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 4차 산업혁명을 이기는 능력 - 고사성어로 준비하는 미래형 인재 특서 청소년 인문교양 10
임재성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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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이 눈 앞에 다가왔다고도 하고, 이미 현재진행형이라고도 합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기존 직업 80% 이상이 사라질 전망이니 자라나는 아이들은 창의력과 공간지각능력, 코딩 실력 등을 특별히 길러야 한다고도 이야기되죠. 그러나 그 누구도 구체적인 대응 방법을 일러 주지는 않습니다. "그레이 스완"이란 말이 있는데 어떠어떠한 상황이 일어나는 것 자체는 거의 확실하지만, 대처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경우를 가리킵니다. "4차 산업 혁명" 역시 그 좋은 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에 닥쳤던 세 차례의 산업 혁명은 (역시 일부 계층에서 거센 저항이 있었으나) 대체로는 더 많은 사람에게 편의와 쾌락과 넉넉한 생산성을 가져왔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 네번째 산업혁명은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큰 것도 같습니다.

예전에는 정보가 너무 얻기 어려워서 문제였는데, 반대로 요즘은 정보가 지나치게 흔합니다. 이미 20년 전에 모 컴퓨터 월간잡지에 글을 연재하던 어느 칼럼니스트가 이런 상황을 예견했는데 그 당시에는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엉터리 정보의 홍수라니, 너무 배부른 고민이 아닐까?" 그러나 지금은 이게 엄연히 현실이 되었습니다. 저자는 여기서 "논리적 사고력"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엉터리 정보, 혹은 가짜 뉴스는 그 자체만 단절적으로 놓고 보면 그럴싸해 보이지만, 전체 맥락 안에서 놓고 보면 매우 허술하고 모순덩어리입니다.

"생각의 근육들이 탄탄해야 논리적 사고력이라는 기초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p62)." 어려서부터 독서가 부실하고 부호 암기식 공부에만 매몰된 자가 공부를 통해 모종의 기쁨을 발견할 리가 만무하고, 어떤 자신만의 개성적인 시야가 생길 리가 없습니다. 마치 조선 시대 교조 성리학을 맹종하는, 혹은 이슬람 교의를 글자 그대로 맹신하는 장님과 다를 바 없습니다. 눈치도 둔하고 타인에 공감할 능력도 없습니다. 4차 산업의 파고 속에 가장 먼저 도태될 군상 중 하나입니다.

"끌려가는 자는 자신보다 끌어가는 사람을 믿는다. 끌어주는 사람이 믿는 것일 뿐인데, 이를 자신이 직접 선택했다고 착각한다. 실제로는 누군가가 가라고 하는 길을 대신 걷는 것인데, 그것을 자신의 길이라고 착각한다는 뜻이다(p36)." 참 폐부를 찌르는 말입니다. ㅎㅎ 레밍스처럼 그저 다수의 무리(이조차도 착각이죠. 그게 다수의 길이기나 하다면 말도 안 합니다)에 휩쓸려 끌려가는 당사자에게 이런 말을 해 줘 봐야 쇠 귀에 경 읽기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올바른 세계관, 자아상이 정립되어야 하는데 이미 머리가 저리 굳어버리고 나면 답이 없습니다. 이런 좀비 같은 인간보다야 (극악무도한 범죄자이긴 하나) 자기 의지와 느낌대로 한 순간이나마 산 뫼르소가 더 자유인에 가까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알베르 까뮈가 대체 왜 자신의 대표작 중에 저런 극단적인 인성 파탄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을지 한 번이라도 진지한 의문을 가져 봒겠습니까? ㅋ 그게 다, 착각 속에 빠져 사는 저런 좀비들을 조롱하기 위해서인데 말입니다. 모든 게 다, 입시 통과를 위한 족보 노트화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한심한 암기 중독자 주제에 지식인, 교양인으로 스스로를 착각하는 거죠.

p30에는 심리학자 나다니엘 브랜든의 말이 인용됩니다. "자신감이 높은 사람은 현재의 삶을 잘 받아들인다." 스스로가 환상, 허상 속에 갇혀 살기에, 예전 무슨 노래 가사처럼 "지금 자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하는 거죠.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람이 무슨 철학을 논하고 공부한다는 말입니까. p29에는 방탄소년단의 한 멤버가 UN에서 연설했던 내용 일부가 인용되는데, 메시지의 핵심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입니다. 나르시시즘은 올바른 자기 사랑 방법이 아닙니다. 일종의 허상을 스스로에게 투영하여 그 허상을 (자신 대신에) 사랑하는 거죠. 사람은 아무리 거짓말쟁이라고 해도, 스스로가 자신에게 확신을 갖는지 아닌지, 스스로가 가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그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압니다. 그러기에 참된 자신감을 갖고 현재를 침착하게 객관적으로 해석하고 대응한다는 게 여간 내공으로는 가능한 게 아닙니다. p24에는 라 로슈푸코의 말이 나오네요. "남의 흉내를 내는 것은 어리석다."

p128에는 다시 방탄소년단의 그 멤버가 UN에서 행한 연설의 일부가 인용됩니다. 아무래도 요즘 청소년들에게 더 강한, 더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이분들이라서인 듯합니다. 연설문 자체는 참으로 맞는 말이며 흠 잡을 데도 없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게 그 방법까지 올바르며 타당한 목표를 잡기란 참으로 어려운 과업이니 말입니다.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어떤 공부라든가 기능의 습득이 아니라 "자신을 올바르게 아는 길"이라는 건 다소 의외지만, 그만큼 새로운 세상에 어떤 본질적인 부분을 직시하며 적응한다는 게 어려워서이기도 합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고, 난관에 봉착할수록 "지피지기", 즉 자신과 그 환경에 대한 올바른 성찰이 필요해서이기도 합니다.

창의력을 향상시키려면 먼저 (자신에 대한 올바른 사랑을 통해 발견한) 진짜 취미, 적성이 뭔지를 알아야 합니다. 저자는 "모든 분야에 능통하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한 분야에 능통"해지는 게 필요하다고 말합니다(p143). 이런 창의력이 계발되어야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습니다. 올바른 해법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상황에 대한 유연한 대응이 또한 필요합니다. p153에는 과거 피처폰 시대의 강자였던 노키아가 어떻게 해서 무너졌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노키아의 잘못된 임기응변 사례"도 주의 깊게 읽어 볼 만합니다. 그들은 자체 OS인 심비안을 내놓았는데 "기능이 너무 단순해서 시장에서 외면받았다"고 합니다. 임기응변 자체는 나무랄 게 없으나 그 방법까지도 타당해야 했었다는 거죠.

요즘은 어디서나 교감, 소통, 공감의 미덕을 강조합니다. 이것을 위한 첫걸음이 바로 "경청"입니다. 무슨 궁예도 아니고(ㅋ), 남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려면 먼저 그 사람의 말을 들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무슨 맥락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훈장질부터 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적 자체도 포인트를 못 짚은 바보스러운 것이지만, 도대체 자신이 누구한테 무엇을 지적하고 말고할 자격이 되는지부터를 먼저 좀 진지하고 솔직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연자방아를 돌리는 소의 머리에는 검은 보자기를 씌운다.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돌고 있다는 걸 모르게 하기 위해서이다(p41)." 이 말이 자연과학적으로 근거를 갖춘 것이건 아니건 간에, 사람이건 동물이건 어떤 의미를 끊임없이 찾고 지향한다는 점은 그 강도의 크기에 무관하게 진실일 수밖에 없습니다. 뒤에는 경주마에 착용시키는 "차안대" 이야기도 나옵니다. 저자가 십대들에게 주장하는 건 명확합니다. "강요된 차안대를 스스로 벗고 내 생의 의미를 발견하자." 먼저 참된 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어떤 신들린 창의력도 발견되고 계발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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