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죽은 밤에
아마네 료 지음, 고은하 옮김 / 모로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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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라고, 노력하면 다 된다고. 삶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이뤄내려고 애쓰다 보면 간절히 바라던 어느 지점에 다다라 있을 거라고, 거기가 바로 우리 행복의 완성 지점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다. 그런 줄 알았다. 한때는 긍정의 힘을 주는 많은 말을 믿고 따랐다.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건, 세상의 당연한 이치니까 말이다. 특히 가진 게 없고 가난이 발목 잡는 사람에게는 딱히 노력 말고는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 그러니 열심히 달리는 수밖에. 그런 믿음에도 어느 순간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말 그러면 될까? 그렇게 계속 노력하다 보면 다 이뤄질까?


열네 살 소녀 도노 네가는 친구인 가스가이 노조미를 죽인 혐의로 체포된다. 노조미가 목을 매고 있었는데, 친구를 살리려고 의자를 치우려고 했다고 한다.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네가는 거듭 자기가 노조미를 죽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조미를 죽인 이유만큼은 침묵했다. 누군가를 죽였다면 살인의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데, 그 부분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네가의 말이 진실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형사 마카베와 나카타는 이 사건 해결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로, 네가가 왜 친구를 죽였는지 이유를 찾으러 다닌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죽은 소녀와 범인으로 몰린 소녀의 또 다른 관계를 알게 되면서 혼란에 빠진다. 거기에 이 소녀들을 둘러싼 환경, 사회적인 책임까지 물어야 할 지경에 다다른다. 정말 네가는 노조미를 죽였을까? 형사들은 네가의 살인 동기를 찾았을까?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궁금증만 늘어갔다. 그러다가, 소설은 우리가 관심 두지 못한 사회적 보호의 사각지대와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일지 묻고 있었다.


이 소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시간이 떠올랐다. 자라면서 부유했던 적은 없다. 오히려 가난했다고 하는 게 더 어울리는 환경이었다. 다행히 부모의 책임을 다하려는 엄마의 보호 아래 별 탈 없이 성장해 왔다. 당연한 듯 학교에 다니고 밥벌이도 하면서, 남들(?)처럼 그냥 비슷하게 살아왔다. 지금도 여유롭지는 않다. 갚아야 할 대출금도 있다. 생각해 보니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닌데, 뭐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는 모양이 크게 변한 것도 없는 듯하다. 주변의 많은 사람도 다 비슷하게 살아간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생각하던 평범한 인생이나 남들처럼 살아간다고 하는 게, 때로는 잘못된 표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요즘에 더 자주 느끼고 있다.


왜 나는 저 아이들과 함께 있을 수 없는 거지?

아르바이트가 끝난 뒤 불이 꺼진 이온과 엘미로드, 이토요카도 같은 쇼핑몰들을 올려다보며 늘 생각했다. 아빠가 양육비를 줬다면. 엄마가 남자를 무서워하지 않았다면.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우리를 돌봐줬다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만약을 생각해 봤지만, 그렇다고 현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139페이지)


살인의 이유를 찾으려던 접근은, 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지 드러나면서 독자의 마음을 후벼 판다. 꿈을 꾸고, 오늘과 다른 내일을 만들려고 그렇게나 애쓰던 소녀는 잔인한 현실 앞에서 무너져 내린다. 그 밤, 희망은 죽었고, 소녀도 죽었다.


정말 아주 굳게 결심하고 또 믿었는데.

오늘 하루 만에 모든 게 다 끝나버렸어.

희망은 어디에도 없었어.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 게 다 환상이었던 거야. (320페이지)


누군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 소녀들의 현실이 소설 속에서 과장하여 그려낸 배경이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이런 가난을 본 적이 없거나, 국가의 생활보호를 받으면서 사는 걸 보고 무책임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혹시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있다면, 조심스럽지만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해도 해도 안 되는 게 있더라고, 사회적 낙인으로 더 심한 자존감 하락을 맛보기도 한다고, 혼자서 애쓴다고 다 해결되는 건 아니더라고 말이다. 정말 괜찮은 인생을 살겠다고 다짐하게 했던 린코 언니가 변한 것도, 빈곤을 경험한 하세베가 부모의 마음만 앞세우게 된 것도, 같이 미래를 꿈꾸던 노조미가 그런 선택을 한 것도, 자녀를 잘 키워야 하는 책임을 외면한 부모가 무기력만 앞세우는 것도.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가지 탓만 할 수는 없던 게, 현실이었다.


상대방을 알고 싶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역지사지라고 생각한다. 친구를 죽였다고 하면서도 이유를 말하지 않는 소녀의 마음에 접근하기 위한 나카타의 상상 역시, 사람 마음에 닿아보려고 노력하는 역지사지의 이해 방법이었다. 형사 마카베의 가난한 성장 배경은 소녀들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한층 더 가까이 가게 했고, 형사 나카타가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반복하는 상상의 기법은 이 소녀들의 문제에 사회와 주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었다. 나 역시 비슷한 시간을 지나왔고, 국가의 생활보호를 받는 가족도 있다. 그 안에 네가노조미와 같은 시간을 겪는 조카도 있다. 몇 달 전에 사회복지 관련 실습했던, 지역아동센터의 몇몇 아이들이 저절로 떠오르면서 더 현실에 와닿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건 소설 속 배경에서 머무는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우리가 같이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인 거다.


사건이 일어나고, 사건 해결을 위한 형사들의 고군분투, 탐문 수사에서 드러나는 진실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추리 소설을 읽는 재미도 놓지 않는다. 단서가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사건의 숨겨졌던 장면을 추리하고 범인을 색출하기 위한 독자의 시선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흥미롭다. 그러면서 우리가 함께 봐야 할 문제, 독자에게 함께 고민해 보자고 던지는 메시지 또한 놓지 않는다. ‘나카타 시리즈의 첫 작품이라고 하는데, 곧 만나고 싶은 이 시리즈의 다른 작품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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