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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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은하는 우리 위에서 서서히 돌아간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삶이라도 그 아래에서 함께 한다. (432페이지)

 

 

우주에 가보고 싶다는 인간의 바람은, 더는 바람이 아닌 현실에 되었다. 물론 그 현실이 지금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상상만 하던 시절에 비하면 현실에 가까이 와 있는 게 맞지 않을까?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으로의 이동이 가능하다고 믿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게 마냥 신기할 뿐이다. 내가 죽기 전에 우주여행이 가능해질까 싶지만, 어쨌든 우리 인간에게 우주로 향하는 일은 이제 상상에 멈춰있는 일이 아니다.

 

우주를 꿈꾸던 이진우는 우주인에 도전한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직업은 생태 보호 연구원이다. 과학과 조금 더 가까이 있는 그는 우주인의 자격에 조금 더 가까이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최초 우주인이 되기 위해 나선 그는 다른 도전자들과 함께 경쟁한다. 협력해야 같이 나아갈 수 있는 동지애도 느낀다. 주변의 많은 이가 경쟁자인데, 우주로 향하고 싶다는 같은 꿈을 꾸는 동료들 사이에서 그는 최종 선발까지 나아간다. 하지만 여러 위기를 극복하고 회사로 돌아온 그에게 남은 건 대기반 발령이라는 좌천 통보였다.

 

이진우는 우주인이 되려고 체력테스트를 통과하고 온갖 단계를 넘어서 최종 4인에 선발된다. 이제 이 고비만 넘기면 된다. 마지막 1명의 자리를 향한 몸부림은 시작되었고, 그 자리에 앉을 확률은 높아졌다. 오랜 시간 꾸어온 꿈을 이룰 수 있는 때가 된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관문처럼 놓인 그 문제 앞에서 그는 고민한다. 치열한 경쟁과 동료애를 같이 키웠던 대상을 밀고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는 이 고비를 어떻게 넘어갈 것인가? 동료를 밀고하고 최후의 1인에 등극할 것인가? 아니면, 조금은 인간적인 감정에 더 치중할 것인가? 어떤 쪽으로든 결론은 내려야 하고, 그는 마치 인생 최대의 위기에 직면한 것처럼 힘든 시간을 보낸다.

 

살면서 많은 경쟁 상황에 놓인다. 때로,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해야만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마치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느냐 아니면 나의 마음 조금 더 안정되는 선택을 할 것이냐 망설이게 된다. 망설이더라도 선택은 해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결론을 내야 할 때가 대부분이다. 소설 속 이진우처럼, 진실을 밝히는 일과 목적을 이루는 일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나중에 후회를 덜 할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반드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무엇을 선택해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 인생에 언제나 있었다. 왜 그래야만 하는 현실일까. 어려운 선택 앞에서 너무 괴롭기만 한데 말이다. 그의 말처럼, '인간의 물리학에는 왜 한 공간에 두 개의 선택이 있을 수 없단' 말인가. 평생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이들의 꿈이 실현되는 그 현장은 만만하지 않았다. 피만 없을 뿐이지 전쟁터였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다.

 

사람도 너와 나, 우리는 무게 없이는 살 수가 없고 무게가 있는 곳에는 중력이 있다. 중력은 바람과 강, 밀물을 당길 때는 공평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갈 때는 오로지 개별적일 뿐이다. 버릴 과거는 없다. 아무도 모르니까. 피할 미래도 없다. 씨앗이 움트고 있으니까. 운명을 사랑해라. 그리고 가능성을 시험해봐라. 나아간 만큼 너의 인생이 된다. 다시 일어난 만큼 너는 강해진다. 그러니 반드시 생각해라. 이것이 끝이 아니라고. 너는 더 멀리 날아가야 한다고. (440페이지)

 

한때 우주인 선발 경쟁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던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다. 우주인 선발대회에서 탈락한 한 공군사관학교 교관의 눈물을 지켜보면서 '이뤄질 수 없는 꿈'에 관해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에서 수업이 많은 꿈을 꾸고 이루지 못한 꿈을 버리고, 또 새로운 꿈을 꾸기를 반복해나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런 현실에서도 우리가 끝까지 지키고 버리지 말아야 할 삶의 태도 같은 것을 이진우로 대신 보여준다. 아무리 경쟁 상황에 놓여도, 간절한 꿈을 향해 가야만 해도, 내가 차지해야 할 자리가 바로 코앞에 있어도,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선택해야 하는지 묻는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할 경쟁 과정이겠지만, 그 과정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린다.

 

이 소설을 13년 동안 취재하고 35번이나 고쳐 쓰면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을 수 있었는지 독자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 그대로 다 전달되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 말을 다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같은 세상을 사는 우리가 느끼는 게 같거나 비슷하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자기가 바라는 인생과 꿈을 이루고 싶어 하지만, 때로는 이기고 지는 일을 경험하고, 그런 경험 앞에서 어떤 태도를 보여야 인간다운지를 배우고 아는 것. 작가는 치열하고 힘든 우주인 선발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꿈을 향해 도전하는 사람들의 감동적인 모습에 또 한 번 용기를 내고 싶은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매번 넘어지고 무너질 때마다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 꿈을 꾸고 이뤄나가려고 하는 게 사람이 살아가는 의미이자 목표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살아갈 때 꿈에 가까워진다는 거...

 

너는 끝까지 가보았으니까. 그 말이 마치 성큼 걸음을 내딛듯이 나에게로 들어왔다. 너는 끝까지 가보았으니까…… 꿈이 스러져가도 최대치를 다했으니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야. (44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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