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빅 트렌드 - 세상을 바꾸는 인사이트 노트
Try Everything 사무국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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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역 중에는 역사 내 층계 사이의 작은 공간을 이용하여 창업 컨설팅을 해 준다는 안내가 붙은 곳이 있습니다. 지나갈 때마다 서울시가 참 열일한다, 해당되는 젊은 창업자들에게 도움이 되겠다 같은 생각이 스쳐지나가곤 했습니다. 이 책은 3자 명의 공저로 되어 있는데, 그 중 둘이 서울시 투자창업과, 서울창업허브입니다(나머지 한 곳은 매일경제 지식부). 책의 프롤로그에서는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분명 힘이 있다(p4)"고 하며,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의지도 주목할 만하다(p5)"고도 합니다. 현황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지만 플레이어들이 활력을 유지하고, 그 후원자들도 유능하다면 일단 그 미래에 힘이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이 책은 작년(2020)에 열린 TRY EVERYTHING 2020이라는 행사에 대한 자세한 (지면상)재현과 평가를 담은 기록이기도 합니다. 강연, 경진대회, 전시홍보, 멘토 멘티 프로그램 등으로 채워진 행사였으며 미국의 테크크런치 같은 행사가 되게 글로벌 규모로 열렸다고 합니다. 작년이 제1회였는데 앞으로도 한국 내는 물론 세계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즐기는 축제가 되도록 이어진다고 합니다. 독자인 저는 사실 당시에 전혀 몰랐는데 참 뜻깊은 이벤트였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알파벳이라는 기업을 모르는 분이 있는데 구글 관련 지주회사입니다. 꼭 코로나가 아니었다고 해도 요즘은 화상 대담, 인터뷰 형식이 무시못할 주류인데 존 헤네시 회장을,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장이 좌장이 되어 이끈 대담이 있었고 이 책 가장 처음에 실렸습니다.

LG가 얼마 전 스마트폰 사업을 접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로 발표를 하여 아직까지 여파가 진정되지 않습니다. LG MC의 가장 큰 패착 중 하나로 많은 이들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의 실패를 꼽습니다(이는 삼전도 사실 큰 차이가 없습니다만). 헤네시 회장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주도하던 시절에도 언제나 인텔은 기술 경쟁력을 잃지 않았는데, 요즘 처음으로 근본적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지적(p16)을 합니다. 며칠 전 인텔이 (경쟁사라고도 볼 수 있는) 삼전에 GPU 파운드리 수주를 주겠다고 했으며, 몇 달 전에는 하이닉스에 낸드 사업부를 팔았습니다. 이게 다 앞으로는 소프트웨어 지배역량 강화에 더 힘을 쏟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죠.

요즘은 이용자 경험의 공유가 사업 성패의 요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메이크어스 우상범 대표는 수익성을 생각 않고 그저 좋아하는 일이었기에 "토크 콘서트"의 연사 초빙, 티켓 판매, 대관(p39) 등의 업무를 시작했었다고 합니다. 이 신 나는 체험을 더 널리 공유하기 위해 페이스북 페이지 하나를 "인수"했고, 1년 만에 영상제작 PD 100명을 영입하여 국내 페북 내 1등 미디어(p40) "딩고"를 성공적으로 유저들에게 각인시켰다고 합니다. 사실 책 읽기 전에 독자인 저는 딩고가 뭔지도 몰랐는데 읽고 나서 검색해 봤습니다. 우 대표의결론은 "1등, 그것도 압도적인 1등을 해야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요즘 테슬라 덕에 국내에서도 돈 많이 벌었다는 개미 투자자들이 많죠(이 글 쓰는 시점 근처 며칠 동안에는 크게 내렸습니다만 작년 봄부터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존 맥닐 씨는 그 회사의 글로벌 세일즈 앤 서비스 사장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테슬라 카를 사려면 어느 전시장이나 딜러 사무실에 가야 하는 게 아니고, 주문을 하면 유저가 편하게 척 갖다 준다고들 제가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테슬라 마니아들에게 이분은 친숙한 존재이거나, 최소한 직접 업무에 관여하는 분이겠죠. 이 책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기업의 스케일업"인데, 모르긴 해도 테슬라보다 이 이슈에 대해 더 할 말이 많은 기업도 없을 듯합니다. 스케일업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게 테슬라죠. 그가 말하는 핵심은 "간결화, 단순화"라는군요. 우리가 아는 "선택과 집중"과도 통하며, 어디까지나 사용자가 편하게 여기는 방향으로 전략의 초점을 맞추라고 합니다.

"유니콘 기업은 현지화에 투자해야 한다(p57)." JF 고디어라는 분은 "스타트업 지놈 대표"인데, 이 회사가 하는 일은 스타트업을 발굴 지원하고, 나아가 스케일업을 돕는 것이라고 합니다(p59). 그는 말레이시아의 그랩 같은 회사를 예로 들며, "이 회사는 우버를 카피했지만 우버가 할 수 없는 시장경쟁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수십 억 달러의 가치를 만들어 내었다(p61)"고 합니다. 한국에 수십억원짜리 스타트업이라고 해도 같은 그룹 안에서 부러운데 수십억 달러... 이 대담에는 패널로 마크 랜돌프 공동창업자(넷플릭스)도 참여했는데 그가 한 말은 "해외에 진출할 때 그 나라의 컨텐트 크레에이터를 존중하려 노력했다"입니다. 과연 요즘 한국에서 넷플릭스가 승승장구하는 걸 보면 그 판단이 맞았다 싶습니다.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한국인들이 자국 컨텐츠에 로열하니 말입니다.

"라이브 칠링(p78)"이라는 말을 들어봤나요? 꼭 코로나가 아니라도, 요즘은 별 용건 없이 영상을 틀어놓고 랜선 미팅, 랜선 술자리 같은 걸 만들며 즐기는게 젊은이들 사이의 새로운 문화라고 합니다. 이는 스무디 대표 조현근 씨의 말입니다. 그런데 몇 년 전 사물인터넷의 보안 오류로 인해 한국인들의 일상이 알지도 못하는 중국인들 사이에 공유된 사건처럼, 이런 세상일수록 보안이 또 중요(p80)하겠죠. 센스톤 대표 유창훈 씨의 말입니다.

스마트폰 덕분에 다양한 앱을 깔고 다채로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대신 설치시 이런저런 권한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 중 중요한 게 "위치 정보"이며, 실제로 스타트업 중 가장 유망한 분야가 이 위치정보 기반(p89)일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관심 깊게 읽은 파트는 마티유 바레라는 아이디인베스트 매니징 파트너의 말들이었습니다. 예전에 오바마가 한국에 왔을 때 네이버니 카카오톡이니 하는 IT 기업들을 일일이 거명해서 한국인들을 놀라게 했죠. 이처럼, 예전과는 달리 한국에서 성공한 기업은 해외에서도 (우리 생각 외로) 인지도가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분도 쿠팡에 대해서 빠삭하게 알고 있는 등 우리 독자들에게 의외의 놀라움을 줍니다. 그가 스타트업을 선별(하여 투자)하는 기준은 창업자의 리더십, 재능, 경청 능력, 회복 탄력성(p94)이라고 합니다.

레이 커즈와일 박사는 우리가 <특이점이 온다>로 잘 알고 있는 그분이죠. AI는 인간 지능의 확장이며 결코 경쟁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또 AI에게 어떤 나쁜 편견을 가르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데, 김성훈 네이버 클로바 담당자도 여기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애초에 AI에 무엇을 가르치고 안 가르치고의 문제(머신 러닝에서)가 대단히 어렵고, 무엇을 안 가르친다는 자체가 개인의 편향인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모르겠습니다. 예전 영화 로보캅을 보면 명령 체계를 넣어 행동제어를 하는데 이의 위계 충돌 문제 해결도 어럽겠고 말입니다.

도시는 과거에 어떤 필요약으로 여겨졌습니다. 사람이 모여 살면 위생, 범죄, 도덕적 타락, 교통 혼잡, 과중한 인프라 수요 등 여러 문제가 있으나 어쩔 수 없이 모여산다는 식으로... 그러나 이제는 기술이 발전하여 환경 오염 등 여러 병폐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저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스마트 도시에 살아야만 적극적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 바라볼 수 있는 비전이 있을 정도로 관련 테크놀로지가 구체화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비전은 에스에프시티의 제니퍼 스토이치코프 사무총장(p148)이 자세히 설명합니다.

스타트업은 참 멋진 일이며, 가뜩이나 취업난에 고생하는 젊은 세대에게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어떤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으며, 무엇보다 무슨 아이디어가 있어야 창업에 발이라도 들여다놓을 수 있고, 어떤 장래가 보장된 것도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허허벌판에 진입을 하겠습니까. 여간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닐텐데(주위에 누가 스타트업 창업하겠다면 당연히 보따리 싸 들고 말리겠죠), 이에 대해 저 앞의 넷플릭스 공동창업자 마크 랜돌프가 다시 등장하여, 이 험난한 창업에는 대체 어떤 덕목이 필요한지 자세히 이야기해 줍니다(p206). 창업 실제 준비하는 독자들은 이 부분부터 읽어도 될 듯합니다.

TRY EVERYTHING 2020이라는 이 행사가 글로벌한 성격이다 보니 참여자들의 면모도 다양하고 이들이 함께 빚는 이벤트의 내용도 다채롭습니다. 하드웨어 배틀이라는 것도 있는데 주로 기술력을 뽐내는 코너입니다. CUE 그룹은 중국회사인데 본업은 AI 등이며 여러 스타트업에 투자도 하는가 봅니다. 여기 스칸 대표라는 분은 실리콘 밸리에서 생활하다(p228) 베이징으로 돌아와 창업했으며 현재는 한국에 거의 상주하다시피하며 중요한 업무에 종사 중인 듯합니다. 한국 정부와도 교섭하고 대구 같은 지자체와도 긴밀히 협력 중인데 우리는 우리가 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세상이 급격히 변하는지 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동남아 중에는 싱가폴처럼 인프라나 산업제반 혁신, 교육 면에서 한국을 압도하는 곳도 있고, 아직은 우리한테도 배울 게 많을 듯한 베트남 같은 나라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들과 우리 한국 간의 교류 긴밀성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거고, 그 상당 비중이 스타트업 에이리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서울에 상주하거나 제 집 드나들다시피하는 "응우엔" 씨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네요. 세계를 내 무대로 삼을 젊은이들이라면 이들과 국경, 언어를 초월하여 아이디어도 교환하고 경쟁도 해야하는 것 아닐까요? 물론 친분도 쌓고 말입니다.

p274이하에는 행사 참여 기업 중 우수한 곳들을 대표의 프로필, 홈페이지 등과 함께 깔끔하게 안내, 정리합니다. 사업상 필요한 정보 소스가 될 것도 같고, 혹은 창업 준비하는 분들이라면 롤모델을 찾기 위해 참조해야 할 약전(略傳)으로 활용할 수도 있겠습니다.

몇 주 전에 세계지식포럼인사이트 2021을 정리한 책을 읽고 독후감도 남겼었는데 이번의 이 책도 매우 유익했습니다. 하는 줄도 몰랐던 행사인데 정말 많은 걸 책을 통해서나마 배웠고, 올해 행사에는 관심을 좀 갖고 지켜보며 공부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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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률을 버려라 - 글로벌 금융리더가 말하는 경영 철학과 리더십
김병호 지음 / 한국경제신문i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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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병호씨는 하나은행 은행장(p122), 세계은행 산하 국제금융공사 고문 등을 역임했으며 특히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최초로 해외자본을 유치하는 등 큰 업적을 남긴 분이라고 합니다. 한국은 이제 산업 분야에서는 세계 굴지의 기업 여럿을 갖고 있는 등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으나 금융 섹터에서는 미진한 부분이 크죠. 요즘 대한민국에 주식 안 하는 사람이 없는 만큼, 금융 분야에 평생 종사했고 특히 국제감각을 갖춘 원로의 충언은 우리 독자들이 특히 곱씹어볼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경영은 마라톤이다(p61)." 흔히 촌놈 마라톤이라는 말을 씁니다. 마라톤은 긴 게임이라서 에너지를 영리하고 신중하게 분배하는 게 레이스의 핵심인데 이를 감안 않고 초장에 힘을 다 빼는 어리석음을 가리킵니다.

경제학의 먼 태두는 스코틀랜드의 애덤 스미스였지만, 1920년대에는 에드가 로런스 스미스라는 이가 "이익 유보의 가치"를 최초로 발견하다시피한 학자였습니다. 그의 이론적 성과는 당시 최고의 경제학자들 중 한 사람이고 현재까지도 거대한 학파를 형성하는 흐름의 창시자인 존 메어너드 케인스가 그 탁월함을 지목하여 더 널리 알려졌죠. 이 책 저자에 따르면, 그전까지만 해도 주식 투자는 단기성 투기 이익이 그 본질처럼 여겨졌으며 기업이 거둔 이익을 재투자하여 복리의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건 대체로 간과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모습과 다를 게 별로 없죠.

요즘 흔한 말로 "가치 투자"라 간단히 정리할 수 있을 텐데, 가치투자 하면 어떤 항목이 생각나나요? 바로 워런 버핏이겠죠. 저자는 저에드가 로런스 스미스의 성과를, 작년(2020)에 버핏이 쓴 "주주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재인용합니다. 다름아닌 워런 버핏이야말로 이익 유보의 엄청난 잠재력을 누구보다도 투자 실무에서 증명한 위인이니 말입니다.

과거에도 "기업, 사업"의 형태는 많았습니다. 대개는 파트너의 형태로 몇몇이 조합 비슷하게 만들어서 사업을 유지하다 목적이 달성되면 해산하는 게 보통이었죠. 이런 것이 아니라, 꽤 오랜 동안 지속되어 사회적 신뢰를 쌓고 배후의 투자자, 출자자와는 별개로 독립된 실체를 갖고 사업을 유지하는 걸 계속 기업이라고 합니다. 영어로 going concern(p66)이라고 하는데 현대의 기업은 대부분이 이런 형태이므로 "회사"와 거의 동의어이며 회사 중에 고잉 컨선이 아닌 것은 회사라고 부르기가 힘듭니다(사기꾼이라든가). 금감원이나 거래소에서 상장사들의 행태를 감독하는 건 이들이 "고잉 컨선"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게 하기 위함이죠.

저자는 매우 심각한 문제 하나를 지적합니다. CED의 이해가 기업의 장기 목표와 상충할 때, 예를 들면 "파생상품이 무엇인지 이해도 못 하는 70대 노인에게 펀드를 판매한다든가 하는(p67)" 도덕적 해이가 있겠네요. 만약 그 CEO가, 경영자의 능력 평가 지표인 KPI에 신경 쓰기보다, 저 노인이 내 아버지일 수도 있다는 공감 시도를 한 번이라도 해 봤다면 과연 그런 불완전판매(를 넘어 사기)가 이뤄지게 직원들을 부추길 수 있었을까요?

요즘 키코 판매 배상/보상 문제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배상/보상이 이뤄져도 예컨대 일각에서 나온 대로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하는 게 그 수단이라면 또다른 피해자가 생깁니다. 바로, 현금을 갖고 있다가 졸지에 가치가 (발행분만큼) 떨어지게 된 일반 국민입니다. 잘못이 그 상품을 판 금융기관 측에 정말로 있다면 그 당사자들에게만 날카롭게 책임을 물어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해 주면 됩니다. 발권력이라니요.

"인터넷 은행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들의 성공 여부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던 시장은....(p129)"라는 말이 나옵니다. 아마도 카카오톡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공짜 메신저 하나가 과연 무슨 사업 모델이 되겠는가?"라며 괜히 이동통신사의 망에 불필요한 부하만 얹는 장난감 정도로 여겼을 겁니다. 개인 메신저가 일상의 필수품이 된 후, 이 메신저에서 예금, 송금, 결제를 간편하게 행할 수도 있다는 걸 눈치채고 그제서야 그 무한한 잠재력을 알아보았죠. 이제 거래소 시총에서 카카오는 거대한 공룡 SK텔레콤 등의 가치를 뛰어넘습니다. 아직 카뱅은 본격 상장도 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기존 은행들이 수십 년 고생 끝에 이룬 성과를 단숨에 뛰어넘었다(같은 페이지)." 허무하기도 하지만 바로 이것이 새로운 시대 디지털 이노베이션의 좋은 사례입니다. 10년이 더 지나면 삼성 LG, SK 등을 모두 제치고 IT, 컨텐츠, 커머스 등 핵심 캐시카우를 두루 지닌 카카오가 최대기업이 되지나 않을지요.

"우리는 지금 기존 산업 규범이 파괴되는 현장을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더는 변화를 주저할 수 없다.(p128)" 그렇습니다. 변화를 거부하면 그저 변화하지 않은 채 현상이나마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도태될 뿐입니다. 이런 자기 혁신, 파괴적 혁신을 위해서는 기존의 모든 가치와 신념과 원칙과 노하우와 지식을 근본에서부터 재검토해야만 합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사고가 난 건 그 피해가 막심한 데에도 이유가 있지만, 일본 같은 나라에서 어쩌면 저런 초보적인 실수와 서투름과 무능, 무대책이 노출될 수 있느냐는 충격도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일본과 오랜 동안 적대 관계였던 러시아가 원전 정책을 근본에서 다시 검토했다고 하죠.("일본이 저럴 정도면...") 러시아는 구 소련 시절에 체르노빌에서 큰 사고가 난 적 있고, 결국은 이의 성공적인 수습이 되지 않아 7년 후 체제가 붕괴하는 데 일조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저자가 p147 이하에서 특히 이런 일본의 서투르고 바보스러운 행보를 지적하는 건, 과거의 영화에 만족하다 개선과 개혁의 적기를 놓치고 도통 정상궤도로 복귀할 가망이 안 보이는 그들의 예에서 우리가 반면교사로 뭘 배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한국은 20세기 후 청년층 인구 비율이 가장 낮은 편인 시기를 보내는 중입니다. 이렇게 해당 연령층 인구 수가 적은 데도 취업난은 사상 최악 수준입니다. 어제도 어느 대기업이 "공채"를 중단하고 수시채용으로 전환하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이제 젊은이들이 어떤 정규 수단으로 직업을 얻을 방법은 공무원 시험 통과나 공기업 면접 합격 외에는 별 수단도 없게 되었습니다. 은행의 많은 직원이 50대 중반이면 명예퇴직 등으로 회사를 떠나고 있다(p163)."는 말이 책에 나오지만, 은행 등 금융기관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대기업이면 30대 후반, 40대 초반에 이 일을 겪어야 합니다.

임금피크제는 원래 베테랑 사원 고용 유지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채택되었습니다. 중진의 암묵지를 현업에 적용도 하고 자리로 보전해 주는 하나의 지혜였는데, p163에 보면 이 제도 역시 노장들을 쫓아내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 시니어를 밀어내는가? 동기 부여가 어렵고 조직 분위기를 저해하는 면이 있어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소중한 인적자원, 바로 회사 자신이 오랜 세월 동안 잘 육성한 지혜와 기술을 채 써먹지도 않고 버리는 거나 맡찬가지라는 취지로 저자는 안타까워합니다. 조직이 이처럼 비정해지는 건 책의 주제에 비추어 짐작건대 아마 공감 능력의 부족에 기인한다고 분석하시는 듯합니다.

2018년 6월, 드디어 GE, 즉 제네럴 일렉트릭이 다우존스 지수에서 퇴출되었습니다(p207). 사실 이 회사는 우리가 어렸을 때 위인전에 빠지지 않고 나왔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과도 깊은 관련이 있죠. 어디 저 회사뿐이겠습니까? 2020년 8월에는 한 세기 동안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한 정유회사 엑손 모빌이 다우에서 쫓겨났습니다(책 p211에 나오네요). 이런 걸 두고 우리는 상전벽해라고 부르죠. 이처럼, 세상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변하지 않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Nothing lasts forever)." 책에는 여러 명언, 앨프리드 슬론이라든가 잭 웰치의 유명한 언명 등이 나와 우리 독자들의 경각을 촉구합니다. 연구하지 않고 공부 안 하는 그 어떤 거인도 지금 일본이 우왕좌왕하는 것처럼 시대의 흐름에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배구조(governance. p231, p170 등)라는 건 이제 시대적 아젠다 중 하나입니다. 얼마 전 SK는 약간 뜬금없이 기업 지향성으로 ESG를 부각했는데 물론 SK뿐 아니라 경영계 전반에서 작년 즈음부터 부쩍 잦은 빈도로 이를 거론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대기업이 전면적으로 이를 표방한 건 좀 드문 현상이긴 하죠. 이 책은 p171에서 이를 제법 상세히 다루는데, 해당 페이지 각주에도 나옵니다만 작년(2020) JP모건에서 낸 리포트가 (ESG라는 신 약어부터 해서) 아마 유행의 직접적인 트리거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 책은 이처럼 비교적 최신의 이슈를 본문에서 자주 언급해 주시는 게 좋았습니다. 아 물론 거버넌스 이슈는 독자인 제가 학생 시절에도 있던 말이긴 합니다. ESG라고 한 세트로 묶어서, 증권가에서조차 트렌드로 포착한 게 최근이라는 거고요.

그 이른 시기에 해외에 진출하여 다양한 국제 경험을 쌓은 저자조차 "해외 진출이 곧 국제화를 만드는 건 아니"라고 지적합니다(p261)." 우리 흔한 상식과는 정반대인데, 외국에 어떤 획사가 진출하여 지점을 만들면 그 지점에는 누가 근무해야 할 것 같습니까? 아마 우리 나라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해당 국가의 사정을현지인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으니 현지인을 써야 한다는 겁니다. 실제로 유안타증권은 대만 회사인데, 거기 근무하는 직원들은 대부분이 한국인입니다. 이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죠. 그럼 국제감각은 누가 갖춰야 하는가? 바로 회사의 본점입니다. 본점에서 국제 정세와 트렌드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전략을 세워서 지점에 전달해야지, 그 반대가 될 수는 없는 거죠.

한국 회사들은 보안을 위해 이메일 소통을 주저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자가 근무한 세계은행조차도 당연히 이메일을 활용하며, 보안 운운은 그야말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라고 합니다(p262). 외국인을 거리낌 없이 쓰면, 하다못해 영어 문서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수고조차도 덜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의식구조와 인프라의 개혁이 선행되어야 어떤 기업이건 조직이건 글로벌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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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은 처음이라 - 유능한 팀원을 만드는 코칭리더십 22
남관희.윤수환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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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신입사원은 설령 장차 크게 될 재목이라 쳐도, 갓 입사했을 때에는 모든 면에서 서투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잘 다독이고 격려해서 (그의 입장에서) 처음 접할 여러 업무들을 좋은 인상으로 즐거운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유도해야 하며, 일거리만 봐도 지긋지긋하다는 반응이 조건반사식으로 나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식으로 부하 직원이 일에 질리게 만드는 건, 팀장 딴에는 위엄을 세워 잠시 기분이 우쭐해질 수 있으나 결국 그 팀원과 팀 전체를 망치는 겁니다. 이런 팀장은 권위를 갖춘 리더가 아니라 그냥 무능한 사람입니다. 칭찬과 기대를 받은 사람은 결국 그 기대만큼 성장한다는 요지의 피그말리온 효과(p30)를 이 책에서는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p66에는 "코칭으로 유전자에 저항하라. 잃을 것은 쇠사슬이요. 얻을 것은 사람이다." 사실 팀장이 옛날식 부장하고 다른 건 코칭을 하느냐 안 하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거 알지?"라며 어느 광고에도 나오는 짜증나는 말만 되풀이하는 사람은 자기 할 일을 다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기업에서 (아무리 서투른 사람이라 해도) 인재를 모셨지만, 지금은 제아무리 스카이를 나와도 회사에서 일을 배워야 합니다. 팀장은 가능하면 효율젹으로 여러 요령을 가르쳐서 팀 전체를 잘 돌아가게 해야 하며, 새파란 신입들을 잘 가르쳐서 차세대 유망 이사, 팀장, 과장을 육성해야 합니다.

책 제목이 "코칭리더십"이니만큼 이 책에는 코칭 잘하는 팀장 되는 법이 참 많아서 좋습니다. 코칭은 경청(p64)이란 말이 특히 좋았습니다. 공감을 잘 못하는 이유는 애초에 경청을 안 해서라는 말, 핵심을 찌르죠. 또 코칭은 그저 잡담이 아닙니다. 이 대화를 왜 시작하는 건지 그 목적을 분명히하고 시작하라는 말씀도 명심해야 할 듯합니다. 다시 저 맨 위의 말로 돌아가서, "유전자"라는 건 무슨 뜻으로 나온 말인가 하면,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에 나오는 어느 말을 빗댄 것입니다. 유전자가 설령 이기적이게 세팅되었다 해도, 우리 인간은 이성과 후천적 학습을 통해 얼마든지 이타적으로 멋진 팀을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잃을 것은 쇠사슬이요.."는 물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명한 책에 나오는 구절이지만, "사람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단정이 얼마나 또 좋습니까.

원래 한국이나 일본, 중국은 직설적이지 않고 은근히 돌려말하는 걸 미덕으로 칩니다. 그런데 현대산업사회에서 대부분의 조직은 이런 고맥락 소통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속도가 생명인데 한가하게 무슨 선문답이겠습니까. 회사의 일 자체가 저맥락(p70)인 겁니다. 여기서도 소통의 핵심은 역시 경청(p72)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경청은 그저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오랜 동안 관찰해 왔고, 이에 따른 자연스러운 인정(p78)이 그 핵심이라고 합니다.

"송 대리, 커피 내려놨네요?"라기보다, "송 대리, 출근하자마자 팀원들을 위해 이렇게 커피 내려놨네요.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져요.", 나아가 "나도 배워야 할 것 같아요." 라는 말까지 곁들인 멘트(p28)가 좋다는 겁니다. 너무 간지럽지 않냐고요? 사실 저도 그런 느낌이 처음에는 들었는데, 이런 말을 듣고 성장한 대리는 앞으로 얼마나 힘을 더 내어서 일하겠습니까? 내가 못 받은 거라도 나는 남을 위해 줄 줄도 알아야 하는 거죠.

반면 며칠 전 어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부장님, 커피를 왜 제가 타요?"라며 직설적으로 반발한 어느 신입사원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원칙적으로 신입, 특히 여직원을 커피 담당시키는 악습은 당장 없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만약 과장이 먼저 모범을 보인다면? 신입(여자든 남자든 간에)은 팀 분위기에의 자연스러운 융화를 위해서도 이제부터는 선제적으로 자신이 나설 수 있고 이러면 모두가 서로를 배려하니 팀 전체가 좋아지는 겁니다. 굴종이 아니라 배려입니다, 배려. 그러니 항상 윗사람이 (먼저) 잘해야 하는 거죠.

조금 살벌한 사자성어 중에 괄육취골(p93)이라는 게 있죠. 저자의 말에 따르면, 경청, 칭찬, 피드백... 이 모든 것이 다 중요하지만 하나의 테크닉 위상이라면, 코칭에 있어 진짜 핵심은 "질문"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질문이야말로 살이 아니라 뼈(같은 페이지)라는 거죠. 질문이란, "존중하는 표현 중 하나(p96)"라는 말도 나옵니다. 애초에 질문을 하는 이유는 면박을 주거나 궁지에 몰기 위한 게 아니라,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을 탐색하게 만들고(p95), 열린 질문을 통해 그 사람이 진짜 변하게 유도하는 겁니다. 유도가 목적이지만, 질문은 열린 질문이라야 합니다. 답정너 식(p98)으로는 효과가 없습니다. 아무리 정확하고 유용한 지적을 해 줘도 그 사람 본인이 안 변하면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습니다. 존중 받는다는 느낌을 줘야 당사자가 빨리 변합니다. 물론 타인이 그렇다는 거고, 나 자신은 무엇을 동기, 트리거로 삼건 빨리 변해야죠. 팀장은 이거해달라 저거해달라 어리광피우는 직책이 아닙니다. 또 그럴 나이도 아니겠구요.

성공의 계단이라는 말이 있죠. stairs to success(p111)라고 영어로 쓰는데 이게 고대 로마 제국 시절에도 있었던 유구한 내력을 그 나름 가진 어구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에 그냥 공감만 해 주는 걸로는 효과가 안 나타난다고 합니다(p110). 사실 누가 남 욕을 하면 그냥 맞장구쳐 주는 게 효과가 크긴 한데, 지금 주제는 그냥 뒷담화로 스트레스 풀기가 아니라 "코칭"이거든요. 남을 욕하는 건 설령 그 사람이 약한 사람이라고 해도 결국은 부정적인 소통입니다. 나(즉 코치)라는 사람이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상대방에게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코칭 받는 사람이, 상황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열망(p110)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런 말로 챕터를 정리합니다. "이게 바로 최고 수준의 공감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저 덩달아 남 까는 식으로 마무리되는 대화, 코칭은 비생산적입니다.

"결국 도(道) 닦으라는 이야기네요(p126)." 신입이라고 다 착한 것도 아니고 어떤 사람은 조직에 대한 리스펙트가 전혀 없이 자기 에고만 내세우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도 "커피 타는 마음 배우고 싶어"라며 다독이고 얼러야 하나 하는 생각 누구에게나 들 만합니다. 저자는 그러나 이렇게 연이어 묻습니다. "옳은 길, 넓은 길을 닦을 것인가, 아니면 힘들다고 그때그때 임시변통의 길을 닦을 것인가?" 솔직히 말해 저는 후자도 그 나름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팀장은 길을 아예 먹고 떠나는 사람도 있는데요 뭐. 임시변통도 길은 길이며 매번 임기응변하는 게 쉽지도 않으며 오히려 능력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죠. 조직은 웬만한 사이즈라면 언 발에 오줌 누기식으로는 굴러가지도 않고, 아주 정공법으로 나가야만 해법이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다 한국 기업문화가 어지간히 성숙기에 접어들어서 그렇습니다.

"진짜 코치의 피드백은 유연하다. 단정적이지 않다(p143)." 진짜 맞는 말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보면 막 뭐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 멋지다고 해서 턱턱 단정짓고 쎄게 말하는 사람한테 무작정 박수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게 끝까지 가 보면 다 뒷감당을 못하는 소리더라구요. 애초에 상황 자체가 유동적이고 불확실성 투성이인데 누가 뭘 그렇게 잘 알아서 100% 확실한 답을 줄 수 있겠습니까. 저부터도 반성하고 있습니다. p160에는 p30의 로버트 로즌솔 박사 명언이 다시 나옵니다. "직원은 리더의 기대만큼 성장한다."

p184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팀원들의 성장을 통해 성과를 내는 게 팀장의 근원적인 역할이지만, 팀장 역시도 성장해야 하는 존재다." 독자인 제가 좀 보충하자면, 이렇게 되려면 역시 코칭 리더십을 통해서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떤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는 (그 리더가 어지간히 유능하지 않고서는) 이 목표가 달성이 안 될 듯합니다. 누군가를 가르쳐 뵈야 그 지식이 진짜 내 것이 된다고도 하듯, 팀을 제대로 이끌고 누군가를 지도하려면 본인도 오픈 마인드를 갖고 같이 성장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팀도 팀원도 팀장도 모두 어떤 목표를 위해 존재하는 거죠. 태스크 포스가 별 게 아니라 모든 팀은 태스크 포스가 되어야 합니다. p209에는 가브리엘 외팅겐 교수의 실험이 소개되는데, 결론은 목표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이솝 우화의 "신 포도(sour grape"처럼 적당히 합리화하는 선에서 물러나기 쉽다는 거네요. 다른 대학의 리처드 와이즈먼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목표를 달성한 모습이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상상하라." 이 말은 특히 코칭에 있어서 잘 들어맞습니다. 리더는 팀원에게 목표를 다그치지 말고,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p212)는 겁니다.

코칭이라고 하면 그저 사내 업무 지도나 기껏해야 가벼운 상담 정도를 생각했던 저로서는, 이처럼이나 체계적인 방법론이 있었나, 더군다나 코칭과 리더십이 일체로 작동하게 돕는 view가 있었나 싶어서 적잖게 놀랐습니다. 뭐 좋은 말 써 놨겠지, 아랫사람들한테 너그럽게 잘해줘야지 정도로 가볍게 생각한 분들은 책을 한번 정독해 보십시오. 배울 게 많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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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슈거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3
로알드 달 지음, 허진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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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작가 로알드 달은 영국 공군에서 복무한 적 있습니다. 이 제3권에 실린 <로제트 부인>은 그를 배경으로 삼아 유쾌하고 떠들썩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전쟁 당시의 풍속도를 엿보는 재미가 있을 뿐 어떤 구성상의 큰 묘미가 있는 건 아닙니다.

<하숙집 여주인>은 이전에 정영목 선생이 다른 기획, 전 4권으로 구성된 <에드가 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되었던 작품입니다. 제가 당시 저 책을 읽을 때는 로알드 달의 작품인 줄 몰랐는데(물론 책에는 수상 연도와 작가명이 당연히 나왔겠지만), 이 3권을 읽고서야 예전 생각이 나더군요. 물론 결말이 열린 결말이며 로알드 달의 다른 작품이 그러하듯 딱떨어지게 상황, 진상을 밝히는 건 아닙니다. 여주인이 박제가(!)가 아닐 수도 있는 거죠 뭐. 추리물이라기보다는 공포물입니다.

<탄생과 재앙>. 로알드 달은 생전에 반유대주의자로 비판 받기도 했는데, 그를 옹호하는 사람에게 가장 유력한 반대 논거 중 하나가 바로 이 작품입니다. 영아 살해는 끔찍한 범죄이지만(실제로 이 작품은 누구의 생부 등을 간접으로 비난하고 있기도 합니다) 때로는 인도주의가 더 큰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역설? 여튼 말이 안 되고, 아이가 커서 뭐가 될지는 그 자신의 의지에 달린 거지 어떤 운명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어린 히틀러를 죽여도 범죄는 범죄죠, 그것도 아주 극악무도한 범죄(이건 독자로서 제 생각일 뿐이고, 실제로 로알드 달이 얼마나 히틀러를 혐오했으면 이런 소설을 다 지어냈겠습니까).

<돼지>도 마치 2권의 <조지 포지>처럼, 어렸을 때 뜻하지 않게 큰 상처를 받은 주인공이, 잘 성장하는 듯하다가 함정에 빠지는 줄거리인데 환상과 실상이 섞여 있어 어디까지가 팩트인지 독자가 상상을 해 가며 읽어야 합니다. <조지 포지>에서와는 달리 여기의 주인공 렉싱턴에게는 별 성격적 결함이 눈에 안 띕니다. 단지 대고모가 육식을 싫어한 게 애한테 어떤 강박적 요소를 남겼을 수는 있겠죠.

<대역전>은 이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윤리적 타락에 잘 안 빠질 때라 아마 상상만으로 기발하다는 평가를 받았을 겁니다. 요즘은 이런 걸 두고 "스x핑"이라 부르며 십 몇 년 전에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기도 했죠. 이 단편도 중간에 결말을 어느 정도 암시하는 "사이즈" 논란이 언급됩니다. 주인공이 그 여성을 두고 "처음에 이런 둔한 여자가 있나 했었지만" 운운하는 게 우습습니다. 이 말의 뜻은, 나중에 자신의 아내한테 "그게 원래 이런 것인지 어젯밤에 처음 알았다"는 말을 듣고 명확히 밝혀집니다. 크기가 그만큼이나 중요하단 거죠... 이 비슷한 이야기가 중국 전래 소화(笑話)에 있습니다. 저 위에 <돼지>도 중국 인육 괴담과 비슷한데 혹시 로알드 달이 생전에 이런 이야기를 읽고 영향을 받은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동물과 대화하는 소년>도 다분히 동양적 분위기를 풍기죠? 이 작품뿐 아니라 앞에서 말했듯 여러 작품에서 자연친화, 물아일체 테마가 나왔더랬습니다. 다만 이 작품에도 나오듯 거북이는 때로 위험할 수 있으니 안전 사고에 실제로 유의해야겠습니다.

<히치하이커>는 귀신 같은 재주를 지닌 어느 사내의 이야기입니다. 제나라 맹상군에게는 실제로 계명구도의 식객이 있어 비천한 재주로도 연명하다 결정적일 때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가 정확히 그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핑거스미스"라는 신조어(?)가 인상적입니다. 다 읽고 통쾌한 기분이 드는 게 솔직한 느낌입니다.

<헨리 슈거의 놀라운 이야기>는 정말 놀랍습니다. 초능력이 생겨 카지노를 순회하는 이야기는 여러 매체에서 자주 다루는 테마인데 중요한 건 소문이 나서 카지노 블랙리스트에 안 오르는 거죠. 로알드 달의 이런 작품에서 놀라운 건 "어느날 내게 초능력이 생긴다면?" 같은 (좀 한심한) 발상 자체가 아니라, 세상살이에 닳고닳은 듯 이후의 세파를 헤쳐나가는 그 디테일의 매력입니다. 물론 저 테마 자체도 인간의 아주 원초적인 (어리석은) 욕심,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어떤 부분을 터치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매력적입니다.

<책장수>는 처음에 어떤 술수로 유명인, 부자들을 협박한다는 건지 구체적인 방법이 안 나와서 궁금증을 더합니다. 다른 직원과 함께 계좌를 여럿 분산하는 등 노련한 수법들이 등장하여 독자의 호기심을 더욱 부채질하죠. 어이없는 데서 들통이 난다는 건데 역시 로알드 달 다운 깔끔한 아이디어로 잘 구성된 작품입니다. 버기지 씨는 노스코트 씨에게 사실은 헨리 슈거의 놀라운 기술을 전수했다고 둘러대면 법정에서 무죄 방면되지 않았을까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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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의 개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2
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외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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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처음에 실린 "클로드의 개"는 다섯 단편의 연작입니다. 처음에는 연작인 줄 모르고 읽었는데 같은 두 주인공이 계속 등장하여 늦게 눈치챘습니다. 하긴 "세계 챔피언"이 그냥 꿩 사냥 이야기로 끝나면 왜 그런 제목이 따로 붙었는지, "개"는 뜬금없이 뭔지 설명이 안 되죠.

"클로드의 개"에는 교외 혹은 시골에서 실제 체험을 안 해 보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기괴한 노하우들이 잔뜩 등장합니다. 이 연작뿐 아니라 로알드 달 작품에 간혹 양념으로 나오긴 하는데, 원 실제 해 보기 전까지는 진짜인지 구라인지 알 수가 없죠. 꿩 잡는 사연도 마찬가지인데, 한번 유모차에서 수십 마리의 꿩들이 비틀거리며 날아오르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피지 씨"에서 드디어 개 이야기가 나옵니다 1권에 등장한 빅스비 부인도 전당포 주인을 너무 믿고(혹은 남편을 속이려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간 후) 곤경에 처하는데, 이 작품의 고든 호즈(1인칭 화자) 씨는 그냥 양아치 같은 견권업자(bookmaker)한테 날로 사기당합니다. 그래도 할 말이 없는 게, 사기는 지가 먼저 치려 들었기 때문이죠(정확하게는 친구 클로드 커비지 씨의 사주). 이 작품 중에서 설명되는 개 경주에서의 사기 트릭은 상당히 잔인한 게 많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쥐잡이 사내"도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묘사가 있지만, 이게 결말에서 그 나름 비책, 회심의 한 수인 양 등장하기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나오기도 합니다. 소설, 영화의 캐릭터 닥터 한니발 렉터가 생각나기도 하고요.

"러민스"에도 또 쥐 얘기가 나옵니다. 이 연작에는 개보다 쥐가 더 자주 나오고 쥐가 주제에 더 가깝기도 하기 때문에 (심지어, 본격 개 경주 이야기인 "피지 씨"에도 또 쥐가 나오죠) 연작 제목이 아예 "클로드의 쥐"였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 봤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그나마 잔꾀를 잘 부리는 클로드 씨에게 내내 끌려다니는1인칭 주인공 고든 호즈를 일종의 "클로드의 개"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인물들의 개성 묘사가 상당히 생생해서 영상물을 보는 듯 착각이 듭니다.

"호디 씨"는 정말로 웃기는 이야기인데, 예비 신부가 그토록 신신당부를 했건만 클로드는 예비 장인(=호디 씨) 앞에서 더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맙니다. "제발 아빠 앞에서 개 경주로 앞으로 한몫 잡겠다는 소린 하지마!"내가 바보냐? 장인어른 앞에서 그런 소릴 하게?" ㅋㅋㅋ 그러고선 고작 한다는 소리가 "구더기 공장을 열어서 큰 돈을 벌어볼까 합니다."였으니, 그런 작자에게 누가 딸을 주려고 할까요? 그런데 이런 계획은 디테일이 중요하며, 실제로 광적인 낚시꾼들이 많기 때문에 전혀 헛소리이기만 한 건 아닙니다. 중요한 건 디테일일 뿐. 여기서도 알 수 있듯, 클로드는 마지막에 꼭 뭐 하나를 간과해서 실패를 할 뿐 잔머리는 제법 굴리는 타입입니다. 그를 졸졸 따라다니는 클로드 커비지 씨가 주변머리도 없고 줏대도 없어서 문제일 뿐.

<조지 포지>는 전래 설화에다가, 어느 억눌린 강박적 성격의 젊은 목사가 현실과 상상을 혼동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섞은 슬픈 희극입니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는 충격적 경험을 한 후 성에 대해 왜곡된 생각을 갖게 된 목사가 기어이 사고를 치는 사연인데, 주인공이 서서히 미쳐 가는 고골의 <광인일기>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그 작품도 "엄마, 여기가 어디죠? 절 좀 꺼내 주세요!"라 외치는 슬픈 장면으로 끝나죠. 허나 자기 문제는 자기가 해결해야 합니다. 성인이라면. 이 작품 중에도 동물 관련 충격적인 묘사가 있으며, 여기서는 토끼지만 실제로 햄스터가 예외적인 상황에서 이런 행태를 보인다고 하죠.

<로열 젤리> 역시 코믹합니다. 단 아빠 혼자서 환각을 본다거나 한 건 아니고, 아기가 몸무게가 좀 는 건 팩트이지 싶습니다. 진상은, 애들이니까 일시적으로 몸무게가 줄었다가 잘 안 먹다 하다가 나중에 생리작용이 안정되면서 정상으로 가는 거죠. 로알드 달의 작품 답게 자연계의 일부 지식에 대한 풍부한 볼륨이 과시되며, 벌과 일체가 되어 뛰노는 소년의 이미지는 1권의 다른 작품에도 등장합니다. 마지막에 애 아버지 앨버트의 목에 노란 털이 촘촘 나 있었다는 묘사가 웃음을 터뜨리게 합니다. 그렇게 보려고 작정하면 그렇게 보이는 법이죠.

<윌리엄과 메리>는 예전 SF작가 레이먼즈 존스의 장편 <The Cybernetic Brains>하고도 비슷합니다(달의 이 단편이 좀 더 뒤에 나왔습니다). 육신은 죽은 채 눈과 뇌만 남아 세상을 지켜본다는 설정이 섬뜩하지만 로알드 달만의 유머는 독창적입니다. 뇌에 연결된 눈에서 이런저런 감정을 읽어내는 아내 메리가 우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죠. ㅎㅎ 한국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한 에피소드에서 "당신 늙기만 해봐, 밥도 안 주고, 구박하고, 딱 내가 당한 것만큼만 갚아 줄테니까"라고 말하는 아내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달리는 폭슬리>에서는 학폭 피해자가 1인칭 화자 주인공인데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혹시 이 캐릭터가 작가 로알드 달의 페르소나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출신 학교도 같고, 상급생의 변기를 미리 데웠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로알드 달 본인의 입으로 여러 차례 털어 놓은 회고이기도 하니까요. 한국의 학폭은 이런 명문고의 prank와는 달리 피해자의 영혼까지 파괴하는 무서운 성격이라서 단순 비교할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아 물론 이 작품에 등장하는 학폭도 당사자에게 영원히 트라우마를 남긴 수준인 건 뭐 같습니다. 그러니 이런 작품이 나왔죠.

<소리 잡는 기계> 역시 자연에 깊이 공감하다 이야기가 삼x포로 빠지는 로알드 달 특유의 유머가 나옵니다. 저 위 <로열 젤리>에서도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이야기를 우스운 맥락에서 환기했죠.

2권 마지막에 실린 두 이야기는 우습다기보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범죄를 다루는 성격입니다. 특히 마지막의 <도살장...>은 이후 다른추리소설에서 여러 번 오마주한 유명한 트릭을 다루고 있어 미스테리 애호가들이 반드시 읽어 볼 만한 명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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