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연인을 만나러 가는 일
부희령 지음 / 강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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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아픈 사람이니까 대꾸하지 말라고 아무리 말려도 어머니가 참지 못하고 쏘아붙이던 것을 새삼 이해할 수 있었다. - P83

시간은 어디론가 흘러가서 사라진게 아니라 자기 몸 위에 층층이 쌓여 있었다. 젊어서는 과거가 뒤로 물러나고 현재가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다. 미래는 당연히 저기서 기다리고 있을 더 나은 시간이어야 했다. 강물보다 빠르게 흘러가던 시간은 참혹한 삼 년 전쟁의 기억조차 말끔히 씻어버렸다. 정말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눈앞에 남은 미래가 거의 소진되자 시간의 실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미래는 결코 경험할 수 없었고 현재는 과거에 먹혀버렸다. 이제 그가 느끼는 것은 몸 위에 쌓여 있는 과거뿐이었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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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연인을 만나러 가는 일
부희령 지음 / 강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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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사람이 달아나는 게 아니라 달아나서 불안한 거야. 정면으로 마주 보지 않으면 영원히 달아나야 해. - P18

그들은 빛을 반사하는 유리 빌딩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마치 네가 보이지 않는것처럼 행동했다. 너는 향유고래의 내면에 침투한 이물질이고, 그 세계의 오류였다. - P27

냉소는 허약함의 가면일 뿐이야. - P29

이제껏 너는 내가 아니었으나, 저 문을 통과해서 포고령 이전의 세계로 돌아간다면, 너는 다시 내가 될 것이다. 너는 다시내가 되고 우리가 될 수도 있겠지. 불안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네가 열린 문을 통과한다. 새롭게 되풀이될 과거를 향해. - P35

있어야 할 것은 다 있는데, 뭐든지 조금씩 미흡했다. 없어도 좋은 것들은 지나치게 많았다. 어긋난 열의로 가득 차 있는 느낌이었다. - P41

아파트 입구에 멈춰 선 택시를 향해 서둘러 걸어가면서 민수는 생각했다. 살아야 할 이유라는 건 없다고들 하지만, 결국 죽고 싶은 이유라는 건 살고 싶은 이유와 같은 것이다. 슬픔과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했으니, 주연은 이제 살아 있는한 죽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민수는 주연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제 마음을 다독였다. 그러나 앞으로 내내 주연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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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 김훈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4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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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가로지를 때, 나는 죽어지기 전까지는 죽음을 생각할 수 없었고 나는 늘 살아 있었다. 삶과 분리된 죽음은 죽음 그 자체만으로 각오되어지지 않았다. - P203

명군 지휘부가 조선 조정을 경유하지 않고 조선 수군에게 군대 해산과 적대행위 종료와 귀향을 명령하고 있는 사태를 시급히 조정에 알려야 했다. 멀리서, 긴 꼬리를 끌며 우는 임금의 통곡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명과 일본이 강화하는 날, 다시 서울 의금부에 끌려가 베어지는 내 머리의 환영이 떠올랐다. 나는 임금의 칼에 죽을 수는 없었다. 나는 나의 자연사로 서적의 칼에 죽기를 원했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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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 김훈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4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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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 우수영에서 따라온 백성들 중 15명이 죽었다. 뗏목이 뒤집혀 물에 빠져 죽고, 병들어 죽고, 얼어 죽고, 굶어 죽고, 나무를 끌어내다가 소달구지 바퀴에 깔려 죽었다. - P151

위관은 집요했으나, 아무것도 묻고 있지 않았다. 아마도 거기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임금뿐이었다. 임글은 나를 죽여서 사직을 보존하고 싶었을 것이고 나를 살려서 사직을 보존하고 싶었을 것이었다. - P165

언어와 울음이 임금의 권력이었고, 언어와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칼은 보이지 않았다. 임금의 전쟁과 나의 전쟁은 크게 달랐다. 임진년에 임금은 자주 울었고, 장려한 교서를 바다로 내려보냈으며 울음과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칼날은 번뜩였다. 임진년에는 갑옷을 벗을 날이 없었다. 그때 나는 임금의 언어와 울음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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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 김훈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4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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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숨이 끊어진 아전의 몸을 으깨던 매와 보리쌀로 죽을 끓여 먹었을 그의 식솔들을 생각하면서, 나는 혼자 앉아 있었다. 나는밝은 청정수를 들이켜고 싶었다. - P37

크고 확실한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았으므로, 헛것인지 실체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모든 헛것들은 실체의 옷을 입고, 모든 실체들은 헛것의 옷을 입고 있는 모양이었다. - P41

그 저녁에도 나는 적에 의해 규정되는 나의 위치를 무의미라고여기지는 않았다. 힘든 일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은 결국 어쩔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지는 어느 날, 내 몸이적의 창검에 베어지더라도 나의 죽음은 결국은 자연사일 것이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지는 풍경처럼, 애도될 일이 아닐 것이었다. - P65

나는 겨우 말했다. 나는 개별적인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온 바다를 송장이 뒤덮어도, 그 많은 죽음들이 개별적인 죽음을 설명하거나 위로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나는 여자가 죽으면 어디가 먼저 썩을 것인지를 생각했다. 나는 그 썩음에 손댈 수 없을 것 같았다. 죽은 자는 나의 편도 아니고 적도 아니었다. 모든 죽은 자는 모든 산 자의 적인 듯도 싶었다. 내 몸은여진의 죽은 몸 앞에서 작게 움츠러들었다. - P105

나는 겨우 알았다. 임금은 수군 통제사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명량 싸움의 결과가 임금은 두려운 것이다. 수영 안에 혹시라도 배설을 감추어놓고 역모의 군사라도 기르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그것이 임금의 조바심이었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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