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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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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한창훈이 섬을 떠난다면 소설을 계속 쓸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의 소설을 다 읽은 적도 없는데 이상하게 이런 걱정부터 되더라. 내가 느낀, 그가 말하는 섬은, 그에게 단순히 사는 장소 이상의 것이었다. 지금, 소설가로 살아가는 그의 삶에 많은 부분 바탕이 된 곳이며 그가 오롯이 숨 쉴 수 있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의 삶의 자취를 같이 밝아가는 동안 이어지곤 했다. 그가 글을 쓰는 이유를 답해줄 것처럼 제목에서부터 말하고 있지만, 굳이 그 답은 필요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삶이 녹아든 시간과 경험이 그의 모든 글에 그대로 녹아있었을 것을 저절로 알게 되기에 말이다.

 

바다와 바람 외에는 모든 결핍의 장소. 이별과 쓸쓸함만큼은 풍족한 곳. 사람도 섬을 닮아버린다. 각자 독립된 고립이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풍경이 된 채 달이 가고 해가 바뀐다. 섬을 고독을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견디기 힘들다. (80페이지)

 

'글을 왜 쓰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원고료 때문이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아, 이 얼마나 솔직하고 직선적인 대답이란 말인가. 당연하지. 돈이 되는 글쓰기를 하며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건 전업 작가의 가장 우선시되는 조건이 아닐까. 본인의 삶도 영위해야 하지만 딸의 아빠 노릇도 해야 하니까. 그는 소설가 한창훈이기에 앞서, 아버지이고 가장이었던 거다. 그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그런 우선순위가 정해질 것 같다. 그의 글쓰기의 이유는 이렇게 원고료와 함께 남을 누르고 올라서는 종자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이기도 하다. 주변의 기록을 남기기 위한 것도,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도 그가 글을 쓰는 이유가 된다. 사실 이유야 세다 보면 더 많을지도 모르지만, 그 이유를 감당하는 숫자가 중요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그건 이 산문에서 그가 말하는 그 섬 이야기를 들을수록 분명해진다.

 

이상하게도, 소설을 읽으면 작가는 '소설가'로 보인다. 그런데 소설가가 쓴 산문을 읽으면 '그냥 한창훈'으로 보인다. 섬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에서 섬마을 아저씨 같은 인상을 풍긴다. 그의 글에서 종종 등장하는 섬사람들의 일상과 사연은 그의 글의 배경이나 소재가 되기도 한다. 항구를 기점으로 떠나는 사람들과 섬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 삶의 안녕을 기원하게 된다. 그가 태어난 줄기로 이어진 친척들의 생과 사를 들을 때면 사람 사는 게 다 이런 건가 싶어 애틋하고 서글퍼지기도 했다. 그가 글로 교류하며 인연 맺어온 문인들과의 에피소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흥미로웠는데, 그들에서 문학을 갈망하는 모습이 그대로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어지는 작가의 이야기.

 

그가 보고 듣고 느끼는, 지금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모든 것이 문학으로 이어지는 거라고 말하는 듯한 여운이 듣기 좋다. 떠나고 기다리고 돌아오는 것들을 무심히 바라볼 수도 있는 시선을 갖게 하는 건, 그가 발 디디고 있는 그 섬에서 피부에 닿아 몸이 되어버린 것들이었음을 느낀다. 그의 글쓰기의 원천은 바로 이런 것들일 거다. 그의 발길이 닿았던 거문도, 여수, 부산 등 바닷냄새 나는 곳들, 그와 함께 고생과 술잔을 같이 기울인 사람들, 글을 중심으로 존재했던 문인들과의 추억이 지금 그의 글과 함께하고 있다. 그 시간을 함께한 많은 사람이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이면서 이야기의 바탕이 되는 존재들이다. 치열한 삶을 같이 부대끼며 걸어온 그들이 그의 소설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래서 그가 계속 그 섬에 머물 것 같고, 계속되는 이야기가 멈출 것 같지도 않다. 늘 그 자리에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될 것이다.

 

목수가 십수 년 동안의 망치질 총량을 어느 날 문득 헤아려보고는 몸서리를 치는 행위와 소설쓰기는 비슷하다. 책 속에 그때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러면서 다시 망치를 잡듯 그다음 소설을 쓴다. (105페이지)

 

이 책에 대해 혹시나 글쓰기를 가르치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니라고 말해두고 싶다. 내가 느낀 이 책은 그의 일상이 쌓여간 시간을 적은 책이지, 그의 글쓰기 노하우를 전하는 책은 아니다. 글쓰기의 기교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법의 연속으로 글쓰기가 이어지는 거였다. 사람의 마음을 보고, 바닥을 공감하며, 눈물 나는 버팀을 아는 이가 본 세상.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그에게 글이 동반한다. 바다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이제야 그의 소설을 제대로 만날 마음이 생긴다. 그 배경의 고백을 들었으니, 과감히 그의 소설을 펼쳐 들어도 좋겠다. 정식으로 문학을 배운 적 없는 그가 이렇게 써야만 했던 이유를 그의 소설에서 더 듣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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