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처 : 벨몬트 아카데미의 연쇄 살인
서맨사 다우닝 지음, 신선해 옮김 / 황금시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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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들은 기억이 난다. 학점 제대로 못 받았다고 부모가 교수에게 항의 전화를 했다는 뉴스. 군대 간 아들 일로 행보관이나 그 이상의 책임자에게 전화하는 부모가 많다는 내용도 지인에게 직접 들었다. 어느 인터넷 게시글의 댓글에는, 회사에서 신입사원 부모에게 전화를 받아본 상사도 있다는 내용도 본 적이 있다. 성인인 자녀의 일에 부모가 나서는 게 이렇게 흔한 일이었던가. 얼핏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과거에는 안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 이런 내용의 뉴스를 듣는다면 새삼스럽지 않다. 유치원에서부터 성인이 된 이후까지도, 부모의 과도한 간섭은 교육 현장은 물론 사회생활까지 문제를 만든다. 그 문제 상황의 가장 큰 피해자는 자녀일 테고 말이다. 이런 극성 부모와 넘치는 사명감에 불타는 교사가 만난다면 어떨까.


미국 동부의 명문 사립 고등학교 벨몬트 아카데미. 겉보기에 우아하고 평화롭다. 돈 많은 부모의 기부금과 높은 교육열은, 학생이 최고의 점수로 졸업하면서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맹렬하게 달리게 한다. 이 달리기에 학생보다 학부모가 더 열심히 참여하지만, 그 영향은 자녀인 재학생에게 영향을 미친다. 부모의 이런 태도 때문인지 학생의 건방진 태도는 흔했고, 자녀의 점수에 부모는 당연하다는 듯이 간섭하기에 이른다. 학부모들의 돈이 이 학교를 운영하게 만드는 바탕이어서, 벨몬트 아카데미의 선생 대부분은 학부모의 간섭을 차단하지 못한다. 단 한 사람만 빼고. 올해의 교사상을 받은 테디는 이 학교 학생이나 학부모의 건방진 태도를 잘 참지 못했다. 10년 동안 학생을 위해 헌신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벨몬트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올해의 교사상을 제대로 축하받지도 못했다. 그래도 기뻤다. 이 상패 하나로 그의 위신이 달라졌고,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어느 날, 재학생 잭의 부모가 테디를 찾아온다. 잭의 에세이 점수가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점수 수정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정중하게 거절한 테디는, 다른 방식으로 잭 부모의 요구를 들어주면서도 절대로 그들이 만족할 만한 점수를 주지 않는다. 여기까지 읽으면 어느 나라에서나 극성 부모가 존재하는구나 싶었을 텐데, 뭔가 묘한 분위기가 테디를 감싸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선생이지만 유치한 감정으로 학생을 대하는 듯한, 그가 가진 기준에서 벗어나면 그 누구라도 그의 적이 되어버리고 마는 이상한 방식의 교류. 그랬다. 테디는 자신이 학생을 위한 방식의 가르침을 행한다고 믿지만, 그 믿음에 부합하지 못하는 대상에게는 그만의 방식으로 철저하게 응징한다. 학생뿐만이 아니다. 그가 벨몬트 아카데미에서 가르침을 수행하는데 방해가 되는 인물들은 모두 그의 조용한 처벌의 대상이 된다.


무슨 선생이 이럴까 싶으면서도, 각 인물의 태도에 화가 나기도 여러 번이다. 모두 각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기의 최선(?)을 다한다. 자녀의 점수를 위해서 계획된 협박도 못 할 게 없었다. 부탁을 가장한 은근한 종용도 했다. 처음에는 테디의 어긋난 교육 신념이 이상해 보였는데, 학생도 학부모도, 학교 관계자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상태로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하는 게 과해 보였다. 욕심이 과하면 탈이 난다고 했던가. 탈이 나고 크게 났다. 죽음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더는 욕심 부릴 수 있는 목숨조차 없게 되었다. 그 사이에 여러 명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었다. 열심히 했지만 미운 털이 박혀 점수를 얻지 못하는 학생, 학생 편을 들면서 선을 넘어 간섭하느라 목숨을 지키지 못한 선생, 자녀의 인생 대신 재단해 주려다가 예정에 없던 죽음을 맞이한 학부모, 제 역할 다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있다가 목숨을 잃은 학교 관계자 등, 모두가 자기 목숨을 지키지 못하는 결말을 맞이했다.


경찰은 뭐 하고 있기에 이렇게 연쇄적으로, 그것도 학교 안에서 죽음이 판을 치게 놔두고 있었나. 나름 수사도 하고 용의자를 추리고 했건만,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했다. 계속되는 수사에 계속되는 죽음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 덕분에 독자가 이 책을 읽는 재미는 배가 되었다. 작가는 소설의 초반부터 범인을 드러내 주었고, 범행 내용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왜 살인이 시작되었는지 이유도 분명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범인도 이렇게 계속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는 거다. 거슬리는 한 사람을 처단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상하게 일이 꼬이고 죽음의 방향이 자꾸만 다른 곳으로 향하다 보니 살인은 이어지고, 범인이 가진 교육 사명감은 한참 멀어진 후였다.


주인공 테디를 중심으로 다섯 명의 시점이 번갈아 가며 서술되는데, 때로는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생각을 하는, 때로는 같은 것을 보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는 이들을 보면서 흥미롭기도 했다. 무엇보다, 사건이 해결되나 싶을 때마다 새로운 사건을 만들면서 반전이 거듭되는 게 이 소설의 재미를 더한다. 범인은 이미 알고 있지만, 여기서 사건이 끝나는 건가 보다 하고 안심하려고 할 때마다 엉뚱하게 꼬여버린 사건들, 예상에 없던 인물의 등장은 이 살인을 절대 끝나지 않을 사건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범인 혼자 나쁜 인간인 건가? 그랬다면 일방적으로 범인만 미워할 수 있었을 텐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주변 인물들이 하나씩 범인과 다를 바 없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비밀,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살인도 불사하는 선택을 하기에 이르는 과정이 참 재밌다. 인간이란 자기가 지키고 싶은 것을 위해서라면, 이렇게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는 존재인가 싶어서 말이다.


오늘날의 교육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고, 교사의 역할이 무엇인지 서로가 고민해 볼 문제를 제시한 소설이기도 하다. 학생과 학부모, 교육 관계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그 몫을 다하고 선을 지키는 게, 의미 있는 교육의 장을 만드는 게 아닐지 하는 생각도 든다.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고 싶은 부모의 욕심, 많은 과제로 학생의 노력을 평가하려는 교사, 그 사이에서 양쪽의 요구를 다 수용해야 하는 학생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 궁금한 게 그것인데, 아무도 들려주지 않았다. 교육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학생이 아닌가 싶은데 말이다. 명문고등학교에서 명문대학으로 진학을 바라고, 그 자신들을 금수저로 인식하며 흙수저출신 교사를 무시하는 학생과 학부모, 그런데도 학교를 유지하게 하는 돈줄인 학부모의 요구를 응할 수밖에 없는 이 구조를 어떻게 깨트릴 수 있을까. 소설의 첫 부분에서, 잭의 부모가 자녀의 점수를 두고 교사와 협상을 하러 왔다는 게 아직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소설 속 이야기로 머무는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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