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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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은하는 우리 위에서 서서히 돌아간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삶이라도 그 아래에서 함께 한다. (432페이지)

 

 

우주에 가보고 싶다는 인간의 바람은, 더는 바람이 아닌 현실에 되었다. 물론 그 현실이 지금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상상만 하던 시절에 비하면 현실에 가까이 와 있는 게 맞지 않을까?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으로의 이동이 가능하다고 믿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게 마냥 신기할 뿐이다. 내가 죽기 전에 우주여행이 가능해질까 싶지만, 어쨌든 우리 인간에게 우주로 향하는 일은 이제 상상에 멈춰있는 일이 아니다.

 

우주를 꿈꾸던 이진우는 우주인에 도전한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직업은 생태 보호 연구원이다. 과학과 조금 더 가까이 있는 그는 우주인의 자격에 조금 더 가까이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최초 우주인이 되기 위해 나선 그는 다른 도전자들과 함께 경쟁한다. 협력해야 같이 나아갈 수 있는 동지애도 느낀다. 주변의 많은 이가 경쟁자인데, 우주로 향하고 싶다는 같은 꿈을 꾸는 동료들 사이에서 그는 최종 선발까지 나아간다. 하지만 여러 위기를 극복하고 회사로 돌아온 그에게 남은 건 대기반 발령이라는 좌천 통보였다.

 

이진우는 우주인이 되려고 체력테스트를 통과하고 온갖 단계를 넘어서 최종 4인에 선발된다. 이제 이 고비만 넘기면 된다. 마지막 1명의 자리를 향한 몸부림은 시작되었고, 그 자리에 앉을 확률은 높아졌다. 오랜 시간 꾸어온 꿈을 이룰 수 있는 때가 된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관문처럼 놓인 그 문제 앞에서 그는 고민한다. 치열한 경쟁과 동료애를 같이 키웠던 대상을 밀고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는 이 고비를 어떻게 넘어갈 것인가? 동료를 밀고하고 최후의 1인에 등극할 것인가? 아니면, 조금은 인간적인 감정에 더 치중할 것인가? 어떤 쪽으로든 결론은 내려야 하고, 그는 마치 인생 최대의 위기에 직면한 것처럼 힘든 시간을 보낸다.

 

살면서 많은 경쟁 상황에 놓인다. 때로,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해야만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마치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느냐 아니면 나의 마음 조금 더 안정되는 선택을 할 것이냐 망설이게 된다. 망설이더라도 선택은 해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결론을 내야 할 때가 대부분이다. 소설 속 이진우처럼, 진실을 밝히는 일과 목적을 이루는 일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나중에 후회를 덜 할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반드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무엇을 선택해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 인생에 언제나 있었다. 왜 그래야만 하는 현실일까. 어려운 선택 앞에서 너무 괴롭기만 한데 말이다. 그의 말처럼, '인간의 물리학에는 왜 한 공간에 두 개의 선택이 있을 수 없단' 말인가. 평생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이들의 꿈이 실현되는 그 현장은 만만하지 않았다. 피만 없을 뿐이지 전쟁터였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다.

 

사람도 너와 나, 우리는 무게 없이는 살 수가 없고 무게가 있는 곳에는 중력이 있다. 중력은 바람과 강, 밀물을 당길 때는 공평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갈 때는 오로지 개별적일 뿐이다. 버릴 과거는 없다. 아무도 모르니까. 피할 미래도 없다. 씨앗이 움트고 있으니까. 운명을 사랑해라. 그리고 가능성을 시험해봐라. 나아간 만큼 너의 인생이 된다. 다시 일어난 만큼 너는 강해진다. 그러니 반드시 생각해라. 이것이 끝이 아니라고. 너는 더 멀리 날아가야 한다고. (440페이지)

 

한때 우주인 선발 경쟁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던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다. 우주인 선발대회에서 탈락한 한 공군사관학교 교관의 눈물을 지켜보면서 '이뤄질 수 없는 꿈'에 관해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에서 수업이 많은 꿈을 꾸고 이루지 못한 꿈을 버리고, 또 새로운 꿈을 꾸기를 반복해나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런 현실에서도 우리가 끝까지 지키고 버리지 말아야 할 삶의 태도 같은 것을 이진우로 대신 보여준다. 아무리 경쟁 상황에 놓여도, 간절한 꿈을 향해 가야만 해도, 내가 차지해야 할 자리가 바로 코앞에 있어도,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선택해야 하는지 묻는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할 경쟁 과정이겠지만, 그 과정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린다.

 

이 소설을 13년 동안 취재하고 35번이나 고쳐 쓰면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을 수 있었는지 독자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 그대로 다 전달되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 말을 다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같은 세상을 사는 우리가 느끼는 게 같거나 비슷하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자기가 바라는 인생과 꿈을 이루고 싶어 하지만, 때로는 이기고 지는 일을 경험하고, 그런 경험 앞에서 어떤 태도를 보여야 인간다운지를 배우고 아는 것. 작가는 치열하고 힘든 우주인 선발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꿈을 향해 도전하는 사람들의 감동적인 모습에 또 한 번 용기를 내고 싶은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매번 넘어지고 무너질 때마다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 꿈을 꾸고 이뤄나가려고 하는 게 사람이 살아가는 의미이자 목표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살아갈 때 꿈에 가까워진다는 거...

 

너는 끝까지 가보았으니까. 그 말이 마치 성큼 걸음을 내딛듯이 나에게로 들어왔다. 너는 끝까지 가보았으니까…… 꿈이 스러져가도 최대치를 다했으니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 (44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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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의심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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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판결의 기준은 무엇일까. 피의자와 피해자. 양쪽에서 주장하는 진실과 제시하는 증거가 나름 다 타당할 것이다. 물론 각자로서 말이다. 판사는 그들의 진술과 제시된 증거로 유죄 무죄를 가려야 한다. 이때 법은 어느 정도의 합리적 의심과 인간 사회에서 통용되는 상식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법의 판결을 기다리는 우리의 입장이고, 판사는 그들이 배운 법의 원칙에 의한 판결을 내려야만 한다. 그때 적용되는 법칙 중의 하나가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한다.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의 원칙 Proof beyond a Reasonable Doubt

의심스러운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을 따른다(in dubio pro reo)는 원칙에 근거, 피고인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존재한다면 판사는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

 

의심은 있지만, 그 의심의 정도만으로 피고인이 범인이라는 확정을 내릴 수가 없을 때, 합리적 의심이 존재할 때 판사는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싶은데, 간단하게 피고인이 유죄라는 분명한 증거가 아니라면 유죄를 선고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혹여나 판결이 잘못되어 피고인의 무죄가 유죄로 둔갑하여 그의 삶이 고통스러워질 수 있기에 만들어진, 판결의 바탕이 되는 원칙이라고 봐도 좋겠다. 하지만 그 합리적 의심의 상황에서 판결을 내린다는 게 쉬운 일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작가는 이 소설로 보여준다.

 

한 여자가 법정 안으로 들어온다. 피고인 김유선은 애인을 살해한 죄로 구속되었다. 일명 '젤리 살인사건'이다. 검사는 애인이 젤리를 먹고 숨이 막혀 죽었다고 증언한 그녀의 말을 거짓이라고 판단했다. 검사는 그녀가 애인을 죽이고 젤리가 목에 걸려 죽은 것이라고 거짓 진술을 했다고 한다. 사고사로 판단하고 애인이 죽은 후 바로 화장을 하고 장례식까지 치렀는데, 갑자기 왜 이 문제가 불거졌나. 장례식이 끝나고 얼마 후에 김유선이 거액의 사망보험금을 받은 데 그 이유가 있다. 애인 사이에서 보험 수익자를 법적수익자가 아닌 애인이 받게 지정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것도 헤어지려고 했던 사이에서? 피고인 김유선의 증언은 상식적으로 완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녀의 주장에 유죄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이제 판결은 어떻게 내려질 것인가.

 

형사재판에서 유죄로 하려면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이 필요하다. (중략) 형사재판은 한 인간을 감방에 보낼까, 말까, 심지어는 교수대로 보낼까, 말까를 결정하는 일이다. 그 정도 증거로는 턱도 없다. 합리적인 선에서의 '의심'이 전혀 없는 수준까지 입증되어야 한다. 이것이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 원칙이며, 형사재판에서 유죄로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131페이지)

 

몇 년 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 하나가 떠오른다. 여자가 낙지를 먹고 죽었고, 애인이 보험금을 받았다.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고 피의자는 무죄로 풀려났다. 소설은 이 사건을 연상하게 한다. 피의자는 대법원 판결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소설은 현직 부장판사인 현민우가 일 년 전에 재판한 '젤리 살인사건'을 반추하는 것으로 풀어간다. 애인 사이의 남자와 여자가 젤리와 술을 사가지고 모텔에 들어갔다. 젤리를 안주로 먹던 남자가 질식해서 숨을 멈추었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며칠 후 사망했다. 여자는 애인의 사망보험금을 받고 독촉을 받던 돈 문제를 해결하고, 또 그 돈으로 다른 남자와 여행도 다녀왔다. 보이는 많은 것이 그녀를 살인자라고 지목한다. 하지만 법으로 증명해야 할 것들이 있다. 현민우 판사는 두 배석판사와 합의를 하면서 이 피의자에게 어떤 판결을 내려야 하는지 고뇌한다. 부장판사 현민우는 피의자 김유선이 유죄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두 배석판사는 무죄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현민우의 판단에 합리적 의심이 없는 입증을 거쳤는지 묻는다.

 

소설은 1년 전의 이 재판을 돌이켜보는 이야기로 진행되지만, 그 안에는 젤리 살인사건만 있는 게 아니다. 판사로서의 고뇌, 고충이 충분히 전달된다. 한 사람의 유명을 달리할 수도 있는 그 판결의 과정과 절차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법이 그리 간단하게 적용되어 유죄 무죄를 밝혀내지 못한다는 것을 보게 한다. 그러면서 저자의 바람이자 독자의 간절함을 담아 소설의 결말로 완성해낸다.

 

본문 중에서 나오는 말인데, 법이 정의를 위하지도 않으며, 판사가 정의의 수호자도 아니라는 말은 가슴을 써늘하게 했다. 무슨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그 사건에 개입되어 있을 때, 그 사건이 법의 판결을 받아야 하는 일이 생겼을 때, 우리는 법의 정의를 믿는다. 법의 원칙을 바탕으로 판사가 정의를 이뤄 내줄 것으로 믿는다. 법은 언제나 옳아서, 그 옳음으로 억울한 사람 없게 판결해줄 것이기 때문에, 라고 믿으며 공정한 판결을 기대한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한 것이 있다. 법은 상식과 동의어는 아니라는 것. 우리가 상식이라고 믿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법은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과 같은 길을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사건이 세 번의 재판을 거치면서 무죄로 판결되었을 때, 절망한 사람들이 많았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이 사건이 무죄로 판결될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명백한(?) 증거와 정황이 있는데! 저자 역시 이런 판결이 왜 나오는지 알 수 없고 궁금하던 이유로 이 소설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판사가 법을 기준으로 합리적 의심이 없는 입증을 거쳐야 하는 것과 다른 시선에서 보게 되었던 게 아닐까 싶다. 법이 온전히 보호해주지 못하는 정의를 찾아가는 판사를 보여주면서, 사법 시스템에 어긋난 과정과 선택으로 정의의 편에 선다.

 

저자가 판사 시절에 썼던 추리소설들과는 사뭇 그 맥락을 달리한다. 그는 스스로 이 소설을 법정소설이라고 했다. 분위기도 그렇지만, 소설의 흐름에서만 봐도 알 수 있다. 사건의 해결과 범인을 찾는다는 의미보다는, 하나의 사건과 그 사건이 법정 안에서 어떻게 흘러가고 판결 내려지는지 세세하게 드러낸 것 같다. 실제 사건을 보면서 가졌던 의문점과 판결에 한발 더 깊게 들어가서 본 기분이다. 그동안에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없던 내용이기도 했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법과 판결에 적용되어야 하는 법의 차이에 관해서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숙제를 말한다. 법이 원칙으로 판결해야 하는, 상식에 맞는 판결이어야 하는 두 가지 사이에서 어떤 옳음으로 가야 하는지를.

 

판사에게 요구되는 건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솔로몬의 지혜로 내리는 획기적이고 기발한 판결이 아니다. '법과 절차를 빈틈없이 준수해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 일뿐이다. 그 결정이 옳을 것까지는 보장하지 못한다. (145~146페이지)

 

재판을 통해 범죄자를 가려낸다. 내 기준에선 결과가 아니라 '의도'의 선악이 더 중요하다. 그다음에는 격리. 그가 세상에 해를 끼칠 기회를 최대한 주지 않는다. (162페이지)

 

이미 들은 내용이어서 뭘 더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읽었다. 재판 과정에서 보이는 답답함에 화가 났다가도, 소설이기에 가능한 반전과 결말로 조금은 후련해지는 느낌도 들고. 하지만 독자로서, 일반인으로서 영원히 궁금할 것 같다. 법의 기준이 정하는 판결과 인간의 감정과 상식이 담긴 판결의 차이는 얼마나 좁혀질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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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8 - 에이 설마~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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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콩고양이 시리즈를 만났다. 이웃님의 리뷰에서 한 번씩 만나던 두식이가 너무 궁금했더랬다. 이상하게 고양이 무리 틈에서 혼자 외롭게 존재할 것 같은 개 한 마리 두식이. ^^ 그런 궁금증으로 읽게 된 콩고양이 여덟 번째 이야기를 맞이하기 전에 두식이의 배경을 좀 찾아봤다.

 

고양이 콩알, 팥알과 같이 살면서 두식이는 자기를 고양이라고 생각했단다. 듣고 보니 이게 너무 웃긴 거다. 아니 그러면, 지금은 자기 자신을 개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추측건대, 내 주변의 존재하는 모든 게 고양이라면 나도 고양이로 생각하고 살아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환경의 차이일 수도 있고. 암튼 두 냥이와 너무 잘 지내는 두식이가 의아스럽지만, 이들이 어떻게 같이 지내왔는지 살펴보면 화기애애한 이들 사이가 낯설거나 이상하지 않다. 그렇게 두식이가 자기가 고양이라고 착각하든 말든, 더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된 거다. 적어도 이 가족에게는 말이다. 이 가족에게는 고양이와 개만 있는 게 아니다. 거북이에 가끔 고개를 들이미는 비둘기도 있고, 어느 순간 너구리까지 합세했다. 그리고 더 많은 동물이 이 집에 머문다. 이 집에 머무는 인간의 숫자보다 동물의 숫자가 더 많다. 어떻게 이런 집이 있을까 싶지만, 있다. 바로 여기에.

 

 

콩알, 팥알처럼 주인에게 귀여움을 받고 싶지만, 언제나 한발 뒤에서 간절한 눈빛만 보내는 두식이는 두 어른의 손길에도 행복하다. 게다가 엄마와 같은 체형에 같은 숙제를 안고 있다. 바로 다이어트. 살을 빼야 해. 두식이도 엄마도. 둥실둥실 보기에는 귀엽고 예쁘지만, 너무 과한 것은 안 되느니... 콩알 팥알이 간식을 먹을 때도 두식이는 쳐다만 봐야 했다. 그에 콩알 팥알이가 간식을 획득할 수 있는 비결을 전수하는데, 이런~ 이거 제법 설득력 있는 방법이다. ^^ 결국, 두식이도 엄마도 당분간 다이어트 성공하기는 어려울 거란 예고를 하는 듯하다.

 

할아버지 내복씨의 여든 살 생일 파티 후 돌아오니 난장판이 되어 있는 집이 눈에 훤히 그려지고, 우연히 데려오게 된 유기묘 그레이를 돌보고 있던 이 가족에게 그레이의 주인 할머니가 찾아온다. 같이 살았던 정이 그렇게 큰 건가 보다. 그레이가 떠나고 그레이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이 가족이 그레이의 평온한 일상을 살짝 훔쳐보고 와서 안심하는 모습이 뭉클했다. 그리고 내복씨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일. 아침 식사하라고 내복씨를 부르러 간 콩알 팥알이와 두식이는 깜짝 놀란다. 내복씨가 움직이지 않은 것. 내복씨는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받고 며칠 후 집에 돌아오는데, 내복씨와 동물들의 사이는 더 애틋해진다. 이 부분을 보는데, 진짜 눈물이 날 것 같더라. 내가 키우는 동물이 나의 안부를 묻고, 나에게 이상이 생겼을 때 크게 짖어가면서 소식을 전한다고 생각하면, 진짜 감동이지 않은가. 동물을 좋아하지 않아서 키우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대는 이런 동물들을 볼 때면 가슴을 꽉 채우는 애틋함이 있다.

 

소소하고 소박한 에피소드에 읽는 재미는 기본이고, 인간 세상에서 느낄 감동이 이 이야기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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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지도
앤드루 더그라프.대니얼 하먼 지음, 한유주 옮김 / 비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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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는 길을 헤매지 않게 안내해주는 역할도 하지만, 지도가 소설과 만났을 때는 길 안내 역할 말고 다른 방향의 인도자가 된다. 혹시 비슷하게 느끼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 같은 경우 소설을 읽으면서 장면을 상상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문장으로 그려지는 영상 같은 거 말이다. 문장으로 머릿속 상상력을 더해가지만, 막상 그리려고 하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 공간이 이렇게 생겼던가? 이런 구도였던가? 순서를 이렇게 그리면 될까? 하는 온갖 걱정으로 상상은 상상에서 멈추고 완성되지 못하곤 했다.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소설의 여정을 알려주는 지도, 아직 그 소설을 읽지 못했다면 당장에 펼쳐보고 싶게 만드는 지도를 그려낸 작가가 있다.

 

두 작가가 함께 그리고 엮은 『소설&지도』는 소설 속의 세계를 재창조하면서 색다른 재미로 그 작품 속을 헤엄치고 싶게 한다. 여기에서 소개된 19편의 작품은 대부분 고전이면서, 현대소설을 포함했다. 목록만 봐도 이미 솔깃할 수밖에 없는 게, 무슨 필독서처럼 어디에서나 봤음직 한 제목들이다. 유감이지만 나는 아직 읽지 못한 목록이 대부분이라 더 간절해지는 마음이 있다. 역자인 소설가 한유주는 이미 여기에서 소개된 책을 읽은 독자가 더 흥미롭게 여길만하다고 했지만, 아니다. 아직 읽지 않은 독자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다. 이미 다른 소설을 읽으면서 경험한, 문장으로 떠나는 여행 같은 느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 속에서 길을 잃는다는 일이 두려움이 아니라, 설레고 황홀한 여행을 떠나는 일임을 알게 된다.

 

 

그중에서 첫 작품으로 『오디세이아』의 항해를 언급하고, 긴 여행을 따라간다. 한 페이지에 그려진 여행 후기 같은 느낌이다. 그가 집으로 가던 그 길, 소설 속 문장으로 상상만 하던 그 길의 흐름이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더해진 분위기에, 축약된 도서 리뷰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햄릿의 엘시노어 성을 비춘다. 막이 오르고 배우는 대본에 따라 연기를 하는 『햄릿』은 그렇게 희곡으로 무대 위에 오르기 위한 준비 과정처럼 보였다. 이 지도에서 작가가 보여준 것은 무대의 배경이 되는 이미지나 엘시노어 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이동 경로에 맞춘 노선을 보여주는 것 같다. 어디로 가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졌던 건지 또 한 번의 상상을 더 한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갈등, 고뇌 같은 감정이 여러 장마다 흐르게 내버려둔다.

 

각자 다른 길을 가는 것 같지만 결국은 한 곳에서 만나게 되는 길을 따라가는 『오만과 편견』은 제목만 들어도 배시시 웃음이 난다. 두 주인공 특유의 성격이 연상되기도 하고, 전혀 다른 성격과 방식의 두 사람이 소설의 마지막에 그려내는 그 훈훈한 마무리를 이미 알기 때문이다. 이쪽에서 저쪽에서 걷던 두 사람이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과정을 몇 가지 색으로 이어진 빨간색 실 하나를 풀어놓은 것 같아서 설렌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은 굉장히 특이한 도서관 구경을 하고 온 것만 같다. 무슨 미로일까 싶으면서도 이런 도서관이라면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당연한 생각도 든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은 스크루지의 시간여행을 독자가 동참하게 하는 방식이 특이하다. 하룻밤 사이에 이곳저곳을 시간 구애받지 않고 날아다니는 듯했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그의 과거와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 그의 마음속에 차근차근 쌓여가는 변화를 독자가 함께 느끼게 하는 지도였다. 무인도에 떨어져 탈출을 꿈꾸게 했던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는 환경에 따른 그의 생활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확인하게 한다. 원시적인 느낌도 들지만, 그런 환경에 처했다면 인간 누구라도 생의 원초적인 흐름에 따르게 되지 않을까? 그의 무인도 생활을 생생하게 지켜보는 시선을 가지기도 했다. 그 외에도 80일간의 세계 일주,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 허클베리 핀의 모험, 모비딕 등 여러 작품이 독자의 머릿속에서 꺼낸 지도가 되어 펼쳐진다.

 

 

소설을 한 장의 지도로 담아낼 수 있다는 게 어떤 것일까 떠올려본 적이 없다. 그만큼 내가 소설을 읽는 동안은 머릿속에서만 머무는 상상이었다는 거다. 편집자이자 작가인 대니얼 하먼과 일러스트레이터 앤드루 더그라프는 그런 상상을 지도로 그려내 독자에게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미 작품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를 제외하고 추린 50편을 다시 19편으로 정리해 한 권의 책에 담았다. (50편이 다 담겼다면 독자의 즐거움은 커졌겠지만, 아마 50편이 다 담겼다면 이 책의 가격은 후덜덜하지 않았을까? ^^) 소설을 읽으면서 떠올리는 많은 장면, 등장인물의 궤적이나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공간, 인물 간 관계도 같은 것을 눈앞에서 확인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이 책 『소설&지도』가 제시하는 지도가 그 상태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전한다. 소설은 계속 다양한 작품으로 독자에게 다가올 것이고, 그때마다 작품에서 독자가 느끼는 의미 또한 다르겠지. 매번 다른 작품을 만날 때마다 그 작품으로 들어가 자기만의 지도를 만드는 일이 독자의 몫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작가가 소설로 그려준 지도는 오직 한 가지 길을 알려주는 게 아니었으므로. 여러 갈래 길 중 하나만 보여준 것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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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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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우라지게 희한한 것이다. 우리는 모든 시간을 쏟아부어가며 인생의 여러 가지 측면을 관리하려고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인생의 대부분을 규정한다. 우리는 이해를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가장 좋았던 기억도, 가장 나빴던 기억도, 이해는 언제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595페이지)

 

전작 『베어타운』을 만난 독자라면 대부분 나와 비슷한 느낌이었을 것 같다. 소설은 끝났지만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우리 사는 세상에서 느낀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일들이 여전히 소설 속에 남아 우리를 더 아프게 하고 있다는 것을. 소설이 현실을 담았다는 점에서는 잘못한 게 없지만, 한편으로는 소설에서 보고 싶은 독자의 바람이 있다.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베어타운』은 소설로의 재미와 충분히 감동적이었지만, 내 안에 남은 화까지 누그러뜨리지는 못했다. 그런 독자의 아쉬움을 알기라도 한듯, 작가는 이렇게 후속작을 내놓았다. 『베어타운』 그 후의 이야기.

 

소설의 배경은 여전히 '베어타운'이다. 작은 소도시 베어타운은 쇠락해가는 듯하다. 미래를 기대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알다시피 그곳은 아이스하키에 매달려 마을의 영광을 이뤄냈다. 청소년 아이스하키팀으로 전국 대회 준결승에 진출하면서 마을을 살릴 기회가 찾아오는 것 같았는데, 우승을 눈앞에 둔 그때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그러니 지금 마을의 분위기가 어떨지, 얼마나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을지 알 것 같다. 이 작품은 그 사건 이후의 몇 달 후인 마을의 상황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베어타운의 하키팀은 흩어졌고, 몇몇 선수들은 옆 마을 헤드 하키팀으로 옮겼다. 이제 베어타운에 남은 선수들에게는 팀의 해체라는 선택만 남은 듯하다. 그러면서 베어타운과 헤드의 신경전은 점점 치열해진다. 두 마을 사이에 돈과 정치라는 문제가 끼어있고, 그 너머에는 생존의 문제가 존재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단순하다. 우리는 모두에게 가장 좋은 방향을 원하지 않는다. 대개 나에게 가장 좋은 방향을 원한다. (283페이지)

 

하키가 전분인 것 같은 베어타운에 새로운 코치가 왔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선수뿐이었고, 사람들은 팀의 선수들을 위해 모금도 한다. 그리고 검정 양복을 입은 사람들도 같은 뜻을 모았다. 그 중심에 하키팀 단장 페테르가 있다. 팀을 유지하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무너져가는 베어타운의 하키팀에 손을 내민 정치인의 손을 잡기도 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그만큼 하키팀의 존재는 그 마을의 전부라는 말로 들린다.

 

『베어타운』 이후로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더 커진 상태로 소설의 전반부를 채운다. 마야의 아버지 페테르는 팀에서 쫓겨나고, 성폭행 피해자인 마야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한다. 베어타운 하키팀의 선수들은 헤드로 이적한다. 그 안에서 머뭇거리는 듯한 벤이의 모습은 무엇인지 하고 싶은 말을 잔뜩 머금은 것만 같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비밀이 드러나면서 마을은 더할 수 파도에 휩쓸린 것처럼 혼란스러워진다.

 

전작의 느낌을 크게 한 가지(성폭행 사건과 권력에 의해 묻어지는 사건)로 보게 된다면, 이번 작품은 좀 더 스케일이 크고 넓은 사건과 사고를 담는다. 성소수자의 문제나,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는 차별, 정치인이 끼어들면서 움직이는 권력, 여러 가지 문제로 또 한 번 확인하게 되는 인간의 심리. 우리 살면서 많은 문제와 부딪히고 불평등한 결과에 분노하고 좌절하는 일들 겪게 되는데, 소설에서도 인간사의 그 많은 문제가 그대로 펼쳐진다. 두 마을 사이에 하키를 둔 싸움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안에 자리한 온갖 감정들의 향연이라고 해야 할까.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글이더라는...

 

작가가 자기만의 분위기로 풀어낸 소설 한 편이 감동으로 마무리되면서, 인간으로 평등하게 살아가는 방식을 들려준다. 사실은 우리가 그런 방식을 몰라서 행동하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는 반성이 더 깊어지지만, 이런 시행착오의 감정을 겪으면서 우리는 또 성장하고 나아지는 삶을 배우게 되는 것일 테다. 오늘날의 세상과 다르지 않은 소설 속 무대에 씁쓸하고 안타까운 순간이 많았지만, 그래서 더 담아두고 싶은 이야기다. 이 소설이 가고자 하는 방향처럼, 우리도 갈 수 있을 것을 알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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