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이름은 코리안 민트 - 카카오 전 대표의 열렬한 양조 탐험기
홍은택 지음 / 브.레드(b.read)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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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비할 바는 아니지만 술의 역사에는 이렇게 우연과 실수로 탄생한 술들이 적지 않다. 스코틀랜드 위스키에서 피트 향이 나는 것도 우연에서 비롯했다. 스코틀랜드를 합병한 대영제국이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자 산지나 오지로 도피한 양조업자들이 그 지역 토탄peat, 땅에 묻힌 지 오래되지 않아 완전히 탄화하지 못한 석탄을 때워 맥아를 건조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술은 새로운 시도에 관대하다. - P80

졸업식이라는 자리가 평가에 적합하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고 게임이 끝난 것은 아니다. 여과와 숙성이 남았다. 술은 여과하면 부드러워진다. 시간이 어떻게 마법을 부릴지 알 수 없다. 송화 과하주를 냉장고에 넣었다. 10여개월 지난 후 지인 열댓 명에게 풀어놓았더니 다들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어떻게 이런 맛이 나올 수 있느냐고 앞다퉈 잔을 내밀었다. 다소 밍밍한 송화 맛이 사라지고 솔 향이 부드러워지면서 스카치 위스키 향도 살짝 감도는 밸런스 좋은 술이 됐다. 시간이 흘러서 좋은 게 있다. - P108

한국 농수산대학교 최한석 교수는 "낮은 온도에서 발효하면 향미가 더 풍부해진다"라고 말한다. 저온 발효하려면 발효 기간을 길게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짧은 발효로 잔당을 남기는 과하주에는 맞지 않는다. - P116

7평도 채 안 되는 조그만 작업실이 그런 느낌에 실체를 부여했다. 작업실 바깥에는 여전히 불안한 일들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 손에 내 운명이 달린 시간 같은 것. 하지만 작업실에 들어오면 안온했다. 토굴처럼 좁지만 갇혔다기보다는 은신에 가깝다. 바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 작은 공간에서는 크게 음악을 틀고 치대고 주무르고 뭉치고 젓고 비틀고 쥐어짜고 펴고 오므리고 집고 깎고 담고 흔들고 씻고 닦고 문지르고 빻고 돌리고 재고 널고 털고 밀고 당기고 올리고 내리고 들고 나를 뿐이다. 사서 하는 고생이지만 자유롭다. - P141

독일인들은 맥주 순수령reinheitsgebor의 전통에 자부심이 있다. 1516년 독일 바이에른 공국의 빌헬름 4세가 공포했는데 맥주를 만들 땐 보리, 물, 홉 세 가지만 허용하는 법령이었다. 그리고 19세기에 파스퇴르가 미생물을 발견한 이후에는 효모도 추가되었다. 이 순수령이 내려온 지 600년이 훌쩍 지났다. - P163

양조는 시간과의 관계를 새롭게 맺는 방법이기도 하다. 아무리 조바심을 내고 종종대도 시간을 단축할 수 없다. 그래서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시간과 같이 가야 한다. 물과 알코올을 잘 섞고 날카로운 향미를 순화하는 작업은 꼭 필요하지만 내가 할 수 없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친구가 최고의 블렌더, 시간이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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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이름은 코리안 민트 - 카카오 전 대표의 열렬한 양조 탐험기
홍은택 지음 / 브.레드(b.read)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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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생존 수단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를 이어 주고문화와 전통을 전달하며 사회라는 규범 내에서 상호 작용하는 술이라는 ‘사회적 음식‘을 통해 세계사, 식물학, 미각, 사람에 대한 이해, 무엇보다 시간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

_ 프롤로그 중 - P9

소믈리에 수업을 받으면 여섯 가지 술을 매번 비교, 시음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3개월간 대략 예순 가지 술을 마신 것 같은데 가장 놀라운 발견, 아니, 당연한 깨달음은 찹쌀이나 멥쌀, 녹두 같은 곡물로만 빚은 술에서 멜론이나 바나나, 파인애플, 수박, 풋사과 같은 다양한 과일 향이 난다는 점이었다.

_ 막걸리에서 열대 과일 향이 난다고 중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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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하루치의 낙담
박선영 지음 / 반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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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잘 살고 싶어서 비관한다. 기대가 크니까 낙담하고, 환상을 품으니까 환멸에 시달린다. 낙담한다는 것은 생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다.

_ 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중 - P278

우리는 모두 한물간다. 1년 가까이 진행했던 인터뷰를 통해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모두 몰락하는 존재들이라는 것. 너무 높은 곳까지 올라간 사람들이나 낙폭이 큰 거지, 우리 같은 사람들의 소소한 성공에 몰락이라니 가당치 않다고 손사래를 칠 수도 있다. 어렵게 마련한 아파트 한 채 잘 쥐고 있고 싶고, 아이들은 어지간한 대학을 나와 그래도 좀 번듯한 직장에 들어갔으면 좋겠고, 하는 일이 잘되거나 재테크에 성공해서 집을 한 채 더 가지면 노후가 안정적일 것 같아 이리저리 좀 궁리해보는 것뿐이다. 이런 걸 욕심이라고 하면 좀 억울하다, 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_ 추락하는 모든 것은 날개가 있다 중 - P282

역사가 작고 평범한 한 인간을 자기 서사의 주인공으로 간택할 때, 거기엔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거대한 사명을 그 작은 인간이 벅차게 받아안는 어떤 숭고의 순간이 있다. 처음에는 그저 피곤했을 뿐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내가 해내는 수밖에 없겠구나. 울고 싶은 마음으로 일어서 가슴을 쫙 펴고 두 팔 벌려 달려나가는 순간. 그 슬픈 점화의 순간이 매번 그렇게 나를 뒤흔든다.

_ 지긋지긋한 것은 힘이 세다 중 - P311

언어에서 열에너지는 궁극의 힘이 아니다. 언어의 힘은 위치에너지에서 나온다. 저것을 움직이게 할수 있는가. 움직이라고 하는 말에는 힘이 없다. 힘은 움직이고 있을 때 비로소 생겨난다.

_ 지긋지긋한 것은 힘이 세다 중 - P314

이른 새벽 가족 모두가 잠든 시간. 홀로 고요히 목욕을한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 데도 가지 않지만, 꼼꼼히 오래 씻는다. 자기 존엄의 의식으로서의 목욕. 형용 못 할 참혹의 와중에도 인간의 존엄을 위해 씻기를 멈추지 않았던 한 아름답고 강인한 인간을 경의와 찬탄 속에 기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그의 단호한 말들을 떠올린다. 어떤 삶의 역경 속에서도 목욕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하사관 슈타인라우프를 언제까지고 기억한다.

_ 목욕하는 인간 중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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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하루치의 낙담
박선영 지음 / 반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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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돕기 위해서는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주어야 한다. 그 젊은이가 원한 것은 숙식과 호의였지, 숙식과 적의가 아니었다. 눈칫밥 잔뜩 줘놓고 은인 대접을 바라며 배은망덕을 운운한다. 이소라는 언제나 옳다. 추억은 다르게 적히는 것이다.

_ 타임의 불행에 대한 예의 중 - P217

원칙을 고수하지 않고, 원칙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하지 않으며, 깽판치는 주인의 폭력으로부터 다만 안전거리를 확보한 채 분노를 삭이는 것. 그러다 기회가 되면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 그게 우리의 기저욕망인 건 아닐까.

_ 웃을 일이 아니다 중 - P248

인간에 대한 염오, 세계를 향한 권태, 관계에 대한 냉소. 이런 것들과 맞닥뜨릴 때면, 지금 이곳이 아니라면 행복은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낙관 속으로 도피했다. 이것은강력한 이데올로기였다. 내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했던 건 언제나 적요와 침묵. 시끄럽고 소란스런 여기만 아니라면, 여기가 아니기만 하다면.

_ 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중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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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하루치의 낙담
박선영 지음 / 반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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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양지를 좇는다. 그것은 본능일 것이다. 그러나 음지의 슬픔에도 마음이 붙들리는 것이 인간이라고 나는 믿는다.

_ 타인의 불행에 대한 예의 중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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