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1일. 저녁 7시경, 중고 거래 티켓 구매 사기를 당했다. 웬만해서는 지류로 직거래만 했는데, 이때는 뭔가 씐 것처럼 거래가 이루어졌다. 이 판매자가 기존 다른 거래를 한 흔적과 구매자 후기까지 있어서 안심했다. 혹시나 싶어 더치트에 계좌 확인까지 하고 입금했는데, 입금하고 나니 갑자기 싸한 느낌. 왜 이런 느낌은 꼭 돈을 보내고 난 후에 드는 건지...
당근 채팅으로 구매 물품을 보내달라고, 몇 시까지 보내줄 거냐고 물었지만 판매자는 채팅 확인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렇겠지. 먹튀를 확신하고, 마지막 채팅을 보냈다. 저녁 8시 반까지 물품을 보내던지, 답변을 하라고. 그 이후로는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고. 그러고 나서, 판매자의 답변을 기다리면서 경찰에 신고할 내용을 작성했다. 8시 반까지 아무런 답변도 없고 물품을 보내주거나 환불에 관한 얘기가 없다면 바로 신고하려고. 역시나 판매자는 채팅 확인도 안 하고, 답변도 당연히 없었다. 바로 ECRM(사이버범죄 신고시스템)에 신고를 했고, 중고 거래 앱에 신고하고, 더치트에도 해당 계좌와 판매자 이름(그 이름이 진짜인지도 모르겠지만)도 등록했다. 그 후 바로 판매자에게 마지막 채팅을 보냈다. ECRM에 신고한 내용을 캡쳐하여 첨부하고, 내일 아침 바로 경찰서로 가겠다는 한 마디를 남겼다.
그리고 이쪽 관련 일을 하는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방금 당근 사기를 당했다고, ECRM 신고를 했고, 당근에도 신고를 했고, 내일 아침에 바로 경찰서로 가서 정식 접수할 건데, 그 이후로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다. 동생 말로는, 담당 형사가 배정되면 수사가 진행되고, 당근 사기꾼은 거의 다 잡힌다고, 금방 잡힌다고 했다. 알겠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고, 이 사건을 잊고 있었는데...
그날 밤 10시 쯤, 옆지기가 내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느낌에 그 놈일 것 같았는데, 잠깐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옆지기 모르게 이 사건을 해결하고 싶었으나, 다 틀렸다) 판매자는 자기가 퇴근할 때 사고가 있었고, 그래서 채팅을 이제야 봤으며, 지금 병원에서 처리가 늦어져서,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 (사기꾼이 병원에 있다는 말은 100% 거짓말이다. 예전에 엄마 집 공사하다가 튄 사기꾼도 병원 핑계 대면서 잠수 탔다) 그러면서 자기가 내일 아침 9시 전까지 환불 해주겠다면서, 계좌번호를 남겨달란다. 내가 구매한 물품을 주면 되는데, 왜 내일 아침까지 시간을 정하느냐, 그리고 환불해줄 거면 지금 입금하라고 했더니, 또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 그럼 내일 당신이 입금할 상황이 되면 연락해라, 그때 계좌를 주겠다고 말했더니, 알았다면서 끊더라. 판매자가 돈을 입금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내가 구매한 물품이 아니라 다짜고짜 환불 얘기를 하니, 그냥 이 놈은 사기꾼이다.
8월 22일. 다음 날 아침, 나는 9시가 되기 전에 경찰서 민원실 앞에 있었다. (경찰서 민원실은 진짜 9시 땡! 해야 문을 열더라) 그때까지도 판매자에게 연락은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또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시간을 늦추며 기다려 달라고 하겠지. 아니나 다를까, 8시 50분쯤 판매자에게 문자가 왔다. 병원에서 어쩌고 저쩌고, 늦어도 오후 6시까지 입금하겠다면서 계좌를 알려 달라고 하더라. 읽고 씹었다. 그렇게 9시가 되었고, 민원실을 거쳐 수사팀으로 갔다.
담당 부서 형사들이 회의 중이라 조금 기다려 달라고 하기에 기다리면서, 나를 응대했던 다른 형사님에게 이 사건을 얘기하고 몇 가지 물었다. 어쨌든 담당자가 와야 내가 어제 온라인으로 신고 접수한 게 정식으로 사건 접수가 되어 진행되겠기에, 그 전에 다른 것을 좀 물어봤는데, 그분이 판매자에게 연락을 해 보니 전화를 안 받더라. 그러다가 그분이 문자로 현재 상황을 알리는 내용을 보냈더니, 판매자가 문자를 확인하고 그분께 전화를 했어. ㅎㅎ 나에게 댔던 핑계를 그분께 똑같이 하는데, 그 분 통화하는 내용이, 어쨌든 피해자가 지금 경찰서 수사팀 자기 앞에 있으며, 지금 전액 환불이 아니면 대화하지 않겠다고 한다고, 이대로 사건 접수할 테니 당신은 해당 경찰서에 연락이 가면 나가서 조사를 받으라는 내용을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주 단칼에...)
잠시 후, 해당 사건 담당해주는 부서의 형사들이 왔고, 나는 ECRM 접수한 내용을 정식으로 접수했으며, (지장을 겁나게 찍었다. 내가 등록한 자료들이 많더라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분께 물었다, 담당 형사 배정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느냐고. 그분 말씀으로는 빨라야 1~2주라고 하더라. 온라인에서 찾아봤을 때 어떤 피해자는 담당 형사 배정까지 4달이 걸리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그런가 보다 하다가, (동생 말로는 더 자세한 얘기도 들었지만, 이건 나만 듣고 있어야 할 듯하다) 그분께 말했다. 동생이 이쪽 관련 일을 하는데, 당근 사기꾼은 거의 다 잡는다고, 금방 잡는다고 하더라, 그런데 사건 담당자 배정까지 1~2주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걸리는 듯하다고. 그랬더니 그분, 잠깐 나를 쳐다보더니 경찰서마다 조금씩 다르다고 하더라. 그 말 듣고 그냥 웃으면서 나왔다.
그날 오후 4시쯤, 판매자가 입금을 했다. 왜? 전화도 오고 문자도 왔지만 답변하지 않았다.
8월 23일. 오전에 경찰서 담당 형사에게 전화가 왔다. (오잉? 담당자 배정까지 빨라야 1~2주라고 했는데, 사건 접수하고 바로 다음 날 담당자가 전화를 한다고?) 그래서 어제 판매자가 돈을 입금했다고 했더니, 나에게 진정 취하서를 문자로 전송하라고 하더라.
사실 그 돈을 잃은 게 속이 쓰렸지만, 차라리 그놈이 돈을 안 주기를 바랐다. 비싼 수업료 냈다고 생각하고, 그 놈을 벌 주고 싶었다. 사건이 종결되고 그 놈을 민사로 접수하여 괴롭혀주고 싶었다. 혹시라도 사건이 조사 진행되는 중에 돈을 돌려준다면 받아야 하겠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돈을 주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사건이 제대로 조사를 시작하기 전에 그 놈이 환불해 주었기에, 이제 이 사건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이게 끝. 무슨 법이 이런가 싶은 마음만 남았다.
그 후, 중고 거래 앱은 그대로 그 놈이 이용 정지 상태로 있고, 더치트에는 내가 등록한 그 놈의 정보를 비공개 해놨다. (더치트는 피해 금액을 돌려받으면, 사기꾼 등록해 놓은 내용을 비공개로 하거나 삭제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지 않으면 후에 사기꾼이 민사 사건으로 진행할 수도 있다고.)
사기를 당하고, 신고 접수하고, 환불 받고, 사건이 제대로 조사도 시작되기 전에 끝나버리고. 이 모든 게 불과 하루 반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이번 일로 몇 가지 검색을 해보니, 많은 사람이 번거롭다고, 금액이 적다고, 또 다른 많은 이유로 신고를 안 하고 속만 끓이고 있더라. 어차피 속 끓일 거, 신고는 하고 속 끓이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나쁜 사람들이 또 어디서 얼마나 나쁜 일을 저지르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 마음을 비참하게 하고 있을지 모르잖아. 나는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돈도 잃고 멘붕이 오고 많이 힘들었는데, 그중 가장 힘들었던 건 이렇게 사기를 당한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자괴감이었다. 내가 이렇게 왜 그랬을까 싶은 우울감에 정신줄을 놓았다가, 마음을 다잡고 경찰에 신고할 내용을 정리했다.
지난번에 옆자리 동료가 보이스피싱 당할 뻔한 걸 겨우 말리면서 큰 돈 잃을 뻔한 걸 피해갔는데, 내가 사기 당하고 보니 이거 순식간이다. 요즘 라디오 듣다 보니 광고 나오던데. 보이스피싱 범죄, 아직 내 순서가 오지 않았을 뿐이라고. 나쁜 놈들은, 피해자의 마음이 약하고 급할 때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이 기회를 놓지 않고 파고드는 것 같다. 조심, 또 조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