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의 남자
훈 지음 / 봄출판사(봄미디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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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 박람회에서 가우디의 작품을 본 구엘은 그의 재능을 확인하고 난 후, 그의 작품을 알리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둘의 우정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는 계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둘의 각별한 관계는 구엘이 죽기까지 40년 동안 계속되었다고 한다. 둘 사이의 그 어떤 관계보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각인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예술적 안목과 재능을 겸비한 재력가 구엘이 가우디를 통해 자신의 열정을 불태웠다고 한다.

 

건축과 관계없는 사람도, 건축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그 이름, 가우디. (오래전, 학교 앞 카페의 이름도 가우디였던 게 생각난다. ^^) 어쩌면 흔하게 들어왔을지도 모를 그 이름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었다. 그저 아름다운 건축물의 이름에 늘 따라오는 이름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가우디와 구엘이라니. 둘의 조합이 이 소설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도 궁금했다. 그거야 막상 읽다 보면 알겠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앞서더라. 건축을 하고 싶은 이라면, 정말 한번은 가우디의 건축물을 직접 보고 싶은 건 당연하지 않을까? 그래서 두 주인공이 만나는 배경이 된 스페인이 기대됐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그래도 직접 보고 싶은 그곳을 향한 원혜윤. 바르셀로나는 낯선 곳이지만 그녀가 꿈꾸던 도시였다. 초라한 행색이지만 그녀의 열정만큼은 누구와 비할 수가 없는 여행길이었다. 우연이라면 그녀의 짝사랑을 고백할 운명인 거고, 아니라면 달콤한 꿈이라고 생각할 그 순간. 대학교 때부터 짝사랑했던 선배 공지섭을 만났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그를 보는 그녀의 눈빛이 반짝일 수밖에 없다.

 

"보자. 내일 이 시간 이 장소에서."

"좋아요. 내일."

 

찰나의 순간에 마주친 인연으로 끝날 것 같았는데, 그는 여행지에서의 다음 만남을 제안했다. 약속이다. 내일, 다시 만나자는 그 말이 혜원의 가슴을 끓게 했다. 저녁을 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혜윤은 수줍게 고백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간절함이었다. 하지만 그는 거절했다. 어쩐 일인지, 그는 이미 혜윤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가오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자기를 향한 마음을 정리하라면서... 그래, 꿈이었구나. 바르셀로나의 그 순간은 눈을 뜨면 깨어날 그냥, 꿈이었구나. 한국으로 돌아와 학교에서 들은 소식, 지섭이 한 학기 남겨두고 학교를 자퇴했단다. 이렇게 정말, 그와는 끝이구나.

 

6년이 흘렀다. 학교 선배 영민의 건축회사에서 일하는 혜윤은 새로운 프로젝트의 어마무시한 임무를 맡는다. 이름은 유명하지만, 얼굴은 알려지지 않은 건축가 '라이언'을 잡아 오는 것. 그와의 계약을 성사시키는 것. 못한다면 해고. 성공한다면 연봉 두 배. 혜윤은 라이언과의 계약을 위해 애쓴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이메일 주소 하나뿐. guelwantsgaudi. 이메일 주소에서 느낀 호감, '라이언도 가우디를 좋아하는구나!' 하는 반가움이 앞서 이 일을 꼭 성사시키리라 다짐한다. 하지만 쉽지 않은 라이언 수색에서 마주한 것은 의외의 인물. 그렇다고 이 계약을 포기할 수는 없지!

 

처음 혜윤의 캐릭터를 봤을 때는 혹시 고구마인가 싶었는데, 의외다. 혜윤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착하게 생각하고 행동했는데, 그게 마냥 답답하지는 않았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끝까지 해내려던 오기도, 원하는 것을 향한 노력도 있었다. 착한 사람에게만 착하게 대하는, 아무리 노력해도 돌아오지 않을 마음에는 애써 관심 두지 않으려는 현명함도 가진 여자였다. 그녀에게 우선인 것은 건축. 그리고 어렵게 찾은 사랑을 위해 당당해지는 일.

 

나중에야 드러나는데, 지섭이 6년 전 그때 혜윤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다시 만난 혜윤에게 지섭이 다가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상황은 역전된다. 밑도 끝도 없이 들이밀고 들어오는 지섭의 직진이 귀여우면서도 곧아 보여서 좋더라. '나는 너여야만 하고, 그래서 나는 을이 되어 기다림도 불사하겠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는 을이 갑이 되는 하극상도 이뤄 내리라'는 막무가내 정신도 발휘한다. 특히 지섭의 행동에서 눈에 들어오는 부분. 처음에 6년 만에 다시 만난 혜윤과 지섭의 동행에서 지섭은 혜윤의 손목을 잡고 걷는다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그냥 급한 마음에 뒤따르는 사람을 잡아 쥔 곳이 손목이었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런 상황이 몇 번 더 등장하자 어떤 의미가 보였다. 어느 날 지섭이 혜윤의 손을 잡았던 그때, 추측은 사실이 되었다. 그가 혜윤에게 다가가는 방식, 무언가 정리되지 않은 관계에서 더는 다가갈 수 없는 그가 혜윤을 잡을 수 있는 부분은 손목이었다. 손을 잡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대로 보이는 증명하는 듯하다. 지섭이 혜윤의 손을 잡은 순간, 두 손이 하나인 게 어떤 관계인지 설명된다.

 

이 남자 공지섭, 칼처럼 냉정하고, 자기 잘난 거 너무 잘 알아서 재수 없게 당당한 것도 멋있던데,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마냥 빙구가 되는 것도 보기 좋더라. ㅎㅎ 사랑하는 이의 꿈도 이해해주고, 같이 하고 싶은 시간을 위해 기다림의 인내도 보듬을 줄 아는... 구엘과 가우디가 사업과 재능의 관계에서 시작된 끈끈한 우정이라면, 지섭과 혜윤은 건축이라는 같은 길을 가는 사랑이라는 것을 그대로 확인했다. guel wants gaudi.

 

혜윤을 둘러싼 음울한 환경과 악역들이 거슬리기도 하고, 혜윤이 왜 그들에게 사랑을 갈구하려는지 공감하고 싶지 않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 확인한 인연들에서 그마저도 이해하고야 마는 혜윤의 성정이 현재 그녀의 꿈을 이루며 살게 하는 바탕이 되었을 거로 생각하니, 이해 못 할 것도 없더라는... 꿈과 일, 사랑 앞에서 당당한 이 여자가 계속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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