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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온도 - 지극히 소소하지만 너무나도 따스한 이덕무의 위로
이덕무 지음, 한정주 엮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월
평점 :
누구나 똑같이 살아가는 것 같지만, 또 그 안을 들여다보는 모두 다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닮은꼴을 찾는다. 비슷한 일상에, 비슷한 일들에, 비슷한 농도로 아프기를. 그래서 그 아픔을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기를. 동시에 비슷한 위로로 알지 못하는 서로를 보듬는다. 보통 그런 순간에 전해지는 모든 감각을 위로라고 불러도 좋다면, 이덕무는 그의 문장으로 위로를 건넨다.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잠깐 본 광경으로 떠오른 생각들을 말하기도 하면서, 때로는 오래된 신조처럼 그의 가슴에 새긴 말들을 꺼낸다. 별것 아니었다. 딱히 특별할 것도 없었다. 그는 살면서 보고 듣고 배운 생각과 다짐을 전하는 것뿐인데, 그가 전하는 문장들에 온도가 있었다.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뜨겁게. 냉정하게 판단하게도 하고, 따뜻하게 토닥이는 듯하기도 했다. 듣고 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삶의 연륜 같은 말들, 살아오면서 저절로 배우는 세상을 보는 시선 같은 것들. 가르치려 들지 않고 말하는데도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 스며들게 되는 문장들이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듯 일기처럼 써 내려간 문장들에 그가 가진 시선을 읽는다. 처음 이덕무에 관해 떠올렸던 것은 '책'이었다. 이덕무라는 이름과 책은 동의어로 생각할 만큼, 그가 읽어온 책이 그의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그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는, 얕은 지식으로 그를 판단했던 듯하다. 그는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글을 쓰는 일도 함께했던 것을,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에 관한 많은 말을 뒤로하고, 딱 이 책만 읽어도 그가 어떤 성정을 가졌는지, 그가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한지 바로 알 수 있다.
말똥구리와 여의주
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 굴리기를 좋아할 뿐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용 또한 여의주를 자랑하거나 뽐내면서 저 말똥구리의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35페이지)
틀린 게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시선에서 다양성과 존중을 동시에 본다. 모두 똑같다. 같은 자리에 있다. 누군가의 눈에는 필요 없는 물건으로 비칠지라도, 그 물건을 가진 이에게는 필요한 것으로 존재한다. 그러니 그렇게 품고 있는 거겠지. 타인이 보는 나의 무언가도 같을 것이다. 오랫동안 생각하고 다짐하려 했던 것을 그가 전하니 새삼스럽다. 누구나 비슷하구나, 같은 생각으로 사람을 보려 애쓰는구나 하는 공감을 본다. 다름과 틀림을 다시 한번 새기는 순간이다. 모두 같은 존재로 살아가는 우리를 인정하고 존중하라는 말로 들리는 듯하다.
이기는 것을 좋아하면 천적을 만난다
편의에 안주하는 사람은 큰 고비를 만나면 어찌할 줄을 모른다. 자신이 해오던 대로만 하는 사람은 큰 기회가 와도 붙들지 못한다. 임시방편으로 그때그때를 넘기는 사람은 큰 근심거리를 만나게 마련이다. 남에게 이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큰 적수를 만나게 된다. 일의 형세가 그렇다. (145페이지)
넓고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일까? 오래된 것이 좋지만 그 오래된 것에만 머물지 말라고, 변화하는 것들에 시선을 주면서 세상을 보라는 것만 같다. 세상을 아우르는 순리를 받아들이면서도 패배를 용납하는 일을 배제하지 말라고. 한껏 욕심부리면서 살아야 놓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을 잠시 접어보게 한다. 길게, 멀리 보는 삶을 앞에 두어야 하는 걸까, 고민해보기도 한다. 적당히 취하고 버리면서, 가볍지는 않지만 짓눌리지 않을 만큼의 무게감을 장착하고 살아가라는 듯이. 이렇게 사는 방식이 말처럼 쉬운 것 같지만, 사실은 매우 어렵다.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고상한 사람과 속된 사람
고상한 사람이 속된 사람을 대하면 졸음이 온다. 속된 사람이 고상한 사람을 대해도 졸음이 온다. 서로 맞지 않아 융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속된 사람은 비루해 조는 것이니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어찌 고상한 사람이 조는가? 그 마음이 좁기 때문이다. 만약 진실로 고상한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졸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용납하기 때문이다. (178페이지)
가난의 품격
최상의 사람은 가난을 편안하게 여긴다. 그다음 사람은 가난을 잊어버린다. 최하등의 사람은 가난을 부끄럽게 생각해 감추거나 숨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가난을 호소하다가 가난에 짓눌려 끝내 가난의 노예가 되고 만다. 또한 최하등보다 못난 사람은 가난을 원수처럼 여기다가 그 가난 속에서 죽어 간다. (243페이지)
굉장히 솔직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온다. 앞서 말했듯이, 마치 그가 차분하게 적어 내려간 일처럼 들리는 이유다. 반드시 누군가에게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써진 게 아니라, 오롯이 그의 시선에 들어온 세상 풍광을 그저 떠오르는 생각 그대로 하는 말들. 살면서 겪는 모든 일이 그의 시선에 머문 것만 같다. 아이의 작은 행동 하나에 웃기도 하고, 뜻대로 되지 않은 일들에 속이 상하기도 하는, 웃음과 눈물이 나는 그런 일상에 놓인 우리들이다. 그런 일상에 온갖 감정이 밀려오는 것을 차분하게 적은 그의 문장이 편안하다. 꾸미지 않고 말한다. 그가 살아온 평범한 일상 속에 우리 삶이 그대로 묻어있어서일까. 보통인 우리들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시선으로 붙잡는다. 하루하루 살면서 보이는 모든 것이 그의 붓끝에 그대로 묻어 있던 거다. 책만 읽는, 그의 눈은 오직 책 속의 활자에만 머물러 있을 것 같았는데, 그는 어떻게 이런 시선을 풀어낼 수 있었을까? 그 답은 이덕무의 이 소품을 엮은 한정주가 알려준다.
이덕무는 저잣거리에서 기이한 말이나 특이한 소문을 듣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기록했다고 한다. 항상 종이와 붓과 먹을 품고 다니면서 신분고하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묻고 듣고 말하며 얻은 세상의 온갖 지식 정보를 글로 옮겨 적었다. 또한 유학과 성리학의 거대한 담론에서 벗어나 사소한 일상사와 개인적 관심사를 중시한 새로운 글쓰기의 본보기로 삼았다. (103페이지)
그러니 박물학자라는 그의 별칭이 이해가 된다. 그는 앉아서 머릿속 생각만을 전하는 게 아니었다. 세상을 보고, 세상 속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옮긴 것이다. 그 어떤 것에도 치우치지 않고 사람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을 봤다. 평범하게, 비슷하게 사는 우리네 모습을 본 거였다. 그러니 오랜 시간을 거슬러 그가 하는 말을 우리가 알아듣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나. 일상의 온도가 그대로 전해질 수밖에 없다.
고전연구가 한정주가 이덕무의 소품문 『이목구심서』와 『선귤당농소』를 엮은 글이다. 어렵지 않은 이덕무의 문장들에 한정주의 느낌 있는 시선이 더해졌다. 일상 속에 있어서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 담긴 따스함을 놓치지 않은 글이다. 놓치지 않기 위해 문장으로 만들어낸 이덕무의 일상이 빛나는 듯하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고... 보이는 그대로, 감정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진짜 행복한 순간이라는 듯이, 그게 우리 일상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소박한 문장들이었다.
별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생활 속 잡감을 거리낌 없이 글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일상의 미학이다. 일상은 그냥 두면 지나가 버리는 순간에 불과하지만, 글로 옮겨 담으며 색다른 의미와 가치로 영원히 남게 된다. 이덕무는 추운 겨울 날, 늦은 밤에서 이른 새벽까지 불평과 화평 사이를 오간 잡감의 조각들을 이 글에 묘사했다. 이러한 잡감이 하루 이틀의 일이겠는가? 아마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밤 동안 자신의 머릿속과 마음속을 오고 갔으리라. 어디 이덕무만 그러했겠는가? 아마도 수백 수천만의 사람들이 비슷한 심정과 감정의 기복을 겪었으리라. 그렇다면 이덕무와 그들의 차이는 단지 자신의 잡감을 글로 옮겨 묘사한 사람과 그것을 시간의 흐름에 그냥 보내 버린 사람의 차이일 뿐이다. (274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