 위해서라도. 10대, 청소년이라는 그 시기는 공부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 시간이 ‘오직 공부’로만 채워질 수는 없다는 것을 아주 과감하고 즐겁게 이야기하는 청소년문학이 나타났다. 그동안의 청소년문학에서 만나보지 못했던, 제목부터 궁금하게 만드는 『어쩌다 연애 따위를』이 그 시간을 지나고 있는 아이들의 진짜 속마음을 듣게 하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연애도 운동화를 닮았다. 이건 꼭 사야 돼! 하는 핫한 신상도 몇 달 안 가 시들해지듯, 아무리 핫한 연애라도 금세 익숙해진다. 미련 없이 버리기 힘들다는 점도 닮았다. 아우, 이거 해외 배송에 완전 힘들게 구한 건데. 그래도 쟤만 한 애 없는데. 그래서 결국은 신발장에 곱게 모셔 두고 바람을 피우게 되는 거다.

익숙한 건 편하지만 어딘가 궁상맞다. 함부로 구겨 신은 운동화를 별 수 없이 질질 끌고 다니는 것처럼, 관계를 유지하다 결국에는 바이 바이.

아무리 멋진 것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된다. 아무리 멋진 것이라도. (26페이지, 조신)

 

네 명의 인물이 차례로 등장한다. 열여덟, 열아홉. 고2, 고3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아이들에게서 공부에 인한 스트레스나 누군가의 독촉, 성적에 인한 비관 같은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지금 이 아이들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다. 사랑, 연애.

조신. ‘하... 이 완벽한 비주얼~ 나도 내게 반하겠네♥’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외모를 가진 조신은 바람둥이다.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가 있지만,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다 만날 수 있다. 자뻑에 빠져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여자들이 뻑이 간다. 여자 친구가 있음을 알면서도 만나는 여자들이 수두룩. 하지만 여러 여자를 만나고 있어도, 그에게는 순정이 있다. 오직 너뿐이라고 외치고 싶은 여자를 가슴에 품고 있다.

서두.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왜 말을 못 해! 왜!’ 오동통 너구리를 연상할 수 있는 몸매에 때론 과격하고 솔직한 여학생이다. 애써 사들인 옷은 며칠이 채 되지도 않아 몸에 맞지 않게 된다고 해도 괜찮다. 다이어트란 실패해도 다시 할 수 있으니까, 이 정도 폭식과 과식쯤이야... 그런 서두에게 마음을 품은 이가 있단다. 누구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그렇다는데, 왜 당사자는 말을 안 하느냐고!!

안평. ‘다음 생에는 마성의 게이로 태어나겠어!’ 안평은 게이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고 게이로 살아가고 있다. 당연히 여자 친구는 사귀어본 적이 없다. 안평에게는 우정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품어버린 조신이 있으니까. 아, 떨려... 이 자식 이거 왜 이래? 마성의 매력이 철철 넘쳐흐르는 조신을 어떡하면 좋을까.

박순. ‘팬질...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 그룹을 좋아하고 멤버 중의 한 명에게 팬으로서의 사랑을 분출한다. 스스로 성공한 팬이 되는 게 꿈이라고 말할 정도로 열정과 애정을 담아 팬질을 한다. 그런 박순이 어느 날, 팬질을 그만두겠다고 한다. 왜? 미친 듯이 좋아했던 그 시간이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 거야?

순정. ‘왜 사랑할수록 내가 초라해지는 걸까?’ 조신의 공식적인 여자 친구다. 고3. 공부를 미치도록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면서 조신과의 연애를 그만둘까 싶기도 하지만, 조신과의 연애가 공부에 전혀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순정에게 연애와 성적은 어떤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신에게 헤어지자 말한다. 너무 잘난 남자를 만나는 평범한, 아니 평범하다고까지 못할 정도의 외모를 가진 순정에게 조신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상대일 뿐이다. 그러니까 우리, 헤어져!

 

나는 정말 조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 모두가 하는 말이 맞다. 우리가 만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런 연애는 로맨스가 아니라 코미디다.

하지만 원망은 없다. 원망이라니 당치도 않다. 나 같은 여자가 조신 같은 남자를 만나 연애하게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아니, 조신 같은 사람이 나 같은 인간을 좋아하게 될 확률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이 지구상에 과연 얼마나 있을까? 나는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다. 잠시나마 나를 순정 만화 속에 살게 해주어서. (147페이지, 순정)

 

표지부터 순정만화 삘 나기에 무슨 내용이기에 그런가 했다. 상당히 발랄하면서도 정작 이 아이들의 진짜 얘기를 왜 이제야 듣게 되었을까 싶어 안타깝기도 했다. 공부나 성적은 이 아이들에게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운명공동체라 여긴다고 해도, 그 아이들의 시선에 비친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나 연애를 솔직하게 들어본 적이 없는 듯하다. 왜냐고? 그러면 안 되는 시기라고 이미 못 박아 버렸기에, 아예 처음부터 차단된 단어이고 있어서는 안 될 감정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아이들에게 있어서 공부만큼이나 중요하고 필요한 건 바로 이런 감정이고 시간이었던 거다. 누군가를 좋아해서 연애하고, 가슴앓이하고, 헤어져 보고, 연예인을 향한 팬질이 가져다준 시간은 헛되게 흘러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그렇다.

 

안평과 나는 그 전쟁으로 인해 한 가지를 배웠다.

누군가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집단도 언젠가는 이해관계에 따라 특성을 약점으로 규정하며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랑하는 존재를 지키려는 마음이 나를 지독하고 잔인한 인간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인간은 그런 존재라는 것을. 사랑은 추악함을 부르기도 한다. (129페이지, 박순)

 

그룹의 팬질을 하던 박순이 팬질을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안평에게 하는 얘기들은 서늘했다. 미친 듯이 집중했던 대상, 그 대상 하나로 똘똘 뭉쳤던 팬덤이라는 하나의 덩어리가 박순에게 남겨준 것은 허탈감이었다. 서로의 마음 하나씩 생채기를 만드는 건 순식간, 그 일에 인해 상대를 할퀴고 헐뜯고 한 사람 매장하고 떠나보내는 일은 누워서 떡 먹기. 팬질의 경험이 박순에게 가르쳐준 것은 사람 살아가는 세상에서 배워야 할 기본적인 예의가 아니었을까. 순간적인 감정으로 나 하나 살겠다고 한 사람의 인격을 모독하는 일이 결국 후회와 미안함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살아가면서 내내 지우지 못할 불편함일 것이다. 물론 그것 하나 때문에 팬질을 그만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시간이 경험하고 배우게 한 어떤 게 분명하게 있다는 것이다. 팬들의 사랑을 먹고 산다는 아이돌에게 아낌없이 쏟아 부었던 박순의 사랑. 그 파릇파릇한 열정과 집중이 부러웠다.

 

사랑과 연애를 했던 네 사람, 조신, 순정, 안평, 서두. 이 아이들에게 사랑은 상대를 향한 감정이자 자신의 결핍을 채우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또한, 자존감을 낮게 하는, 그 낮은 자존감을 확인하는 순간을 만들기도 했다. 바람둥이라 부르는 조신이 바라는 것은 자신을 향한 관심이었다. 분명 내가 좋아해서 만나는 여자 친구가 있지만, 내가 더 사랑하는 것이 아닌, 나를 더 사랑해주는 그 마음과 애정을 바라는 것으로 바람둥이가 된다. 그래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말리지 않았다. 예쁜 여자가 아닌 그저 자신이 만나고 싶은 여자를 만난 것이다. 그에 인해 상처받는 한 사람, 조신의 여자 친구 순정은 잘난 조신으로 인해 더 주눅이 들고, 조신의 바람기를 전해주는 소식들로 아파하다가, 선택한다. 더 이상은 조신 때문에 상처받지 않으리라. 항상 같이 있으면서 조신에게 저절로 마음을 줘버린 안평은 민감한 시기에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게 된 남학생을 보게 한다. 그런데 안평의 모습만 보면 그게 염려할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면 되는 것, 마음이 가는 대상에게 마음을 열어 보이는 것. 비록 상대가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지만 그건 어떤 사랑에서도 볼 수 있는 단면이 아니던가. 그러니까 연애라는 것을 두고 보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안평이 게이여서가 아니라. 가장 귀여웠던 인물이 바로 서두. 서두의 외모를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읽게 하는데, 서로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한 채로 자신이 하는 오해로 흐르게 내버려두는 이들의 어긋난 마음이 가장 재밌게 펼쳐진 대목이었다. 통통하고 귀엽고 말발 좋은 이 아이를 어쩌면 좋단 말이야...!

 

밤 12시. 슬픔도 허기도 달랠 길 없었던 나는 식탁에 쪼그리고 앉아 불도 켜지 않은 채, 밥을 비벼 먹으며 청승을 떨었다.

근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듯.

울고 먹고 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이 장면이 무척이나 전형적이라는 사실에 짜증이 났다. 꼭 이런 것만 드라마 같지, 이런 것만! 식상해도 괜찮으니까 연애도 좀 드라마틱하면 안 되겠냐? 어? (68페이지, 서두)

 

각 인물의 시선에서 화자는 ‘내’가 되어 서술한다. 같이 모여 있을 때의 그 객관적인 장면이 아닌, 오직 그들 각자의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가장 솔직한 기회였다. 비록 말할 수는 없었지만,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아파하고 슬퍼할 줄 아는 시간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끝까지 그 유쾌함을 놓지 않고 풀어간 이 아이들의 연애가 읽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게 한다. 허투루 흘러가는 시간이 아님을 보게 한다. 틀에 박히고 뻔한 내용이 아니라, 우리가 정작 들어야 할 이야기는 이런 게 아니었을까. 지금 그 시간을 지나고 있는 아이들에게 가장 공감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유치원 때부터 여자 친구 남자 친구를 사귄다는데, 곧 성인의 대열에 합류할 이 아이들에게 사랑이나 연애가 빠질 수 있겠냐고. 인정할 건 인정하고, 봐줄 건 봐 주자. 그래야 솔직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

 

한 가지 더, 내가 이 책을 읽고 놀랐던 건 저자 방미진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의 전작 두 편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참 서늘하고 어둡다는 거였다. 두 편 모두 청소년소설이었지만,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말일 거로 생각했다. 그게 그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고 방미진이 표현할 수 있는 방식 전부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네. 전작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같은 시간을 걷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밝고 재밌게 표현할 줄 아는 작가였네. 그래서 더 읽는 재미가 있었던 듯하다. 전작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생긴 저자에 대한 선입견을 확 깨트려줘서 더욱 반가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월우 작가의 꾸준한 출간이 눈에 들어온다.

첫 작품을 재미있게 읽어서 그런지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도 저절로 되는 상황인데...

 

이번 작품 역시 표지부터 살살 끌리기에 충분한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주만에 집밥을 먹었다.

달랑 한끼.

별 것 아닌 방금 지은 밥을 내놓는 엄마가 새삼 고단하게 보였다.

 

병원 생활 2주를 넘어가고 있다.

처음 병원에서 본 보호자들의 모습에서 병원 생활 어느 정도 했는지 다 보인다고 말했었다.

신환으로 방금 들어왔는지 장기 환자인지...

아직은 견디는 모습을 보면 얼마 안 된 환자와 보호자들...

얼굴에 찌든 표정을 보면 장기적인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와 보호자들...

나는 이제 그 찌든 표정들을 거울로 보고 있다.

그들의 얼굴, 표정이 내 모습이리라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진짜 거울을 본 게 얼마나 된 건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거기서 배운 것은

보호자가 아무리 애를 써도,

병원에 돈을 미친듯이 쏟아부어도,

환자 본인의 의지가 없으면 아무 소용 없다는 것...

죽거나 살거나 둘 중 하나로 빨리 판가름 나지 않으면

모두가 지쳐나가 떨어져 다 같이 죽자는 것...

의미없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지라, 지친다...

 

 

잠깐 집에 왔다가 온라인을 켜니, 몇백통의 메일이 가득하다.

대부분 읽지 않고 삭제할 목록들이라서 휴지통으로 직행이지만...

 

 

알라딘에 들어와서도 낯설기는 마찬가지.

정말 '이런 책이 있었어?'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신간이 수두룩...

신간은 커녕 구간 구경도 못하고 있는 지금인데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들을 왜 괴물이라 불러야 하는지, 알 수 있을까....

아동 성 학대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을 듯하다.

 

알아야 할 점과 배워야 할 점을 동시에 담고 있을 것 같아 궁금하다.

사실 제목만 봤을 때는 이런 내용인 줄 몰랐는데, 소개글 보다가 호기심에 눈에 담아본다.

 

 

 

 

보통 아저씨의 신간이란다.

일상의 철학자라 불리는 그가 전하는 오늘을 살아가는 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을 것 같다.

많은 소식과 이미지 속에서

우리가 섭취해야 할 목록을 잘 만들 수 있게 하지 않을까...

 

 

 

 

 

 

 

 

 

 

 

 

 

 

대한민국 치킨전.

별그대 때문에 중국에서도 인기라는 치맥인데,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사는 이 작은 동네에도 치킨집이 여러 곳인데, 도대체 대한민국에서 치킨이란 뭔가 싶다.

별 것 아닌 먹거리 정도로만 여겼는데, 치킨에 대한 심오한 분석이 나오지 않을까 궁금해진다.

 

상실의 시간들.

제목 때문에 무조건 궁금했던 책.

막상 펼쳐보지도 못하고 궁금해하기만 하는데도 쉽게 잊을 수 있는 책은 아닐 듯하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꼭 한번 펼쳐보고 싶은 책...

 

 

 

 

덥다.

덥다는 것도 병원 로비를 지나 택시 승강장으로 가면서 알았다.

매번 나올때마다 착각한다.

그때야 점퍼를 벗고 택시에 올라탄다.

가만히 발을 내려다보면 운동화는 병원에 두고 슬리퍼 차림이다.

신발을 바꿔신지도 못하고, (사실 생각조차도 못했다.) 내려온 거다...

이런 일이 한두번도 아니었고...

이 지치는 시간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온몸을 두드려 맞은 것처럼 넋 놓아버리기 전에...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4-07-16 1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21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커피사랑 2014-07-22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가 아프신지는 모르지만, 얼른 낫길 바랍니다. 책 보는 취향이 비슷해서 글 남깁니다 ^^

구단씨 2014-07-27 17:32   좋아요 0 | URL
leekh0524님. ^^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책은, 워낙 편식이 심한 사람이라서요...
책에 대해서는 잡식성이 되고 싶습니다. ^^
 
심장박동을 듣는 기술
얀 필립 젠드커 지음, 이은정 옮김 / 박하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이런 사랑이 가능해?

처음에는 추리소설을 대하는 느낌으로 읽기 시작했던 듯하다. 어찌 되었든 사라진 사람이 존재하고 그 흔적(생사)을 찾아가는 거꾸로 시간 여행이었으니, 미처 알지 못했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로울 거로 생각했다. 물론, 읽기에 충분히 재미있고 흥미롭다. 다만 이건 내가 이 책의 초반부에 추리소설 분위기라 느꼈던 선입견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고 완성되기까지의 과정과 의미가 남달랐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내 머릿속에 내내 떠다니던 물음표가 이야기의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그래, 이럴 수도 있지.’ 라는 수긍을 끌어냈다. 여전히 나는 두 주인공이 보여주었던 사랑을 기대하거나 확신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사랑을 하는 사람, 이 소설에서의 틴 윈과 미밍 같은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거다. 혹시 알아? 지금은 기대하지 않는 그 사랑의 모습을 언젠가 내가 주인공이 되어 보게 될지도... 내가 하지 못했다고 해서, 내가 기대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랑의 색이 달라지거나 없는 게 되어버리는 건 아닐 테니까. 사랑의 색깔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거다. 그러니 그 누구의 사랑도 우리가 함부로 이해하거나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다. 나는 이들과 같은 사랑을 못 했지만, 이들과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는 간절함도 아직은 없지만, 사랑의 한 장면으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교감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말로 다 표현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조각이 그들의 진심을 알았을 때 맞춰지는 느낌. 이 책을 읽는 내 느낌이 딱 그거였다. 그래서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사랑, 이런 사랑이 있다는 가능성이나 믿음 같은 것을...

 

물리적인 거리가 서로를 향한 마음을 잘라내지 못하며, 장애 역시 사랑의 힘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 작품이다. 불우하게 태어나고 자라면서 후천적인 이유로 앞이 보이지 않게 된 틴 윈, 태어날 때부터 다리가 불편했던 미밍. 우연인 듯했지만 결국은 운명이라 말할 수밖에 없는 인연의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쌓인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 시간을 거슬러 보게 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년의 길 안내자가 된 미밍, 다리가 불편한 소녀의 두 다리가 되었던 틴 윈. 아무것도 바란 것이 없다. 그저 두 사람의 마음이 통한 그 상태 그대로의 시간, 삶을 원했을 뿐이다. 여기에 딱 어울리는 표현은 ‘순수’라는 단어일 것이다. 그것 외에 쉽게 떠오르는 단어도 없다.

 

그 사랑을 찾아가는 길을 딸을 통해 보여준다. 어느 날 사라진 아버지를 찾기 위해 줄리아는 아버지의 고향 미얀마를 찾아간다. 변호사인 아버지가, 모든 것을 다 갖춘 삶을 살던 아버지가 사라진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어떤 식으로든 그 관계에 대한 결말도 찾으려 했는지 모른다. 아무 연락이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것도 자의적으로 자취를 감춘 아버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어렵기도 하겠지만, 숨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딸의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거다. 그때 줄리아의 앞에 놓인 50여 년 전 아버지의 사랑은 혼란을 가져온다. 어쩌면 아버지의 배신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닐지도. 그렇기에 찾아갈 수밖에 없다. 아버지의 지난 시간을, 계속되는 사랑을 찾아 미얀마의 소읍 깔로로 향한다.

 

깔로의 카페에서 만난 중년의 남자 우 바의 이야기를 따라간 여정이 아름답다. 딸의 입장에서 비로소 아버지의 삶 한 부분을 이해하는 순간이기도 했지만, 이 소설을 읽는 이에게도 한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 사랑이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보여주는 신비로움이 매력적인 소설이다. 우 바를 통해 들려오는 그들의 사랑은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함을 말하는 듯하다. 서로 보지 않아도, 멀리 떨어져 있어도, 긴 시간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는 사랑을 증명하는 셈이다. 그게 가능하냐고 묻거나 의심하는 이가 있다면, 그들이 하는 사랑의 숭고함을 먼저 보게 한다. 가능하냐고 물었던 물음표를 지워버린다. 그들의 사랑이 믿거나, 믿게 되거나, 혹은 이해하거나 하는 결말을 보게 한다. 그래, 그런 사랑도 있어, 라면서...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사랑의 장면을 한 권의 소설로 풀어내고 있다. 서로에게 닿아있던 그 심장박동을 평생 듣고 있었던 거다. 현재를 살면서 보기 드문 이야기에 감동의 끄덕임을 보내면서, 사랑의 진정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그 어떤 것보다 강한 힘을 가진 게 사랑이라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눈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느낀다는 것(그게 심장박동의 들림이어도)의 의미를 찾게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장애가 가로막을 수 없는 것의 위대함을 이들의 사랑으로 확인했다. 동시에 딸의 시선으로 아버지를 이해하는, 화해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한 사람으로, 남자로서 가진 그의 사랑의 자취를 따라가면서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을 일으킨 거다. ‘이런 사랑이 가능해?’라고 물었던 나의 의심은 이때부터 희미해진다.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냥 보면 되는 거다. 이런 사랑도 있다는 것을...

 

슬픈 해피엔딩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대로 느끼게 해준 소설이다. 그 안타까움이 슬프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니기에 해피엔딩이라 불러도 좋을 이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몇 번쯤이었을까... 정확하게 세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몇 번쯤 구급차를 탔다. 그 몇 번 중의 한번은 나를 위해 탄 것이고, 나머지 경우는 내가 부모라 부르는 이들을 위해 탄 것이다. 목숨을 앞에 두고 절실한 순간에 찾게 되는 생명줄이 구급차라니... 그런데 항상 죽음을 얘기하는 사람이, 죽을 거라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막상 당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니 구급차를 부르라 한다. 그러니까 죽을 거라는 말은 다 거짓말인 거다. 숨이 막히고 죽음의 문턱에 가까워지니 살기 위해 바동거리는 거다. 그 목숨이 아까워서, 놓기 싫어서...

 

굳이 가지 않아도 될, 정말 가기 싫은 곳 중의 하나가 병원이다. 그중에서도 응급실은 정말 싫다. 별일 아니라고 해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런데 정말 별일이면 심장도 두근거리고 몸의 기운이 쭉 빠진다. 의사나 간호사, 환자나 보호자 사이에서 피곤이 덕지덕지 묻어난다. 갈 때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당혹스러움에 놀라는 것은 기본인 곳. 미리 접수하고 진료 받는 외래가 아니고서야 갑자기 닥치는 이런 상황이 당황스러움을 만든다. 침착하자고 다짐하고 애쓰면서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상주하듯 대기실에 있다 보면 금방 지친다. 수도 없이 왔다갔다, 새로운 환자가 들어오고 치료가 끝난-아니면 치료를 더 받기 위해 입원실로 올라가는- 환자가 나가고, 시장 속 같은 상황에 어지럼증과 두통이 밀려온다. 늘 한밤중과 새벽에 기다렸다는 듯이 몰리는 곳...

 

 

 

 

 

 

 

 

 

병원을 경험하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의사는 최악의 상황을 아주 상세하고 정확(?)하게 미리 말해주는데, 정작 병원비에 대해서 미리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수납처에서도 경과된 정산에 대해서만 말해주지 앞으로의 비용에 대해 말해주지는 않는다. 모두가 모르쇠로 일관한다. 예를 들면,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몸은 현재 이런 상태이며, 이런 치료, 시술(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며, 시간은 어느 정도 소요될 것 같으며, 그걸 시행했을 경우 이런 (아주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각종 동의서에 사인하라고 말한다. 물론 그 동의서는 결국, 이 모든 치료에 대해 보호자가 허락했으니 어떤 변수가 발생하더라도-그게 사망이라 할지라도-병원은 책임지지 않는다, 라는 말로 정리된다. 그런데 그러한 치료(혹은 수술)를 하면서 드는 비용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환자나 보호자가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의 침상에 누워있으면서도 중요한 것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말이다. 어떤 상품을 구매할 때 이만큼의 비용을 지불하면서 그 상품을 구매할 가치가 있는지 따져가며 구매해야 하는 것처럼, 치료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만약 100원의 치료비용이 든다면, 그 100원 안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의 치료에 대한 단가가 적용되는지, 그 비용을 지불하면서 그 치료를 선택해야 하는지의 여부를 고민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러면서 정산할 때만 말해준다. 100원의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가 500원의 비용이 청구된다면, 그 500원이 상당히 부담이 되는 금액이면서 지불할 수 없는 형편의 금액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 많다.

주치의가 뭔가를 한참 설명하고 사인해야 할 것들을 말하고 있다. 응급 상황의 일이라 설명을 들으면서도 정신이 산만해진다. 외래 진료에만 특진료가 있는 줄 알았는데, 치료나 시술(수술)에도 특진료가 있나 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 의사만이 할 수 있다는데 누굴 선택하란 말인가. 그러니까 특진료는 선택에 의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선택이란 단어를 지워도 될 만큼...

 

치료를 받다가 병원을 옮길 경우, 소견서와 검사서 같은 서류를 발급해주기는 하는데, 거기에 또 사인이 필요하다. 자기네 병원에서 치료를 중단하고 가는 것에 대해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퇴원 혹은 전원(병원을 옮기는)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곳이었구나... 새삼 알게 되는 사실에 대해 허무한 웃음만 흘리고 있는 시간이다.

 

요즘 의사들 참 잘생겨 보이는 사람이 많더라. 응급실이라는 상황도 그렇지만 지금껏 응급실에서 경험한 의사들 대부분이 오동통 너구리 면발 같은 몸이거나 아주 떡이 진 머리로 무뚝뚝 불친절한 말투이거나 했는데, 이번에 본 의사들은(아마도 인턴이나 레지던트인 듯하다.) 외모가 참 훈훈하더라. 키 180cm는 보통인 것 같고, 얼굴도 평범하면서 눈길이 가더라. 어떤 이는 공유를 닮았고, 어떤 이는 아주 댄디한 스타일로 깔끔해 보이기도 하더라. 제법 친절하기까지 하다. 그동안 응급실이나 의사를 경험하면서 가졌던 편견이 살짝 누그러졌다.

 

하지만 거기까지... 병원은 병원이고, 현실은 로맨스소설이 아니다. 로맨스 소설에서 만났던 병원의 풍경과 의사, 혹은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로맨스는 소설일 뿐이라는 것. 이야기로의 재미는 충분히 즐길 수 있기에 만나도 좋은 소설들이지만, 현실 속 병원에 대입하기는 상당히 거리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이틀 만에 집에 잠깐 들렀다. 급하게 나가느라 정리되지 않은 집이 어수선하다. 제날짜에 반납하지 못한 도서관의 책은 연체가 되었고, 하려고 했던 뭔가는 바로 포기를 하게 한다. 갑작스러운 일에 뒤죽박죽 엉망이 된 상황이 두통과 위염을 불러온다. 잠은 잔 것 같지만 잔 느낌은 없다. 보호자 대기실에서의 하룻밤은 멀쩡한 사람도 환자로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이틀 동안 병원에 있는 보호자들의 표정과 한숨소리를 지켜보면서 거울을 보는 듯했다. 상당히 긴, 장기전이 될 듯한 상황에 몸과 마음이 먼저 신호를 보낸다. ‘그냥, 너도 바로 아파버려.’ 라면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꼬마요정 2014-07-05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병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지요.. 고생 많으십니다. 음식 잘 챙겨드시구요. 힘 내십시오~

구단씨 2014-07-09 22:3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꼬마요정님. ^^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뭐, 그냥, 그럭저럭, 버티고 있습니다.
저절로 다이어트가 되고 있어서 좋아해야 할까 생각하면서 웃음도 나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