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라면 유대인처럼 - 유대 5천 년, ‘탈무드 유머 에센스!’
박정례 편역 / 스마트비즈니스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은 어느 다른 동물 못지 않게 각박한 생존 경쟁에 시달립니다. 자연으로부터의 거센 도전에도 응전해야 하며, 인간이라는 같은 종이 지어낸 사회라는 틀 안에서도 주어진 저마다의 역할을 해 내고 동시에 조직 내 경쟁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는 과제를 떠맡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인간은 작은 여유를 찾고 낭만을 즐기며 자신을 성찰할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며, 그런 활동이나 사고, 감정 표현은 "유머"라는 형식 안에 집약됩니다.

유대인 하면 대개 근엄한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은 그들의 지혜 보고라 불리는 탈무드 안에도 많은 유머가 실려 있습니다. 이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감각으로 유머를 빚어낸 건, 아마도 타 종족의 질시와 견제 속에 끈질긴 생명을 유지하려 든 그 치열한 노력 속에서 더 절실하게 반대의 여유가 필요해서였지 싶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잘 정리된 유머 중에는 약간의 슬픔, 애잔함, 역설, 혹은 자신을 시니컬하게 성찰한 씁쓸한 교훈 같은 것도 엿보입니다. 어떤 건 몇 번을 거듭해 읽고 그 숨은 뜻을 새겨 봐야 비로소 뜻이 와 닿는 것도 있습니다.

"가장 맛있는 음식(p63)"을 만드는 레시피는 과연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이 "이 돌 하나면 가장 맛있는 수프가 완성된다"며 가정 주부에게 건네 줍니다. 짐짓 맛을 보며 감자가 필요하다고 하자, 호기심이 구경 온 어느 부인이 집에 가서 가져오죠. 그 다음에는 야채, 그 다음에는 소금,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각자 조금씩 손을 보탠 재료가 들어가고, 즐거운 대화가 오가며 화목한 분위기가 조성되니 그 정체 모를 수프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예수의 오병이어 이야기도 결국은 "나눔으로써 더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강조했다는 설도 있고, 물리적 영양보다는 모두가 함께 감정을 공유하는 훈훈한 분위기 자체가 음식의 맛을 최대로 돋운다는 결론이겠습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도 있듯, 수다를 떨고 이런저런 불편한 감정을 떨쳐 내면 자연히 배도 고프게 마련이지 않을지요.

"'당신이 내게 낫을 빌려 주지 않았는데, 내가 말을 당신에게 빌려 주겠소?' - 이것은 복수다. '당신이 내게 낫을 빌려 주지 않았지만, 나는 당신에게 말을 빌려 주겠소.' - 이것은 증오다." 이 유머(p79)의 펀치라인은 마지막 줄입니다. 말을 빌려 줌으로 해서 이 사람은 상대방보다 도덕적 우위에 서고 명분을 갖추게 됩니다. 그는 상대에 대해 마음 놓고 나쁜 평판을 퍼뜨릴 수도 있고, 마음으로부터 확신하는 어떤 우월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복수는 이런 근원적 증오에 비하면 일차원적 행동이며 위험성도 독소도 덜합니다.

"재산의 1/4을 주면 나를 존경하겠는가? - 대등하지 않은데 왜 그래야 합니까? - 그럼 절반을 주면? - 이미 대등한데 뭐하러 존경하겠습니까? - 그럼 전부를 주면? - 그때쯤 되면 나는 당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웃자고 만든 이야기겠으나 이것만큼 인간의 자기 중심성, 이기적인 본성을 잘 드러낸 표현도 없을 것 같습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은 못해서 무시하고, 잘난 사람한테는 당연하다는 듯 시기와 질투를 일삼고... 이 유머의 진짜 교훈은, 타인과 이웃과 세상의 부조리함, 비이성적 감정적 반응을 그저 당연하게 여기고 반응하자는 것일 듯합니다. <사기열전>에도 모수가 평원군더러 염량세태에 상심하지 말라고 충언하는 대목이 있죠.

양치기 소년의 일화는 평소에 신뢰를 쌓자는 것이겠는데. 이 책에 실린 것은 좀 다른 버전(p142)입니다. 어른들이 의심하자 소년은 오히려 더 큰소리를 칩니다. "이렇게 천천히 오시니 제가 혼자 늑대를 쫓다 죽을 뻔하지 않았습니까?" 그 다음에는 진짜로 늑대가 나타났는데, 소년도 결사적으로 소리를 쳤을 뿐 아니라 어른들도 목숨을 걸고 쫓아와 달려들어 큰 피해를 "진짜로" 막았습니다. 반면 "책임감이 강하고 평소에 어른들에게 모의 훈련도 안 시킨" 정직한 양치기는 오히려 도와 주는 사람도 없어 혼자 사투를 벌이다 크게 다쳤다는.... 히틀러도 얘기한 바처럼 "거짓말을 할 바에는 아예 큰 거짓말을 하라."는 씁쓸한 교훈의 타당성이 여기서도 확인되는 것 같습니다. 너무 성실한 사람은 혼자 짐을 지다 허리가 부러집니다.

p219에는 미인을 얻기 위해 용감하게, 혹은 무모하게 행동에 나서다 후궁을 호위하는 내시에게 들켜 목숨을 잃은 뻔한 청년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왕은 오히려 청년의 담대함과 솔직함을 칭찬하고 큰 상을 내리는데, 죄를 저지른 자에게 원칙대로 형벌을 집행하려 했던 내시는 왕에게 크게 실망하고... 반란을 일으키거나 자신 역시 후궁을 취하려 든 게 아니라.... 궁을 나와 사업을 벌여 크게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사촌이 땅이라도 사야 위장병을 고친다"라는데, 예전에 읽었던 <패러독스 이솝우화>와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습니다(바로 위의 이야기도 그렇구요).

우리는 일상에서 여러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삽니다만, 그 고마움은 그 당연하다는 듯 여겨 온 편의가 사라져 봐야 비로소 절감합니다. p96에는 닭 등 가축을 집에 들였다 내 몬 후 그 평온과 질서가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비로소 깨달은 이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정말 하루라도 인터넷이 끊기고 그 불편을 절감해 봐야 고마움을 아는 거죠.

촌철살인의 유머 속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던 진실, 혹은 알았다고 착각했지만 그 오의를 깨닫지 못하던 여러 귀한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책 p117에는 "유일하게 자살하는 동물이 인간"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유일하게 유머의 가치를 아는 동물"도 인간이 아닐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