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정책을 전면 뒤집었다. 조정이 더 이상 밀수를 막을 능력이없다는 사실을 자각했거나 얼마나 많은 푸젠성 백성들이 무역으로 생계를 꾸려가는지를 헤아려서가 아니었다. 이유는 단 하나, 그 상인들이 들여오는 어떤 물품이 중앙정부에 절실히 필요하다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그건 바로 은이었다. (p.248)

물론 아메리카의 은만 대격변의 단초로 작용한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은으로부터 파생된 문제는 스페인에 대항한 네덜란드 · 포르투갈의 봉기 및 프랑스 프롱드 내전, 나아가 30년 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은이 유럽의 격동에 매우 큰 역할을 했지만 실상 더 큰 격변에 내몰린 곳은 따로 있었다. 플린과 기랄데즈는 은이 촉발한 유럽의 문제야말로 "일종의 예선전에 불과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은은 아시아로 갔다." 그것도 아시아의 전역으로 퍼져나간 게 아니었다. 불균형적으로 거대한 양의 은이 중국의 변방인 푸젠성 워강이라는 단일 항구로 빨려 들어갔다. (p.275)

그들의 저술을 읽다 보면 정부는 흡사 관세, 쿼터제, 각종 명목으로 세금만 징수하는 걸림돌처럼 보인다. 간혹 경제적 실익을 훼손하면서까지 민간교역에 영향력을 미치면서. 하지만 국가가 아무 이유없이 이런 일을 할 리는 없을 터. 이는 무역이 지닌 두 가지 기능 때문이다. 하나는 경제학 교과서에서도 중요하게 다루는 내용으로, 이로 인해 양국의 민간시장이 활성화하면서 경제성장이 가능해진다.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무역의 또 다른 기능은 국정운영 도구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무역이 정치권력 획득 수단이 되는 것이다.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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