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쯤이었을까... 정확하게 세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몇 번쯤 구급차를 탔다. 그 몇 번 중의 한번은 나를 위해 탄 것이고, 나머지 경우는 내가 부모라 부르는 이들을 위해 탄 것이다. 목숨을 앞에 두고 절실한 순간에 찾게 되는 생명줄이 구급차라니... 그런데 항상 죽음을 얘기하는 사람이, 죽을 거라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막상 당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니 구급차를 부르라 한다. 그러니까 죽을 거라는 말은 다 거짓말인 거다. 숨이 막히고 죽음의 문턱에 가까워지니 살기 위해 바동거리는 거다. 그 목숨이 아까워서, 놓기 싫어서...

 

굳이 가지 않아도 될, 정말 가기 싫은 곳 중의 하나가 병원이다. 그중에서도 응급실은 정말 싫다. 별일 아니라고 해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런데 정말 별일이면 심장도 두근거리고 몸의 기운이 쭉 빠진다. 의사나 간호사, 환자나 보호자 사이에서 피곤이 덕지덕지 묻어난다. 갈 때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당혹스러움에 놀라는 것은 기본인 곳. 미리 접수하고 진료 받는 외래가 아니고서야 갑자기 닥치는 이런 상황이 당황스러움을 만든다. 침착하자고 다짐하고 애쓰면서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상주하듯 대기실에 있다 보면 금방 지친다. 수도 없이 왔다갔다, 새로운 환자가 들어오고 치료가 끝난-아니면 치료를 더 받기 위해 입원실로 올라가는- 환자가 나가고, 시장 속 같은 상황에 어지럼증과 두통이 밀려온다. 늘 한밤중과 새벽에 기다렸다는 듯이 몰리는 곳...

 

 

 

 

 

 

 

 

 

병원을 경험하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의사는 최악의 상황을 아주 상세하고 정확(?)하게 미리 말해주는데, 정작 병원비에 대해서 미리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수납처에서도 경과된 정산에 대해서만 말해주지 앞으로의 비용에 대해 말해주지는 않는다. 모두가 모르쇠로 일관한다. 예를 들면,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몸은 현재 이런 상태이며, 이런 치료, 시술(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며, 시간은 어느 정도 소요될 것 같으며, 그걸 시행했을 경우 이런 (아주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각종 동의서에 사인하라고 말한다. 물론 그 동의서는 결국, 이 모든 치료에 대해 보호자가 허락했으니 어떤 변수가 발생하더라도-그게 사망이라 할지라도-병원은 책임지지 않는다, 라는 말로 정리된다. 그런데 그러한 치료(혹은 수술)를 하면서 드는 비용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환자나 보호자가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의 침상에 누워있으면서도 중요한 것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말이다. 어떤 상품을 구매할 때 이만큼의 비용을 지불하면서 그 상품을 구매할 가치가 있는지 따져가며 구매해야 하는 것처럼, 치료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만약 100원의 치료비용이 든다면, 그 100원 안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의 치료에 대한 단가가 적용되는지, 그 비용을 지불하면서 그 치료를 선택해야 하는지의 여부를 고민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러면서 정산할 때만 말해준다. 100원의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가 500원의 비용이 청구된다면, 그 500원이 상당히 부담이 되는 금액이면서 지불할 수 없는 형편의 금액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 많다.

주치의가 뭔가를 한참 설명하고 사인해야 할 것들을 말하고 있다. 응급 상황의 일이라 설명을 들으면서도 정신이 산만해진다. 외래 진료에만 특진료가 있는 줄 알았는데, 치료나 시술(수술)에도 특진료가 있나 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 의사만이 할 수 있다는데 누굴 선택하란 말인가. 그러니까 특진료는 선택에 의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선택이란 단어를 지워도 될 만큼...

 

치료를 받다가 병원을 옮길 경우, 소견서와 검사서 같은 서류를 발급해주기는 하는데, 거기에 또 사인이 필요하다. 자기네 병원에서 치료를 중단하고 가는 것에 대해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퇴원 혹은 전원(병원을 옮기는)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곳이었구나... 새삼 알게 되는 사실에 대해 허무한 웃음만 흘리고 있는 시간이다.

 

요즘 의사들 참 잘생겨 보이는 사람이 많더라. 응급실이라는 상황도 그렇지만 지금껏 응급실에서 경험한 의사들 대부분이 오동통 너구리 면발 같은 몸이거나 아주 떡이 진 머리로 무뚝뚝 불친절한 말투이거나 했는데, 이번에 본 의사들은(아마도 인턴이나 레지던트인 듯하다.) 외모가 참 훈훈하더라. 키 180cm는 보통인 것 같고, 얼굴도 평범하면서 눈길이 가더라. 어떤 이는 공유를 닮았고, 어떤 이는 아주 댄디한 스타일로 깔끔해 보이기도 하더라. 제법 친절하기까지 하다. 그동안 응급실이나 의사를 경험하면서 가졌던 편견이 살짝 누그러졌다.

 

하지만 거기까지... 병원은 병원이고, 현실은 로맨스소설이 아니다. 로맨스 소설에서 만났던 병원의 풍경과 의사, 혹은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로맨스는 소설일 뿐이라는 것. 이야기로의 재미는 충분히 즐길 수 있기에 만나도 좋은 소설들이지만, 현실 속 병원에 대입하기는 상당히 거리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이틀 만에 집에 잠깐 들렀다. 급하게 나가느라 정리되지 않은 집이 어수선하다. 제날짜에 반납하지 못한 도서관의 책은 연체가 되었고, 하려고 했던 뭔가는 바로 포기를 하게 한다. 갑작스러운 일에 뒤죽박죽 엉망이 된 상황이 두통과 위염을 불러온다. 잠은 잔 것 같지만 잔 느낌은 없다. 보호자 대기실에서의 하룻밤은 멀쩡한 사람도 환자로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 이틀 동안 병원에 있는 보호자들의 표정과 한숨소리를 지켜보면서 거울을 보는 듯했다. 상당히 긴, 장기전이 될 듯한 상황에 몸과 마음이 먼저 신호를 보낸다. ‘그냥, 너도 바로 아파버려.’ 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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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4-07-05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병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지요.. 고생 많으십니다. 음식 잘 챙겨드시구요. 힘 내십시오~

구단씨 2014-07-09 22:3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꼬마요정님. ^^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뭐, 그냥, 그럭저럭, 버티고 있습니다.
저절로 다이어트가 되고 있어서 좋아해야 할까 생각하면서 웃음도 나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