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것들의 기록 - 유품정리사가 써내려간 떠난 이들의 뒷모습
김새별.전애원 지음 / 청림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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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글을 두 번째 만난다. 앞서 출간된 책을 읽으면서, 어느 매체에서 봤던 죽은 지 한참 지난 후에 발견된 백골 시신 이야기가 생각나곤 했다. 누군가 떠난 자리를 정리하는 일이 쉬울 거로 생각한 적은 없지만, 마음까지 어려워질 거란 생각을 크게 하지는 않았다.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남겨진 사람이 당연히 하는 거로 여겼던 마음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도 종종 나의 마지막 순간을 걱정하는 걸 보면, 나를 보내주는 이가 있을 거라는 당연한 생각은 접어두어야 할 것 같다. 나 혼자 지내다가 나 혼자 떠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마저도 누군가 확인해 주지 못한다면 죽음 이후의 모습마저 고독하고 쓸쓸함으로 각인될 것 같아서, 혼자 있다가 혼자 떠났다는 것 자체가 죽기 전까지 외로웠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보여서 우울해진다.


정말 많이 바쁜 상황이 아니라면, 하루에 한 번씩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는지 묻곤 한다. 장난처럼, 엄마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하는 전화라고 말하곤 하는데,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혼자 계신 엄마가 넘어져서 움직이지 못 하는 상황에라도 처했을까 봐, 저자가 방문하는 작업 현장처럼 엄마가 돌아가시고 며칠이나 지나서 발견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특히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아지는 요즘에 엄마를 걱정하는 시간은 배가 된다. 새해가 시작하자마자 손을 다쳐서 입원했고 퇴원하고서도 손을 제대로 쓰지 못해 불편한 것뿐인데, 곧 다른 부분을 치료받으러 다시 입원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니 별일 없는지 묻는 안부는 끝이 나지 않겠지. 나이를 먹고 하루가 다르게 노쇠해지는 몸은 어쩔 수 없지만, 육체의 질병보다 아픈 상황에서의 마음마저 불안해진다면 몸의 회복은 더디거나 아예 낫지 않을 거다.


25년이 넘도록 이 일을 하는 저자는, 매번 유품을 정리할 때마다 전해지는 고인의 외로웠을 시간에 안타까워하고 먹먹함을 느낀다. 누군가의 관심이 한 사람의 죽음을 막는다거나 외롭지 않게 할 수는 없겠지만, 덜 외롭게 떠나보낼 수는 있다는 마음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떠난 이들이 남겨놓은 것들, 남겨진 공간의 흔적들은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온 집안에 쓰레기와 물건으로 가득 차 집 앞 도로에서 잠을 잤다는 노인의 외로움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자기 인생 책임지며 살아가는 어른이 되고 싶었으나, 번번이 좌절하는 날들에 세상을 놓아버린 청년. 자기 인생 찾겠다며 이혼하고 새 삶을 시작했던 아내가 스스로 놓아버린 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남편은 알지 못했다. 매일 짐을 싸서 이삿짐 트럭을 부르고, 그때마다 아들의 연락을 기다리며 출발하지 못하는 이삿짐 차를 붙잡고 있는 치매 노인의 안타까운 사연은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파진다.


희로애락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한 사람의 인생을 지우는 작업은 참으로 공허했다. 문득 이것이야말로 고독사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고독사는 다른 말로 절망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절망과 좌절 때문에 조금씩 생활이 무너지고 관계도 끊겨 홀로 죽게 되기 때문이다. (144)


말로 다 전하지 못하는 고독사의 여러 현장과 그들의 사연은 이 시대의 어둠인 듯하다. 그들이 삶의 애착을 가지는 동안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고 애쓰는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내일을 기다릴 수 없고, 더는 붙잡고 있을 여력도 없을 때 놓아버리는 생의 쓸쓸함은 누구를 탓해야 할까. 그래서 어떤 의미로든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필요한 건가 보다.


엄마가 밥맛이 없다고 할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남편이 있을 때는 시간이 걸려도 식사준비를 하는 편인데, 나 역시도 혼자 있을 때는 매 끼니를 챙기는 게 아니라 그저 배가 고프다는 걸 느낄 때 밥을 먹는다. 그마저도 제대로 차려놓고 먹지는 않는다. 귀찮으니까. 간절한 허기를 채울 정도면, 어떤 것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입으로 무언가를 밀어 넣는다. 그러니 엄마가 밥맛이 없다고 하는 마음이 저절로 이해가 되는 거다. 누군가를 챙겨야 하거나 꼭 시간 맞춰 식사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그저 먹는 일조차 번거로울 뿐이다. 혼자서 먹는 밥이 맛있기도 어려울 테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그저 죽지 않으려고 먹는다는 표현을 종종 하시는데, 배고픔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외로움의 자리가 커진 건 아닐까 걱정이 되는 거다. 바빠도 일주일에 한두 번 시간 내서 엄마를 보러 가는데, 사실 그것도 쉽지 않다. 매일 전화하는 걸 챙기는 것도 잊을 때가 있는데, 직접 가서 보는 게 쉽지는 않다. 그래도 수시로 찾아드는 외로움과 서글픔을 조금 덜어낼 수만 있다면, 외로움에 치여 혼자 떠나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나의 이 번거롭고 귀찮음을 이기는 듯하다.


희망은 자가발전이 잘 안된다. 혼자서 아무리 기를 써봐야 쳇바퀴 위를 구르는 것 같아 지치기 십상이다. 작은 것이라도 함께 나누고 꿈꿀 때 희망이 생겨난다. (178)


저자가 떠난 이들의 사연으로 전하고 싶은 것도 비슷하다.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여력도 없이 숨 가쁘게 살아가야만 하는 일상이지만, 그 사이에 생의 의지를 놓아버리는 이들이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분명히 있다고. 그가 하는 일은 누군가의 인생을 지우는 일이지만,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진심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고독사에 관한 사회적 관심은 많아지고 국가의 정책도 마련되어 있다는데, 이상하게 고독사 자체가 줄어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1인 가구도 늘어나고, 점점 더 개인화되어 가는 세상에서 쉽게 낙관할 수도 없다고 한다. 그가 정리하려고 방문한 현장의 상황과 다르게, 단정하게 이별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의 바람일 테다. 그러려면 자기 삶을 스스로 방치하지 않아야 한다고, 혼자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으로 안전망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 정도만으로도 우리는 주변 사람에게 더 다정해지고, 외롭고 쓸쓸하지 않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길 바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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