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밥상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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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계속했던 생각은, ‘아, 엄마가 참 좋아할 만한 메뉴가 가득하구나.’하는 거였다. 일요일 아침에 SBS에서 <식사하셨어요?>라는 프로그램을 참 좋아하는데, 엄마는 거기서 나오는 임지호 님의 요리를 눈여겨보신다. 가는 곳마다 뭔가를 쑥 뜯어와 요리하는데, 이제껏 풀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식재료로 만들어버리는 그분의 손끝을 엄마는 참 좋아하신다. 이런 것도 음식이 되는구나 싶은 감탄이 반복되곤 했다. 『시인의 밥상』의 버들치 시인이 만들어낸 상차림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 죄다 어디 사찰에서 먹을 것 같은 푸성귀인데, 그럴싸한 상차림이 되는 게 신기하다. 물론 그 밥상에는 생선도 올라오고, 면도 올라오지만, 대부분 푸르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초록의 산물들, 산속에서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들.

 

소박하고 정갈한 밥상을 보면서 거기에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함께하고 있음을 봤다. 밥상 위에 차려진 진수성찬의 한가운데 사람과 이야기가 있더라. 아낌없이 마음을 던지는 사람들, 걱정과 근심, 웃음을 함께하는 게 당연한 관계들, 논과 밭에서 나오는 것들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들이 모여 시인의 밥상을 더 풍성하고 맛있게 만들고 있었다. 거기에 농작물을 대하는 마음까지 더해지니 맛이 없을 수가 없지. 감자를 캐는 시기와 날씨까지 확인해가며 지키는 자세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냥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던 단순한 생각을 반성하기도 했다. 시인이 차려준 음식과 함께 들려온 이야기에 웃음까지 더해지니, 편안하고 재밌고 맛있는 밥상이 되는 거다.

 

기존의 레시피에서 봤던 것과는 약간 달랐던 가지선, 엄마가 해주는 것과 비슷했던 호박찜, 보기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이는 냉소면(면 요리 피해야 하는데, 정말 좋아해서 힘듦. ㅠㅠ), 온갖 나물을 다 넣고 비빈 것 같은 나물밥... 보기만 해도 담백한 맛이 난다. 작가는 버들치 시인을 찾아갈 때마다 오늘은 무슨 음식으로 허기를 채울 수 있는지 한참 기대하지 않았을까? 지리산을 오르는 길이 숨이 차다가도 그 음식 생각에 발걸음에 힘을 싣고, 시인이 차려준 밥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더 맛있게 먹게 되고, 누군가에게 부족한 것을 알아가며 마음을 쓰는 일이 이어진다. 시인의 밥상이라 불리지만, 결국 그 밥상을 채우는 건 그 자리에 모여 앉은 사람일 것이다. 시인이 가진 온갖 좋은 것을 나누는 시간이었을 테다. 기름이 흐르는 음식들이 아니라, 말 그대로 너무 소박하여 부담 없이 받아도 괜찮겠다는 마음으로 수저를 들게 하는... 그에 밥값을 내야 한다면 진심이 담긴 그 어떤 것도 좋으리.

 

 

낮술부터 시작해 자정이 넘도록 이곳에 앉아 있자니 정말로 새벽 강어귀에 앉아 모든 흘러가는 것들을 바라보는 듯했다. 이 나이에 이르러 이제 나는 안다. 삶은 실은 많은 허접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내 남은 생에 소망이 있다면 그 중 무엇이 허접하지 않은지 식별할 눈을 얻는 것인데, 여기 새벽 강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그중 몇 개를 건져 올리는 기분이었다. 그것들은 살아 푸르른 숭어 같았다. (85페이지)

 

이 먹는 밥의 즐거움을 그대로 읊고 있다. 그 안에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있고, 투박한 잔소리가 있다. 언제 어느 때 가서 문을 두드려도 ‘얼른 들어와’라는 말과 함께 녹슨 대문이 활짝 열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 이래서 푸근함까지 곁들이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건 재주다. 뭔가 가득 차 있는 곳간을 여는 기분까지. 솔직히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은 아니다. 비록 그 음식이 화학조미료 범벅이라고 해도, 빠르고 간단하게 먹는 걸 선호하는 내가 좋아할 음식들은 아니다. 그런데 그런 상차림 한 번 편하고 느긋하게 앉은 자리에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버들치 시인은 야무진 손끝으로 나물을 무쳐내고, 최도사는 옆에서 간을 본다고 젓가락을 들이밀 것 같고, 그 사이에서 작가는 웃으며 밥을 푸고 있을 것 같다. 투덜거리며 힘들었던 시간을 털어내고, 오직 이 순간은 이 밥상만이 약이 된다고 여기며 아무 생각 없이 그 밥상에 충실하고 싶어지는 시간. 우리가 채우지 못한 게 너무 많아 다 열거하지도 못하는데, 그런 거 계속 마음에 두고 서글퍼지면 뭐하나. 인생에 비워진 것투성이라도, 이런 밥상 앞에 앉아있을 수만 있다면, 그만이리...

 

좋다. 이 상차림에 술 한 잔 빠지면 안 될 것 같다. ㅎㅎ 소주나 막걸리, 맥주, 와인 같은 것보다도, 지리산 어디쯤에서 수확한 자연이 푹 우러난 담금주 한잔 걸치면 딱 좋겠다. 날씨도 흐린데, 우중충한 분위기까지 안주로 더해지니 뭐가 더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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