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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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혼자서 여관에 들어서는 남자의 수상함을 주인이 몰라볼 리 없다. 그런 주인의 시선이나 경고 따위 상관없다는 듯, 그는 극단적 시도의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지금 그의 옆에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다. 피를 토하는 몸뚱이가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아무 것도 없으니 지켜야 할 것도 없다. 죽음이 그의 선택을 기다리는 것 말고, 그에게 의미 있는 건 무엇일까. 그의 인생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어두운 여관방에 몸을 기댄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동안 살아온 시간을 소환하는 것뿐이다. 은행에서 일하며 돈도 많이 모았다. 물론, 불법이다. 가진 것 없는 평범한 은행원이 고급 승용차에 고급 주택을 가질 방법이 어디 있다고. 이런 짓을 저지른 그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남들처럼 살아보고 싶어서, 사업도 해보고 싶어서. 처음에는 그저 집 한 채 정도만 생각했다. 고객의 돈을 슬금슬금 빼먹다 보니, 할 만하다. 그래서 크기를 키웠다. 이런 일이 어떻게 끝을 맺을지, 누구나 안다. 그렇게 도망자가 되었다. 여관방의 어둠에 익숙해지니, 과거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물을 마시고 죽은 아버지, 산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장민석.


그의 어머니는 아이들도, 노인들도 돌봤다. 장민석은 엄마가 돌보는 이 중 한 명이다. 그와 같은 반에서 그 이름이 들려왔을 때, 혹시나 하는 의심은 사실이 되었다. 그의 도시락 반찬과 맛이 장민석의 도시락과 같았을 때, 그의 질투와 집착은 하늘을 찌른다. 급기야 장민석이 그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된 후, 그의 상실감과 분노는 커진다. 항상 장민석과 비교하는 삶이 시작된 거다. 부모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장민석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곧 장민석은 부모가 찾아와 그의 집을 떠났지만, 그 이후로도 그의 삶에서 장민석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은 채로 불안하고 조급하게 만든다.


그냥 살아도 되는데, 뭔가 분명한 게 없어도 살아지기 마련이고, 확실하지 않은 채로 살아가는 사람이 넘치는데, 그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던가 보다. 그의 친구의 말처럼, 선택당하는 삶이라는 걸 인정할 수도 없어서, 현실에서의 괴리감은 더 커지기만 할 뿐. 그가 선택했기에 이제까지 만들고 이어져 온 인생이라고 믿었던 것도 한 방에 날아갔다. 그 믿음도 허상이었던가. 그가 여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불길했던 마음에, 여관 주인은 그의 극단적 시도를 말리게 되면서 여관에서 내쫓는다. 오늘을 버티고 나면 살아질 수도 있는 희망 한 줄기를 언급하며, 그에게 그냥 살아도 되는 마음을 전한다.


그냥 산다는 게 뭘까. 안 되는 것도 있고, 됐다가 다시 안 되는 경우도 있고, 넘치도록 많을 때도 있고 없어서 쪼들릴 때도 있고. 뭐 그런 마음으로 산다는 걸까. 몇 년 동안 동생이 좀 아팠는데, 그 아픔의 근원을 찾다가 보니 안 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었다. 사람이 자기 생각대로, 계획대로 살아가고자 노력하지만 끝내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한데,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서 마음의 병이 생기는 거. 그냥 살아도 되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프게 되는 상황까지 이어가게 되는 문제를 해결해야만 오늘을 살 수 있던 거다. 그도 비슷한 걸까 싶었다. 그냥 살아도 되는 괜찮다는 마음, 그러려니 하고 유연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그가 몰라서,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서 애당초 알 수 없던 삶의 방식이 아니었을까. 부모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했던 성장의 시작은 현재의 그를 만들었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가 어머니의 인생을 행복하게 해주는 존재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와 어머니와의 거리, 그사이에 침범한 장민석이 그의 혼란과 잘못된 삶의 방식을 키운 건 아닐까. 가장 중요한,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비밀과 의미가 그의 결핍, 우울, 비틀린 욕망의 바탕에서 있었기에 오늘의 그를 만들었을 거라고.


나는 왜 살아 있는가.

이것이 아니다.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

이것이다. (80)


왜 사는지, 왜 죽지 않았는지 묻는 건 무슨 차이일까. 그냥 살아도 되는 게 세상이고 인생이라면, 왜 사는지 물을 이유가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을 듯하다. 그렇기에 왜 사는지 굳이 물어야 한다면, 왜 죽지 않았는지 물어야 하는 게 맞는 거라고. 사는 게 이유가 없고 그냥 살아도 되는 일에, 반드시 의미를 두고 사는 게 아니어도 괜찮은 거라면, 극단으로 치달을 때 물을 수 있는 건 죽지 않은 이유에 관해서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살아가야 하는 이유, 그 이유가 아주 작은 거라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가 애써 찾으려 했던 것도 같은 거라고 믿고 싶다. 살아가야 하는 이유, 살아갈 힘이 되는 그 어떤 것이라고 붙잡고 싶은 간절함을 호소하는 글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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