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1년
이인화 지음 / 스토리프렌즈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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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제국>의 작가 이인화 선생님이 오랜만에 펴 내신 소설입니다. 배경은 저 제목 그대로 2061년인데 생각보다 너무 소재가 다채롭고 현대적이라서 읽으면서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현재 코비드19라는 변형 RNA바이러스 때문에 고생을 하는 중인데요. 이 소설 중에도 팬데믹에 관련된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주인공은 시간 여행자, 즉 영국 드라마 닥터 후 같은 데 나오는 시간여행자인데 이름이 심재익이더군요. 성이 심씨이면 조선 명문가들이 연상되어서인지, 아니면 이 선생님의 전작에 나오는 어떤 캐릭터 때문인지 왠지 이지적이고 어깨에는 큰 책임을 진 남성이 자연스럽게 연상됩니다. 물론 ㅎㅎ 글로 상상으로 시간을 여행하는 이인화 선생의 페르소나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진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꿈의 힘을 믿어야..." 이런 말이 아마 청나라 말 함풍제 같은 이의 입에서 나왔다면 현실 도피라며 많은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겠죠. 그러나 우리는 이미 1990년대 말에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봤기에, 현실이 현실이 아니라 가공의 감옥이며, 오히려 우리가 자유롭게 꾸는 꿈이 현실일 수도 있음을 배운 바 있습니다. 아니, 꿈이 꿈일 뿐이라면 애초에 왜 우리가 꿈을 꾸게끔 설계, 혹은 진화가 되었느냐는 의문을 가질 만합니다. 꿈에는, 혹은 현실에서 희미한 자취만 보이고 지나가는 그 모든 것에는 다 존재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알고 보면 말입니다.

이 세상에는 노름꾼도 있고, 남을 돕는 의사도 있고, 요즘 말로 "xxx WORKER"라고도 불리는 성x매 종사자도 있기 마련입니다. 미래라고 그 모든 부조리함,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 혹은 부질없고 비생산적인 욕구가 다 사라졌을까요? 인간은 애초에 태생으로부터도 비합리적이고 모순에 가득한 고깃덩어리입니다. 또 하나 개탄스러운 게 있습니다.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싸우거나, 아예 이 모든 걸 부정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 드는 무모한 분자들이 어느 시공간에나 진을 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이제 기계의 도움을 받아 더 강력한 능력을 구사하기도 합니다. 뭐 17년 전 레이 커즈와일이 자신의 책에서 이미 그 존재를 예상, 상정한 대목이기는 합니다. 작가는 역시 천재적인 언어 감각의 보유자 답게, 어떤 문자라도(로마자는 물론 한글이라도) 인간의 발성기관으로부터 나는 다양한 소리를 표기하기에 역부족임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그래서 동아시아권은 표음문자 아닌 뜻글자를 일찍부터 만들어 썼던 것일까요? 이름부터가 낡은 극우사상과 편협한 민족주의를 떠올리는 어느 캐릭터는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음산한 부호 뭉치를 다시 입에 올립니다. 그 시절이 다시 와야 한다는 소망과 당위를 전파하듯 말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우리가 지금 무엇을 사색하고 응시하고 실천해야 할지, 이 소설은 우화의 형식으로 가르쳐 주는 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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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1
제니 한 지음, 이지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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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에게건 일생의 사랑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짝사랑도 있고, 서로가 원했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맺어지지 못한 인연도 있고, 옷깃도 채 스치지 말았어야 할 악연도 있습니다.

라라진은 한편으로 참 당돌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답답하기도 합니다. 그녀가 어떤 인연을 선택하거나 시도하는 방식이 그렇습니다. 이 중에는 놀랄 만한 적극성을 보이는 것도 있고, 그녀의 할머니 또래에게나 어울리는 구식의 감정선도 눈에 띕니다. 무엇이 되었든 그녀의 발걸음이며 그녀의 동선입니다. 밖에서 이러쿵저러쿵할 권리는 없습니다.

"심장이 어떻게나 빠르게 뛰던지 내가 키스를 서툴게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마저 들지 않았다(p109)." 학교의 공식 커플은 따로 있는데 우리의 주인공 라라진은 또 여기서 사고를 치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만해 한용운도 회고한 것처럼,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모든 것을 잊고 넋 놓게 만들 만큼 강렬하고도 압도적인 체험입니다.

"흥정이라는 게 생각만큼 어려운 건 아니었다(p247)." 아무래도, 나이 어린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은 이런 풋풋한 "첫 경험"에 대한 회고가 재미있습니다. 이 장면에서는 공교롭게도 인생의 마지막 장을 향해 걸음하는 할아버지도 나오는데, 이분은 어느 공인회계사 이야기를 하며 "누가 생각이라도 나는 듯" 그윽한 회고에 잠긴 눈빛을 띱니다. 라라진은 그 눈빛 안에 얼마나 깊고 먼 사연이 따라올지 아마 감도 채 잡지 못할 것입니다.

"가까이서 보면 네 얼굴은 잘생겼다기보다 아름답더라(p96)." 이런 말을 들으면 물론 수신 당사자는 기분이 뿌듯하겠으나 문제는 발신자의 민망함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눈치 못 채도록 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야만 하겠지요. 반대로 어떤 사람은 백 미터 밖에서 봐야 그나마 잘생겨 보이고, 안으로 접근할수록 그 못남이 두드러지기도 합니다. 이는 거의 전적으로 "보는 사람의 안경"에 달린 문제지요. 한번 사랑에 빠져 콩깎지가 씌면 보는 그 얼굴이 아름다운 정도가 아니라 god(des) of sex를 연상하게도 됩니다.

"이러니 내가 진짜와 가짜를 어떻게 구분한단 말인가?(p304)" 사실 라라진뿐 아니라 누구라도, 누구에게도, 진짜와 가짜가 구분이 힘들 뿐 아니라 대체 누구 관점을 기준으로 가짜와 진짜를 판별하겠습니까? 애초에 불가능한 과업입니다. 내 자신의 감정도 그게 찐인지 뭔지 판단이 힘든 판에 말입니다.

달달한 로맨스나 어떤 도피처 같은 걸 기대한 독자에게는 뜻밖의 솔직한, 그리고 신랄한 "현실 진단"이 잔뜩 펼쳐지는 게 의외입니다. 그 뒤에 몰려오는 건 각성과 공감입니다. 책 읽은 시간이 뿌듯합니다. 2권도 마저 읽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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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4차 산업혁명을 이기는 능력 - 고사성어로 준비하는 미래형 인재 특서 청소년 인문교양 10
임재성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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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이 눈 앞에 다가왔다고도 하고, 이미 현재진행형이라고도 합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기존 직업 80% 이상이 사라질 전망이니 자라나는 아이들은 창의력과 공간지각능력, 코딩 실력 등을 특별히 길러야 한다고도 이야기되죠. 그러나 그 누구도 구체적인 대응 방법을 일러 주지는 않습니다. "그레이 스완"이란 말이 있는데 어떠어떠한 상황이 일어나는 것 자체는 거의 확실하지만, 대처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경우를 가리킵니다. "4차 산업 혁명" 역시 그 좋은 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에 닥쳤던 세 차례의 산업 혁명은 (역시 일부 계층에서 거센 저항이 있었으나) 대체로는 더 많은 사람에게 편의와 쾌락과 넉넉한 생산성을 가져왔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 네번째 산업혁명은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큰 것도 같습니다.

예전에는 정보가 너무 얻기 어려워서 문제였는데, 반대로 요즘은 정보가 지나치게 흔합니다. 이미 20년 전에 모 컴퓨터 월간잡지에 글을 연재하던 어느 칼럼니스트가 이런 상황을 예견했는데 그 당시에는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엉터리 정보의 홍수라니, 너무 배부른 고민이 아닐까?" 그러나 지금은 이게 엄연히 현실이 되었습니다. 저자는 여기서 "논리적 사고력"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엉터리 정보, 혹은 가짜 뉴스는 그 자체만 단절적으로 놓고 보면 그럴싸해 보이지만, 전체 맥락 안에서 놓고 보면 매우 허술하고 모순덩어리입니다.

"생각의 근육들이 탄탄해야 논리적 사고력이라는 기초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p62)." 어려서부터 독서가 부실하고 부호 암기식 공부에만 매몰된 자가 공부를 통해 모종의 기쁨을 발견할 리가 만무하고, 어떤 자신만의 개성적인 시야가 생길 리가 없습니다. 마치 조선 시대 교조 성리학을 맹종하는, 혹은 이슬람 교의를 글자 그대로 맹신하는 장님과 다를 바 없습니다. 눈치도 둔하고 타인에 공감할 능력도 없습니다. 4차 산업의 파고 속에 가장 먼저 도태될 군상 중 하나입니다.

"끌려가는 자는 자신보다 끌어가는 사람을 믿는다. 끌어주는 사람이 믿는 것일 뿐인데, 이를 자신이 직접 선택했다고 착각한다. 실제로는 누군가가 가라고 하는 길을 대신 걷는 것인데, 그것을 자신의 길이라고 착각한다는 뜻이다(p36)." 참 폐부를 찌르는 말입니다. ㅎㅎ 레밍스처럼 그저 다수의 무리(이조차도 착각이죠. 그게 다수의 길이기나 하다면 말도 안 합니다)에 휩쓸려 끌려가는 당사자에게 이런 말을 해 줘 봐야 쇠 귀에 경 읽기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올바른 세계관, 자아상이 정립되어야 하는데 이미 머리가 저리 굳어버리고 나면 답이 없습니다. 이런 좀비 같은 인간보다야 (극악무도한 범죄자이긴 하나) 자기 의지와 느낌대로 한 순간이나마 산 뫼르소가 더 자유인에 가까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알베르 까뮈가 대체 왜 자신의 대표작 중에 저런 극단적인 인성 파탄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을지 한 번이라도 진지한 의문을 가져 봒겠습니까? ㅋ 그게 다, 착각 속에 빠져 사는 저런 좀비들을 조롱하기 위해서인데 말입니다. 모든 게 다, 입시 통과를 위한 족보 노트화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한심한 암기 중독자 주제에 지식인, 교양인으로 스스로를 착각하는 거죠.

p30에는 심리학자 나다니엘 브랜든의 말이 인용됩니다. "자신감이 높은 사람은 현재의 삶을 잘 받아들인다." 스스로가 환상, 허상 속에 갇혀 살기에, 예전 무슨 노래 가사처럼 "지금 자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하는 거죠.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람이 무슨 철학을 논하고 공부한다는 말입니까. p29에는 방탄소년단의 한 멤버가 UN에서 연설했던 내용 일부가 인용되는데, 메시지의 핵심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입니다. 나르시시즘은 올바른 자기 사랑 방법이 아닙니다. 일종의 허상을 스스로에게 투영하여 그 허상을 (자신 대신에) 사랑하는 거죠. 사람은 아무리 거짓말쟁이라고 해도, 스스로가 자신에게 확신을 갖는지 아닌지, 스스로가 가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그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압니다. 그러기에 참된 자신감을 갖고 현재를 침착하게 객관적으로 해석하고 대응한다는 게 여간 내공으로는 가능한 게 아닙니다. p24에는 라 로슈푸코의 말이 나오네요. "남의 흉내를 내는 것은 어리석다."

p128에는 다시 방탄소년단의 그 멤버가 UN에서 행한 연설의 일부가 인용됩니다. 아무래도 요즘 청소년들에게 더 강한, 더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이분들이라서인 듯합니다. 연설문 자체는 참으로 맞는 말이며 흠 잡을 데도 없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게 그 방법까지 올바르며 타당한 목표를 잡기란 참으로 어려운 과업이니 말입니다.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어떤 공부라든가 기능의 습득이 아니라 "자신을 올바르게 아는 길"이라는 건 다소 의외지만, 그만큼 새로운 세상에 어떤 본질적인 부분을 직시하며 적응한다는 게 어려워서이기도 합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고, 난관에 봉착할수록 "지피지기", 즉 자신과 그 환경에 대한 올바른 성찰이 필요해서이기도 합니다.

창의력을 향상시키려면 먼저 (자신에 대한 올바른 사랑을 통해 발견한) 진짜 취미, 적성이 뭔지를 알아야 합니다. 저자는 "모든 분야에 능통하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한 분야에 능통"해지는 게 필요하다고 말합니다(p143). 이런 창의력이 계발되어야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습니다. 올바른 해법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상황에 대한 유연한 대응이 또한 필요합니다. p153에는 과거 피처폰 시대의 강자였던 노키아가 어떻게 해서 무너졌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노키아의 잘못된 임기응변 사례"도 주의 깊게 읽어 볼 만합니다. 그들은 자체 OS인 심비안을 내놓았는데 "기능이 너무 단순해서 시장에서 외면받았다"고 합니다. 임기응변 자체는 나무랄 게 없으나 그 방법까지도 타당해야 했었다는 거죠.

요즘은 어디서나 교감, 소통, 공감의 미덕을 강조합니다. 이것을 위한 첫걸음이 바로 "경청"입니다. 무슨 궁예도 아니고(ㅋ), 남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려면 먼저 그 사람의 말을 들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무슨 맥락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훈장질부터 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적 자체도 포인트를 못 짚은 바보스러운 것이지만, 도대체 자신이 누구한테 무엇을 지적하고 말고할 자격이 되는지부터를 먼저 좀 진지하고 솔직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연자방아를 돌리는 소의 머리에는 검은 보자기를 씌운다.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돌고 있다는 걸 모르게 하기 위해서이다(p41)." 이 말이 자연과학적으로 근거를 갖춘 것이건 아니건 간에, 사람이건 동물이건 어떤 의미를 끊임없이 찾고 지향한다는 점은 그 강도의 크기에 무관하게 진실일 수밖에 없습니다. 뒤에는 경주마에 착용시키는 "차안대" 이야기도 나옵니다. 저자가 십대들에게 주장하는 건 명확합니다. "강요된 차안대를 스스로 벗고 내 생의 의미를 발견하자." 먼저 참된 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어떤 신들린 창의력도 발견되고 계발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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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툼이 상처로 남지 않으려면 - 세상 모든 연인들과 나누고 싶은 연애의 모든 것 '연애담'
감정수학자 지음 / 모모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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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세상에서 관계의 깔끔한 유지, 발전, 가꿔나감, 뭐 이런 게 가장 어려운 과제 같습니다. 무조건 나만 최선을 다해 잘한다고 결과가 좋은 것도 아니고,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돌발 변수도 많이 생깁니다. 얼마 전 어느 유명인의 소셜 미디어에 "좋은 사람들한테만 잘하자"라는 문구가 게시되어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 그렇게 막상 마음을 먹어도 실천에 옮긴다는 게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 책 저자분은 그 명의(?)가 "감정수학자"라고 되어 있는데 정말로 감정을 다루는 수학자가 있다면 위상수학 미분기하 복소해석 이런 분야보다 더 뛰어난 자질이 요구될 것 같습니다. 주식 시장도 만약 사람의 감정(들)을 자유자재로 파악하는 전문가가 있다면 돈을 원하는 만큼 다 쓸어담을 수 있을 겁니다. 증시에서도 알고보면 가장 중요한 게 소위 "센티"이니 말입니다.

p20에는 "친절 금지"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은 애인을 불안하게 만드는 법이다." 어떤 법률가는 TV에 출연하여 말하기를 "여성분들이 보통 친절하니까, 남자들이 이를 착각하여..."라면서 성범죄의 한 주요 원인으로 꼽던데 물론 발언자의 취지는 "남자 측의 (흔한) 착각"에 포인트를 둔 것이지 "여성의 친절"이 문제라는 식은 아니었습니다. 공적 기관이나 민간 회사에서리셉션 같은 업무를 보는 여성(혹은 누구라도)이 그럼 불친절해서야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 책에는 "친절함에 다른 의도가 없더라도, 상대가 느끼는 감정은 다를 수 있어서이다."라는 구절이 바로 뒤에 이어집니다. 이게 참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여성뿐 아니라, 요즘은 남자들도 어떤 "보편적 친절" 같은 걸 매너로 장착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가식일 수도 있고 천성이 그래서일 수도 있습니다. 여튼 이런 남성이, 평소에 그가 원하던 타입의 여성의 시야에 들어올 확률이 높아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뭐 여튼 연애가 일단 시작되면, 두루 불친절한 타입이 자신에게만 친절할 때, 당사자는 "자신만 사랑 받는다"고 여길 수 있다는 게 저자의 말입니다(그렇게 해 주라는 거죠). 이 문장에서 주어와 목적어(혹은 부사어)에 성별 표시는 따로 없습니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그리 느낀다는 겁니다(맞죠). 그래서 이 꼭지는 "다른 이성에게 친절 금지"라는 말로 끝납니다.

p74에는 "사이즈가 딱 맞는 사람 되어주기"라는 글이 있습니다. "넘치게 해 주는 사랑이 최고라 여겼다...." 즉 지난 연애의 실수를 이번의 그녀에게는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게 의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녀가 말하길 '나에게도 표현할 기회를 줘'...." 과한 건 모자람만 못하다는 상식의 확인일 수 있고, 배려이든 사랑이든 일방적인 건 결국 이기적인 것이라는 결론일 수도 있습니다. 다음 페이지인 p75에는 "독점 관계"를 주의하라는 말도 나옵니다.

"너무 많이 양보했던 관계를 후회한다(p91)." 물론 누구나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저 위의 "나 혼자 너무 많이 표현하는 관계, 애정"하고는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실패한 관계라면 "아 내가 너무 많이 양보했구나" 하고 거의 반드시 후회하겠지만, 이는 실패를 했기 때문에 도달하는 일종의 결과론 아닐까요? 저자의 맥락은 독자인 제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상대는 이제 나의 양보를 일상처럼 여기게 되었다고 하는데, 뭐 흔히 하는 말로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그 뜻이겠습니다. 이 다음이 중요한데, 지치게 된 내 입에서 이제 나오는 말이 "나는 이렇게까지 하는데...."입니다. 그 다음에는 상대에게 양보를 강요하게 되더라는군요. 이게 문제라는 거죠.

"누가 양보해 달래?(p91)" 역시, 저 위에 나온 말처럼 "사이즈가 맞는 양보(나 배려)"가 중요합니다. 같은 페이지 밑에는 이런 말도 나옵니다. "일방적으로 주는 사랑이, 서로 교감하고 조율하는 사랑보다 훨씬 쉽다." 특히 남성들이 이런 부분을 정말 잘 알고 이해하고 염두에 두고 실천에 옮겨야 할 듯합니다. 무조건 퍼 주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겁니다. 과거에는 이런 유형이 잘 통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죠. 일방적으로 퍼 준다고 퍼 줬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그런 게 꼭 필요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이런 걸 억지로 안기고서 나한테 나중에 뭘 요구할까?" 같은 부담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서로 몹시 사랑하면 다 극복될 문제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불타는(불탔던) 사랑도 이런저런 서로의 사소한 실수가 되풀이되면 어느새 "상하게" 마련입니다. 이 글의 마지막은 "사랑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니에요"라는 말로 마무리됩니다. 원하지 않는 건 애초에 줄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일찍 지치지 않겠습니까.

"답정너"라는 유행어도 있지만 질문은 사실 질문에 대한 (명)답이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너에게 던진 질문에는 어쩌면 나의 기대가 담겨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걸 너도 좋아했으면 하는 기대(p118)" "그래서 요즘은 '이거 좋아해?'가 아니라 '뭘 좋아해?'라고 묻는다." 상대가 나한테 잘 맞는 사람인지, "마음을 열어도 되는 사람인지" 기색을 살피며 접근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나에게 마음을 열어도 되게끔 안심을 시키고 진짜 배려를 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좋은 마음에서 호의를 베풀면, 마치 자신이 왕인 듯 호의를 당연히 여기는 꼰대들도 참 (사회에는) 많더라(p138)."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런 유형(즉 저런 꼰대)은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아주 예전 분들은 그래도 체면이라는 걸 알아서 아랫사람한테 뭘 받으면 더 줄 줄도 알았는데 어정쩡하게 나이 먹은 세대가 문제입니다. 남 이야기 할 게 아니라 당장 나부터도 혹시 저런 추태를 보이지 않는지 반성할 일입니다. 여튼, 그래서 이 파트의 결론은 "(사회에서 거의 모든 관계가) 포장을 해야 하는 형식적인 관계 속에 지쳤지만, 너에게만큼은 그 포장 모두 벗겨 내고 진심으로만 예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인데, 글쎄요. 상대가 어느 정도는 나의 포장을 원한다면? "너의 그런 모습까지는 보고 싶지 않어" 같은 생각이라면? 이 역시 자신이 센스 있게 요량하고 배려할 부분입니다.

"연인 관계에서도 복선이라는 게 있다. 상대가 나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내가 그것을 직면하고 수용할 수 있을지를 (미리) 결정해야 한다(p178)." 그러니 여기서 말하는 "복선"이라는 건 일종의 조짐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복선은 극을 구경하는 재미를 더하지만, 애정 관계에서의 복선은 의식적이든 아니든 간에 일종의 경고입니다. 저자는 "그 복선이 문제를 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고 하며,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낌새나 확증(이 말이 무섭네요)을 무시하면 나중이 더 힘들어진다"고 합니다. 참 공감되지 않습니까? 귀찮기도 하고, 혹은 주식 사고 나서 안 좋은 정보나 조짐을 모두 무시하고 잘되려니 자기 합리화하는 심리나 비슷합니다. "사랑은 모든 걸 참고 극복하고 덮어주는 것"이라는 말처럼 무섭고 무책임한 게 없을 듯합니다. 사랑이건 뭐건 모두 현실의 문제이니, 현실 감각을 냉철히 유지하며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건 당연한 상식인데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건 그 사람의 마음이 큰 게 아니었다. 내 마음이 커서 뭐든 좋게 봤던 거지. 그 사람이 날 많이 좋아한다고 믿고 싶었던 걸까(p179)." 참 마음 아픈 말입니다. 나는 이처럼 널 좋아하는데, 왜 너는 그렇지 않을까? 예전에는 제3자가 애정 당사자 한 사람에게 충고할 때, "저 사람이 널 좋아하는 것보다, 네가 저 사람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이것도 많이 돌려서 하는 말이고, 사실 저쪽은 너를 좋아하지 않거나 이용하는 것 같다는 소리죠. 후.... 그래도 내가 저 사람 좋아하는 건 사실이니, 후회없이 잘해기라도 해 봐야 나중에 미련이 남지 않는 걸까요? 예전에 저는 <사랑과 전쟁>에서 이런 대사를 들은 적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누굴 좋아했다는 게 무슨 장점이 있는지 알아? 나중에 미련이 안 남는다는 거야." 이것은남편의 외도로 일단 헤어졌다가 나중에 다시 합치자고 찾아온 남편에게 (다 타 버린) 아내가 던지는 대사입니다. 관계란 이처럼이나 어렵고 복잡해서, 아무리 현인이라 해도 능숙히 핸들링할 수 없을 듯합니다.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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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교양 - 한 권으로 세상을 꿰뚫는 현실 인문학 생각뿔 인문학 ‘교양’ 시리즈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엄인정.김형아 옮김 / 생각뿔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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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4에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한 구절이 나와 있습니다. 위에 독일어로 인용된 건(von  einem tage zum andern sich durchhilft...) 마지막 줄의 원문입니다. 번역에서 생략이 되긴 했으나 von einem tage zum andern는 "하루하루", andern sich durchhilft라는 구절은 "스스로 만족을 느끼며... "에 해당합니다.

다음 페이지에 나오는 말이 우리의 심금을 울립니다. 우리가 불행한 건 어떤 욕구, 현실에서 만족되지 않은 어떤 헛된 욕망에 우리가 부질없이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기대치가 낮으면 어떤 것에건 우리가 실망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책에 나오는 대로, 힘든 일상을 마치고 곤히 잠을 청하며 다음날 가뿐하게 일어날 수만 있어도 그것이 곧 행복입니다.

p77에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으로부터 한 구절이 인용됩니다. 경제관념이 불명확한 이는 "수입과 지출이 불명확한 상태에 있어야 행복을 느끼고..." 경제관념이 뛰어난 사람은 매일 불어나는 행복의 총합을 보는 것만큼 큰 기쁨이 없다고 합니다. 뒤의 구절은 우리가 당연히 공감할 수 있는데, 앞 구절도 과연 그럴까요? 하긴 경제관념이 불확실하니, 현실적으로 대부분 지출이 수입을 초과할 것이며, 따라서 이런 위험하고 불리한 현실을 구태여 알고 싶어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실 이건 보통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현재 유독 지출이 많았다면, 은행 잔고와 카드 청구서 내역을 구태여 들여다보고 싶지 않을 겁니다. 반대로, 영리하게, 예를 들어 정부 외식 쿠폰 이벤트 등에 참여한 사람이라면, 카드 앱에 들어가서 이제 얼마만 더 쓰면 요건 충족인지 매일 뿌듯해하며 들여다보다가, 드디어 캐시백이 되면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좋아서 시선을 고정시키겠죠. 사실 요즘은 18세기가 아니라서 경제관념이 없으면 살아남기가 힘든 터라 안 저런 사람이 없을 것도 같습니다.

p157에는 <파우스트>의 한 구절이 나옵니다. 인용된 독일어 구절은 "위대한 목표는 처음에는 미친 짓 같지만..."의 원문입니다. 그런데 이 문장(Ein großer Vorsatz scheint im Anfang toll)에는 "미친"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또 Doch 앞에는 어떤 문장부호가 생략된 것처럼 보입니다.

p165에는 다시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으로부터 한 구절이 인용됩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어떤 다양한 열망이 불씨처럼 살아 있습니다. 이것은 대체로 젊었을 때에는 쉬지 않고 불타다가, 나이가 들면 서서히 약해지는 게 보통이죠. 이것을 영어로는 flickering이라 표현하고, 요즘 자주 들리는 경제용어 tapering의 원 뜻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책에는 "쉬지 않고 불씨를 살릴 것"을 충고합니다. 아무리 집요한 집념이나 강렬한 욕구라고 해도 어떤 시련 때문에 좌절할 수 있고 이럴 때 불씨는 일시적으로라도 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p230에는 이런 말도 나오는군요. "내가 가진 그리움을 헤아려 순순히 내게 손을 다오. 우리 둘을 잇는 이 끈이 부디 약하디약한 꽃잎으로 만든 끈이 아니길 바란다." 역시, 인용된 독일어 원문은 후단만에 해당합니다. Sei는 독일어 동사 sein의 명령형으로 쓰였습니다. kein은 부정(否定)어입니다.

p278에는 <파우스트>에서 다시 한 구절이 인용되네요. 독일어 원문은 "공로가 있어야 행복이 따라온다는 것을 저 바보들은 결코 깨닫지 못하는구나."라는 중단만의 원문입니다. 독일어 공부해 본 적 있는 분들은 바보들이라는 뜻의 Toren, 복수 3격이 아마 눈에 익을 것입니다.

역시 괴테의 수많은 명작에는 우리의 삶에 어떤 소중한 교훈이 될 만한 명언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런 명문장들이 독일어 원문과 함께 책에 실렸기에, 독자들이 독일어 공부와 함께 진행할 수도 있겠습니다. 번역도 훌륭하지만 우리는 원문과 함께, 그 독특한 풍취를 느끼면서 괴테의 깊은 가르침과 통찰을 마음에 새길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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