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어느 한 종의 벌레가 특정 농장의 감자에 적응한다면, 같은 품종이 심긴 다른 농장에 적응하기 위해 따로 노력할 필요가 없게 된다. 간단하게 말해 동일한 음식의 바다에서 이리저리 점프만 하면 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철도와 증기선, 그리고 냉동차 등 근대 발명품들 덕에 벌레의 이동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용이해졌다. 즉 벌레들에게 풍성한 타깃을 선사해준 것은 농업의 산업화만이 아니었다. 더 빨라지고 촘촘하게 연결된 운송망은 먼 곳에 서식하던 해충들의 이동을 훨씬 쉽게 도왔다. 1898년 라일리의 후임으로 곤충학회 회장에 오른 하워드는 미국에 존재하는 최악의 해충 70종 중 자그마치 37종이 최근에 유입된 것이라고 추산했다(그 중6종의 출생지는 끝내 확신하지 못했다). (p.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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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쓰촨성 역사학자 란용이 지적했듯, 인구 증가가 눈에 띄나타난 곳은 아메리카 작물을 재배하는 지역이었다. 정부가 장려한 서쪽 이주로 인해 새로운 곳에 터를 잡은 가족들은 가장 먼고사는 문제에 직면했다. 그런 그들이 매일같이 섭취했던 것은 옥수수, 감자, 고구마였다. 다시말해 중국이 세계 최대 인구 보유국으로 올라선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콜롬버스적 대전환이었다. (p.322-3)

중앙아시아와 이집트에서 문명의 역사는 밀과 보리의 발달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토착사회는 메이즈를 바탕으로 건설되었다. 아시아에서 중국의 역사는 쌀로 만든 종이 위에 쓰여졌다. 안데스 지역은 색다르다. 이곳 문명을먹여살린 것은 곡물이 아니라 덩이줄기 작물과 뿌리작물로, 이 중 가장 중요한 작물은 감자였다. (p.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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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정책을 전면 뒤집었다. 조정이 더 이상 밀수를 막을 능력이없다는 사실을 자각했거나 얼마나 많은 푸젠성 백성들이 무역으로 생계를 꾸려가는지를 헤아려서가 아니었다. 이유는 단 하나, 그 상인들이 들여오는 어떤 물품이 중앙정부에 절실히 필요하다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그건 바로 은이었다. (p.248)

물론 아메리카의 은만 대격변의 단초로 작용한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은으로부터 파생된 문제는 스페인에 대항한 네덜란드 · 포르투갈의 봉기 및 프랑스 프롱드 내전, 나아가 30년 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은이 유럽의 격동에 매우 큰 역할을 했지만 실상 더 큰 격변에 내몰린 곳은 따로 있었다. 플린과 기랄데즈는 은이 촉발한 유럽의 문제야말로 "일종의 예선전에 불과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은은 아시아로 갔다." 그것도 아시아의 전역으로 퍼져나간 게 아니었다. 불균형적으로 거대한 양의 은이 중국의 변방인 푸젠성 워강이라는 단일 항구로 빨려 들어갔다. (p.275)

그들의 저술을 읽다 보면 정부는 흡사 관세, 쿼터제, 각종 명목으로 세금만 징수하는 걸림돌처럼 보인다. 간혹 경제적 실익을 훼손하면서까지 민간교역에 영향력을 미치면서. 하지만 국가가 아무 이유없이 이런 일을 할 리는 없을 터. 이는 무역이 지닌 두 가지 기능 때문이다. 하나는 경제학 교과서에서도 중요하게 다루는 내용으로, 이로 인해 양국의 민간시장이 활성화하면서 경제성장이 가능해진다.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무역의 또 다른 기능은 국정운영 도구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무역이 정치권력 획득 수단이 되는 것이다.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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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3 - 콜럼버스가 문을 연 호모제노센 세상
찰스 만 지음, 최희숙 옮김 / 황소자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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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의 주장을 재해석하자면, 다른 개입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순전히 경제성만으로 따졌을 경우 플랜테이션 업자들은더 싸고, 다루기 쉽고, 덜 위협적인 선택지인 유럽의 계약이민하인을 선택했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최선의 선택지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외부 개입요소는 바로 말라리아였다. (p.179)

하지만 재앙의 가장 큰 원인은 말라리아, 이질, 그리고 황열병이었다. 식민개척자들의 기록을 보면 일주일에 수십 명씩 사람이 죽어나갔다. 스페인이 뉴에든버러를 공격하기 위해 이곳에 상륙했을 때, 그들이 맨 처음 발견한 것은 흙이 채 마르지 않은 400개의 묘지였다. 이식민지는 제임스타운과 달리 식량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신의 축복 같은 식수원도 있었고, 주변에 충돌을 빚을 인디언도 없었다. 이들의 묘지를 채웠던 원인은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온 질병들이었다.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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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리아와 황열병이 노예무역의 원인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논리 비약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많은 라틴아메리 지역이 아빅도 빈국으로 머무는 이유, 남북전쟁 이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보여준 면화 플랜테이션이 거대한 영지의 언덕 위에 지어진 이유, 혹은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 병합돼 브리튼이 대영제국을 이룰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13개로 할거했던 미약한 미국 동부의 식민지주들이 막강한 대영제국과 독립전쟁을 벌여 승리한 이유가 말라리아와 황열병에 있다고 하는 것 역시 과장일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견해로는 그 모든 역사적 사건들이 말라리아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p.160-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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