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처 : 벨몬트 아카데미의 연쇄 살인
서맨사 다우닝 지음, 신선해 옮김 / 황금시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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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들은 기억이 난다. 학점 제대로 못 받았다고 부모가 교수에게 항의 전화를 했다는 뉴스. 군대 간 아들 일로 행보관이나 그 이상의 책임자에게 전화하는 부모가 많다는 내용도 지인에게 직접 들었다. 어느 인터넷 게시글의 댓글에는, 회사에서 신입사원 부모에게 전화를 받아본 상사도 있다는 내용도 본 적이 있다. 성인인 자녀의 일에 부모가 나서는 게 이렇게 흔한 일이었던가. 얼핏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과거에는 안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 이런 내용의 뉴스를 듣는다면 새삼스럽지 않다. 유치원에서부터 성인이 된 이후까지도, 부모의 과도한 간섭은 교육 현장은 물론 사회생활까지 문제를 만든다. 그 문제 상황의 가장 큰 피해자는 자녀일 테고 말이다. 이런 극성 부모와 넘치는 사명감에 불타는 교사가 만난다면 어떨까.


미국 동부의 명문 사립 고등학교 벨몬트 아카데미. 겉보기에 우아하고 평화롭다. 돈 많은 부모의 기부금과 높은 교육열은, 학생이 최고의 점수로 졸업하면서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맹렬하게 달리게 한다. 이 달리기에 학생보다 학부모가 더 열심히 참여하지만, 그 영향은 자녀인 재학생에게 영향을 미친다. 부모의 이런 태도 때문인지 학생의 건방진 태도는 흔했고, 자녀의 점수에 부모는 당연하다는 듯이 간섭하기에 이른다. 학부모들의 돈이 이 학교를 운영하게 만드는 바탕이어서, 벨몬트 아카데미의 선생 대부분은 학부모의 간섭을 차단하지 못한다. 단 한 사람만 빼고. 올해의 교사상을 받은 테디는 이 학교 학생이나 학부모의 건방진 태도를 잘 참지 못했다. 10년 동안 학생을 위해 헌신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벨몬트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올해의 교사상을 제대로 축하받지도 못했다. 그래도 기뻤다. 이 상패 하나로 그의 위신이 달라졌고,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어느 날, 재학생 잭의 부모가 테디를 찾아온다. 잭의 에세이 점수가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점수 수정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정중하게 거절한 테디는, 다른 방식으로 잭 부모의 요구를 들어주면서도 절대로 그들이 만족할 만한 점수를 주지 않는다. 여기까지 읽으면 어느 나라에서나 극성 부모가 존재하는구나 싶었을 텐데, 뭔가 묘한 분위기가 테디를 감싸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선생이지만 유치한 감정으로 학생을 대하는 듯한, 그가 가진 기준에서 벗어나면 그 누구라도 그의 적이 되어버리고 마는 이상한 방식의 교류. 그랬다. 테디는 자신이 학생을 위한 방식의 가르침을 행한다고 믿지만, 그 믿음에 부합하지 못하는 대상에게는 그만의 방식으로 철저하게 응징한다. 학생뿐만이 아니다. 그가 벨몬트 아카데미에서 가르침을 수행하는데 방해가 되는 인물들은 모두 그의 조용한 처벌의 대상이 된다.


무슨 선생이 이럴까 싶으면서도, 각 인물의 태도에 화가 나기도 여러 번이다. 모두 각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기의 최선(?)을 다한다. 자녀의 점수를 위해서 계획된 협박도 못 할 게 없었다. 부탁을 가장한 은근한 종용도 했다. 처음에는 테디의 어긋난 교육 신념이 이상해 보였는데, 학생도 학부모도, 학교 관계자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상태로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하는 게 과해 보였다. 욕심이 과하면 탈이 난다고 했던가. 탈이 나고 크게 났다. 죽음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더는 욕심 부릴 수 있는 목숨조차 없게 되었다. 그 사이에 여러 명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었다. 열심히 했지만 미운 털이 박혀 점수를 얻지 못하는 학생, 학생 편을 들면서 선을 넘어 간섭하느라 목숨을 지키지 못한 선생, 자녀의 인생 대신 재단해 주려다가 예정에 없던 죽음을 맞이한 학부모, 제 역할 다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있다가 목숨을 잃은 학교 관계자 등, 모두가 자기 목숨을 지키지 못하는 결말을 맞이했다.


경찰은 뭐 하고 있기에 이렇게 연쇄적으로, 그것도 학교 안에서 죽음이 판을 치게 놔두고 있었나. 나름 수사도 하고 용의자를 추리고 했건만,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했다. 계속되는 수사에 계속되는 죽음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 덕분에 독자가 이 책을 읽는 재미는 배가 되었다. 작가는 소설의 초반부터 범인을 드러내 주었고, 범행 내용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왜 살인이 시작되었는지 이유도 분명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범인도 이렇게 계속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는 거다. 거슬리는 한 사람을 처단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상하게 일이 꼬이고 죽음의 방향이 자꾸만 다른 곳으로 향하다 보니 살인은 이어지고, 범인이 가진 교육 사명감은 한참 멀어진 후였다.


주인공 테디를 중심으로 다섯 명의 시점이 번갈아 가며 서술되는데, 때로는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생각을 하는, 때로는 같은 것을 보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는 이들을 보면서 흥미롭기도 했다. 무엇보다, 사건이 해결되나 싶을 때마다 새로운 사건을 만들면서 반전이 거듭되는 게 이 소설의 재미를 더한다. 범인은 이미 알고 있지만, 여기서 사건이 끝나는 건가 보다 하고 안심하려고 할 때마다 엉뚱하게 꼬여버린 사건들, 예상에 없던 인물의 등장은 이 살인을 절대 끝나지 않을 사건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범인 혼자 나쁜 인간인 건가? 그랬다면 일방적으로 범인만 미워할 수 있었을 텐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주변 인물들이 하나씩 범인과 다를 바 없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비밀,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살인도 불사하는 선택을 하기에 이르는 과정이 참 재밌다. 인간이란 자기가 지키고 싶은 것을 위해서라면, 이렇게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는 존재인가 싶어서 말이다.


오늘날의 교육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고, 교사의 역할이 무엇인지 서로가 고민해 볼 문제를 제시한 소설이기도 하다. 학생과 학부모, 교육 관계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그 몫을 다하고 선을 지키는 게, 의미 있는 교육의 장을 만드는 게 아닐지 하는 생각도 든다.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고 싶은 부모의 욕심, 많은 과제로 학생의 노력을 평가하려는 교사, 그 사이에서 양쪽의 요구를 다 수용해야 하는 학생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 궁금한 게 그것인데, 아무도 들려주지 않았다. 교육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학생이 아닌가 싶은데 말이다. 명문고등학교에서 명문대학으로 진학을 바라고, 그 자신들을 금수저로 인식하며 흙수저출신 교사를 무시하는 학생과 학부모, 그런데도 학교를 유지하게 하는 돈줄인 학부모의 요구를 응할 수밖에 없는 이 구조를 어떻게 깨트릴 수 있을까. 소설의 첫 부분에서, 잭의 부모가 자녀의 점수를 두고 교사와 협상을 하러 왔다는 게 아직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소설 속 이야기로 머무는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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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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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혼자서 여관에 들어서는 남자의 수상함을 주인이 몰라볼 리 없다. 그런 주인의 시선이나 경고 따위 상관없다는 듯, 그는 극단적 시도의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지금 그의 옆에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다. 피를 토하는 몸뚱이가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아무 것도 없으니 지켜야 할 것도 없다. 죽음이 그의 선택을 기다리는 것 말고, 그에게 의미 있는 건 무엇일까. 그의 인생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어두운 여관방에 몸을 기댄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동안 살아온 시간을 소환하는 것뿐이다. 은행에서 일하며 돈도 많이 모았다. 물론, 불법이다. 가진 것 없는 평범한 은행원이 고급 승용차에 고급 주택을 가질 방법이 어디 있다고. 이런 짓을 저지른 그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남들처럼 살아보고 싶어서, 사업도 해보고 싶어서. 처음에는 그저 집 한 채 정도만 생각했다. 고객의 돈을 슬금슬금 빼먹다 보니, 할 만하다. 그래서 크기를 키웠다. 이런 일이 어떻게 끝을 맺을지, 누구나 안다. 그렇게 도망자가 되었다. 여관방의 어둠에 익숙해지니, 과거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물을 마시고 죽은 아버지, 산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장민석.


그의 어머니는 아이들도, 노인들도 돌봤다. 장민석은 엄마가 돌보는 이 중 한 명이다. 그와 같은 반에서 그 이름이 들려왔을 때, 혹시나 하는 의심은 사실이 되었다. 그의 도시락 반찬과 맛이 장민석의 도시락과 같았을 때, 그의 질투와 집착은 하늘을 찌른다. 급기야 장민석이 그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된 후, 그의 상실감과 분노는 커진다. 항상 장민석과 비교하는 삶이 시작된 거다. 부모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장민석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곧 장민석은 부모가 찾아와 그의 집을 떠났지만, 그 이후로도 그의 삶에서 장민석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은 채로 불안하고 조급하게 만든다.


그냥 살아도 되는데, 뭔가 분명한 게 없어도 살아지기 마련이고, 확실하지 않은 채로 살아가는 사람이 넘치는데, 그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던가 보다. 그의 친구의 말처럼, 선택당하는 삶이라는 걸 인정할 수도 없어서, 현실에서의 괴리감은 더 커지기만 할 뿐. 그가 선택했기에 이제까지 만들고 이어져 온 인생이라고 믿었던 것도 한 방에 날아갔다. 그 믿음도 허상이었던가. 그가 여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불길했던 마음에, 여관 주인은 그의 극단적 시도를 말리게 되면서 여관에서 내쫓는다. 오늘을 버티고 나면 살아질 수도 있는 희망 한 줄기를 언급하며, 그에게 그냥 살아도 되는 마음을 전한다.


그냥 산다는 게 뭘까. 안 되는 것도 있고, 됐다가 다시 안 되는 경우도 있고, 넘치도록 많을 때도 있고 없어서 쪼들릴 때도 있고. 뭐 그런 마음으로 산다는 걸까. 몇 년 동안 동생이 좀 아팠는데, 그 아픔의 근원을 찾다가 보니 안 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었다. 사람이 자기 생각대로, 계획대로 살아가고자 노력하지만 끝내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한데,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서 마음의 병이 생기는 거. 그냥 살아도 되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프게 되는 상황까지 이어가게 되는 문제를 해결해야만 오늘을 살 수 있던 거다. 그도 비슷한 걸까 싶었다. 그냥 살아도 되는 괜찮다는 마음, 그러려니 하고 유연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그가 몰라서,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서 애당초 알 수 없던 삶의 방식이 아니었을까. 부모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했던 성장의 시작은 현재의 그를 만들었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가 어머니의 인생을 행복하게 해주는 존재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와 어머니와의 거리, 그사이에 침범한 장민석이 그의 혼란과 잘못된 삶의 방식을 키운 건 아닐까. 가장 중요한,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비밀과 의미가 그의 결핍, 우울, 비틀린 욕망의 바탕에서 있었기에 오늘의 그를 만들었을 거라고.


나는 왜 살아 있는가.

이것이 아니다.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이것이다. (80)


왜 사는지, 왜 죽지 않았는지 묻는 건 무슨 차이일까. 그냥 살아도 되는 게 세상이고 인생이라면, 왜 사는지 물을 이유가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을 듯하다. 그렇기에 왜 사는지 굳이 물어야 한다면, 왜 죽지 않았는지 물어야 하는 게 맞는 거라고. 사는 게 이유가 없고 그냥 살아도 되는 일에, 반드시 의미를 두고 사는 게 아니어도 괜찮은 거라면, 극단으로 치달을 때 물을 수 있는 건 죽지 않은 이유에 관해서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살아가야 하는 이유, 그 이유가 아주 작은 거라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가 애써 찾으려 했던 것도 같은 거라고 믿고 싶다. 살아가야 하는 이유, 살아갈 힘이 되는 그 어떤 것이라고 붙잡고 싶은 간절함을 호소하는 글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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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봄 한빛문고 3
김유정 글, 한병호 그림 / 다림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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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곳 시에서 고전 100권을 선정했다. 그리고 올해부터 도서관에서 고전 같이 읽기 수업을 진행하면서 참여자를 모집했다. 일단 전문가에 의해 선정된 고전이라고 하여 목록을 살펴보니, ,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제목이 가득 있구나 싶었다. 익숙한 책 제목에 나도 모르게 필독서처럼 여겨졌으나, 선정된 목록을 보고 있자니 숨 턱 막히는 거다. 어려워서 감히 접근하지 못하는 책도 있었고, 평소 한번은 읽고 싶었는데 의지가 약해서 시작도 못 하거나 완독하지 못한 책도 있었다. 다행히(?)도 내가 읽은 책이 몇 권 있긴 있더라. 100권 중의 열권도 안 되었기에 괜히 더 쪼그라드는 이 마음은 뭔지... 어쨌든 죽기 전에 읽어는 봐야지 하는 이상한 다짐 같은 게 생기긴 했는데, 이걸 언제 다 읽나 싶어서 엄두가 안 나는 게 현실이었다. 그러다가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고전 같이 읽기 수업이 진행된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한 달에 한 권이면 해볼 만하지 않나 싶어서 신청했다. 신청자가 많았나 보다. 생각보다 일찍 마감되었고, 다행히 1월부터 수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김유정의 작품 봄봄은 선정된 100권 중 한권이다. 올해의 고전 수업에는 없는 목록이지만, 나는 그 유명한 점순이와 그녀의 아버지가 너무 궁금했다. 이미 알겠지만, 이 책은 분량이 그리 많지는 않다. 중고등학교 문학 수업에서 종종 들어왔지만, 끝까지 제대로 읽어본 게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자세히 기억이 안 남). 내용은 간단하다. 장인이 자기 딸 점순이와 혼인시켜 주겠다면서 들였지만, 실상은 장인이 머슴처럼 부리던 의 신세가 처량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장인이 꼼수를 쓰면서 계속 혼인을 시켜주지 않았기에, 그 집의 데릴사위 되기만 기다리던 의 답답한 속내 쏟아지는 것을 독자가 들어주는 거다.


의 얘기를 듣고 있자면, ‘의 속만 터지는 게 아니라 읽는 내 속도 터져 죽을 것 같기도 하다. 누구나 실수도 하고 시작을 잘 못 할 수도 있지만, 눈에 훤히 보이는 장인의 꼼수에 반기를 드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 싶어서 의 푸념을 파헤치며 분석하고 싶을 정도였다. 이 녀석은 왜 장인의 농간에 반격하지 못하는가. 위로 클 줄 알았던 점순이가 옆으로 퍼지기만 할 때 왜 사태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가. 불합리한 이 상황에서도 못 된 장인 옆에 있을 수밖에 없던 이유는 무엇인가. 혹시 여기서 쫓겨나면 갈 데가 없어서였나? 이유가 무엇이든 현재의 는 여전히 희망 고문을 당하며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거다. 소심하게 반항을 하면서 말이다. 이미 진즉에 깨달았는데, 왜 그 부녀의 그물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가. 이미 상황 파악 끝났으니, 단호하게 결판을 내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 의 깨달음은 이미 이 작품의 초반에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도 현재 상황을 다 아는 것일 텐데, 왜 이렇게 머뭇거리는지 모르겠다.


이래서 나는 애초에 계약이 잘못된 걸 알았다. 이태면 이태, 삼 년이면 삼 년, 기한을 딱 작정하고 일을 해야 원할 것이다. 덮어놓고 딸이 자라는 대로 성례를 시켜 주마 했으니, 누가 늘 지키고 섰는 것도 아니고 그 키가 언제 자라는지 알 수 있는가. 그리고 난 사람의 키가 무럭무럭 자라는 줄만 알았지 붙박이 키에 모로(옆으로)만 벌어지는 몸도 있는 것을 누가 알았으랴. (10)”


그랬다. ‘는 사기꾼 기질이 다분한 장인과 계약을 잘못한 것을 시작으로 인생 꼬인 거다. 계약은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작성해야 한다. 물론 그건 알면서도 실수할 수 있고 사기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런 것까지 알아채지 못한 를 탓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적어도 구체적인 기간 같은, 명확한 숫자가 계약서 안에 등장해야 하는 것 정도는 기본이라고 생각했기에, ‘가 장인과 맺은 허술한 계약 내용에 화가 날듯 말듯, 이 녀석이 너무 착해서 이렇게 된 건지 아닌 건지 싶은 애매함. 누군가는 그의 푸념을 계속 듣고 있다가 화병이 나서 참기 어려운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자꾸만 가 내 아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읽게 되는 게 나뿐만은 아닐 터. 내 아들이 회사 상사의 딸과 결혼하고 싶은데, 상사가 한 가지 조건을 걸어놓고 그것만 갖추면 결혼이 만사 오케이 된다고 여기게 하는 상황인 거다. 여기서 함정은, ‘의 말처럼 구체적인 기한을 명시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점순이의 키를 정하지 못한 것도 있다. 사실 인간의 키가 정해진 대로 시간 맞춰 자라는 게 아니어서 이 부분도 계약서 안에 들어갈 것도 못 되지만, 하도 답답해서 한 마디 보태어봤다. 게다가, 점순이의 키는 잘 자라지도 않고 모로 벌어지는 몸만 되어가니 도 읽는 나도 답답하기만 한 게 이 작품의 큰 문제다.


소심하게나마 계속 반항하던 는 최종 선포를 하고 파업에 돌입하였으나, 그 파업의 현장에서조차 의 편은 없다. 점순이가 새참을 가져다주면서 보여준 플러팅으로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하고 기세등등 파업하였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점순이는 아버지의 뻔한 사기 행각에 를 모른 척한다. 점순이에게는 내 남편이 될 사람 등에 빨대 꽂고 피 빨아먹고 있는 아버지의 염치없는 행동보다, 아버지의 수염이 뽑히는 게 더 큰 일인가 보다. 새참 차려다 주면서 아버지에게 왜 혼인 시켜주지 않느냐고 따지라고 말하라던 점순이는 어딜 갔단 말이냐. 이제 믿을 게 없다. 바보처럼 희망 고문 당하면서 그 자리에 찌그러져 있거나, 애매한 계약 따위 털어버리고 그 집은 나가거나 해야 하는데, 어쩌면 좋을까나. 점순이라도 확실하게 의 편이 되어준다면 미친 척하고 장인을 한번 들이받고 본때를 보여줄 수도 있었을 텐데, 비빌 언덕이 없다, 없어.


열린 결말처럼 이야기가 끝났는데, 그래도 확실한 결말이 듣고 싶긴 하다. ‘는 점순이와 혼인할 수 있었을까 정말 궁금한데,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외전이 필요한 건가 싶다. 로맨스 소설에만 외전이 있으란 법이 어디 있나. 고전도 이런 결말이라면 외전으로 독자의 속을 좀 시원하게 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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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4-02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위로 클 줄 알았던 점순이가 옆으로 퍼지기만 할 때 왜 사태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가˝ 점순이의 플러팅도 웃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구단씨 2024-04-03 19:27   좋아요 0 | URL
진짜 저 문장에서 너무 웃겼어요. 모로 벌어지는 몸도 있다는 것을 누가 알았으랴... ㅎㅎㅎㅎ
이때 결단을 내렸어야 했는데 말이죠.

그레이스 2024-04-04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넘 반가운 책이예요.
독서토론때 점순이가 ‘나‘를 자빠뜨린 얘기만 반복하시던 분이 생각나네요^^

구단씨 2024-04-06 22:18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ㅎ 자빠뜨린..... 재밌었어요.
 
완전 부부 범죄
황세연 지음, 용석재 북디자이너 / 북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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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으로 써진 추리소설을 만나는 일이 흔하지는 않은데, 작가의 전작 장편 소설을 재미있게 읽어서 이 책도 펼쳐보게 되었다. 아무 정보도 없이 작가 이름과 책 제목만으로 선택했는데, 각 단편의 내용은 부부가 등장하여 둘 중 한 사람이 죽는다는 거다. 물론 죽음의 순간이나 방식, 죽이고 싶은 이유도 제각각이지만, 완전 범죄를 꿈꾸며 죽이고 싶은 마음은 똑같다.


바람난 남편을 벌주고 싶었다. 기억이 자꾸 왔다 갔다 하는 여자는 자신의 계획을 잊지 않으려고 꼼꼼하게 메모까지 해가면서 완벽한 살인을 꿈꿨다. 물론 그 완벽에는 들키지 않은 완전 범죄도 포함이다. 그리고 해냈다. 결혼에서 무덤까지는 나이 좀 있는 오래된 부부의 말년을 살인으로 끝내는 장면이 인상적인데, 그 반전까지 듣고 나면 가슴이 서늘해져서 살 수가 없다. 인간의 외로움은, 특히 노년의 외로움은 경험하지 않으면 모를 테다. 얼마 전에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느 남자 배우가 휴대폰의 AI와 연인처럼 대화하는 걸 보고 놀랐었는데, 그게 남의 일이 아니었더라는... 인생의 무게의 부부가 서로 소원해지는 상황에 이르렀던 건 우연 같은 느낌이었는데, 남편이 아내를 죽이고자 마음먹고 그 내용을 소설로 쓰면서 서로의 계산에 빠져 산다. 아내는 남편의 계획을 알고 자신이 먼저 남편을 죽이고자 했지만, 또 다른 우연은 그녀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범죄 없는 마을 살인사건은 작가의 전작 장편소설의 배경과 같다. 이 단편은 배경이 같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고, 한 사람의 허황된 거짓말과 또 다른 사람의 지독한 폭력이 합해진 결과가 다른 가족의 인생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여준다. 그러니까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입 함부로 놀리지 말고, 자기 분을 못 이겨서 주먹을 휘두르는 인간 같지 않은 짓도 하지 말자는 교훈이다. 진정한 복수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 진정한 복수이다. 왜 이런 거 종종 보지 않았던가. 한 사람을 괴롭히는 방법으로 그 사람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그 괴로운 장면을 두 눈으로 보게 하는 것. 정말 잔인한 방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잔인한 방식으로 아내를 죽이려 했건만 그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분명한 깨달음은 이거다. 지독하게 복수하고 싶다면, 복수의 대상이 무엇을 아끼고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는지 살펴볼 일이다.


웃기는 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명언(?)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에도 적용된다는 거다. 돈 좀 벌어보겠다고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고, 그렇게 들어온 돈으로 흥청망청 쓰다가, 결국 자기 뒤통수를 치는 격이 되고 말았다. 비리가 너무 많다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의 비리를 미처 보지 못한 게 함정이 되어, 모든 것을 잃은 남자의 과욕을 보여준다. 보물찾기의 결말이 아쉬워서 한참을 들여다봤다. 조금만 참지, 더 살면서 찾아보는 것도 좋은데, 가장 중요한 걸 찾지 못했으니 떠나는 발걸음이 무겁겠구나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어차피 다 잃었는데 더 잃을 게 뭐가 있다고 그렇게 계산기를 빨리 두드렸을까. 바람난 아내를 죽이고 싶었던 남자는 생각이 깊어진다. 내가 죽인 남자의 죽은 남자는 아내의 바람보다 자신이 남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선택한 것이다. 처음에 아내가 바람피우던 모텔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바람난 아내의 남편이라는 게 이상했는데, 걸어온 발자국 되짚어보니 이보다 더 슬픈 일이 또 있을까 싶은 마음이다.


, 이 작품 개티즌은 요즘 세상의 필독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시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 판단하고 말하고 다니는지 그대로 증명하는 듯하다. 내가 오만가지 참견의 오지랖을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무서워하는 게 바로 이런 거다. 알지도 못 하면서, 제대로 보지도 않았으면서,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으면서 마치 자기가 목격자인 것처럼 함부로 말하고 다니는 이들의 경솔함이 무슨 일을 만드는지 직접 눈으로 지켜보라고 독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였다.


작품마다 자살 혹은 살인이 등장하는데, 그 죽음의 배경에는 배우자를 향한 지독한 미움이나, 현실의 고달픔이 있다. 이 죽음에 관계된 부부들은 완전 범죄를 꿈꾸며 그들이 계획한 살인을 실행에 옮긴다. 정말로 살인이 들키지 않아서 완전 범죄가 되기도 했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른 척하면서 완전 범죄의 완성을 돕기도 한다. 글쎄, 뭐가 잘못된 거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아서 애매하고 혼란스러운 감정도 만드는 작품들인데, 모든 작품이 보여주는 반전에 종종 소리가 난다. 자기 욕심에 끌어안고 있던 게 죽음의 도구가 되기도 하는 아이러니에, 소설이 한층 더 재미있었다. 특히 인생의 무게의 마지막은 정말 기가 막힌다. 죽음의 순간이 슬퍼야 하는데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서로 상대를 먼저 죽이려고, 내가 죽기 전에 상대를 죽여야만 하는 운명 앞에서 누가 더 천재적인 두뇌를 휘두르느냐 하는 차이일까. 아니면 그저 타이밍이 그렇게 되어 누군가 먼저 죽은 걸까. 지금 생각해도 웃기다.


부부는 촌수가 없는 사이인데, 부부 중 한 사람이 타살로 죽게 된다면 가장 먼저 남은 배우자가 용의자가 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그만큼 가까운 사이이면서, 어느 순간에는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남이 되고야 만다는 의미일까 싶기도 하고. 부부 사이의 갈등은 없을 수가 없고, 그 때문에 감정싸움에서부터 신체적 폭력, 살인까지도 일어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부부 갈등의 원인도 주변에서 흔히 보는 일이었다. 의처증이나 의부증, 폭력, 감정이 식어버린 권태, 외도 등 범죄 동기가 색다른 건 아니었다. 그래서 더 공감하면서 읽게 되나 보다. 우리 생활에서, 주변에서 쉽게 보는 이런 일들이 폭력을 넘어서서 살인까지도 만들 수 있다는 경고로 들린다. 일상 미스터리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 주인공이 부부이다 보니, 부부란 뭘까 싶다.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품고 사는,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관계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아직은 이 책 속의 부부들이 보여준 미움보다, 애정을 갖고 사는 부부들이 더 많을 거로 믿으며 살아가야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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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미스터리소설 #완전범죄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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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것들의 기록 - 유품정리사가 써내려간 떠난 이들의 뒷모습
김새별.전애원 지음 / 청림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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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글을 두 번째 만난다. 앞서 출간된 책을 읽으면서, 어느 매체에서 봤던 죽은 지 한참 지난 후에 발견된 백골 시신 이야기가 생각나곤 했다. 누군가 떠난 자리를 정리하는 일이 쉬울 거로 생각한 적은 없지만, 마음까지 어려워질 거란 생각을 크게 하지는 않았다.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남겨진 사람이 당연히 하는 거로 여겼던 마음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도 종종 나의 마지막 순간을 걱정하는 걸 보면, 나를 보내주는 이가 있을 거라는 당연한 생각은 접어두어야 할 것 같다. 나 혼자 지내다가 나 혼자 떠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마저도 누군가 확인해 주지 못한다면 죽음 이후의 모습마저 고독하고 쓸쓸함으로 각인될 것 같아서, 혼자 있다가 혼자 떠났다는 것 자체가 죽기 전까지 외로웠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보여서 우울해진다.


정말 많이 바쁜 상황이 아니라면, 하루에 한 번씩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는지 묻곤 한다. 장난처럼, 엄마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하는 전화라고 말하곤 하는데,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혼자 계신 엄마가 넘어져서 움직이지 못 하는 상황에라도 처했을까 봐, 저자가 방문하는 작업 현장처럼 엄마가 돌아가시고 며칠이나 지나서 발견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특히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아지는 요즘에 엄마를 걱정하는 시간은 배가 된다. 새해가 시작하자마자 손을 다쳐서 입원했고 퇴원하고서도 손을 제대로 쓰지 못해 불편한 것뿐인데, 곧 다른 부분을 치료받으러 다시 입원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니 별일 없는지 묻는 안부는 끝이 나지 않겠지. 나이를 먹고 하루가 다르게 노쇠해지는 몸은 어쩔 수 없지만, 육체의 질병보다 아픈 상황에서의 마음마저 불안해진다면 몸의 회복은 더디거나 아예 낫지 않을 거다.


25년이 넘도록 이 일을 하는 저자는, 매번 유품을 정리할 때마다 전해지는 고인의 외로웠을 시간에 안타까워하고 먹먹함을 느낀다. 누군가의 관심이 한 사람의 죽음을 막는다거나 외롭지 않게 할 수는 없겠지만, 덜 외롭게 떠나보낼 수는 있다는 마음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떠난 이들이 남겨놓은 것들, 남겨진 공간의 흔적들은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온 집안에 쓰레기와 물건으로 가득 차 집 앞 도로에서 잠을 잤다는 노인의 외로움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자기 인생 책임지며 살아가는 어른이 되고 싶었으나, 번번이 좌절하는 날들에 세상을 놓아버린 청년. 자기 인생 찾겠다며 이혼하고 새 삶을 시작했던 아내가 스스로 놓아버린 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남편은 알지 못했다. 매일 짐을 싸서 이삿짐 트럭을 부르고, 그때마다 아들의 연락을 기다리며 출발하지 못하는 이삿짐 차를 붙잡고 있는 치매 노인의 안타까운 사연은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파진다.


희로애락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한 사람의 인생을 지우는 작업은 참으로 공허했다. 문득 이것이야말로 고독사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고독사는 다른 말로 절망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절망과 좌절 때문에 조금씩 생활이 무너지고 관계도 끊겨 홀로 죽게 되기 때문이다. (144)


말로 다 전하지 못하는 고독사의 여러 현장과 그들의 사연은 이 시대의 어둠인 듯하다. 그들이 삶의 애착을 가지는 동안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고 애쓰는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내일을 기다릴 수 없고, 더는 붙잡고 있을 여력도 없을 때 놓아버리는 생의 쓸쓸함은 누구를 탓해야 할까. 그래서 어떤 의미로든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필요한 건가 보다.


엄마가 밥맛이 없다고 할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남편이 있을 때는 시간이 걸려도 식사준비를 하는 편인데, 나 역시도 혼자 있을 때는 매 끼니를 챙기는 게 아니라 그저 배가 고프다는 걸 느낄 때 밥을 먹는다. 그마저도 제대로 차려놓고 먹지는 않는다. 귀찮으니까. 간절한 허기를 채울 정도면, 어떤 것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입으로 무언가를 밀어 넣는다. 그러니 엄마가 밥맛이 없다고 하는 마음이 저절로 이해가 되는 거다. 누군가를 챙겨야 하거나 꼭 시간 맞춰 식사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그저 먹는 일조차 번거로울 뿐이다. 혼자서 먹는 밥이 맛있기도 어려울 테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그저 죽지 않으려고 먹는다는 표현을 종종 하시는데, 배고픔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외로움의 자리가 커진 건 아닐까 걱정이 되는 거다. 바빠도 일주일에 한두 번 시간 내서 엄마를 보러 가는데, 사실 그것도 쉽지 않다. 매일 전화하는 걸 챙기는 것도 잊을 때가 있는데, 직접 가서 보는 게 쉽지는 않다. 그래도 수시로 찾아드는 외로움과 서글픔을 조금 덜어낼 수만 있다면, 외로움에 치여 혼자 떠나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나의 이 번거롭고 귀찮음을 이기는 듯하다.


희망은 자가발전이 잘 안된다. 혼자서 아무리 기를 써봐야 쳇바퀴 위를 구르는 것 같아 지치기 십상이다. 작은 것이라도 함께 나누고 꿈꿀 때 희망이 생겨난다. (178)


저자가 떠난 이들의 사연으로 전하고 싶은 것도 비슷하다.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여력도 없이 숨 가쁘게 살아가야만 하는 일상이지만, 그 사이에 생의 의지를 놓아버리는 이들이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분명히 있다고. 그가 하는 일은 누군가의 인생을 지우는 일이지만,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진심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고독사에 관한 사회적 관심은 많아지고 국가의 정책도 마련되어 있다는데, 이상하게 고독사 자체가 줄어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1인 가구도 늘어나고, 점점 더 개인화되어 가는 세상에서 쉽게 낙관할 수도 없다고 한다. 그가 정리하려고 방문한 현장의 상황과 다르게, 단정하게 이별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의 바람일 테다. 그러려면 자기 삶을 스스로 방치하지 않아야 한다고, 혼자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으로 안전망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 정도만으로도 우리는 주변 사람에게 더 다정해지고, 외롭고 쓸쓸하지 않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길 바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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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에세이 #책추천 #관심 #돌봄 #고독사 #절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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