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잘 살고 싶어서 비관한다. 기대가 크니까 낙담하고, 환상을 품으니까 환멸에 시달린다. 낙담한다는 것은 생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다.
_ 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중 - P278
우리는 모두 한물간다. 1년 가까이 진행했던 인터뷰를 통해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모두 몰락하는 존재들이라는 것. 너무 높은 곳까지 올라간 사람들이나 낙폭이 큰 거지, 우리 같은 사람들의 소소한 성공에 몰락이라니 가당치 않다고 손사래를 칠 수도 있다. 어렵게 마련한 아파트 한 채 잘 쥐고 있고 싶고, 아이들은 어지간한 대학을 나와 그래도 좀 번듯한 직장에 들어갔으면 좋겠고, 하는 일이 잘되거나 재테크에 성공해서 집을 한 채 더 가지면 노후가 안정적일 것 같아 이리저리 좀 궁리해보는 것뿐이다. 이런 걸 욕심이라고 하면 좀 억울하다, 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_ 추락하는 모든 것은 날개가 있다 중 - P282
역사가 작고 평범한 한 인간을 자기 서사의 주인공으로 간택할 때, 거기엔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거대한 사명을 그 작은 인간이 벅차게 받아안는 어떤 숭고의 순간이 있다. 처음에는 그저 피곤했을 뿐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내가 해내는 수밖에 없겠구나. 울고 싶은 마음으로 일어서 가슴을 쫙 펴고 두 팔 벌려 달려나가는 순간. 그 슬픈 점화의 순간이 매번 그렇게 나를 뒤흔든다.
_ 지긋지긋한 것은 힘이 세다 중 - P311
언어에서 열에너지는 궁극의 힘이 아니다. 언어의 힘은 위치에너지에서 나온다. 저것을 움직이게 할수 있는가. 움직이라고 하는 말에는 힘이 없다. 힘은 움직이고 있을 때 비로소 생겨난다.
_ 지긋지긋한 것은 힘이 세다 중 - P314
이른 새벽 가족 모두가 잠든 시간. 홀로 고요히 목욕을한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 데도 가지 않지만, 꼼꼼히 오래 씻는다. 자기 존엄의 의식으로서의 목욕. 형용 못 할 참혹의 와중에도 인간의 존엄을 위해 씻기를 멈추지 않았던 한 아름답고 강인한 인간을 경의와 찬탄 속에 기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그의 단호한 말들을 떠올린다. 어떤 삶의 역경 속에서도 목욕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하사관 슈타인라우프를 언제까지고 기억한다.
_ 목욕하는 인간 중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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