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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빛깔들의 밤
김인숙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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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이 우연이라면 희망도 우연처럼 찾아오겠지...『모든 빛깔들의 밤』
‘잊을 수 없으면 지워야 하고, 지울 수 없으면 죽여야
한다(229페이지)’는 말이 가슴에 박혀버리는 순간,
잔인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이 말이 그 어떤 다짐보다 더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들렸다. 잊으려 애쓰는 모습이 간절하고, 지우려고 발버둥
치는데도 지워지지 않아 가슴을 쥐고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 상황이 끝나는 점을 만나지 못한다. 끝이 없는 고통을 품는 것만이
남았다면, 어쩔 텐가. 고통의 원인을 죽이는 수밖에.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사고였더라도, 내가 이렇게 나아지고 보듬으려 악쓰는 데도 안 된다면,
별수 없다. 가능한 다른 방법을 찾아 그 원인을 소멸시켜야 한다. 어려운 건 그 소멸의 방법, 소멸의 점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거다. 그래서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길어지고 끝이 없어지는 건지도 모른다. 알 수 있다면, 가능하다면, 완벽하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열차 탈선 사고가 일어났다. 시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
조안은 아이와 함께 열차에 타고 있었다. 기관사는 자살하려고 선로 위에 누워버린 한 남자를 발견했다. 열차는 멈추려고 급정거했지만 탈선하고,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차량 안은 불과 연기로 가득 찼고, 조안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창문 밖으로 아이를 던졌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아이가 죽었고 조안은 살았다. 사고 후 조안은 정신적 충격으로 밖에 나가지 못한다. 조안은 계속 정신과 치료를 받고 남편 희중은 그런 조안에게
모든 것을 집중한다. 조안의 양아치 동생 상윤은 열차 사고의 원인이 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주먹을 휘두른다. 뭐든, 그 사건의 빌미를 제공한
모든 것을 부수고 미친 듯이 퍼부어야만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울분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조안은 정신을 내려놓았고, 그 사고와 연관된
사람들의 일상은 파탄 났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갈 방법은, 고통이 사라질 방법은, 없었다.
사고는 우연이었을까. 우연이겠지. 우연이어야만 해. 우연이
아니라면 이들의 상처를 멀쩡하게 두 눈으로 보는 게 불가능하다. 일한 돈을 받지 못해 죽어버리겠다고 만취한 채 선로 위에 누워버렸던 트럭 기사,
환경단체의 반발로 공사가 중단되어 트럭 기사에게 급여를 주지 못했던 회사, 인근의 철새도래지를 지키려고 공사에 반대했던 환경단체. 설상가상
선로지반까지 약해져 열차는 탈선했고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처음으로 죽은 남편의 생일을 챙기고자 했던 희중의 어머니, 아이와 함께 그
기념일을 챙기려 열차에 올랐던 조안, 뉴스로 사고 소식을 듣고 미친놈처럼 달려가던 희중을 태워준 약국 손님, 식당에서 양아치들과 싸우게 되어
도망가던 백곰이 본 사고 현장, 백곰을 죽일 듯 따라가던 양아치가 구원의 손길이 된 것, 조안과 희중의 집 517호로 이사 온 백곰, 417호로
이사해도 변한 게 없었던 조안. 위층 아래층에서 동시에 들리는 아이 울음소리. 귀신도 사람도 울어버리는 시간, 공간.
기억을 죽이기까지 해서 잊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는 건,
아픈 일이다. 그 아픔의 크기를 알 수도 없다. 그런 다짐이 필요할 정도의 고통이라니,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나? 미리 말하지만, 같은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고통을 알지 못한다. 대신 아파해줄 수도 없다. 오롯이 당사자의 몫으로 남아 아파하고 견디고 버텨야만 한다.
아직도 바람에 흔들리는 노란 리본의 영혼을 달래줄 수 있는 자, 누구인가. 그 상실을 끌어안고 버티듯 살아가야만 하는 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는 오지랖은 부리지 말자. 아무도,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같은 경험을 하기 전에는... 아이를 잃고 살아남아 매일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조안, 그런 조안을 감시하듯 지켜봐야만 하는 희중. 자신의 작은 마음으로 죽음을 보게 했던 삼촌과 대화하는 백곰(백주), 신들린 듯
기도문을 외우는 희중의 어머니. 미친 것처럼 보였던 사람들이 그 상황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으로 보였다면 나도 미친 건가. 미치지 않고서는 그
불행을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러니 그 미친 사람들이 정상일 수밖에.
없었던 일, 일어나지 않은 사고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런 경험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갈 수도 없다. 모든 것이 끝난 후에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다고 해서 죽은 아이가 살아 돌아올
수는 없고, 리셋 버튼 하나 누른다고 해서 지워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자꾸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 그 열차에 타지 않았다면, 거짓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다면, 첫사랑 정희를 만나지 않았다면... 저절로 긴 그림자가 만들어진다. 열차 사고가 아닌, 훨씬 이전의 불행을 차곡차곡 끌어와
지금 시간에 밀어 넣는다. 불행의 이유는 더 짙어지고, 상처와 죄책감도 깊어간다. 누구의 책임이라고 물을 수 없고 그때 그 시간 때문에 지금
불행하게 살아갈 이유도 없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서로 연결되어 모든 것이 하나인 것처럼 여기게 한다. 지금 이런 시간과 고통의 이유가 그때부터
시작된 걸 거야, 라는 덩어리로 채우게 하는 마음의 흐름. 그 마음속이 온통 캄캄해져 빛이라곤 떠올릴 수 없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뭔가
싶을 때,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였던 양아치 상윤의 한마디가 뒤통수를 친다.
“다시 한 번 말해봐.”
“누나, 괜찮아.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잖아.”
상윤의
가슴에 예리한 통증이 지나갔다. 조안은 위로받고 싶었던 것이다.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어떤 말을 들어도 결국 괜찮을 수는
없겠으나, 어쩌면 그래서라도 더 그런 말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293~294페이지)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시 살아갈 수 있게, 캄캄한 밤을 밝은
빛으로 채울 수 있게, 그 온전한 삶으로의 가능성을 부여할 수 있는 건 '괜찮다'는 단 한마디였는지 모른다. 약의 복용량을 늘이고 무슨 일을
저지를까 싶어 감시하듯 지키는 게 아닌, 위로의 말이 필요했던 거였다. 조안이 백곰 앞에서 울어버렸던 건 아마도 그런 마음의 폭발이었지 않을까.
아무 관계도 아닌 사람이 건넨 '괜찮습니까?'라는 물음 앞에서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렸던 건 아마도 그래서였으리라. 가끔은 그냥 모르는 대로
묻어버리고, 묻지 않고 건너가기도 하고, 삶의 중심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불안과 고통을 버려두어도 좋지 않을까. 그런 행동이나 다짐이,
어둠을 통과해서 빛을 만나려는 희망을 희미하게 피우는 시작일지도 모르잖아. 죄책감, 상실감, 고통을 동반한 불행을 건너 만날 수 있는 건
희망이고, 그 희망을 가능하게 하는 건 갖은 모양으로 통과해야만 하는 그 시간이니까. 그래서 기다릴 수도 있다. 지금 잠깐 내려놓았어도 그 빛이
찾아와 나를 밝혀줄 순간을. 산다는 건 이런 어둠이 지나가기도 하는 일이라고, 밝게 비춘 곳을 디딜 날도 곧 만날 거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상처를 치유하고 건너가야만 더 단단해질 수 있다고. 모든 밤, 사랑이었던 것도 잠깐 내려놓고, 지독히 두렵겠지만, 주춤주춤 현관문도
열어보면서, 어둠이 지나면 찾아올 어떤 것을 기다린다.
우연처럼 찾아온 불행이 우연처럼 물러갈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