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MPION - 빈티지 챔피온의 모든 것
태그 & 스레드 지음, 강원식 옮김 / 벤치워머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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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온(Champion)이라고 하면 아마 그 특유의 아치형 로고를, 살면서 한 번도 못 봤다고 할 한국인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 저 사람이 저걸 입네?라며 눈길을 세심히 준 적은 아마 없다는 말이 솔직할 듯합니다. 글쎄 교포들이 막 입는 추리닝 정도의 이미지가 평균이 아닐까 싶지만, 미국의 독립 출판사인 T&T가 이렇게 그 브랜드 역사에 대해 정성껏 빚어낸 책을 보며 이제는 그렇게 예사로운 시선으로 스쳐지나갈 브랜드가 (적어도 제게는) 아닐 것 같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이 브랜드가 이렇게나 오래된 것이라는 사실 자체가 새로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애슬레저라는 장르가 과연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가리키는지야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이 챔피온(이 브랜드에 한해, 한국어로 쓸 때에는 "온"이라고 쓰는 게 정석입니다)이 미국에서 애슬레저의 대표격이라는 평가에는 많은 이들이 이의가 없을 듯합니다. p5에는 디자이너 토드 스나이더 본인이 직접 쓴 머리말이 있는데 물론 토드 스나이더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이며 이 챔피온과 협업한 건 아주 오래되진 않았습니다. 당시에 이 양반이 챔피온하고 손잡는다는 뉴스가 나올 때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죠. 어찌보면 그 오래된 브랜드가 초일류 디자이너를 끌어들여 무슨 새로운 일을 벌인다는 자체가, 이 브랜드의 오랜 행로가 이제 전환점을 맞이한다는 하나의 신호였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스트리트 패션이나 애슬레저 같은 트렌드는 왔다갈지도 모르지만 목적을 가지고 디자인되어 공들여 만든 옷은 착용자에게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의 일부가 된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는 저 토드 스나이더의 말은 참으로 명언입니다. 저는 저 말의 전단이 끝났을 때 뭔가 다른 결론, 즉 "챔피온 같은 빈티지의 챔피언(보통명사)은 영원할 것이다" 같은, 흔한 찬사가 나올 줄 알았는데 전혀 뜻밖의 보편적 진리가 쿵!하고 등장해서 의외였네요. 이 말은 비단 챔피온뿐 아니라 대중이 샵에 들어가 자신이 입을 옷을 고를 때 갖는 가장 근원적인 심리를 예리하게 짚었다는 점에서 위대합니다. 하긴, 같은 말도 토드 스나이더가 하니까 더 멋있게 들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챔피온 하면 그 특유의 후드티가 대번에 떠오르지 않겠습니까. p60을 펼치면 흰색(이렇게밖에 표현 못 해서 죄송합니다) 사이드라인 후드티/크루넥이 소개되는데, 미국인이나 교포가 착용할 때는(그걸 보고는) 정말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이렇게 아카이빙북을 통해 컬러 화보로 감상하니 또 완전히 다르게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그 내력도 페이지 중하단에 나오는데 1960년대 후반부터 주로 스포츠팀 유니폼으로 널리 알려졌다는 게 압축적인 설명입니다. 그래서인지 전면에 PENNSTATE SKI TEAM이라든가 하는 로고가 찍혀 있네요. 이 부류는 바로 앞페이지부터 나오는 PDSL(p58을 보면 이게 스타일명이라고 합니다. pragmatic design solution limited의 약자)의 일종인데, p60에는 리버스위브(이것도 챔피온이 최초로 만들고 적용했습니다)와 익스팬션 거싯(gusset)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이걸 읽고 나니 거싯이 옷에 왜 붙었는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을 다시하게 됩니다. 

p136을 보면 챔피온은 1930년대 초부터 학교용 맞춤 체육 교복(이 책의 번역어이며 우리 느낌으로는 그냥 체육복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네요)을 공급했다고 나오는데 이에는 19920년대 말부터 미국 전역을 엄습했던 대공황의 궁핍이라는 시대상도 함께 고려해야 하겠습니다. 챔피온은 영업 초창기부터 정체성 자체가 이쪽이었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1970년대 들어 경제 불황(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인해 학생들의 체육복 착용 규정을 완화(예산 부족 때문)함에 따라 체육 교복 착용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같은 경제 불황인데도 챔피온의 부상(浮上)과 퇴장을 모두 초래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인데, 이건 행정과 제도, 정치 풍조의 변천을 고려하면 모순이 사실 아닙니다. p137에 나오는 Xaverian(재버리언), Central Falls는 모두 고등학교 이름들입니다. 팬츠들도 보면 무슨 팬티처럼 짧은데 저때는 프로권투 트렁크, NBA 하의도 모두 저렇게 짧았죠. 한국은 무조건 미국 따라가기 때문에 역시 운동복이 다들 저랬습니다. 

아카이빙 북의 개념을 잡아주는 멋진 화보집, 역사책, 자료집이었습니다. 위험 부담에도 불구하고 이런 책을 만들어준 T&T, 그리고 번역자 강원식 대표와 푸른숲출판사에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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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태도 -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반건호 지음 / 북플레저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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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탐험해 온 의사, 또 "시프트"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진 반건호 경희대 교수의 새 책입니다. 마음이란 우리 모두가 갖고 있으면서도 도통 그 속을 알 수 없는 신비의 우주입니다. 그렇다고는 하니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잘 통제하고 다독임으로써 평화를 정착시키고 그로부터 큰 힘을 이끌어낼 수는 있습니다. 반 교수님의 책은 우리에게, 간단한 수련과 태도의 전환을 통해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꿀 방법을 가르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성장은 멈추지만 발달은 멈추지 않는다.(p92)" 아무리 많은 양분을 섭취하고 운동을 해도 일정한 나이가 지나면 키가 마구 자라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신의 어른스러움, 의젓함, 함부로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 등은 더 단단해지거나 높은 단계로 상향할 수 있습니다. 사실 몸이 커지는 것보다 사람에게는 이쪽이 더 근원적으로 중요한 덕목이며, 또 그 효용에 한계도 없습니다. 이 책에는 조앤 K 롤링의 히트작 해리 포터 시리즈를 비롯하여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p97) 등 다양한 문학 작품이 인용되는데, 반 교수님은 그들로부터 일정한 교훈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이런 대목도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읽어 보면 큰 도움이 될 듯한 내용들입니다. 

반 교수님은 1960년대에 초등학생이셨는데(p154), 이때 즐겨 보던 TV 드라마가 <0011 나폴레옹 솔로>였다고 하십니다. 그걸 한국 지상파에서 틀어 줬었나 보네요. 와. 그 시리즈의 주인공(즉 나폴레옹 솔로) 역을 맡은 배우가 로버트 본이라는 사람인데(지금은 고인이 되었습니다), 1960년작 <황야의 7인>에서 말쑥하게 빼입고 (알코올 의존증 때문에) 손을 떠는 총잡이 역이었던 그 배우입니다. 일리야 쿠리야킨 역의 데이비드 매컬럼만 키가 작은 게 아니라 로버트 본 본인도 키가 작은 편이어서 맡는 역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아무튼 여기서 교수님이 하고자 하는 말은, 나이 들어서도 <NCIS>에서 검시관 역을 맡는 등 활력이 죽지 않은 배우 매컬럼 같은 인생을 살자는 뜻인 듯합니다. 이분도 재작년에 고인이 되었습니다. 

p182를 보면 기후동행카드라는 정책이 작년(2024)부터 실시되어 대중교통 이용 촉진에 도움이 된다고 나옵니다. 교수님도 그런 말씀을 하시지만 사실 기후 온난화다 뭐다 하는 게 그간은 남의 일로만 여겨진 게 솔직한 느낌입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보면 결코 이게 강건너 불보듯 할 일이 아니라는 점 모두가 체감합니다. 이유 없이 벌어지는 산불 등 자연재해가 얼마나 많습니까. 여기서도 반 교수님은 개인이 기후 재앙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시프트"를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작은 실천이라도 우리 독자들이 직접 행했으면 하는 바람이 묻어납니다. 

p208 이하에는 오프라 윈프리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녀는 미시시피 주(한때 인종차별이 극심했다고 알려진) 출생이며 성장 과정에서도 매우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한시도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노력 끝에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토크쇼의 진행자가 되었습니다. 한때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오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스필버그의 1984년작 <컬러 퍼플>을 보면 그녀가 우피 골드버그의 며느리로 잠시 나오는데 거기서도 연기를 잘합니다. 그녀의 생애에서 반 교수님이 이끌어내는 교훈은 "커리어 시프트"입니다.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과거에 비해 사회 진출 기회가 크게 늘었습니다. 그런데 그에 비례하여 그녀들이 그만큼 다 행복해진 건 또 아닙니다. p236 이하에 보면 부작용이랄까 이 세대, 성별이 겪는 아픔, 곤란상이 자세히 나오는데 번아웃이라든가, 자존감 저하 같은 병증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가 자세히 나옵니다. 번아웃의 종류에도 직장, 부모, 기술 등 다양한 원인이 있는데, 저자의 주전공이 잘 적용되어 각각의 징후마다 훌륭한 처방이 함께 제시됩니다. p296에서는 정신과 의사라는 저자의 본분으로부터 "공감 능력"의 중요성이 여러 학문적 근거와 함께 제시되는데 많은 독자들이 공명하며 읽을 만한 멋진 제언이 많아서 유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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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추리소설 필독서 50 - 셜록 홈즈부터 히가시노 게이고까지, 추리소설의 정수를 한 권에 필독서 시리즈 26
무경 외 지음 / 센시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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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장르란, 한번 사람을 빨아들이면 도통 놓아줄 줄 모르는 매력을 지녔습니다. 이 책 5인 공저자 중 한 분인 박상민 닥터는 <십자가의 괴이>라는 앤솔로지(몇 달 전 출간됨)에 "그날 밤 나는"이란 작품으로 참여한 작가이기도 합니다(은평성모에서 제가 이분 본 적 있습니다). 다른 네 작가분도 기발한 아이디어와 쿨한 스타일로 독자들에게 이름이 익은 분들입니다. 시중에 필독서라고 여러 명작을 꼽아 놓은 책들은 많이 있습니다만 이제 시대가 많이 바뀌었고 젊은 감각으로 모든 게 재평가받을 시점도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문학의 진짜 가치는 실제로 머리를 써서 작품을 꾸며 본 사람만이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책을 펼쳐 드는 독자들 중에, 정말로 미스테리 장르에 문외한이라서 50권만 먼저 읽고 싶었다는 초심자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물론 그런 분들이 이 책을 고른다면 최상의 선택이 되겠죠). 그보다는, 이미 추리물을 충분히 사랑하고 그 맛도 충분히 본 분들이, 다른 전문가들의 감상평과 관점을 엿보며, 내 생각과 느낌과 어떤 지점에서 차이가 나는지 더듬어도 보고, 혹 아직 못 읽은 작품은 없는지, 기 읽은 작품이라고 해도 내가 놓친 포인트는 없었는지 체크하는 기쁨, 설렘이 더 크게 작용할 독자들이 많지 않겠냐는 게 제 추측입니다. 누가 읽어도 미스테리 장르 팬들한테는 이 평론 앤솔로지가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프롤로그 말미에 인용된, 일제 강점기의 장르작가 김내성 선생의 한 마디도 울림이 깊습니다. 

개별 작품 제목은 홑화살괄호, 책 제목은 겹화살괄호로 표기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모르그가의 살인"은 작품이므로 전자, "셜록 홈즈의 모험"은 모음집 제목이므로 후자입니다. 영국 근세 모험 미스테리물 중에 <월장석>이란 게 있는데 동서미스터리 시리즈에 있으므로 한국에서도 읽은 독자가 많을 것입니다. 그 작가 W W 콜린스가 쓴 <흰 옷을 입은 여인>이 이 책 리스트 두번째로 소개됩니다. <월장석> 역시 걸작이므로 (비록 50선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이 글에서 자주 언급됩니다. 추리물의 개조(開祖)가 에드거 앨런 포이므로 그를 (어떤 책이라고 해도) 첫머리에 거론하는 게 맞지만 보통 두번째를 누구로 채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립니다. 한국에서 의외로 저평가되는 작가의 대표작이 리스트에 나와서 그것만으로도 반가웠습니다. 

13번째, p102에 나온 작품은 조르주 심농의 <타인의 목>입니다. 이 심농의 작품은 십여년 전 열린책들에서 일일이 한국말로 완역하여 전집을 내기도 했습니다. 전집 완역이 뉴스가 될 만큼 심농은 20세기 중반에 엄청 다작을 한 사람이기도 한데, 같은 작가들한테 그렇게나 호평을 받을 만큼 대단한 재능과 생산력의 작가이긴 합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하는 분은 아니었습니다. 추리작가뿐 아니라 헤밍웨이 같은 이도 오랜 비와 함께 지루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최고의 동반자로 꼽았는데, 타인의 목 뿐 아니라 이 챕터에 언급된 다른 장편(장편이 유독 많습니다)들도 읽어 볼 만한 명작입니다. 박소해 작가님이 특히 재미있게 보셨나 봅니다. 

작가가 두세 개 필명을 쓰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지만 이상하게 추리작가는 더 다양한 필명을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농도 처음에 다른 이름을 썼고, 14번, 15번에 나온 엘러리 퀸과 바너비 로스는 같은 사람(들)이죠. 또 16번 <세 개의 관>의 존 딕슨 카는 카터 딕슨이라는 필명을 쓰기도 했고, 22번 <환상의 여인> 윌리엄 아이리시도 코널 울리치 명의의 작품들이 많습니다. 37번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는 개인적으로 그리샴 작품 중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원서로 읽는 이들도 많고 원제 The Firm으로 바로 아는 이들도 많지만, 한국어 제목(공경희씨 번역 김영사 출간 당시)이 희한하게 붙어서 독자들의 뇌리에 깊이 남은 케이스이기도 합니다. 소설 원작, 번역판, 영화판 워킹 타이틀이 모두 다르게 이름지어진(한국에서) 기묘한 케이스이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사회성이라는 말이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공감하는 성향을 가리키지만 과거에는 작가가 자기 작품에 사회와 세태를 정의롭게 비판하며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어떤 경향을 뜻했습니다. 모리무라 세이이치(이 책에서처럼, 誠一이라는 한자를 따로 읽어 세이이치라고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의 작품들은 그래서 사회성이 풍부하다는 평가를 듣는데, 그를 평가할 때 뺄 수 없는 개념어가 바로 "사회파"입니다. p235에서 박소해씨가 지적하듯 원조는 마츠모토 세이초죠. 1990년대에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메디컬 스릴러의 인기 작가 중 한 사람이 로빈 쿡이었는데 박상민씨가 <코마(작품 자체는 1977년 발표입니다)>를 자신의 전문 분야에 걸맞게 픽했습니다. 

다섯 분 작가가 꼽은 만큼 다양한 작품들이 포함되어서 더욱 즐거운 독서였습니다. 책 맨앞에는 동서양 작가의 계보도가 나오는데 이 도식화가 절대적인 건 아닙니다만 많은 추리팬들이 동의할 수 있는 재미있는 정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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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2학기 급수표 받아쓰기 - 2022 개정 교육과정, 초등학교 입학하면 꼭 하는 초등 급수표 받아쓰기
컨텐츠연구소 수(秀) 지음 / 스쿨존에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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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2학기만 되어도 생활 태도, 바른 마음가짐에 대해 가르치는 여러 텍스트들이 이렇게 나옵니다. p29를 보면 주제가 "서로 존중해요"인데, 텍스트로는 "방법을 여쭤보면", "기분이 상하지 않게" 등이 나옵니다. 그런데 저 구절에서 "여쭤보면"의 띄어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걸어 보다"의 경우에는, 걸다 혹은 걷다 같은 동작을 시도한다는 뜻이지만, 물어보다, 여쭤보다에서는 그런 시도, 시범이라는 뜻이 많이 희석됩니다. 그러므로 이는 본용언+보조용언으로 분해되지 않고 하나의 단어로 이미 융합이 된 상태입니다. 따라서 이 교재에서처럼 붙여쓰는 것이며, 눈썰미 좋은 아이들은 이런 것도 예리하게 물어 봅니다. 물론 이런 게 나중에 수능에 출제된다거나, 논술에서 중요 포인트를 점유하는 건 아닙니다만 국어를 정확하게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 주는 건 틀림없습니다. 스쿨존에듀의 정확한 교열, 편집에 대해서도 거듭 신뢰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41을 보면 "나를 내던져서 이웃을 돕는"이란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내던지다는 물리적으로 어떤 물체를 투척한다는 게 아니라 "희생하다"라는 비유적, 파생적 의미겠습니다. 이 페이지를 보면 "부끄러운 비밀을 털어놓는"이라는 구절도 있는데, 털어놓다도 이걸 하나의 굳어진 단어로 보기 때문에 띄어서 쓰지 않고 저렇게 붙여씁니다. 탈탈 털어서 어디에 위치시킨다는 뜻이 아니라 누설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끗수" 같은 것도 "끝"처럼 잘못 쓰기 쉬운 단어이며, 사실 저게 비속어가 아니라 표준어인지도 잘 모르는 이들이 태반입니다. 앞의 "내던지다"도, "내어서 던지다"같이 분해가 가능하지 않으므로 내던지다라고 붙여 쓰는 것입니다. 

p53을 보면 8급 텍스트들인데 "절구에 넣어 쿵더쿵 빻고"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절구가 어떤 믈건인지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쿵더쿵이라는 의성어도 "덕"처럼 잘못 쓸 수 있습니다. 사실 "빻다"도 어떤 동작인지 모를 수 있는데, 한 팔 년 전부터 인터넷에서 못생긴 사람더러 "얼굴 빻았냐?"라는 표현이 유행했기 때문에 의외로 인지도가 높아졌습니다. "흙을 나르느라"도 운반한다는 뜻의 "나르다"를 아이들이 낯설어할 수 있죠. "냄새 맡은 값이라니요?" 제가 국어 교과서를 미처 보지 못해서 무슨 맥락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냄새 맡은 데에 값을 매긴다니 너무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p59를 보면 "마치 사막처럼 황량해"라는 문장이 있는데 2학년 2학기 과정의 아이들이 "황량하다"는 표현을 배우는 걸 보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머리를 갸우뚱거리다"라는 말도 있는데, 갸우뚱이라는 의성어를 정확하게 쓸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소금을 싣고 가던"이라는 구절에서, "실어라"처럼 활용(conjugation)하는 동사의 기본형이 저렇게 "싣다"라는 걸 아이들은 처음에 어려워할 수 있습니다. "꽃들은 더욱 만발했고"에서 만발(滿發)도 사실 쉬운 말은 아닙니다. 맞은편 페이지에도 역시 가로노트 연습코너가 나오는데, 평가란을 보면 잘했어요/훌륭해요/최고예요"라고 나옵니다. 다 칭찬이죠. 여기서도 "최고에요"인지 아니면 "최고예요"인지가 논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고 다음에는 "이"라는 서술격 조사의 어간이 와야 하므로 이+에요의 준말이 "예요"가 되는 게 맞습니다. 이런 대목에서도 스쿨존에듀의 꼼꼼함을 신뢰하게 됩니다. 

p77을 보면 "내 생각은 이래요"라는 주제 하에 역시 다양한 문장을 배웁니다. "왜 책임이 필요하죠?"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일단 아이들이 "책임"이라는 말을 먼저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어른도 책임이 뭔지를 정확히 이해하기 힘든 판에, 아이들이 과연 얼마나 이를 오해 없이 소화할지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뒤뜰을 자유롭게 꾸며"에서 뒤뜰이라는 단어도, 잘못하면 뒷+뜰이라고 사이시옷을 괜히 넣을 수 있습니다. 뒤에 된소리, 거센소리가 오면 사이시옷은 본래 들어가지 않습니다. 1-1 교재도 그랬지만 챕터 중간중간에 놀이터라고 해서 잠시 아이들이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코너가 있는데 이 역시도 스쿨존에듀의 세심한 배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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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무늬 - 청소년을 디카시집
박예분 지음 / 책고래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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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카메라는 요즘 폰카가 성능이 너무 좋아지다 보니 거의 유물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미러리스라든가 하는 하이엔드 품목은 예외입니다만 그런 걸 어린 학생들이 갖기는 쉽지 않죠. 이 시집은 아동문학가이신 박예분 선생이 쓴 작품집인데, 아이처럼 순수한 동심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또 사실 디카라는 것도 이걸 혹 가진 분들이 있다면 어느 정도 연세가 있는 분들일 텐데, 심플하고 과감한 구도로 촬영한 여러 컷들이 함께 실려서 동시 작품들과 아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58에는 <저공비행>이라는 작품이 나오는데 이 멋진 사진을 보면 이 책의 메인이 시인지, 아니면 사진인지가 헷갈릴 정도입니다. 하긴 종이를 자르는 게 가위의 윗날 아랫날 중 어느 편인지 구태여 가릴 필요는 없겠죠. 아무튼 수면 위를 아슬아슬하게 활강하는 갈매기와, (사실은 제법 거리를 두었겠으나 광각상 가까워 보이는) 갈매기를 가리키는 팔뚝이 서로 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그런데 이 사진과 함께 게시된 시도 기가 막히는데, 시에는 갈매기라는 말은 한 마디도 없고 "내 근처를 나는(=비행하는) 심장 폭격기"라는 묵직하고 짧은 구절이 독자에게 충격을 줍니다. 이 컷을 정말 한 마디로 압축하는 시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p94에는 정말 웃음이 안 나올 수 없는 작품 <초상권>이 있습니다. "내 사진 함부로 쓰지 마시고 박예분 시인의 디카시(詩)에만 올리세요"라는 구절을 보며 빵터졌는데, 이 사진 작품을 보면 정말로 오리가 그런 말을 하는 것처럼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뭔가 사람들을 향해 심각한 당부라도 하듯이 말입니다. 시인의 텍스트 작품이 미리 자리를 잡아서 그리 선입견이 생겼는지는 모를 일이나 아무튼 사진 작품과 시가 기가막히게 들어맞는 분위기라서 참 절묘한 포착이다 싶었습니다. 하긴 오리도 감정이라는 게 있을 수 있는데 자기 얼굴이 아무데나 돌아다닌다면, 또 허락을 받은 작가분 외에 다른 이가 함부로 쓴다면 거 어디 기분이 좋겠습니까? 

저는 <사랑과 전쟁> 같은 드라마 재방송을 어쩌다 주말에 볼라치면, 입양한 아이를 두고 "가슴으로 낳았다"는 표현이 그 대사에 포함된 걸 가끔 듣습니다. 배 아파 낳은 아이는 아니라도 가슴으로 낳았다는 말이 왠지 찡한데, p119를 보면 시인도 고목나무가 가슴으로 낳은 아이가 바로 애기똥풀이라고 하십니다. 수종이 다르니 얘들 사이가 부모자식이 될 수야 없죠. 그러나 지척에 두고 양분을 나눠 가졌으니 뭐 양부모라 못 부를 것도 없는 사이입니다. 또 여기서 제가 묘하게 본 부분도, 애기똥풀이 정말 멀리서 보면 하늘하늘 날개짓하는 나비처럼 보인다는 점입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광화문 아니라 전국 어디에나 있지 싶습니다. 그만큼 한국인에게는 보편적으로 숭배되는 성웅(聖雄)인데, 아마 차고 계신 그 칼을 칼집에서 뽑으신 적은 없기에(동상이니까) 녹이 슬어서 실제로는 잘 들지 않으리라는 시인의 말은 타당합니다. 그런데 이 동상이 굽어보는, 뛰어노는 아이들(대체로는 초등학교 운동장 소재이겠으므로)과 함께 이 풍경이 평화의 상징이라는 말까지 덧붙었습니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도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대비하라고 했으니 이 말은 여러 이유에서 합당합니다. 

p212에는 <엄마는 고민 중>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같은 종류의 생선 두 두름이 소쿠리에 나누어 담겼는데, 이 사진이 엄마의 고민과 무슨 상관일까. 그런에 다음 페이지네 나오는 "고사리 넣고 지질까, 튀길까, 찜 할까."라는 구절을 보고 아 그렇겠구나 싶었네요. 엄마한테는 덩치는 작아도 싱싱한 이 물고기들이 과연 어떤 요리로 쓰여야 제맛일지, 또 식구들에게 최상의 대접이 될지 고민이 아닐 수 없죠! 예술가의 탁월한 안목부터, 가정주부의 가장 소박한 고민까지 두루 압축된 멋진 시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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