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를 견디는 법 현대시 시인선 119
오명선 지음 / 한국문연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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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누군가가 나랑 어울릴 것 같다면서 작은 소설을 한 권 보내줬다. 오명선의 시집과 같은 제목의 소설이었다. 바닥까지 내려간 인생을 겪는 남자와 여자가, 우연히 같이 머물게 된 공간에서 만들어가는 이야기였다. 결말은 두 사람 모두 바닥치고 일어서기로 해피엔딩. 꼭 두 사람이 연결되지 않아도 좋은 마무리였을 거다. 서로 잡은 손이 끊어지고 각자의 길을 가더라도, 아닌 걸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자꾸 다른 쪽을 보게 되는 시선이 좋았다. 그동안 자기가 봐왔던 게 버려야 할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필요했던 것. 두 사람 모두에게.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던 그때. 그 소설의 3분의 1쯤 읽었을 때 궁금해지던 게, 각 챕터의 소제목으로 쓰인 글귀였다. 어떤 마음을 드러내는 한 줄인 것 같기도 했고, 하고 싶은 많은 말을 단 한 문장으로 축약한 것 같기도 했다. 소설을 읽다 말고 뒷부분 작가의 말을 펼치고 나서 알았다. 오명선의 시를 소설 각 장의 제목으로 인용한 것. 그때부터, 그 소설보다 이 시집이 더 궁금해진 거다. 쓸데없는 호기심이 생긴 건지 어떤 건지. 시 한 편이 아니라 시인이 이 시집에 담아놓은 시들을 보고 싶어져 그 소설을 읽다 말고 이 시집을 주문했다.

 

막상 이 시집을 펼쳐 드니, 내가 예상했던 마음과 비슷하기도 했고, 의외의 마음을 들을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해졌다. 나는 시도 잘 모르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는 재주도 없는데, 한 사람의 일기 같은 마음이 시로 들려오는 듯해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내 눈에 들어온 시 구절의 쓸쓸함이 그대로 나에게까지 묻어오는 듯했다. 시에서 드러나는 그 마음은 대개 아파지는 것들인데, 그 아픔을 어떻게 공감해야 할지 몰라서, 직접 그 상황이 아니고서야 다 알 수 없어서 뭐라 말하면 누가 될까 싶은 위로 같은 마음이었다. 한쪽 눈의 시력을 잃고 생긴 슬픔과 고통이 묻어나는 이 구절 같은...

 

오른쪽 눈의 실명

20년 무탈한 내 기록들의 항의에도 나의 내일은 부적합 판정

당신은 우리의 입맛에 맞지 않습니다

다섯 개 보험회사가 단번에 나를 뱉어버렸다

남은 왼쪽 눈마저 캄캄한 벼랑으로 굴렀다

(「당신은 약관에 맞지 않습니다」 중에서)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채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일 텐데, 그 때문에 실수하며 아이를 다치게 한 것도 슬픔이 되고, 보험회사에마저 거부당한 육체가 아무 쓸모 없는 것처럼 여겨졌던 건 아닐까. 아, 이 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나... 한순간 절망으로 추락한 것처럼 보여 순간 앞이 캄캄해졌다. 두 눈을 멀쩡히 뜨고도 못 보고 못 느끼고 살아가는 게 많을 텐데, 한쪽 눈으로라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그대로 꺾어버리는 세상의 태도에 암울해졌다. 전에 어디선가 들은 얘기로는 장기 기증한 사람은 보험 가입이 안 된다던데,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좋은 일을 하고도 안위를 위해 접근한 보험마저 거부당하는 게 현실이었는데, 시인의 말을 듣고 보니 실명으로도 거부당하는 게 똑같은 것 같아서, 어떤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지는 기분까지 끌고 온다. 내일을 준비하겠다는 것조차, 남아있는, 아직 살아있는 육체에 힘을 실어주려는 것도 안 된다고 하니, 무슨 기대로 오늘을 버틸 수 있을까...

 

어느 정도 살아왔고, 또 살아온 만큼 비슷하게 남은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까, 아직 세상을 다 안다고는 못 하지만 또 모른다고도 할 수 없는 어떤 시기. 사람의 평균 수명을 놓고 볼 때 그 절반쯤 살아왔다고 생각되는 때의 감정과 생각, 경험들을 풀어놓는다. 언젠가부터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식보다 누군가의 죽음 소식을 듣게 되는 일이 많아짐을 느끼곤 했는데, 시인은 그 장면을 이렇게 말한다.

 

금방 떠난 자리에

또 다른 촉촉한 이별들이 와서 앉았다가

서둘러 근조화환의 환한 배웅을 받으며

문을 밀고 나간다

 

잠깐 다녀가는 이별들은 손수건을 준비하지 않는다

(「짧은 조문」 중에서)

 

바쁜 일정 처리하듯 누군가를 애도하는 풍경이 그려진다. 그 안에 나도 있다. 그런 적이 있다. 가서 얼굴은 비쳐야겠는데 그 자리는 불편하고, 시간은 많지 않고, 그래도 안 갈 수는 없고... 그래서 인사하고 얼른 일어나는 자리로 만들어버린 기억. 그나마 사람들이 많으면 상주가 바쁠 것 같다는 핑계라도 생겨서 다행이라는 마음마저 있었는데, 이 시 구절을 보니 이별의 의식을 너무 가볍게만 생각한 듯해서 미안해진다. 손수건까지는 준비하지 않더라도, 떠난 사람에게 전하는 안녕과 남은 사람에게 전하는 진심이 느껴질 수 있는 마음(그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으로 그곳을 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우리도 언젠가 그 이별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누군가 나에게 진정으로 말하는 안녕의 인사를 받고 싶지 않을 텐가...

 

여러 시가 실려 있지만, 내가 이 시집을 펼치고자 했던 이유는 바로 이 시 때문이다.

 

오후를 견디는 법

 

몇 겹으로 접혀

낡은 소파에 누웠다

 

며칠 현관문이 ‘외출 중’을 붙잡고 서 있는 동안

나는 세상에서 방전되었다

 

익숙한 풍경이 커튼처럼 걸리고

빛이 차단된 몸에서 수많은 눈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간다

 

화창한 오후는 그림자를 둘둘 담요처럼 감는다

 

뱉지 못한 문장 뒤틀린 서술들

나는 오래전 어둠에 길들여진 어긋난 문법,

나를 필사하는 오후의 손가락이 한 뼘 길어졌다 흐린 지문으로 나를 한 술 떠먹는다

 

적막의 두께로

낡은 하루가 완성되었다

 

가끔 손을 넣어 가라앉은 나를 휘저어 본다

(「오후를 견디는 법」)

 

괜히 쓸쓸해지는 기분에 이 말을 하는 누군가의 표정도 그려보고 그랬다. 하루를 보내며 무심코 떠올리는 어떤 날의 오후가 아니라, 견디듯 버티는 오후를 어떤 마음으로 보내고 있을까 싶은 마음에.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에 부유하는 먼지가 보이는 장면을 그리는 나른함이 오후의 풍경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먼지가 아닌 마음이 부유하는 상태를 보는 때가 많아졌다. 마음도, 시간도, 생각도, 그저 떠돌기만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붙잡아서 어디에 고정하고 싶은데 안 될 때, 결국 그 끝에서 마주하는 쓸쓸함이 보기 싫어지는. 어느 구절을 펼쳐도 세상 살아가는 모양새가 씁쓸해지게 말하는 시인의 솔직함에, 고요히 내려앉을 밤을 기다리고 있다. 햇빛이 사라지고 어두워지면 부유하는 마음도 보이지 않겠지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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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6-06-19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저에게 좋아요 누르시지 않으셨나요? ㅋ 전 은근 좋아요 누르신 분들을 놓치지 않는 덕후력이 있습니다 ㅋ 처음 뵈요 ㅎ

2016-06-19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9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쉰P 2016-06-24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근차근 글을 읽어 보니, `오후를 견디는 법`이란 시가 무척 와 닿네요. 전 `고시원에서 견디는 법`을 연구 중이에요. ㅎ 사람들과 관계도 없고, 홀로 책상에 앉아 책을 보며 차단된 채 있으니 견디긴 견디는 데 이것만큼 최악이 없네요. ㅎ 대화라는 것이 참 중요하구나, 사람이 참 중요하구나 하고 이곳에 있으면서 생각을 많이 해요.

`견디듯 버티는 오후`란 표현 완전 제 심장을 찌르네요. 담담하면서, 촉촉한 문장이 너무 좋아요. 비도 오는 금욜이라서 그런 걸까요? ㅎ 더욱 감성적으로 다가 오네요. ㅎ
즐건 금욜 되세요. ㅎ

2016-06-25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 누나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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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남자, 여자. 이해와 공감 사이에서... 『내 누나』

 

 

누나 다섯을 가진 내 동생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 자매들을 ‘언니’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남자들의 세계(중학교)에 들어서면서 언니라는 호칭이 점점 사라지더니 언젠가부터 누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는 제법 잘 어울려 놀았는데, 지금은 서로에게 소원하다. 떨어져 살고 있기도 하고, 자주 통화하지 않는 탓인지 가끔 어색하기도 하다. 서로에게 볼일이 없으면 대화를 하지 않는, 남동생과 나는 딱 그런 사이다. 거기에다, 이 녀석과 얘기하다 보면, 동생이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운 남자 사람과 얘기하는 것만 같아서 답답할 때가 많다. 특히 요즘에 집안일로 계속 통화하면서 확실히 알게 됐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내가 이 녀석과 대화하는 시간은 더 줄어들 것이라고...

 

오빠 없는 여자가 ‘나도 오빠가 있었으면’ 하는 로망을 키우듯, 남자도 누나의 로망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키운 판타지로 존재하는 오빠와 누나가 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오빠와 누나는 피우지 못한 로망으로 접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래 알고 지내는 친구 녀석은 자기 누나를 보면서 ‘여자는 집에서 이런 모습으로 지낼 거야.’라는 환상이 사라졌다고 했다. 다른 녀석들이 그런 얘기를 하면 단번에 기대를 깨주려고 필사적이었단다. ‘누나'에게 키우는 로망 따위 버린 지 오래라고 했다. 막상 누나를 가진 이들은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도 오빠를 가진 친구를 엄청나게 부러워했으니까. 그럴 때마다 친구는 절대 아니라고, 다 환상이라고 했다. 지금은 나도 오빠에 대한 판타지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사실 그런 기대는 사춘기 시절의 달콤한 성장제였던 듯하다.

 

마스다 미리의 『내 누나』는 이런 나의 경험과 많이 닿아 있었다. 나와 남동생, 내 주변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해서 많이 공감하며 읽었다. 남동생과 누나 사이의 대화가 평범한데, 그 평범함이 또 이상(?)하게 흘러간다. 또 그런 이상함은 익숙하다. 이들의 몇 가지 에피소드로 누나에 대한 환상이 깨짐과 동시에, 여자 남자 사이의 좁혀지지 않은 시선을 확인하게 되기도 한다. 정말 가까이하기엔 먼 그대(여자, 남자)란 말인가. 누나와 남동생 사이를 차치하고, 성별의 차이로 보이는 내용이 웃음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만든다.

 

“그러면 뭣 때문에 그렇게 피곤한 건데? 그 여자애랑도 잘 지냈을 것 아냐.”

“표면상으로는 그렇지. 생각해보면 뻔하잖아? 그 자리에서뿐이지. 그런데 그이는 ‘우리 빼고 여자들끼리 둘이 만나도 되겠네.’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하더라니까. 그 여자애도 지금쯤 엄청 열 받아 있을 걸? 앗, 이 순간은 그 여자애랑 공감할 수 있을 듯.”

“다행이네...” (23페이지)

누나가 남자친구의 친구 커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들어왔다. 그 얘기를 듣고 있는 남동생은 누나가 왜 그 시간을 피곤해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누나니까, 누나는 원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니까, 하는 생각으로 듣고 있는 듯하다. 남자친구 커플과의 모임에 참석할 수는 있다. 그 시간을 화기애애하게 잘 지낼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 유감스럽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이 가득하다. 여자끼리 따로 만날 수도 있다고?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그 자리가 시댁의 불편한 동서 사이가 만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의 여인들이 그러했다. 그런 마음인데 여자끼리 따로 만나도 되겠다고 선뜻 말하는 남동생의 말을 이해하기는 어렵잖아.

 

“다녀왔어~ 으~~~ 피곤해. 회사 그만두고 싶다.”

“지금 그만두면 앞으로 어쩌려고.”

“그래서 네가 인기가 없는 거야.”

“뭐가.”

“인기 비결은 결국 하나야.”

“뭔데?”

“공감력. 보라고, 너 같은 스테레오 타입의 남자가 해주는 조언이나 의견은 지겨울 정도로 듣잖아? 나 역시.”

“미안하게 됐네!”

“그런 것보다 그 순간의 공감력. 여자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사랑해’가 아니라 ‘알아, 이해해’일지도.”

“진짜야?” (82~83페이지)

누나와 남동생의 대화는 대부분 이런 거였다. 같은 언어로 얘기하는데 전혀 다른 의미로 대화하는 듯하다. 일이 피곤하다, 그만두고 싶다, 하는 말의 숨은 의미를 봐야 한다. 하기 싫다고 바로 때려치울 수 없는 현실을 말하는 사람도 이미 알고 있다. 다만, 입으로 그 피곤함을 표현하는 순간 따라오는 잠깐의 해갈을 찾는 거다. 그거면 충분하다. 그런데 남동생의 대꾸에 인기 없는 이유까지 들먹이게 된다. 남동생은 그 '공감력'이란 결론에 무슨 별나라 구경하듯 신기해한다. 진짜야? 더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이상의 해석은 나에게도 무리다.

 

마스다 미리가 얘기하는 엄마나 다른 여자에 관한 것은 들어봤는데, 누나라 부르는 남자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세상의 모든 누나에게 존재하는 남동생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좀 더 넓게 남자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들린다. 아무리 읽어봐도, 그동안 무수히 들어오고 겪어왔던 여자와 남자의 생각과 태도의 차이를 거듭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게 언짢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남동생은, 동생이면서 남자다. 형제자매 사이의 다툼이나 생각, 살아가는 모양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 『내 누나』의 에피소드에서 그 차이와 함께 여자 남자의 차이도 같이 볼 수 있다는 거다. 그 안에서 내 남동생을 봤다. 이해 안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짜증내는 내 모습을 봤다. 그래서다. 내가 이들의 이야기에 한참 끄덕였던 이유. 나는 이들의 이야기처럼 남동생과 둘이 살아본 적도 없고 친근하다고 느낄 정도로 가깝게 지내지도 않지만 공감했다. 서로 다른 별에서 사는 것처럼 대화하고,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어도, ‘내 누나’의 말과 행동을 차분한 눈으로 다시 보는 그녀의 남동생 모습이 애틋했다. 그래서 남매인가 싶으면서, 내 남동생과 나 사이에서도 그런 애틋함을 찾을 수 있으려나 싶은 궁금증과 기대가 남는다.

 

마스다 미리 작품의 매력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일상의 에피소드라는 점이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남동생의 등장은 색다른 맛을 더해준다. 얼마 전 다녀간 남동생과의 대화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한다. 이 녀석과 아주 후련한 대화 한 번 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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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책의 날 10개의 질문에 답하기 이벤트에 열심히 고민하고 신중하게 작성해서 응모했다.

적립금 5만원이 탐나서. 혹시라도 그거 받게 되면 <세계서점기행>을 구매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내 몫이 아니었나 보다.

적립금은 탈락하고 알라딘 굿즈 7종 세트에 당첨되었다는 이메일을 받았는데,

그 알라딘 굿즈가 지난 주말에 도착했다.

 

이번에 도착한 굿즈는 내가 알라딘에서 한 번도 받지 못했던 상품.

갖고 싶은 굿즈는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계속 단권으로 구매하면서 굿즈 선택할 기회가 없었다.

 

 

도착한 알라딘 굿즈 7종 세트.

독서대. 북커버. 마우스패드. 셜록 북엔드. 틴커버 노트. 쿠키 트레이. 오거나이저.

(북엔드는 바로 조카가 가져가서 사진에 없다.)

 

독서대는 완전 튼튼하게 생겼고,

북커버는 큰 사이즈 필요했는데 아주 잘 사용할 것 같다.

마우스 패드도 두꺼워서 좋고,

엄마가 좋아하는 과자 접시로 사용하기 좋은 쿠키 트레이.

 

 

근데 뒤늦게 도라에몽 컵이 필요해졌는데

도라에몽 컵을 주는 구매 이벤트는 없네.

꼬맹이 조카가 요즘 도라에몽에 푹 빠져 있어서 그 기쁨을 더해주고 싶은데...

따로 구매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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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16-06-08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첨이라니 멋져요!!^^ 늘 탐나는 알라딘 굿즈~~^^

구단씨 2016-06-09 20:3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너무 기분이 좋아욤~ ^^
 
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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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진은 악인인가?

읽는 내내 그가 저지른 일에 대해 곱씹어보면서 생각했다. 살인은 범죄이자 악행이지만, 그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오랜 시간 자리하고 있던 감정들을 보면서, 어느 정도를 악인이라 불러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건 며칠 전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 때문이기도 하다. 엄마는 어떤 일을 앞에 두고 나에게 '냉정하다'고 말했다. 엄마의 입에서 나온 '냉정'이란 단어는 독하다는 말과 동의어다. 내가? 다른 사람들도 모른 척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엄마의 말에 '내가 정말 냉정한 사람이면 이 정도도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에 한마디 더 했다. 냉정해야 할 대상 앞에서는 한없이 냉정한 게 맞는 거라고. 그날, 날이 새도록 생각했다. 나는 정말 엄마에게서 냉정하다는 말을 들을 인간인가, 하고. 결론은, 그날 내가 엄마에게 했던 말만 반복할 수 있다는 거였다. 냉정해야 할 대상 앞에서 나는 한없이 냉정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그건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선하고 악한 것으로도 구분할 수도 없다. 내 안에서 자리한 분노와 미움의 시발점을 찾아가야만 어느 정도 설명이 되는, 그 설명에서조차도 한마디로 결론 내릴 수 없을 일. 한유진의 행동을 보며 그 시작점을 따라가다가, 내가 그가 악인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게 되었던 기분과 비슷했다. 그의 인생에서 가려져 있던 일, 감정이 타인에 의해 조종되고 판단되어 살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이상하게 그의 분노와 악행에 동조하고 있었다. 이 녀석, 절대 열어서는 안 될 것처럼 꾹꾹 눌러 담고 있던 것이 폭발하니, 이제야 숨 쉬는 기분이지 않았을까? 이렇게 악인은 만들어지는 것인가?

 

비로소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경험해보지 않았던 것, 스스로 부른 재앙, 발작전구증세였다. 운명은 제할 일을 잊는 법이 없다. 한쪽 눈을 감아줄 때도 있겠지만 그건 한 번 정도일 것이다. 올 것은 결국 오고, 벌어질 일은 끝내 벌어진다. 불시에 형을 집행하듯, 운명이 내게 자객을 보낸 것이었다. 그것도 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139페이지)

 

한밤중의 피 냄새. 유진이 마주한 장면은 거실에서 죽은 어머니와 자기 몸에 말라붙어있는 피의 흔적들이다. 2시간 반 동안의 기억이 없는 그는 어머니 죽음의 원인을 바로 알아채지 못한다. 어머니는 왜 죽었나, 누가 죽였나. 그의 기억 퍼즐이 하나씩 꿰어 맞춰지면서 시간을 역주행한다. 어머니의 죽음 시점에서 과거로 흘러간다. 그의 악의 시발점이 시작되었던 그때로.

 

유진에게 내재한 악이 무엇이기에 그런 인간이 되었나. 어머니 노트 속의 기록이 진짜일까. 오래전 기억들을 되짚는 그가 말하는 게 100% 진실일까. 유진은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가 가진 모든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것뿐이다. 특히 분노나 미움 같은 것을 더 드러내지 못했던 듯하다. 흘러가는 이야기로 추측해보자면, 유진은 터트려야 할 감정을 제때 표현하지 못한 채로 사채 이자 불어나듯이 폭발지점의 압력이 점점 커졌을 것이다. 그렇게 터져 나온 게, 두려움을 보며 희열을 느끼거나 그 짜릿함으로 자신을 통제할 약을 대신하는 거였다. 이상하게 발작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면 맡아지는 냄새. 물비린내나 피비린내 같은 것이 맡아지는 방향으로 킁킁거리며 발을 뗀다. 누가 부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이동이다. 한밤중의 달리기, 그 길 끝에서 두려움의 포식자가 되는 쾌감. 참지 않아도 되는 분노의 시간과 은근하게 내려다보는 듯한 지배자 같은 시선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 건 아니었을까. 자신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두려움을 준다면 그보다 더한 쾌감이 없었다. 타인이 느끼는 두려움이 그를 숨 쉬게 했다. 그의 안에서 꾸물거리던 무언가가 이런 황홀감으로 둔갑하여 모습을 드러낸다.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 것처럼 여겨지는 마음을 조금 알 것도 같다. 답답한 방안의 환기를 위해 창문을 활짝 열고 숨을 들이마시는 느낌. 방법이 잘못되었지만, 그가 찾아낸 방법에 누구 탓을 할 수도 없다. 오랜 시간 짓눌려온 그가 찾은, 그만의 생존방식이었다.

 

그날 밤, 오뎅과 발맞춰 걷기 시작했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 해독의 실마리를 찾았다. 더하여 내가 무엇에 끌리는가를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겁먹은 것에게 끌렸다. (188페이지)

 

내 몸은 소리를 죽이기 시작했다. 숨 쉬듯 욱신대던 뒤통수가 평온을 되찾았다. 숨소리는 목 밑으로 잦아들고, 갈비뼈 안에선 심장이 느리게 뛰었다. 배 속에서 공처럼 구르던 긴장이 사라졌다. 오감이 날을 세웠다. 몇 미터 거리가 있는데도, 겁먹은 것의 축축하고 거친 숨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세상이 엎드리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들이 길을 열고 대기하는 느낌이었다. (283페이지)

 

유진에게는 이모가 처방한 약이 아니라, 이모의 진단에 한없이 동조하는 어머니의 의견이 아니라,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 날'의 일을 드러내고 얘기하는 것, 강요된 선택이 아니라 한 번만이라도 그의 선택을 허용하는 것들이 필요했던 거라고. 악을 이야기하고, 그런 악을 행하는 유진이 악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알게 된다. 살인을 저지르고, 자기의 안위(어쩌면 생존까지도)를 위해 해서는 안 될 일까지 하게 되는 게 악인이라면, 유진을 악인이라 불러야 한다면, 악인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의심과 오해로 탑을 쌓아 가두면 악인이 될 거라는 걸. 우리 본성 어딘가에 존재할 그 악의 모습이 이렇게 드러나는 게 끔찍하지만, 유진의 이야기로 나는 한 번 더 내 안에 있을 그 본성을 생각하게 됐다. 그게 단순한 의심이든 오해든 명확해진 분노의 원인이든, 누군가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하는 일이 분명 있었고, 살인이 범죄만 아니라면 저지르지는 않았을까 싶은 가정도 떠올려 본 적이 있다. 악은 유진처럼 특정한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아주 가까이에, 내가 다 발견하지 못한 내 안에 숨어있는 건지도 모른다. 단지 수면 위로,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았던 것뿐이다. 끔찍하게도 말이다.

 

나를 불편하게 하고 거슬리는 일(사람)을 눈앞에서 제거하는 일. 저자는, 살인을 그 문제 해결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의 말로 대신했다. 살인이 문제 해결의 방법이라면, 그럴 수 있다. 말이 되지 않을 것도 없다. 그 후에 따르는 도덕적인 문제, '말이 되는 그림을 그리는 게 도덕'이라고 할지라도, 누가 봐도 유죄인 그의 살인이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것도 분명한 일이다. 유진의 이야기를 통해 내 안의 악의 존재를 확인함과 동시에 악인을 결정짓는 그 지점을 보게 한다. 그가 자라온 환경과 진실은 그의 살인을 이해하는데 설명이 될 뿐이지 무죄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도 마찬가지. 마지막까지 나를 붙잡아줄 이성과 우리가 정해놓은 규칙 안에서 지켜야 할 도덕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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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보고서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굳이 '나' 대신 '당신'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조금은 색다르게 그의 성장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자기의 모습을 한발 떨어져서 회고하고 싶었을까.

 

소년이 자라 청년으로, 작가로 자리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좀 남다르게 들려온다. 일단은 2인칭 시점으로 서술하는 게 그렇고, 다음으로는 특별할 것 없어 보였던 이야기에서 뭔가가 자꾸 솟아오르려고 하는 기운이 그렇다. 폴 오스터가 걸어온 그 시간의 궤적을 말하는 『내면 보고서』는 그의 유소년, 청년 시절의 시간을 걸으며 그 시절을 복원한다. 이제 와 몇십 년 전의 시간을 복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어렴풋이 짐작한다. 그의 글과 그의 인생, 그의 사랑까지 이 복원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그의 아내가 된 연인과 주고받은 연애편지, 세상을 보는 그의 시선을 만든 체험들. 다소 두서없이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가 다시 불러오는 그 기억들은 우리가 몰랐던 그의 모습을 확인시켜주기도 하고, 그가 그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떠올릴 순간들의 흔적이기도 하다. 순수했던 모습, 작은 것에도 심장이 두근거렸던 생생함, 사물과 사물 사이의 연결고리를 그리기도 하고, 상상으로 만든 또 다른 세상을 살았던 것처럼 생명을 불어넣었던 시간.

 

전작 『겨울 일기』와 닮았다고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아직 『겨울 일기』를 읽지 못했다. 그저 오랜 시간 그의 작품에 대해 들어왔을 뿐이다. 여전히 읽으려고 시도하고 있고 읽다가 만 책들이 많아서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뭐라고 말할 자격이 없지만, 이 책 『내면 보고서』를 통해 뭔가 조금은 가까이 다가간 기분이다. 그가 전개하는 회상으로 어린 시절부터 계속되어 온 그의 내면의 흐름을 조금 맛본 듯하다. 어린 시절의 그와 지금 어른인 그가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그 같음과는 별개로 변화하는 것까지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는 것 같다. 시간의 축적이, 다양한 경험이 그의 글과 그의 내면을 숨 쉬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작은 사람, 당신은 누구였나? 어떻게 당신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나? 당신이 생각할 수 있었다면 당신의 생각은 당신을 어디로 데리고 갔나? 오래된 이야기들을 파고들어 가서 찾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다 헤집어 보고 파편들을 들어 올려 빛에 비춰 보기로 하자. 그렇게 해보자. 한번 해보는 거다. (11페이지)

 

남들과 똑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특별하지도 않은 그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지는 독자라면 이 책을 펼쳐도 좋겠다. 그때부터 꾸준히 이어온 그의 역사에 좀 더 접근할 기회가 되어주니까. 너무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들이 대부분인데 오히려 그런 일들이 강한 여운을 남긴다. 우리의 기억을 더듬어 봐도 비슷한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과거의 시간을 역추적하면서 꺼내는 것들은 대개 그런 소소한 일상에서 일어난 것들이 많다. 개구쟁이 같은 모습, 순수해서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엿보이는 일, 이불에 지도를 그리는 실수마저도 모두 그를 이루는 것이 되어가는 것이니까.

 

순수해서 아름다운 소년 시절이나 불안하고 치열해서 애틋한 청년 시절까지의 이야기가 폴 오스터를 이해하는 걸 도와주고 설명하고 있다. 그가 본 영화로 철학적 사유에 이르기도 하고, 다양한 책을 접하며 많은 것을 이해하려 애쓰고, 많은 사람과의 교류는 그를 성장시킨다. 그의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까지 더해져 인간, 남자 폴 오스터를 볼 수 있다. 이 한 권의 책이 그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수는 없을지 몰라도, 적어도 그가 인간과 세상을 탐색하고 싶었던 갈증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듯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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