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배우는 시간 -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
김현아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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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중환자실은 일시적인 문제로 생명이 위독해진 환자들이 의학적인 시술의 도움으로 위험한 시기를 넘기고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존재한다. 원칙은 그렇지만 현대의료에서는이런 원칙이 너무나 빈번히 깨져버린다. 누구도 "이제 그만"이라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죽음을 말하기 싫어하는 의사와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환자 가족 사이의 암묵적인 합의하에, 중환자실은 환자가 임종을 맞기 위한 장소로 급속히 변질되어 가고있다. 그 결과 정말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 입원하지 못하고 돌려 보냐지늠 일이 발생한다.

_ 생사의 갈림길에서 중 - P71

다만 좋은 의사는 최선을 다할 때와 이제 그만 놓아야 할 때를 분별할 줄 알고, 가족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_ 생사의 갈림길에서 중 - P75

죽음이 싫으면서
너를 딛고 일어서고
시간이 싫으면서
너를 타고 가야 한다

_ 김수영 <네이팜 탄> 중 - P84

수명 연장은 사실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에 따른 영양 상태 개선과 근대사회로 이행하면서 발전한 공중위생 덕분이다. 의료기술의 발달도 물론 영향을 미쳤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질병의 원인이 되는 인자들을 찾아내는 예방의학의 발전이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_ 왜 우리는 이렇게 죽게 되었을까? 중 - P85

보건의료 통계로 보면 한 개인이 사망하기 전 한달간 쓰는 의료비가 그 이전 평생에 걸쳐 쓴 의료비보다더 많다. 결국 선진국들에서는 이런 불행한 결과를 막기 위해 완화의료를 중심으로 하는 죽음의 질 향상에 관한 논의가 일어나게 되었다. 또한 국가는 그 구성원의 삶을 개선하는 데 힘쓰는 만큼 죽음의 질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는 데에 공감대가 이루어졌다.

_ 왜 우리는 이렇게 죽게 되었을까? 중 - P88

의사들의 사망진단서에는 더이상 노환이 사망 원인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심부전, 신부전, 폐렴, 감염증... 모든 사망에는 의학적인 진단명이붙어야 한다. - P99

그러나 일반인보다는 죽음을 자주 목격하는 의료인으로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병원은 생의마지막을 보내는 장소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가장 가까운 가족과의 접촉조차 금지되는 중환자실에서의 죽음은 더욱 그렇다.

_ 왜 우리는 이렇게 죽게 되었을까? 중 - P103

하지만 우리는 소위 ‘죽는 병‘이라고 알고 있는 병들을 진단받지 않고도 긴 노화의 과정을 거쳐 결국 죽음을 맞는다.

_ 노화에서 죽음으로 중 - P107

만성 노인성 통증은 "65세 이상의 환자에게서 실제적인 기관 손상의 유무와 관계없이 3개월 이상 지속되는 불쾌한 감각이나 정서적 경험"이라고 정의한다. 관절염이나 낙상에 의한 골절 등의 질환이 없더라도 노인들은 신체기능이 쇠약해져서, 인지기능이 저하돼서, 여러 약물을 복용하면서 통증을 경험할 수 있다. 여성, 가난, 낮은 지식수준, 비만, 흡연, 우울증이나 불안은 모두 통증의 위험인자로, 신체적인 통증은 결국 정신적·사회적인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시사한다.

_ 노화에서 죽음으로 중 - P119

2017년 미국 마약단속국DrugEnforcement Administration, DEA의 고위 간부였던 조 라나지시는 지난 20년간 마약성 진통제 사용의 폭발적인 증가가 제약회사 및 중간상인들의 악질적인 마케팅과 정부 관리들에 대한 로비 활동에 의한 것이었음을 밝히고 이들을 강력히 처벌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_ 노화에서 죽음으로 중 - P123

이런 현상이 고착된 데는 정확한 사망 시점을 예측하지 못하는현대의학의 한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하지 않으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대화는 멀고 클릭은 가까워지는 전자의무기록과 전자 처방으로 상징되는 현대의 진료 패턴도 중요한 원인이다.

_ 노화에서 죽음으로 중 - P127

임종을 앞둔 환자와 완화의료 전문의 8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바에 의하면 가장 평화로운 임종은 다음 세가지 조건을 충족한다. ①불안함에서 벗어날 것 ②혼자서 임종하지 않을 것 ③아이들과 함께 있을 것. 모두 병원, 특히 중환자실 임종에서는 지켜지기 어려운 조건이다.

_ 노화에서 죽음으로 중 - P134

"마흔살에 사별하고 2남 1녀 여법하게 키우셨는데 떠나실 땐 일주일간 곡기 끊으시고 가셨어요. 염을 해드리는데 대소변도 없이 너무 깔끔하셨지요. (・・・) 본인이 임종끝을 맞이하며 스스로 염습도 다 하신 겁니다. 그 할머니같이 가고 싶네요. 제일 좋아하는 옷입고 누우면 후손이 관 뚜껑은 닫아주겠지요."

_ 노화에서 죽음으로 중 - P135

이렇게 류머티스관절염을 비롯해 암, 당뇨병과 같이 진단이 뚜렷한 질환들도 대부분 원인을 알 수 없는데 하물며 노쇠에 의한 여러 증상은 어떨까? 그나마 진단조차도 쉽지 않다. 노인 환자들을만나다보면 가장 흔하게 호소하는 문제가 통증과 식욕 부진이다. 식사를 통 못하고 자꾸 체중이 줄면 누구나 나쁜 병이 있다고 의심하고, 급기야는 병원에 입원해서 몸을 샅샅이 뒤지다시피 검사를 하게 된다. 그러나 놀랍게도 대부분의 경우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판명된다. 노인들의 경우 특히 더 그렇다.

_ 생로병사의 원인을 찾지 마세요 중 - P138

정부는 이런 현실을 정확히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수수방관 내지 조장을 해왔다. 지금도 의료수가 협상을 할 때 진찰료에대해서는 인상 절대 불가라는 경직되고 완강한 태도를 보이는 보건복지부 공무원들도 소위 신의료 딱지를 붙이고 들어오는 가치도알 수 없는 검사들의 수가를 만들어주는 데에는 터무니없이 관대하다. 이런 현실을 알아야 큰 그림을 볼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세울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건강검진은 대형병원들이 코스트 시프트를 할 수 있는 창구로 작용해왔고 여기에 걸려든 것 중의하나가 갑상선암이었던 것이다. 이런 의료행위를 하는 것으로 높은 연봉, 인력 충원, 풍부한 진료 지원을 해주는 시스템 속에서 의사 개개인에게만 손가락질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_ 생로병사의 이유를 찾지 마세요 중 - P152

응급실은 중환자실과 마찬가지로 삶의 막바지에 있는 환자들이자신을 위탁하기 위한 시설이 아니다. 그러나 달리 갈 곳이 없는임종기 환자들이 응급실에 도착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환자는 응급치료를 한 뒤 소생이 가능한, 즉 정말 응급환자에만 적용되는 자동적인 치료 알고리즘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응급실에서조차 머무를 수 없기 때문이다.

_ 왜 의사들은 죽음 앞에서 거짓말을 할까? 중 - P170

환바와 보호자에게 지지와 정신적 도움이 가장 필요한 순간 환자를 오래보고 잘 아는 의사는 어디에도 없다. 이것이 파편화, 전문화된 현대의료의 가장 큰 맹점이다. 만일 환자를 오랫동안 옆에서 보아왔던 주치의가 있었다면 이런 결과를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죽음의 질 지표가 좋아졌다지만, 현실은 그와는 거리가멀다.

_ 왜 의사들은 북음 앞에서 거짓말을 할까? 중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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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배우는 시간 -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
김현아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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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의 어떤 순간에도 죽음은 찾아온다는 것, 그것이 <죽음을 배우는 시간>의 가장 첫 메시지다.

_ 책을 시작하며 중 - P6

그러나 지금까지도 환자나 보호자에게 환자의 나쁜 예후를 설명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좋지 않은 이야기만 하면 불필요한 공포심과 절망을 안길 수 있다. 반면 좋은쪽으로만 이야기하면 그만큼 희망을 심어주게 되고, 경과가 나빠졌을 때 온갖 원망을 다 들어야 한다.

_ 생사의 갈림길에서 중 - P50

의료 전달 체계가 엉망이라는 것은 ‘빅4‘ 병원의 외래 진료실이 경증 환자로 미어터지는 현실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어떤 능력을 발휘한 적이 없고 그럴 의지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_ 생사의 갈림길에서 중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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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 우리 몸 안내서
빌 브라이슨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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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더듬 증상은일상생활에 가장 괴로움을 안겨주면서도 가장 이해가 덜된 장애 중의하나이다. 성인은 약 1퍼센트, 아동은 약 4퍼센트가 말을 더듬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더듬이 중 80퍼센트는 남성이다. 또 오른손잡이보다 왼손잡이가 더 많으며, 왼손잡이이면서 오른손으로 글을 쓰도록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

_ 입과 목 중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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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 의사 엄마가 기록한 정신질환자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법
김현아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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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인정을 받으면 편하게 놀고 돈만 타 먹을 것이라는 무지한 편견과는 달리 많은 정신질환자들은 사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를 간절히 원한다. 낙인과 배제로 적절한 직업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숨기면서 어떻게든 직장에 적응하려 하다가 병세가 악화되는 일도 많다. 그 결과 정신장애인의 고용률은 10명 중 1~2명 수준이며, 평균 가구 소득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장애인 가구의 평균 소득보다도 훨씬 낮은 소득을 얻는다. 그럼에도 중증 정신질환자의 장애인 등록 비율은 10퍼센트대에 머물고 있다. 정신질환자 대다수가 기초수급으로 생계를 꾸며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_우리는 모두 정신질환자이다: 신경 다양성으로 바라보는 세상 중 - P267

이런 일련의 과정에 동반되는 것은 토복령 같은 ‘기적의 식물‘을 둘러싼 ‘발견의 수사‘이다. 그런데 유럽이 대체재를 찾기 시작하면서 중국산 토복령을 알게 된 과정에 대한 기억들은 점차 사라져가고 대신 아메리칸 사르사를 발견한 과정은 인류의 엄청난 발견 혹은 혁신의 순간으로 미화되는 수순을 밟는다.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매독을 인류가 정복해가는 역사에서 토복령이 갖고 있던 약재로서의 권위를 삭제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약재와 그것에 대한 통제를 다루는 의학의 발전사를 ‘중국‘을 뺀 채 유럽이 독점해가는 과정이었다.

_ 근대 약학 시스템으로의 더딘 진입 중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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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의 세계사 - 서양이 은폐한 '세계상품' 인삼을 찾아서
설혜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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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들어서도 미국에서 인삼은 여전히 중요한 생산물이자 수출품이었다. 수확량이나 가격의 변동폭이 크고 남북전쟁 같은 변수도 발생했지만 인삼 교역은 지속되었다. 1860년에 간행된 <미국 농부의 백과사전The American Farmer‘s Encyclopedia》에서는 인삼이 상업적 가치가 엄청나다고 평가하면서 연도별 수출량 집계를 자랑스럽게 나열했다.

_ 인삼, 미국 최초의 수출품 중 - P195

1800년 전후를 기점으로 영국의 무역 활동에 큰 변화가 나타난다. 1799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폐쇄된 후 영국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모든 무역항을 장악하게 되었고, 전 세계의 향신료 교역이 런던의 민싱레인Mincing Lane 으로 집중되었다. 하지만 독특하게도 인삼 무역에 관한 한영국의 19세기는 암흑기라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가장 중요한 교역국인 중국에서 완전히 퇴출되어 인삼 무역에 완전히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는말이다.

_ 인삼, 미국 최초의 수출품 중 - P201

18세기 중반을 넘어가면서 인삼의 역사에는 위기라고 부를 만한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난다. 하나는 서구 의학계가 인삼의 의학적 가치를 폄하하기 시작하면서 약전藥典, pharmacopocia에서 퇴출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해간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무분별한 채취로 야생삼이 고갈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인삼은 다른 약재들과는 달리 유효성분active principle, active ingredient 추출이 매우 까다로운 식물이었다. 그 결과 근대 약학 시스템에 매우 더디게 편입되는데, 오히려 인삼의 그런 특성 때문에 서구가 주도한 화학약품 시대에 인삼이 살아남게 되었다. 한편, 인삼의 고갈에 대응해 본격적인 인공재배의 노력이 펼쳐져 오늘날 지구 곳곳에서 인삼이 재배되기에 이르렀다. 위기에 처한 인삼의 생명력을 보존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와 노력이야말로 수없이 명멸하는 약재와 건강식품 들 속에서도 인삼이 꿋꿋하게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핵심 동력이었다.

_ 위기와 대응 중 - P228

여기서 약전개혁에 가장 큰 영향을미친 두 분야의 과학적 이론을 꼽을 수 있으니, 바로 린네의 식물학과 라부아지에Antoine Laurent de Lavoisier, 1743~1794의 화학이 그것이다.

_ 약전의 개혁과 유효성분 추출의 어려움 중 - P267

개정된 약전은 기존 약전에 포함되었던 많은 식물을 배제하는 동시에 식물의 전반적인 특성을 개괄하기보다는 유효성분만을 기록하는 경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의료계의 입장에서 볼 때, 많은 식물의 특성을 열거하기보다 유효성분만을 적시하는 것은 무척 효율적이고 진보적인 지표로 여겨졌다. 더욱이 19세기 초 중요한 유효성분들이 속속 발견되었다. 기나피에서 키니네를, 커피에서 카페인cafficine을, 토근에서 에메틴ermetine을,
아편에서 모르핀morphine을, 담배에서 니코틴nicotine을 추출하게 된 것이다. 이 발견은 곧 제약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토대가 되었다. - P268

인삼의 주성분인 사포닌saponin은 한 분자 내에 비극성 분자와 극성 분자가 공존하는 화합물로, 비누처럼 거품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이를 분리 · 정제하기란 매우 까다로워서 크로마토그래피chromatography, 혼합물의 각 성분 물질이 용매를 따라 이동하는 속도 차이를 이용하여 혼합물을 분리하는 실험 기법라고 불리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

_ 약전의 개혁과 유효 성분 추출의 어려움 중 - P269

18세기 후반에 이르면 유럽에서 그동안 일었던 중국 열풍이 급속하게 가라앉기 시작한다. 약전개혁이 시작되고 화학적 명명법과 식물의 유효성분 추출이 시작되던 때와 맞물린 시기였다. 유럽 지식인 사회에 팽배했던 중국에 대한 선망뿐 아니라 중국 시스템을 유럽이 닮아야 할 모델로 삼아 연구하던 풍조가 확연히 수그러들었다.

_ 근대 약학 시스템으로의 더딘 진입 중 - P283

한반도에서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해안에 면한 온난한 산악을 제외하고각지의 삼림 대부분에서 인삼이 산출되었다. 하지만 무분별한 채취와 삼림의 남벌로 인삼의 산출이 줄어들었다. 조선에서 야생삼의 멸종 조짐은 15세기 중엽 성종재위 1469~1494 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해서 영조재위1724~1776 시기에는 거의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다.

_ 야셍삼의 고갈과 인공제배의 시작 중 - P301

처음에 사람들은 큰 수익을 얻기 위해 어린 야생삼을 빨리 생장할 수있는 환경으로 옮겨 심어 키우는 식으로 배양했다. 그렇게 얻은 인삼 종자를 파종하고 번식시키는 과정에서 원삼재배 기술이 정립되었다. 원삼의 주산지는 장백산 지역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그 주변으로 재배지가 확대되었다.

_ 야생삼의 고갈과 인공재배의 시작 중 - P309

스탠턴은 ‘미국 인삼의 아버지‘로 불렸는데, 그 이유는 상업화가 가능할 만큼의 인삼을 재배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가 개발한 방법 은노지를 개간해 인삼을 심었다가 나중에 널빤지로 만든 그늘막을 세워 적당히 빛을 차단하는 방법이었다. 이 야생식물에 그늘과 층적법法, 종자의 저온처리 방법의 일종으로, 일반적으로 종자의 휴면타파休眠打破를 위해 실시함이 필요함을 스탠턴이 먼저 인식했던 것이다.

_ 야생삼의 고갈과 인공재배의 시작 중 - P314

인삼 재배가 시작되고 약 15년이 지나자 가삼형 인삼 재배자들 가운데 초대형 인삼 농장을 설립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중심축이었던 위스콘신의 마라톤 카운티Marathon County는 주로 독일과 폴란드계 농부들이 정착한 곳으로 1904년부터 인삼 재배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그곳의 ‘프롬 형제들 Fromm Brothers‘이 설립한 ‘인삼과 모피 농장The Fromm Brothers Fur and Ginseng Farm‘은 미국에서 20세기 인삼 재배업의 상징과도 같은 곳으로 자리 잡는다.

_ 야생삼의 고갈과 인공재배의 시작 중 - P319

1880년부터 1920년대까지는 인삼 재배와 더불어 미국의 인삼 무역이번창했다. 그러나 1930년대 대공황으로 미국 인삼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그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과 곧 이은 중국과의 수교 단절로 수출 시장을 상실하게 되면서 미국의 인삼 경작자들은 어려움에 처했다. 위스콘신 동부, 오하이오 등지의 인삼 재배자 대부분이 인삼 사업을 접게 되었고, 오직 위스콘신 마라톤 카운티 주변의 대규모 경작자들만 남게 되었다. - P323

그런데 고려인삼의 불법 유출을 고발하는 언론의 보도나 그 대책에 대한 논의에서는 불법 유출된 고려인삼의 종자가 향하는 곳으로 중국동북부 지역만 지목한다. 고려인삼이 100년 전부터 미국을 비롯해서 시베리아의 동쪽 끝에서 재배되었고, 오늘날에는 심지어 남반구 뉴질랜드의 울창한 숲에서도 생산되고 있는데 말이다.

_ 야생삼의 고갈과 인공재배의 시작 중 - P333

오늘날 서구 의학사에서 인삼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근대 유럽과 미국이 의학의 영역뿐만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인삼을 경원시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로베르타 비빈스RobertaBivins가 "의학 시스템의 지속성과 성공은 그것의의약적 효능은 물론,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요인도 있다"라고 강변했는데, 이는 인삼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인삼은 서구 문화에서 ‘동양의 전유물‘이라고 반복적으로 규정하며 거리 두기를 해왔던 대상이다.

_ 인삼의 오리엔탈리즘 중 - P336

인류학과 역사학은 한 집단이 다른 문화와충돌할 때 나타나는 반응을 흔히 ‘유비‘와 ‘대립화‘라는 두 범주로 풀이해왔다. 여기서 ‘유비‘란 타자를 자신 또는 자신의 이웃에 동화시키기 위해 문화적 거리를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십자군이 무슬림 전사 살라딘 Saladin, 1138~1193을 마치 유럽의 기사처럼 인식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는 인식의 대상이 인식 주체의 반영물로 취급되는 경향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런 인식체계 속에서 대상은 스스로의 본질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주체의 상상력 속에서 재탄생된 어떤 것이 된다.

_ 유비와 배척 중 - P339

서양인들은 중국인들에게 고대의 방탕한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악을 투영했으며, 신앙심의 결여와 지나친 방종이 대홍수라는 끔찍한 결말로 이어졌음을 그들에게서 환기했다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이미 오래된 과거와 사회악으로 규정했던 덕목들이 중국인의 몸과 결합되어 ‘반反 - 중국 레토릭anti-Chinese thetoric‘을 형성했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인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인삼이 문명의 멸망을 부르는 대표적인 원인인 사치와 방탕으로 연결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_ 유비와 배척 중 - P358

이처럼 인삼을 둘러싼 담론은 ‘신비한 동양의 만병통치약‘과 근대 서양 의학에 포섭되지 않는 ‘불가해한‘ 효능 사이의 길항관계를 보여준다. 그 속에는 앞서 살펴보았던 가공과 같은 기술적 차원에서 중국인에게 결코 범접할 수 없었던 서구인의 열등감, 해외에 내다 팔기에 급급해 내수화는 요원했던 상황, 정량을 결코 도출해낼 수 없었던 ‘표준화 중심적‘인서양 의학의 한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그 한계들이 제국주의적 시선으로 포장되어 서구의 산물에는 우수성을 부여하면서도 스스로가 그것과 똑같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동양의 산물에는 낙후성을 덮어씌우는 자기모순으로 나타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_ 불가해한 동양성 중 - P373

인삼이 18~19세기 북아메리카 대륙의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주류문화는 인삼을 철저히 중국의 아이템으로 규정해갔고, 그 과정에서 인삼에 의지해 살아온 사람들 또한 배척하고 소외해갔다. 채삼인이 캔 삼을 모아 수출한 수출업자와 투자자는 자본주의적 미국의 발전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로 기록되었지만, 그들과 인삼의 연결고리는 철저하게 은폐되었다.

_ 심마니의 이미지와 내부 식민주의 중 - P416

그들이 개념화한 ‘내부 식민주의 InternalColonialism‘ 이론은 지역 간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국내에서도 중심부가 주변부를 착취하고 소외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내부 식민지라 불릴 수 있는 지역은 웨스트버지니아, 켄터키, 테네시, 버지니아를잇는 중앙 애팔래치아 지역이다.


_ 심마니의 이미와 내부 식민주의 중 - P417

부의 지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우선, 인삼의 교역은 동아시아라는 핵심과 그 바깥을 감싸는 세계 무역 네트워크라는 이중구조로 이루어졌다. 한국-중국-일본 사이의 인삼 유통은 아주 오랫동안 조공과 외교적 선물, 나아가 공식적인 교역과 비공식적인 밀무역이 혼재된 상태로 촘촘하게 발달해왔다.

_ 맺는 글 중 - P414

그 하나는 고려인삼이 동남아시아의 무역항들을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서쪽 방향으로의 항로였고, 다른 하나는 18세기 초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된 화기삼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광동에 도착하는 멀고 먼 여정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_ 맺는 글 중 - P424

그런데 인삼을 둘러싸고 서양이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없었던 상황은역설적으로 인삼의 소비가 중심부인 동아시아에 한정되는 결과를 불러왔다. 중국은 마치 ‘거대한 인삼의 무덤‘처럼 전 세계의 인삼을 빨아들이는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과정은 단지 물류의 이동에 그치지 않았다. 인삼이 ‘중국의 전유물‘이라는 배타적인 인식도 함께 창조되었던 것이다.

_ 맺는 글 중 - P426

이 과정에서 서구의 담론은 인삼을 ‘중국의 전유물‘로, 전제성과 사치, 방탕과 비합리성을 담지한 불가해한 물건으로 규정하며 자신들의 주류문화에서 소외했다. 그 차별적인 시선은 단순히 인삼이라는 상품에 그치지 않고 그 상품을 사용하는 사람과 공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식의 지형에서 끊임없이 ‘자‘와 ‘타‘를 구별하기에 이른다.

_ 맺는 글 중 - P427

‘인삼의 세계사‘는 의약학의 성패가 의약적인 효능뿐만 아니라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에서 좌우된다는 명제를 선명하게 증명하는 사례다. 과학이라고 불리는 제반 영역에도 문화적인 구별 짓기가 작동하며, 그런 구별 짓기의 심성은 이른바 ‘객관적인 실험 결과‘로 쉽게 교정되지 않는끈질긴 생명력을 지닌다. 오늘날 거센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제대로 균형 잡힌 세계관을 만들기 위해 인삼 같은 상품의 ‘사회적 삶‘을 ‘약리작용‘과 ‘현재적 상업적 효과‘를 넘어 인문사회학, 특히 역사적 관점에서 연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_ 맺는 글 - P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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