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질문처럼 남아 있는 돌 하나대답도 할 수 없는데 그 돌 식어가네단 한 번도 흘러넘치지 못한 화산의 용암처럼식어가는 돌 아직 내 손에 있네_ 뜨거운 돌 중 - P77
허기로 견디던 한 시절은 가고, 이제밥그릇을 받아놓고도 식욕이 동하지 않는 시대발자국조차 남길 수 없는 자갈밭 같은 시대_ 떨기나무 덤불 있다면 중 - P78
새가 너무 많은 것을 슬픔이라 부르고 나니새들은 자꾸 날아와 저문 하늘을 가득 채워버렸습니다이제 노 젓는 소리 들리지 않습니다_ 기러기떼 중 - P51
같은 자리로 내려앉는 법이 없는저 물결, 위에 쌓았다 허문 날들이 있었다거대한 점묘화 같은 서울,물결, 하나가 반짝이며 내게 말을 건넨다저 물결을 일으켜 또 어디로 갈 것인가_ 저 물결 하나 중 - P53
그만 지고 싶다는 생각늙고 싶다는 생각삶이 내 손을 그만 놓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그러나 꽃보다도 적게 산 나여_ 고통에게 중 - P66
오, 버섯이여산비탈에 구르는 낙엽으로도골짜기를 떠도는 바람으로도덮을 길 없는 우리의 몸을뿌리 없는 너의 독기로 채우는구나_ 음지의 꽃 중 - P74
그날 나는 벽보 벗기기 작업을 하는 순간만큼은 아버지에 대해서뭔가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당신은 아마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블랙홀처럼 주변을 휘감아온 당신의 운명과어떤 식으로든지 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맞닥뜨려 대결하고 싶었던건지도 몰랐다. 아울러 그런 애비의 모습을 아들인 내게 단 한 번이나마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무튼 그 대결 끝이 아무리 참담할지라도 그것은 오로지 아버지의 몫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언제부턴가 모르게 삶이 자꾸 버거워질 때마다 그 백보 속의 아버지를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 P137
떨어지는 꽃잎,또는 지나치는 버스를 향해무어라 중얼거리면서 내 기다림을 완성하겠지중얼거리는 동안 꽃잎은 한 무더기 또 진다아, 저기 버스가 온다나는 훌쩍 날아올라 꽃그늘을 벗어난다_ 오분간 중 - P21
예전의 그 길, 이제는 끊어져무성해진 수풀더미 앞에 하냥 서 있고 싶은그런 저녁이 있다_ 그런 저녁이 있다 중 - P27
김밥을 네 개째 삼키는 순간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그것이 마치감정이 몸에 돌기 위한 최소조건이라도 되는 듯.눈에 즙처럼 괴는 연두._ 연두에 울다 중 - P48
하지만 나는 지금 그에게 자신 있게 해줄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다. 직장도 불안정하고 일상생활의 자질구레한 잡일에 치이다보니어느덧 나도 모르게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사고방식에 젖어드는 듯했다. 수험생들을 부추겨먹는 논리학 서적에 지금이라도 손대야 해요. 그리고 외국 동화를 번역해서 벗겨먹으려면 사상사 같은 구태의연한 이름으로는 안 돼요. 새한 미디어 이런 것 어때요? 벌써 산뜻하잖아요. - P69
봄이 돼놔서 그런지 어쩐지는 몰라도 먼지 알갱이가 조금만 어른거려두 어째 폐가 근질근질 못 참겠어서 말이여…………솜틀기계에서 풀풀 날아오는 먼지 답쌔기 때문에 지병인 폐병이도지는 듯싶어 이사를 했다고 둘러대고 다녔지만, 내막으로는 주인집에서 먼저 내달린 셈이었다. - P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