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박동을 듣는 기술
얀 필립 젠드커 지음, 이은정 옮김 / 박하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이런 사랑이 가능해?

처음에는 추리소설을 대하는 느낌으로 읽기 시작했던 듯하다. 어찌 되었든 사라진 사람이 존재하고 그 흔적(생사)을 찾아가는 거꾸로 시간 여행이었으니, 미처 알지 못했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로울 거로 생각했다. 물론, 읽기에 충분히 재미있고 흥미롭다. 다만 이건 내가 이 책의 초반부에 추리소설 분위기라 느꼈던 선입견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고 완성되기까지의 과정과 의미가 남달랐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내 머릿속에 내내 떠다니던 물음표가 이야기의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그래, 이럴 수도 있지.’ 라는 수긍을 끌어냈다. 여전히 나는 두 주인공이 보여주었던 사랑을 기대하거나 확신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사랑을 하는 사람, 이 소설에서의 틴 윈과 미밍 같은 사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거다. 혹시 알아? 지금은 기대하지 않는 그 사랑의 모습을 언젠가 내가 주인공이 되어 보게 될지도... 내가 하지 못했다고 해서, 내가 기대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랑의 색이 달라지거나 없는 게 되어버리는 건 아닐 테니까. 사랑의 색깔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거다. 그러니 그 누구의 사랑도 우리가 함부로 이해하거나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다. 나는 이들과 같은 사랑을 못 했지만, 이들과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는 간절함도 아직은 없지만, 사랑의 한 장면으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교감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말로 다 표현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조각이 그들의 진심을 알았을 때 맞춰지는 느낌. 이 책을 읽는 내 느낌이 딱 그거였다. 그래서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사랑, 이런 사랑이 있다는 가능성이나 믿음 같은 것을...

 

물리적인 거리가 서로를 향한 마음을 잘라내지 못하며, 장애 역시 사랑의 힘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 작품이다. 불우하게 태어나고 자라면서 후천적인 이유로 앞이 보이지 않게 된 틴 윈, 태어날 때부터 다리가 불편했던 미밍. 우연인 듯했지만 결국은 운명이라 말할 수밖에 없는 인연의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쌓인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 시간을 거슬러 보게 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소년의 길 안내자가 된 미밍, 다리가 불편한 소녀의 두 다리가 되었던 틴 윈. 아무것도 바란 것이 없다. 그저 두 사람의 마음이 통한 그 상태 그대로의 시간, 삶을 원했을 뿐이다. 여기에 딱 어울리는 표현은 ‘순수’라는 단어일 것이다. 그것 외에 쉽게 떠오르는 단어도 없다.

 

그 사랑을 찾아가는 길을 딸을 통해 보여준다. 어느 날 사라진 아버지를 찾기 위해 줄리아는 아버지의 고향 미얀마를 찾아간다. 변호사인 아버지가, 모든 것을 다 갖춘 삶을 살던 아버지가 사라진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어떤 식으로든 그 관계에 대한 결말도 찾으려 했는지 모른다. 아무 연락이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것도 자의적으로 자취를 감춘 아버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어렵기도 하겠지만, 숨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딸의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거다. 그때 줄리아의 앞에 놓인 50여 년 전 아버지의 사랑은 혼란을 가져온다. 어쩌면 아버지의 배신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닐지도. 그렇기에 찾아갈 수밖에 없다. 아버지의 지난 시간을, 계속되는 사랑을 찾아 미얀마의 소읍 깔로로 향한다.

 

깔로의 카페에서 만난 중년의 남자 우 바의 이야기를 따라간 여정이 아름답다. 딸의 입장에서 비로소 아버지의 삶 한 부분을 이해하는 순간이기도 했지만, 이 소설을 읽는 이에게도 한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 사랑이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보여주는 신비로움이 매력적인 소설이다. 우 바를 통해 들려오는 그들의 사랑은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함을 말하는 듯하다. 서로 보지 않아도, 멀리 떨어져 있어도, 긴 시간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는 사랑을 증명하는 셈이다. 그게 가능하냐고 묻거나 의심하는 이가 있다면, 그들이 하는 사랑의 숭고함을 먼저 보게 한다. 가능하냐고 물었던 물음표를 지워버린다. 그들의 사랑이 믿거나, 믿게 되거나, 혹은 이해하거나 하는 결말을 보게 한다. 그래, 그런 사랑도 있어, 라면서...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사랑의 장면을 한 권의 소설로 풀어내고 있다. 서로에게 닿아있던 그 심장박동을 평생 듣고 있었던 거다. 현재를 살면서 보기 드문 이야기에 감동의 끄덕임을 보내면서, 사랑의 진정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그 어떤 것보다 강한 힘을 가진 게 사랑이라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눈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느낀다는 것(그게 심장박동의 들림이어도)의 의미를 찾게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장애가 가로막을 수 없는 것의 위대함을 이들의 사랑으로 확인했다. 동시에 딸의 시선으로 아버지를 이해하는, 화해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한 사람으로, 남자로서 가진 그의 사랑의 자취를 따라가면서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을 일으킨 거다. ‘이런 사랑이 가능해?’라고 물었던 나의 의심은 이때부터 희미해진다.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냥 보면 되는 거다. 이런 사랑도 있다는 것을...

 

슬픈 해피엔딩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대로 느끼게 해준 소설이다. 그 안타까움이 슬프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니기에 해피엔딩이라 불러도 좋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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