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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부부 범죄
황세연 지음, 용석재 북디자이너 / 북다 / 2024년 1월
평점 :
단편으로 써진 추리소설을 만나는 일이 흔하지는 않은데, 작가의 전작 장편 소설을 재미있게 읽어서 이 책도 펼쳐보게 되었다. 아무 정보도 없이 작가 이름과 책 제목만으로 선택했는데, 각 단편의 내용은 부부가 등장하여 둘 중 한 사람이 죽는다는 거다. 물론 죽음의 순간이나 방식, 죽이고 싶은 이유도 제각각이지만, 완전 범죄를 꿈꾸며 죽이고 싶은 마음은 똑같다.
바람난 남편을 벌주고 싶었다. 기억이 자꾸 왔다 갔다 하는 여자는 자신의 계획을 잊지 않으려고 꼼꼼하게 메모까지 해가면서 완벽한 살인을 꿈꿨다. 물론 그 ‘완벽’에는 들키지 않은 완전 범죄도 포함이다. 그리고 해냈다. 「결혼에서 무덤까지」는 나이 좀 있는 오래된 부부의 말년을 살인으로 끝내는 장면이 인상적인데, 그 반전까지 듣고 나면 가슴이 서늘해져서 살 수가 없다. 인간의 외로움은, 특히 노년의 외로움은 경험하지 않으면 모를 테다. 얼마 전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느 남자 배우가 휴대폰의 AI와 연인처럼 대화하는 걸 보고 놀랐었는데, 그게 남의 일이 아니었더라는... 「인생의 무게」의 부부가 서로 소원해지는 상황에 이르렀던 건 우연 같은 느낌이었는데, 남편이 아내를 죽이고자 마음먹고 그 내용을 소설로 쓰면서 서로의 계산에 빠져 산다. 아내는 남편의 계획을 알고 자신이 먼저 남편을 죽이고자 했지만, 또 다른 우연은 그녀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범죄 없는 마을 살인사건」은 작가의 전작 장편소설의 배경과 같다. 이 단편은 배경이 같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고, 한 사람의 허황된 거짓말과 또 다른 사람의 지독한 폭력이 합해진 결과가 다른 가족의 인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여준다. 그러니까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입 함부로 놀리지 말고, 자기 분을 못 이겨서 주먹을 휘두르는 인간 같지 않은 짓도 하지 말자는 교훈이다. 진정한 복수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 「진정한 복수」이다. 왜 이런 거 종종 보지 않았던가. 한 사람을 괴롭히는 방법으로 그 사람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그 괴로운 장면을 두 눈으로 보게 하는 것. 정말 잔인한 방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잔인한 방식으로 아내를 죽이려 했건만 그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분명한 깨달음은 이거다. 지독하게 복수하고 싶다면, 복수의 대상이 무엇을 아끼고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는지 살펴볼 일이다.
웃기는 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명언(?)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에도 적용된다는 거다. 돈 좀 벌어보겠다고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고, 그렇게 들어온 돈으로 흥청망청 쓰다가, 결국 자기 뒤통수를 치는 격이 되고 말았다. 「비리가 너무 많다」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의 비리를 미처 보지 못한 게 함정이 되어, 모든 것을 잃은 남자의 과욕을 보여준다. 「보물찾기」의 결말이 아쉬워서 한참을 들여다봤다. 조금만 참지, 더 살면서 찾아보는 것도 좋은데, 가장 중요한 걸 찾지 못했으니 떠나는 발걸음이 무겁겠구나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어차피 다 잃었는데 더 잃을 게 뭐가 있다고 그렇게 계산기를 빨리 두드렸을까. 바람난 아내를 죽이고 싶었던 남자는 생각이 깊어진다. 「내가 죽인 남자」의 죽은 남자는 아내의 바람보다 자신이 남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선택한 것이다. 처음에 아내가 바람피우던 모텔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바람난 아내의 남편이라는 게 이상했는데, 걸어온 발자국 되짚어보니 이보다 더 슬픈 일이 또 있을까 싶은 마음이다.
와, 이 작품 「개티즌」은 요즘 세상의 필독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시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 판단하고 말하고 다니는지 그대로 증명하는 듯하다. 내가 오만가지 참견의 오지랖을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무서워하는 게 바로 이런 거다. 알지도 못 하면서, 제대로 보지도 않았으면서,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으면서 마치 자기가 목격자인 것처럼 함부로 말하고 다니는 이들의 경솔함이 무슨 일을 만드는지 직접 눈으로 지켜보라고 독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였다.
작품마다 자살 혹은 살인이 등장하는데, 그 죽음의 배경에는 배우자를 향한 지독한 미움이나, 현실의 고달픔이 있다. 이 죽음에 관계된 부부들은 완전 범죄를 꿈꾸며 그들이 계획한 살인을 실행에 옮긴다. 정말로 살인이 들키지 않아서 완전 범죄가 되기도 했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른 척하면서 완전 범죄의 완성을 돕기도 한다. 글쎄, 뭐가 잘못된 거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아서 애매하고 혼란스러운 감정도 만드는 작품들인데, 모든 작품이 보여주는 반전에 종종 ‘헉’ 소리가 난다. 자기 욕심에 끌어안고 있던 게 죽음의 도구가 되기도 하는 아이러니에, 소설이 한층 더 재미있었다. 특히 「인생의 무게」의 마지막은 정말 기가 막힌다. 죽음의 순간이 슬퍼야 하는데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서로 상대를 먼저 죽이려고, 내가 죽기 전에 상대를 죽여야만 하는 운명 앞에서 누가 더 천재적인 두뇌를 휘두르느냐 하는 차이일까. 아니면 그저 타이밍이 그렇게 되어 누군가 먼저 죽은 걸까. 지금 생각해도 웃기다.
부부는 촌수가 없는 사이인데, 부부 중 한 사람이 타살로 죽게 된다면 가장 먼저 남은 배우자가 용의자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그만큼 가까운 사이이면서, 어느 순간에는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남이 되고야 만다는 의미일까 싶기도 하고. 부부 사이의 갈등은 없을 수가 없고, 그 때문에 감정싸움에서부터 신체적 폭력, 살인까지도 일어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부부 갈등의 원인도 주변에서 흔히 보는 일이었다. 의처증이나 의부증, 폭력, 감정이 식어버린 권태, 외도 등 범죄 동기가 색다른 건 아니었다. 그래서 더 공감하면서 읽게 되나 보다. 우리 생활에서, 주변에서 쉽게 보는 이런 일들이 폭력을 넘어서서 살인까지도 만들 수 있다는 경고로 들린다. 일상 미스터리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 주인공이 부부이다 보니, 부부란 뭘까 싶다.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품고 사는,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관계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아직은 이 책 속의 부부들이 보여준 미움보다, 애정을 갖고 사는 부부들이 더 많을 거로 믿으며 살아가야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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