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시댁을 본 적이 있다(사실 너무 많이 봤지만...) 아들과 결혼한 며느리를 무임금 노예 한 명 들인 것으로 여기고 함부로 대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아들 뒤치다꺼리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혹은 시댁의 많은 일을 처리하는 사람쯤으로 여기는... 아니, 사람으로 생각하면 그런 짓(?) 못 하는 건데, 왜 그렇게 함부로 대하는지 모르겠는 상황들. 하아...

 

미혼인 내가 결혼도 하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될 줄 몰랐다. 누군가를 만나서 좋아하면 되고, 혹시 헤어지지 않는다면 결혼도 할 수 있지, 라고만 생각했던 어린 나이를 지나고 나니 많은 것이 보인다. 나의 자매들, 친구들, 지인들의 평균 결혼생활은 15년 정도 된다. 그러다 보니 옆에서 직접 보게 되는 상황들도 있고, 속상하다면서 하는 얘기들을 듣고 있노라면, TV 일일 드라마의 막장 스토리가 단지 드라마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며느리를 내 아들과 똑같은 인격으로 대하지 않는 시댁 사람들을 보면, 그럴 거면 죽을 때까지 아들 끼고 살지 왜 결혼하게 내버려 두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 화가 날 때가 많다. 신수지의 <며느라기>를 보면서도 한숨만 푹푹 나왔다. 며느라기. '시댁 식구에게 예쁨 받고 칭찬받고 싶은 시기'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실제 그런 단어가 있고 정의가 있는 건지, 이 웹툰에서 만든 신조어인지는 모르겠다. 어디서 만들어진 말인지 중요하지는 않다. 그 시기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아서 공감이 먼저 다가오니 '며느라기'라는 단어가 실제로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큰 문제로 다가오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을 보니 다들 그런 시기를 겪었다는 것만 알겠더라.

 

주인공 민사린은 동갑내기 무구영과 결혼했다. 이 사람과 행복하게 잘 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결혼했겠지. 사랑하는 남편과 같이 눈 뜨는 아침이 행복이라고 여겼다. 동시에 아내이자 며느리가 된 그녀가 해야 할 역할도 같이 추가된 거다. 잘하고 싶었다. 예쁨 받는 며느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며 무리하게 잘하려 애쓴다. 시간이 안 되는데도 회사 일에 지장을 주면서 시댁 일을 챙기고, 시어머니의 첫 생일 아침상을 차려주겠다고 전날부터 시댁으로 향한다. 시누이는 미리 전화해서 자기 엄마가 좋아하는 미역국 스타일도 말해주고 말이다. 어쨌든, 시작은 잘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고 싶기는 하다. 이제 가족(?)이 되었으니 서로 잘하고 싶은 마음 모르지 않는다. 문제는 그 '잘하고 싶은' 마음이 쌍방인가 아닌가 하는 거다.

 

미묘하게 던지는 말에 담긴 감정들이 가슴에 상처를 준다는 것을 알까? 웃긴 건 시어머니도 시누이도 며느리였다는 거다. 웹툰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감춰진 상황이 드러나는데, 이상하게도 그들에게 공감과 동지애를 느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잘되지 않았다. 아직은 며느리인 사린에게만 감정 이입이 되는가 보다. 한편으로는 같은 여자인 입장에서,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모습까지 보니까, 이건 '며느라기'의 시기에 관한 문제를 넘어서서 여자가 겪는 문제까지 아우르는 것 같다. 명절 끝에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의 아내를 배려하지 않고, '간단하게 집에서 밥을 먹자'는 시아버지의 말을 보면 한마디 하고 싶다. 그 '간단한 밥상'을 당신이 한번 차려보고 말씀하시면 안 될까요?

 

이 책 읽다가 TV 파일럿 프로그램인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를 같이 보게 되었는데, 하아, 한숨과 답답함이 밀려와서 죽을 뻔했다. 일인다역을 하는 며느리에게 왜 빨리 식당으로 출근하지 않으냐며 전화로 닦달하는 시어머니, 아이가 방바닥에 엎지른 것을 보면서도 느긋하게 다가오는 남편, 결혼 후 처음 시댁 방문에 안절부절못하는 며느리, 그런 아내를 방치(?)하고 거실에서 시댁 어른들과 다과 하며 앉아있는 남편, 명절에 만삭의 몸으로 혼자 아이를 데리고 시댁을 향하는 며느리, 마치 며느리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대용량의 명절 음식 준비물을 내놓는 시어머니, 주방에서 두 여자가 열심히 차례 음식을 만들고 있는데도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시는 시아버지, 명절 전날부터 몰려오는 시댁 식구들, 차례 지내고도 바로 친정에 가지 못하는 며느리, 며느리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데 굳이 손주 아이큐 운운하며 자연분만을 언급하는 시아버지... 말을 해도 끝이 없을 것 같다. 눈물과 어이없음으로 공감하면서도 보던 이 프로그램에서 그나마 건진 건, 남자 MC의 한마디였다. 평소에는 그 안에 섞여 있느라 몰랐는데, 명절의 모습을 이렇게 한발 떨어져서 보고 있으니까 안 보이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정말 미묘하다. 말 한마디가 건네져 오는데 그 미묘함 때문에 감정이 상한다. 이제 한 가족이 되었다고, 며느리도 자식이라고 쉽게 말하기도 하면서 하는 말이나 행동은 아들과 다르게 대한다. 분명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바뀌지 않은 것들이 아프게 한다. 남자와 여자, 시댁과 친정,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을 구분해서 편 가르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가족이라고 하면서 가족이 되지 못하는 사람, 자기가 편하다고 아내도 편할 거로 생각하는 착각, 내 아들 좋아하는 것을 차려놓고 며느리도 좋아할 거라고 단정하는 일... 웹툰 <며느라기>에서 나오는 사린의 동서가 차라리 현명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싫고 좋고 분명히 표현하는 일이 자기 안위를 위해서 필요하다. 정이 없다고, 냉정하다고, 며느리인데 왜 안 하느냐고 욕먹기도 하겠지만, '걔는 원래 그래' 하는 인식이 장착되니 더는 그 며느리에게 뭔가 요구하거나 희생하는 일을 강요하지 않는 것을 보고, 사린의 동서 같은 며느리가 되어야만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계속하게 된다.

 

<며느라기>나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를 보면 공통으로 드는 생각이 있다. 바로 남편의 역할. 시댁과 아내의 중간에서 남편의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바로 보인다. 내 아내가 시댁에서 어떻게 지낼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듯하다. 남편에게는 '자기 집'이었겠지만, 아내에게는 쉽게 다리도 뻗을 수 없는 '아직은 남의 집'일 거라는 것을. 악의가 없다고 하지만 시댁 사람들이 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일방적으로 하는 집안 일들에 여성들은 힘들어한다는 것을. '간단하게 먹자'는 상차림의 준비는 절대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나라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계속 생각한다. 어른들과 잘 지내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어른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귀에 거슬리면 그만하시라는 말도 한다. 그래서 저렇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느낌의 상황들을 가만히 참고 지켜보기만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아마 가만히 있지는 못할 것 같다. 요즘 많이 하는 연습이 거절하는 거니까. 싫으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연습을 계속하고 있다. 싫다고 말하지 못해서 끙끙 가슴앓이하면서 위경련을 앓는 것보다 한번 싫다고 말하고 상대에게 나쁜 사람 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혹시라도 내가 누군가와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과 결혼이라도 하게 된다면, 나는 '며느라기'의 시기를 만들지 않아야겠다고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의 선에서, 새로운 가족과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하는 정도만 내 손을 내밀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에는 늘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그 거리를 너무 가까이 만들려고 노력하다가 부작용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그 거리를 너무 멀리하려고 해도 서운해지는 일이 생기겠지만...) 사린이, 대한민국의 며느리가 시댁 식구들에게 예쁨 받으려고 칭찬받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가능한 정도만 하면 된다. 때로는 싫다고 말하는 게, 솔직한 거절이, 서로가 잘 지낼 방법이 되기도 한다.

 

이 웹툰이 계속 연재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른 남편들, 남자들이 같이 봐주었으면 더 좋겠다. 내 아내가, 내 어머니가 어떤 일상과 시댁이라는 관계 속에서 있는지 보면서 이해와 공감의 시선을 보내주기를. 일방적으로 여자를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결혼이라는 인생의 큰 결정으로 만난 인연들이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 위한 시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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