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Book] 남자의 물건 (체험판)
김정운 저 / 21세기북스 / 2012년 12월
평점 :
옛날에 김정운씨의 첫 책 "나는 가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를 읽었을 때 많이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늘 치열하게 살아라는 그 치열하고자 하는 삶을 그는 재밌게 즐기며, 현재를 가볍게 살아내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이 주장들이 너무 공감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아주 어려운 학문적 이야기도 우리네 일상의 언어로 아주 쉽게 이야기하고 있어서 술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었던 것도 참 좋았다. 교수나 무슨 소장보다는 아무때나 만나도 편하게 말을 걸 수 있는 우리 동네 이장님같은 느낌이었던 거다.
간만에 읽은 2012년에 나온 그의 책, 남자의 물건도 마찬가지 느낌이다. 편안하고, 공감가고 이해도 되고. (아, 간혹 어려운 교수님 말씀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정도는 뭐 이쁘게 봐 줄 수 있다. 진짜 교수니까.)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남자에게'라는 소제목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아저씨들에게 심리학자로서 또는 그들과 동류의 사람으로 남자에게 하는 말, 또는 그들을 좀 이해해달라는 측면의 설득적 설명을 해놓았다. 약 110여 페이지의 내용을 내 식대로 축약해보면, 폼잡지 말고 무게를 내려놓고 마음터놓고 소통하고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을 더 많이 하면서 삶을 풍요롭게 즐겁게 가늘게 살아가자는 거다. 맞나? 맞을거야.
2부는 남자의 물건에 대한 내용이다. 작가를 포함한 13인의 남자들을 인터뷰하고 그 남자들의 물건을 인터뷰하고 그 남자의 물건을 통해 그 남자들의 세계와 인생과 가치를 엿보는 거다. 이 부분이 재밌다. 나는 주로 사람이야기, 즉 인터뷰나 전기, 인물사 이런 거에 많이 끌린다.
여기에는 문화평론가 김갑수의 커피그라인더, 사진작가 윤광준의 모자, 작가 김정운의 만년필, 이어령의 책상, 신영복의 벼루, 차범근의 계란 받침대, 문재인의 바둑판, 안성기의 스케치북, 조영남의 안경, 김문수의 수첩, 유영구의 지도, 이왈종의 면도기, 박범신의 목각 수납통 이야기가 있다.
여기 이 인터뷰를 보면 사람은 다 비슷하고 인생도 비슷하다. 잘난 사람은 그들대로 단점이 있고 못난 구석이 있다. 그런 단점과 못난 구석을 커버하는데 그들의 물건이 주로 애용된다. 즉, 남자의 물건은 그들 내면의 부족분을 채워주고 각자의 컴플렉스를 극복하게 도와주고, 어느 한 분야에 나름 우뚝 설 수 있도록 충분한 서포터 역할을 한 것들이다.
김갑수는 커피를 볶으려고 인생을 산다고 한다. 윤광준은 대머리를 감추려고 모자를 모으기 시작했고, 김정운은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만년필을 선택했다. 이어령은 혼자놀기에 좋은 책상에서 주로 혼자만의 외로움을 달려왔고, 신영복은 벼루를 갈면서 현재와 과정을 즐긴다. 그 외 다른 남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의 만나면서 아, 특별한 그들도 특별하지 않고 허점과 못난 한두 구석이 있으며 그들 나름대로 그것들은 다스리며 혹은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음을 알게 되며, 묘한 쾌감과 기쁨을 느꼈다.
내 물건은 뭐가 있을까? 읽는 내내 생각해보았다. 특별히 떠오르는 물건이 없다. 특별히 귀중히 여기는 것도, 특별히 사 모으는 것도 내겐 없다. 아마 여느 보통의 사람들이 아마 내와 같으리.
지금이라도 내 물건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애장품으로 내세울까를 고민하는 것이 나를 알아가는 단초를 제공해 줄 것 같다.
나의 물건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