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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앤턴 - 살만 루슈디 자서전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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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자서전을 읽는다는 건, 그동안 나의 책 읽기 범주 안에 ‘반드시’ 포함되진 않았다. 작가가 쓴 글을 좋아하되, 그 이상의 것까지 굳이 들어야 할 필요성까지 느끼지 못해서 그런지 어떤 건지... 더욱 이 책을 앞에 두고 고민이 컸다. 살만 루슈디의 책을 눈앞에 두고도 완독하지 못했기에, 그의 자서전이 나에게 편하게 다가올 거란 기대가 없어서다. 그의 작품을 읽지 않고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게, 예습이 되지 않은 수업시간을 맞이하는 것 기분? 좋은 작품들이란 얘기는 귀가 따갑게 들어왔으니 꼭 완독해야 하는데... 뭐, 그런 부담에 펼치기가 어려웠는데, 앞부분에서부터 그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슬람교와 예언자 무함마드와 쿠란을 모독한 ‘악마의 시’의 작가에게,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을 알면서도 출판에 관여한 모든 자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어디서든 그자들을 발견하는 즉시 처단하기를 모든 무슬림에게 촉구합니다.” (16페이지)라는 협박에 엄청 놀랐는데, 그 놀라움을 바로 재치로 받아들이게 하는 다음 장에서 이미 그 부담은 사라졌다. 통신원이 말했다. “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호메이니는 미국 대통령에게도 금요일 오후마다 사형선고를 내리거든요.” 방송이 시작되고 호메이니의 위협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루슈디는 이렇게 대답했다. “더 비판적으로 쓸 걸 그랬어요.” 그 순간에도 그 이후에도 그는 그렇게 말한 것을 늘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17페이지) 그의 작품 『악마의 시』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을 통신원은 별일 아닌 것으로 넘기게 하는 말투, 자신의 작품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진심으로 말하는 루슈디의 모습이라니. 상상만 해도 웃음이 먼저 나온다. 아, 이런 자유와 용기가 그의 글을 더 빛나게 만들어주고 있었나 보다 싶다.

 

그의 소설 『악마의 시』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슬람교의 탄생 과정을 담은 이 책은 출간 때부터 논란을 일으켰고, 이란의 지도자 호메이니가 종교 칙령(파트와)을 언급한다. 이때부터 루슈디의 도피생활은 시작됐고, 『악마의 시』와 관련된 사람들이 상해를 입거나 죽었다. 말 그대로 루슈디는 살해 위협 속에서 그 자신과 가족, 그의 작품을 지켜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하게 된다.

 

그가 태어난 해인 1947년부터의 이야기가 있지만, 큰 틀은 『악마의 시』로 비롯된 암흑의 시간, 뺏겨버린 그의 황금기가 주를 이룬다. 십몇 년의 도피생활. 그가 도피 생활을 하며 만든 가명 ‘조지프 앤턴’(조지프 콘래드와 안톤 체호프를 합한 이름)이 자서전의 제목이 된 이유가 저절로 이해된다. 무장 경찰에 의해 보호 받고 살아야만 했던 시간을 그는 감옥에 갇힌 기분이라고 말할 정도로 자유를 갈망했던 듯하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이 책으로 입을 열었다.

 

미국 태생의 국제적인 출판인 조지프 앤턴 씨가 슬퍼하는 이 한 명 없이 저세상으로 떠난 날, 인도 태생의 소설가 살만 루슈디는 기나긴 지하생활을 끝내고 지상으로 나와, 노팅 힐의 펨브리지 뮤즈에 한시적으로나마 거처를 마련했다. 함께 축하해주는 이 한 명 없었지만 루슈디 씨는 혼자서나마 그 순간을 축하했다. (788페이지)

 

그가 자라온 환경에서 이런 용기와 자연스러움도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유가 그를 두려움 없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했다. 종교에 대한 자유 역시 마찬가지. 아버지 덕분에 이슬람교에 대한 관심으로 상상력을 키우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영국 유학생활을 하면서 차별과 소외를 경험했다. 그게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주제로 자리할 정도였다. 성인이 되고 이슬람교를 공부하면서 가졌던 생각이 『악마의 시』의 발단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가 소설가가 되고 나서 이렇게 큰 화제를 몰고 올 줄 예상이나 했을까? ^^ 그래도 그의 변함없는 한 가지는 그가 작품에 대해 가지는 애정과 자랑스러움이다. 어떤 위협 앞에서도 그가 고개 숙이지 않았던 것은, ‘누구나 자유롭게 거대서사를 비판하고 논쟁하고 풍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의지 때문이었으리라. 우리 모두의 권리이며 열린사회의 구성원인 우리가 자유롭다는 증거일 테니. 그 때문에 많은 피해가 생기고 목숨을 잃은 이가 있었다는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자유가 자리를 잡는데 그의 역할이 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사랑 역시 볼 수 있었다. 외골수처럼 좀 어두컴컴한 예술가를 생각했는데, 여기서 다시 한 번 그의 평범함을 봤다.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고, 위협에서 가장 먼저 보호해야 할 것처럼 챙기는 행동이 영락없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 아이들이 성장하는데 아버지가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까 생각해보니, 루슈디가 자신의 부모에게 받은 영향을 그대로 대물림하지 않았을까 싶다. 자유롭고 당당하며, 우리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향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으로...

 

24시간 경호의 시대가 막을 내린 순간, 그는 자문했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자유를 되찾고 있는 걸까? 혹시 온 식구의 사형 집행 명령서에 서명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천하에 없는 무책임한 사람인가, 아니면 경찰이 없는 곳에서 진정한 사생활을 재건하고 싶어하는, 본능에 충실한 현실주의자인가? 답은 훗날 돌이켜보아야만 알 수 있다. 10년 또 는 20년 후에는 내 본능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인생은 앞을 향해 나아가지만 평가는 그 반대다. (690~691페이지)

 

그의 작품을 앞에 두고 게으름 피운걸 후회하게 만든 책이다. 그의 작품을 먼저 만났더라면 그의 이런 의지와 태도, 용기와 자유로움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면서 다가왔는지 더 빠른 이해와 공감을 끌어왔을지 알아가는 재미도 더했을 텐데. 그러면서, 자서전인데 딱딱한 느낌이 아니라 유쾌한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읽어갈 수 있어서 좋았다. 심각한 상황인데 웃음도 나게 하고, 너무 진지해서 그 다음 장면을 기다리고, 한 편의 소설이 한 사람의 인생과 사회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보게 한다. 아마 이런 재미는 그의 말투 때문인가 싶지만, 뭐, 아니면 또 어때. 독특한 매력이 돋보이는 자서전일세. ^^ 게다가 유명인들의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눈이 더 커진다. 아, 이 시기에 이런 사람이 있었지. 루슈디는 그와 이런 관계였군, 하는 식의 연결고리를 찾는 재미도 있다. 루슈디가 주연한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한 친구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그의 자서전부터 만나는 게 어떨지 몰라 부담스러웠던 감정은 다 사라지고, 이 책을 접하고 든 생각은 어서 빨리 그의 작품을 펼쳐봐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그의 생각, 그의 가치관, 그의 경험을 그가 쓴 소설로 다시 만나고 싶은 욕심. 그가 향하는 자유를 더 깊게 사유하고 싶어진다. 한 가지 좀 아쉬웠던 건, 반복되는 부분이 많지 않았나 하는 점. 그래서 더 재밌어질 수 있는 것을 약간 서운하게 만들었다는 거... 그게 좀 아쉽네.

 

미국 태생의 국제적인 출판인 조지프 앤턴 씨가 슬퍼하는 이 한 명 없이 저세상으로 떠난 날, 인도 태생의 소설가 살만 루슈디는 기나긴 지하생활을 끝내고 지상으로 나와, 노팅 힐의 펨브리지 뮤즈에 한시적으로나마 거처를 마련했다. 함께 축하해주는 이 한 명 없었지만 루슈디 씨는 혼자서나마 그 순간을 축하했다. (788페이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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