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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ㅣ 창비시선 237
김태정 지음 / 창비 / 2004년 7월
평점 :
지인들에게 앞으로 주저없이 이 책으로 시집을 선물할 예정이다. 이런 시집을 지금에 만난 것이 미안할 뿐이다. 정호승선생의 시들을 좋아 했으나, 이제 최고의 시집은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이다. 이 시집 한권만을 남긴채 떠나야했던 시인 김태정, 한두 편이 좋은 것이 아니라 이 시집 전체가 아름답다. 아동작가 권정생선생의 느낌이 시 언어속에서 연상되기도 하지만, 서울을 떠나 땅끝 해남에서 자유로운 모습이 그려진다. 이 시집의 주제어는 물푸레나무, 미황사 를 들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한 단어를 고르라면 <뒤란>이다. 시인들의 정서적인 고향 미황사를 이번 겨울 다시 걸어보고 싶다. 그리고 시인이 환생한 동백나무 곁을 천천히 걸어도 보고 미황사에서 내려본 평야와 들판에서 살았던 그 시절을 회상해 볼 작정이다.
함께 겪었던 민중을 껴안으려는 마음과 고독과 슬픔도 외면하지 않고,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를 시인답게 풀어내고 있다. 어쩌면 그 동안 중단했던 필사를 이 시집으로 할까 고민중이다.
미황사
차마 다 터뜨리지 못한 울음처럼
늙은 달이 온몸을 밀어올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필생의 호흡이 빛이 되어
대웅전 주춧돌이 환해지는 밤
오리, 다람쥐가 돌 속에서 합장하고
게와 물고기가 땅끝 파도를 부르는
생의 한때가 잠시 슬픈 듯 즐거웠습니다
열반을 기다리는 달이여
그의 필생의 울음이 빛이 되어
미황사는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홀로 충만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21년 늦가을 미황사 대웅전 전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