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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조
정해연 지음 / 엘릭시르 / 2024년 7월
평점 :
여름이 가기 전에 읽어보고 싶어서, 손에 땀이 차는 것도 이겨내며 페이지를 넘겼다. 정해연이라는 이름으로 일단은 읽어 봐도 좋을 목록에 있었고, 블랙 코미디가 가미되었다고 하니 마냥 진지하게만 읽지 않아도 될 듯하여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늘 그랬듯이 페이지는 술술 넘어가고, 두 주인공의 허무맹랑한 한탕 계획에 처음부터 어이가 없는 것도 재미있다. 또 언제나 그렇듯이, 인간 함부로 믿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도 잘 전달된다. 거기에 사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고쳐서 쓴다는 말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살아가야겠다는 교훈까지 얻었다.
사기꾼 김형래와 도둑 나형조는 교도소 같은 방에서 만난다. 처음 만났을 때의 힘겨루기는 의미 없었고, 이 둘은 출소 후에 밖에서 만나 한탕을 하자고 계획한다. 서로의 다른 생각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김형래는 대도(?) 나형조를 믿고 따라야겠다고, 나형조는 큰 사기를 치고 들어왔다는 김형래를 의지하기로 했다. 출소하는 날, 나형조는 대포차를 앞세워 김형래를 마중 나왔고, 둘은 그 순간 대업을 이루는 행동을 시작한다.
재개발로 벼락부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로 간 두 사람. 동네를 염탐하던 중 한 노인과 접촉 사고가 나고, 노인을 사고 처리를 요구하는 대신에 다른 것을 원한다. 7년 전에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 아들과 손녀를 만나게 해달라고. 무엇 때문인지 아들이 갑자기 집을 나갔고, 그 후로 아버지를 다시 보지 않겠다면서 소식을 끊었다고 한다. 김형래와 나형조는 노인에게 착수금을 받고, 노인의 아들과 손녀를 데리고 왔을 때 잔금까지 받기로 하면서 이 일을 시작한다.
이 두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갔었다는 이력에서, 둘 다 접근 불가한 범죄자인 줄 알았다. 얼마나 크게 사기를 쳤기에, 어떤 도둑질을 했기에 수감되기에 이르렀던 건지 궁금해질 즈음, 두 사람이 노인의 아들을 찾는 과정에서 보이는 잔머리는 뭔가 계획이 있어 보였다. 동시에 뭔가 어리바리하면서 서로의 경력(?)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을 때는 여기 덤앤더머가 또 있구나 싶었다. 어쨌든, 이 일을 마무리해야 노인에게 나머지 돈을 받을 수 있으니, 최선을 다해 노인의 아들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정말, 노인의 아들을 찾는다.
아버지가 폭력을 행사하여 견디다 못한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그런 어머니와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성장한 것도 모자라서, 이혼 후 아버지에게 도움을 받으러 갔던 아들은 또 한 번 아버지에게 절망한 나머지 그 길로 어린 딸을 데리고 나와 버린 게 이 부자 사이의 역사다. 그런 아버지가 찾는다고 하니 선뜻 아버지를 만나겠다고 하는 아들이 어디 있겠는가. 노인은 이들과 수시로 연락하면서 아들을 찾았는지 물었고, 하루라도 빨리 자기 집으로 데리고 오라면서 소리치곤 했다. ‘아, 이 아버지가 정신을 차렸구나. 과거의 자기 잘못을 반성하고 애타게 아들을 찾는 마음이 급해졌구나. 얼마나 그리웠을까. 이제라도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 갚으면서 살면 되겠구나.’ 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책을 읽는 독자 대부분 나처럼 생각하지 않았을까?
물론 이 소설은 평범한 드라마가 아니었으니, 추리소설다운 반전이 있다. 아들 찾아달라고 의뢰했던 노인 박청만은 그 성정을 버리지 못하고 그 나이까지 늙어버린 인간이었고,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았던 아들 박수철은 그가 바라던 게 따로 있었다. 안다. 읽으면서 저절로 알 수 있다. 우리는 각자 원하는 것을 이루며 살아가고 싶어 하는 인간이니까. 각자의 사정에 절실히 필요한 것들이 있다. 그걸 찾아내고 얻으려고 발버둥 치면서 살아가다 보니, 이 소설의 결말 같은 장면도 마주하게 된다. 누굴 탓하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업보 같은 결말이었으니. 그 과정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김형래나 나형조가 착한 사람으로 보일 정도였다. 이들은 그저 소박(?)하게 한탕하고 집으로 돌아가 새 인생 꾸리려는 마음이라도 있지 않았나. 근데 역시, 어떻게 해도 안 되는 인간이 있긴 있나 보다.
보고 또 봐도, 박청만 캐릭터가 진짜 압권이다. 평생 그렇게 살아왔을 거라는 의심이 저절로 들었고, 사람 쉽게 안 변한다는 말을 증명하는 인물이었으며, 사기꾼 김형래가 스승 삼아야 하는 거 아니었나 싶을 정도였다. 이들이 잔금을 받아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다가, 뭔가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결국은...
완벽하게 한탕 해주기를 바랐던 두 사람은 독자의 기대에 한 번씩 바람 빠지게 했고, 그게 오히려 이 소설을 더 편하고 재밌게 읽게 하는 요소인 듯하다. 추리소설이라고 해서 목이 뻣뻣해지게 긴장만 하고 읽을 필요는 없지 않나. 이들의 행보를 따라가며 저절로 빠져 읽게 되는 가독성도 좋고, 뒤늦게 화해하고 잘 살아가길 바라는 한 가족의 미래를 그리기도 하면서, 인간의 밑바닥을 보는 기분에 씁쓸해지는, 여러 감정을 한꺼번에 느끼게 된다. 그래도 교훈은 역시, 인간 쉽게 안 변한다는 진리, 사람 고쳐서 쓰기 어렵다는 가르침, 누구나 자기 욕망을 어느 정도 숨기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근데 정말 궁금하긴 하다. 인간은 원래 이런 건가.
영화로 만들어져도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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