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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잔혹극
루스 렌들 지음, 이동윤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다른 이들이 볼 때는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되는 일도, 자기 자신에게는 끔찍한 공포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나 같은 경우, 그런 공포감이 생기는 경우 중의 한 가지는 승용차를 탈 때이다. 가족이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가 났었는데 바로 내 눈 앞에서 앞차의 뒷부분을 들이 받고 난 사고였다. 우리 차의 앞쪽이 완전 찌그러지고 연기가 막 피어오르는 것을 눈 뜨고 보는 그 순간 나는 누가 나를 흔들고 있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멍한 상태였다. 그저 차에서 내려 사고 수습을 하면 되는 일인데 앉은 자리에서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다친 곳은 없었는데 며칠 동안 밥을 못 먹을 정도로 속이 울렁거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나는 승용차의 조수석에 잘 타지 못한다. 부득이하게 타게 될 경우는 안하던 차멀미를 하고, 심하면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를 정도다. 가끔 친구의 차를 탈 때도 조수석이 비어 있어도 일부러 뒷좌석에 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친구는 이렇게 한 마디 한다. “나는 김기사이고 너는 사모님이냐?”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뒷좌석을 차지한다. 난 소중하니까.

누군가는 그런 공포를 ‘활자’에서 느낀다. ‘활자’로 인해 사람이 공포감을 느끼고, 심리적 압박감이 생기면서, 결국 살인도 가능한 일이 되기도 한다는 것. 믿어지는가? 도대체 그 ‘활자’가 뭐기에, 문맹이 무엇이기에. 도저히 믿을 수 없지만 그런 일이 일어났다. 유니스 파치먼이 그런 일(문맹으로 인한 공포로 결국 살인까지 저지른 일)을 일어날 수 있는 가능한 일로 만들어 버렸다.
“유니스 파치먼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다. (5페이지)”
이유는 오직 하나.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일가족을 죽이는 무시무시한 일을 저지른 것이다. 사십 넘은 인생을 살아갈 때까지 아무도 그녀가 문맹인 것을 몰랐다.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었고,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다면 협박을 하면 그만이었다. 모든 것이 가능했다. 먹고 자고 외출하고, 일상적인 생활이 문맹이어도 가능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유니스가 고용된 가정에서 그녀의 문맹이 탄로가 난다. 그래서 그녀는 저질렀다, 일가족을 살해하는 일을...

단순히 그녀의 문맹이 탄로 났다고 해서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일까? 문맹은 일종의 시각 장애다. (38페이지) 문맹이 가져오는 폐해는 단순히 ‘읽고, 쓰고’를 못하는 불편함이 아니다. 보이는 것(읽지 못하고 쓰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공포로 인하여 내면의 심리는 불안정해지고, 그 공포는 쌓이고 쌓이다 못해 정신적인 질환까지 가져오기도 한다. 게다가 활자와 관련된 그 모든 것과의 벽을 철저히 쌓아간다. 특히나 이 책 속의 유니스 같은 경우, 그 차단의 벽이 높아서 타인과의 교류 역시 허용하지 않는다. 타인과의 교류가 없으니 자기 자신 이외의 상태에 대해 신경을 써야할 필요도 없고, 가장 기본적인 인간애가 없다. 그 인간애는 어느 순간 사라졌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녀 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문맹이었던 그 순간부터. 그런 그녀에게 유일한 교류는 TV 범죄드라마였다. 범죄를 저지르고, 형사는 사건을 해결하고, 범죄자는 범죄의 은닉의 기술을 보여주고, 때로는 완전범죄도 만들어낸다.(허구이니까!) 그 유일한 교류가 그녀의 범죄를 돕고, 아무렇지도 않게 범죄 후의 일상까지도 만들어주기까지 한다.

그럼, 그런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유니스만 잘못인 것인가?
손에 피를 묻히고, 실제 누군가의 생명줄을 끊어놓는 일을 한 것은 유니스가 맞다. (물론 그녀의 동료(?) 조앤도 있었지만, 여기서는 유니스의 심리만 들여다보도록 하자.) 하지만 유니스가 문맹으로 인하여 공포를 쌓아가는 것을 돕던 것은 커버데일 가를 꽉꽉 채운 책장이었다. 여기저기 책장들과 책들로 채워진 사방을 보면서 유니스의 압박감은 더해졌다. 유난히도 독서를 많이 하던 커버데일 일가의 존재가 그녀를 더욱 구석으로 몰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대단한 학력과 가진 자의 여유, 피고용인으로부터 존경(?)받고 싶었던 특권의식들이 그들만의 계급을 나누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인님’이란 호칭을 듣는 것도 즐겨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우월감을 넘치게 드러냄으로써 유니스의 삶을 휘두르려 했기에 결국은 예정되어 있던 비극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유니스는 불편하지 않았고 원하지도 않았던 일을 참견(유니스에게 멜린다는 글을 가르쳐주려 하기까지 했다.)하려 함으로써 고용인이 가지던 계급의식과 오지랖이 살인까지 불러온 것이다. 아주 비극적으로...

반면,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눈을 뜨고 감는 그 순간까지 모든 것들이 보고 듣고 쓰는 것들이다. 하지만 유니스처럼 문맹인 사람은 그 문맹이 불편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문맹 탈출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저 그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이다. 유일한 소통의 창구인 TV가 고장이 났음에도 전화번호부를 뒤질 수 없었던 그 순간이 끔찍했을 것인데도 그저 고장 난 TV를 끌어안고 있었을 뿐 고치려 애쓰지 않았다. 보통의 사람들(문맹이 아닌 사람들)은 TV가 고장 난 그 짧은 순간도 견디지 못해 여기저기 전화통 불나게 돌리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문맹이 주는 불편함을 모르는 것도 하나의 비극이다.

알 수 없는 어떤 작용에 의해, 유니스의 머릿속에서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활자로 바뀌어 버렸다. 그들은 책꽂이에 꽂혀 있는 존재이자, 흰 종이 위에 군데군데 박힌 검은 존재였다. 유니스가 증오했던 동시에 갈망해 마지않았던, 그녀의 영원한 적. (206페이지)
자신의 비극(여기서는 문맹)을 감추고 싶은 사람의 심리가 폭발하던 순간과 가진 자의 특권계급의식이 불러오는 위화감과 우월감이 서로 섞여서 만들어내는 끔찍한 일가족 살해사건은, 범인이 밝혀지고 나서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서늘함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범행이 밝혀지고 범인(유니스)이 잡혔음에도 전혀 죄책감 같은 것은 알지도 못한다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사람을 눈앞에서 보게 된다는 것은 어떤 섬뜩함일까? 문맹이 가져왔던 정서적인 장애가 만들어낸 최대의 교훈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유니스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한번 출간된 적이 있는 이 책이 지금 새로운 번역본으로 다시 태어났다. 300페이지도 되지 않는 분량에, 게다가 유니스 파치먼이 살해범이라는 것을 알려주면서 시작하는 그 섬뜩함까지. 오래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지금의 세태와 사뭇 다르지 않은 일들이기에, 거기다가 인간의 심리를 가지고 엮어내기까지. 추리소설로 즐기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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