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과 균형 - 한국경제의 새로운 30년을 향하여
김용범 지음, 권순우 정리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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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 역시 K자형으로 나타났다. 여유있는 쪽은 더 빠르게 회복했고 충격을 받은 쪽은 회복 국면에서도 오히려 더 내려갔다. 어려워진 사람은 직장을 잃고 노동시장에서 퇴출되며 처지가 더 어려워졌다. 팬데믹은 충격도 차별적으로, 회복도 차별적으로 영향을 주면서양극화를 더욱 악화시켰다. 거기에 더해 재정·통화정책 패키지는 자산가격을 급등시킴으로써 소득의 양극화뿐 아니라 자산의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여기에 인플레이션이 더해졌다. 어려운 사람은 자산도 없고 일자리도 없는데 물가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유례없이 불균등한 충격이다. _ 팬데믹이 불러온 구조적 변화 중 - P110

이번에는 팬데믹 위기가 채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교적 일찍 긴축국면으로 선회하고 금리를 인상하겠다는 결정을 대외에 발표했다. 호주, 영국, 한국 중앙은행은 미국 연준과 비슷한 결정을 했다. 이번에는 여러 국가들이 자산가격 급변동과 금융시장 불안을 최소화하면서 긴축 행보를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을까? 2022년 국내외 금융시장의 시선이 온통 각국 중앙은행을 향하고 있다. 낙관적인 의견보다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_ 복합위기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라 중 - P149

글로벌 위기 이후 디플레이션 파이팅에 전념하다시피 한 선진국 중앙은행에게 이번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은 매우 생경하고 당혹스러운 과제다.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지속될지, 어느 수준에 머물지, 그리고 금리인상에 얼마나 반응할지 많은 것이 불분명하다. 갑자기 찾아온 인플레이션 현상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상화 시기(2015.12~2018.12)보다 이번 연준의 정상화 여정을 휠씬 더 어렵게 만드는 핵심 변이 요소이다.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야 한다. _ 복합위기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라 중 - P154

국가자본주의인 중국경제를 외부에서 정확히 이해하고 단정적으로 전망하기는 어렵다. 중국경제가 어려워진다고 전망하고 베팅에나섰다가 손해를 본 국제 투자자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경제를둘러싼 비우호적인 대외환경, 누적된 부실의 크기와 심각성, 감속 구간에 들어선 중국의 성장경로 상의 특성 등을 두루 고려해볼 때 중국 경제는 지금 어려운 변곡점에 서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중국과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통합되어 있는 우리나라도 전환기 중국경제의 문제가 우리 거시경제와 금융에 미칠 영향을 깊이 연구하고 대비해야한다. _ 복합 위기 가능성에 철저헤 대비하라 중 - P159

중국과 미국 간 자본거래로 많이 회자되는 게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 1조 달러이다. 막대한 규모라서 중국이 이를 무기 삼아내다 팔면 미국 국채시장이 흔들릴 거라는 투의 전망이 심심치 않게나온다. 그런데 NBER 보고서는 미국 민간 투자자들이 (거주지 기준국제통계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이에 필적하여 0.7조 달러 규모의중국 기업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보라고 강조한다. 이렇듯 미국과 중국 간 자본거래 실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밀접하고 양방향으로 작용한다. _ 복합위기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라 중 - P163

한국은 코로나19 전후 매크로 레버리지 비율 상승의 77%가 민간부문에서 일어났다. 가계와 기업부채의 수준을 비교하면 가계 레버리지 비율의 수준이 글로벌 여타 국가에 비해 높고 상승률도 빠른 반면, 기업 레버리지는 글로벌 평균 수준이다. 소득수준(일인당 GDP, 실질기준)을 고려한 매크로 레버리지 추이를 비교해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일인당 GDP 2~2만 달러 구간으로부터 여타 G7 국가의 비율을 능가하여 가계 레버리지 증가가 현저한 것으로 나타났다. _ 복합위기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라 중 - P169

개인사업자대출과임대보증금 채무를 반영할 경우 2021년 말 기준 전체 가계부채 규모는 3,170조원, GDP의 162%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_ 복합위기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라 중 - P171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국채이자율(r)이 명목경제성장률(g)보다 낮으므로(r<g) 국가부채의 위험성을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_ 재정정책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합의 중 - P178

먼저, 중장기 재정건전성을 위협하는 요인과 충격의 정도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좁히는 것이 이후 논의를 위해 바람직하다. 저출생과 베이비붐 세대 대량 은퇴로 인구구조의 불균형 상태가 심화되고, 고령화의 진전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국민연금이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로 되어 있어 연금개혁 조치가 없다면연금재정이 후대로 갈수록 빠르게 나빠진다는 것도 연금 수리학의 영역이라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_ 재정정책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합의 중 - P189

최근의 국채시장 상황과 미래 전망을 두고 각기 다른 두가지 주장이 가능하다. 먼저 한해 70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신규발행 물량을 외국인 투자자의 강한 수요로 너끈히 소화할 정도로 국고채가 국제적인 안전자산에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외국인의 국고채 순투자는 이제 한계에 다다랐고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국채 소화를 외국인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은 금융안정 측면에서 경계해야 한다고도 볼 수 있다. _ 재정정책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합의 중 - P203

대한민국의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다음 세 분야에 관한 선택이 특히 중요하다고본다. 첫째, ‘산업역군들의 노후’, 둘째, ‘고용안전망 사각지대‘, 셋째, ‘자산 격차‘이다. 이것들이 우리 사회의 난제가 된 것은 문제의 원인에 관한 분석이나 현상에 대한 진단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과감하고 혁신적인 ‘선택‘을 하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다. _ 양극화 해소 중 - P207

그래서 우리나라 노인은 일이 필요하다. 경제통계에서 생산가능인구는 15세~64세이지만 우리나라 실효 은퇴연령은 73세 언저리로 추산된다. 베이비붐 세대 노인 인구가 늘어갈수록 65세 이상 취업자가 전체 고용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는 추세다. 노인 일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가사, 돌봄, 방범, 청소 등 노인형 민간 일자리도 많이 늘고 있으나 단일분야로는 공공 일자리 사업이 제일 중요하다. 우리나라 노인 공공 일자리 사업과 예산이 월등히 큰 것은 선진국에 비해 은퇴자를 위한 연금지출 예산이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계를 위해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은 임금 혹은 연금이 될 수밖에 없다. _ 양극화 해소 중 - P210

플랫폼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전통적인 단면 시장구조를 플랫폼이 생산자와 소비자 중간에 들어서서 양쪽을 매개하는 ‘양면‘ 시장 구조로 변환시킨다. 단면 시장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교섭한다. 반면 플랫폼 시장에서는 플랫폼을 중심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관계가 형성된다. 자연히 플랫폼이 가격 설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소비자의 후생과 생산자의 잉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_ 플랫폼 규율 체계 선진화 중 - P232

2017년 광풍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020년 팬데믹 이후 국내 가상자산시장에 젊은 층의 참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가상자산 거래대금이 주식시장(KRX) 거래대금을 상회할 정도로 그 참여자 수나 거래규모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국가별로 가상자산 규모를 파악하는 통계는 존재하지 않지만, 국내 가상자산시장을 글로벌 3대규모(미국, 중국계 자본, 한국)로 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_ 블록체인과 가장자산의 미래 중 - P257

2021년부터 넷 제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각국이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는 조치를하나씩 구체화해나가자 석유, 석탄, 천연가스, 전력요금 등 화석연료와 관련된 모든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다. _ 탄소중립 실행계획 마련 중 - P281

이런 점을 감안할 때 현단계에서 화석연료 없이 넷 제로로 갈 수있다고 믿는 것은 현실성 없는 희망사항(wishful thinking)일 뿐이다. 녹색전환(going green)의 길은 통념으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렵다. 탄소중립 실행계획 마련 중 - P282

한국은 바야흐로 제3기 산업화 시기에 진입했다. 1960년대부터1980년대까지 30년은 외자를 빌려 산업화를 시작해 경상수지 흑자국으로 진입한 한국 산업화의 제1기다. 1990년부터 2020까지 30년은 일본 등 쟁쟁한 선진국과 경쟁하며 제조업의 국제 강자로 자리 잡은 산업화 제2기이다. 제1기와 제2기는 탄소연료 전성시대다. 이 시기에 한국 제조업은 세계적인 강자로 올라섰다. 제3기는 2050년까지이어질 탄소중립의 시대이다. _ 탄소중립 실행계획 마련 중 - P295

저탄소 청정기술의 개발에는 막대한 R&D 비용이 소요된다. 수소에너지 기술이나 탄소포집기술(CCUS)같이 탄소중립을 위하여 필요한 핵심기술은 성공 가능성도 보장하기 어렵다. 설령 개발이 되더라도 그 기술의 가격이 높아서 대체재라고 할 기존 에너지원에 대한가격경쟁력을 갖기 힘들다. 정부가 확실한 R&D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기존 화석연료에 대한 가격 현실화 계획도 차질없이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저탄소기술의 시장 안착이 가능해진다. _ 탄소중립 실행계획 마련 중 - P299

당시에 ‘어머니 같은 지구를 살린다‘는 멋진 말을 하는 정치지도자들에게 보통 시민들은 ‘난 하루하루를 살아갈 빵이 필요해‘라고 절규했다. _ 탄소중립 실행계획 마련 중 - P301

문제해결을 위한 출발은 우리의 안온한 일상이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더러운‘ 석탄, 석유, 가스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겸손함과, 지금의 익숙함에서 벗어나 행동하지 않으면 평온한 일상이 지속되지 못한다는 절박감을 모두가 공유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_ 탄소중립 실행계획 마련 중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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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중력에 맞서 - 과학이 내게 알려준 삶의 가치에 대하여
정인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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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 생의 중력에 맞서‘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어요. 과학은 소수의 백인 남성 과학자, 엘리트나 전문가가 독점하는 지배 또는 힘의 언어가 아니라 인간의 무지와 편견을 깨고 세상을 바꾸는 해방의 언어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과학책 읽기의 출발점에 우리의 경험을 세워놓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앎을 통해 자기 변화를 추구하는 ‘우리의 이야기‘가 더 나은 과학기술, 사람을 위한 과학기술을 만들 테니까요. _ 작가의 말 중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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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과 균형 - 한국경제의 새로운 30년을 향하여
김용범 지음, 권순우 정리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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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진행중이라 미래를 단정적으로 전망하기엔 시기상조이다. 그러나 2년 정도의 충격만으로도 세상은 팬데믹 이전과 이후로바뀐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상전벽해 수준으로 변했다. 팬데믹이불러온 구조적 변화와 남긴 과제가 하나같이 만만치 않다. 금융위기와 경기침체, 지정학적 갈등, 에너지 위기가 겹친 복합위기 징후에 철저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 _책을 펴내며 중 - P5

현대 자본주의는 금융자본주의다. 금융은신용창출(credit creation), 즉 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금융은 현대 자본주의의 번영을 낳은 가장 중요한 제도적 토대이면서, 잘못 다루면 몇십년간 애써 이룬 터전을 한순간에 불태우는 인화물질이기도 하다. 현대 금융자본주의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 P29

과연 완벽하게 멈출 수 있을까? 인류 역사상 모든 사람이 멈춘 적은없었다. 전쟁을 할 때도 전장의 경제는 멈췄지만 후방에서는 공장을돌리고 상품을 공급했다. _ 팬데믹의 내습 중 - P82

보건위기와 경제위기가 길게 이어지면 그만큼 금융위기 가능성이커진다. 실업과 도산이 줄을 이어 금융기관이 부실해지고 신용이 경색되면 다시 멀쩡한 기업과 가계도 파산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금융위기가 엄습하면 깊고 짧은 충격 후 빠른 회복‘의 기대는 물 건너가고, ‘깊고 넓으며 오랜 경기침체‘의 고통이 뒤따른다. 어떤 일이 있어도 피해야 할 최악의 시나리오다. _ 팬데믹의 내습 중 - P83

똑같은 규모의 돈이 풀렸어도 금융회사에 머물러 있는 것과 국민들에게 직접 지급하는 것은 소비를 자극하는 효과가 다르다. 글로벌금융위기 당시 그렇게 많은 자금을 풀었는데도 자취를 찾아볼 수 없었던 인플레이션이 팬데믹 시기에는 강한 폭풍으로 등장했다. _ 팬데믹이 불러온 구조적 변화 중 - P101

팬데믹은 충격 자체가 대단히 불균등하게 나타났다. 팬데믹 초기에는 각국 정부가 전면적인 멈춤, 락다운을 했기 때문에 제조든 서비스든 모두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제조 분야는 보복소비에 힘입어 빠른 회복을 보인 반면, 대면을 해야 하는 서비스 분야는 여전히 언제 끝날지 모를 거리두기의 타격을 입고 있다. _팬데믹이 불러온 구조적 변화 중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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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의 종소리 스가 아쓰코 에세이
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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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나보다 한 세대전 작가들을 좋아한다. 특히 일본 작가를...스가 아쓰코 작가책을 아마도 다 읽을 것만 같다. 우리 부모님시대 사람들이 간직한 정서를 고스란히 간직하여 글을 써 내려갔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의 마쓰이에 마사시처럼

<베네치아의 종소리>는 2차 세계대전 이전과 이후에 아동시절, 유럽 유학시절 및 결혼 시절 겪었던 경험이다. 아니 40년이 지나 써내려간 추억이다. 사실이라기보다 현재 만들어진 추억이다.

이 책은 마지막으로 갈수록 공감의 깊이가 더해진다는 점이다. 옳은 말을 하는 글이 아니라 따스한 국을 내놓는 마음처럼...

봉건적이고 근대적인 가족사가 지배했던 그 시절, 임종을 앞둔 아버지가 딸에게 부탁한 오리엔트 특급열차 찻잔을 구해는 장면에서 눈물이 맺혔다.

아름다운 문장을 써내려간 29년생 작가에 존중에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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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3-20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끌리네요~^^

mailbird 2022-03-20 19:56   좋아요 1 | URL
마음을 새기는 잔잔한 글이 가볍지 않은 에세이 같아요
 
베네치아의 종소리 스가 아쓰코 에세이
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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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 ‘dangling in the air‘ 라는 표현이 있다. 보통 어중간하게 매달린‘ 정도로 번역하겠지만 그보다 무책임하고 버림받았다는 어감이 더 강하고, 홀로 우주에 남겨져 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쓸쓸함이 느껴진다. 종착역 벤치에 앉아 있는 몇 시간 동안, 첫번째 기숙사와 다음 기숙사 사이의 골짜기에 낀 꼴이 돼버린나는 다름아닌 ‘dangling in the air‘ 상태로 끝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_ 칼라가 핀 정원 중 - P102

바로 앞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지척에서 노트르담대성당이 하얗게 빛나며, 한낮의 푸른빛이 남은 밤하늘을 배경으로 흘러넘치는 조명을 받고 두둥실 떠 있었다. 센 강가의 화려한 남쪽 면을 아낌없이 보여주면서. 트랜셉트 돌출부 한가운데 위치한 등근 장미창 안쪽에는 섬세한 흰색 석재 틀을 두른 기하학적 무늬의 꽃잎이 얼어붙은 불꽃처럼 시커먼 유리 부분을 감싸안고 조용히 반짝였다. 우주를 향해 활짝 핀 신비한 흰 장미. 트랜셉트와 네이브의 지붕 능선이 십자로 교차하는 지점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가늘고 날카로운 첨탑. 정신의균형과 도시적인 세련미가 극에 달한 파리의 대성당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_ 대성당까지 중 - P145

"스스로 대성당을 짓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완성된 대성당에서 편하게 자신의 자리를 얻으려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샤르트르 대성당으로 가는 길에서 나는 내 안의 대성당을 떠올리며, 도쿄의 두 친구는 지금쯤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생각했다.
_ 대성당까지 - P155

이틀이나 걸어놓고 정작 대성당에 들어가지 못한 친구들과 함께 역으로 향하는 어두운 언덕길을 내려가면서, 나는 평생 기다리기만 한 성자의 삶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_ 대성당까지 중 - P164

공상과 거짓말, 허구가 박쥐처럼 날개를 달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뒤섞인 끝에, 다케노 부인은 신문을 통해 내 남편이 죽었음을 알고 곧바로 애도의 전화를 걸기로 했다. 물론 나는 밀라노에 있으니 우리 가족 누군가에게 애도의 뜻을 전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에서 본인이라는 사람이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가볍게 흘러가던 다케노 부인의 게임에서 죽음이란 너무나무거운 현실이었다. 그때까지 순조롭게 부풀어오르던 상상의 풍선이, 내 진짜 목소리를 듣는 순간 팡, 작은 소리를 내며 터져버렸다. _ 하얀 방장 중 - P211

엷은 어둠이 깔린 인적 드문 길을 걷다보니 공기가 벚꽃색으로 물들고, 소리 없는 음악 속을 더듬거리며 헤매는 기분이었다. 바닥에 흩어진 꽃잎이 주위를 아련하게 비추었다.
"이제 갈 시간인 것 같네요." _ 카티아가 걷던 기ㄹ 중 - P234

그러면서도 ‘농담을 아는 사람‘과 ‘농담 하나 할 줄 모르는 사람‘을엄밀하게 구별하며 농담을 모르는 인종을 은근히 경멸했다. 그리고 그 재미없는 종족의 대표가 바로 시댁 사람들이었다.
_ 여행의 저편 중 - P243

여름이 끝나가는 파에스툼 유적의 들판에 나는 홀로 서 있었다.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다들 제각각 흩어져버린 것이다. 천천히 기울기 시작한 해가 갑자기 속도를 더해 숲 건너편 바다로 잠겨가는 시간이었다. 오렌지를 짠 듯한 빛이 두 개의 신전 중 다른 하나를 압도하며 한층 높아 보이는 포세이돈 신전을 감쌌고,
말을 잃고 서 있는 나 역시 감귤 같은 색으로 물들었다. 그리스신전은 처음 보았다. 완전한 것이 늘 그렇듯, 위대한 조화가 자아내는 평온함으로 인해 거의 인간의 손을 거치지 않고 존재한다고 느낄 만큼 교묘한 착각의 그물이 한동안 나를 고스란히 감쌌다. _ 아스포델 들판을 지나 중 - P273

휑뎅그렁한 무젤로 거리의 집에서 아침에 눈을 뜨고 온통 흰빛으로 가득한 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해가 진 파에스툼의 들판에서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페피노를 돌부리에 걸려가며찾아다니는 내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아스포델이 꽃 이름인지, 그저 망각을 의미하는 보통명사인지는 아직 확실히 모른다. _ 아스포델 들판을 지나 중 - P278

런던을 떠날 때는 화창하던 하늘이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잿빛으로 변하는 광경을 보며, 내 감각으로는 도쿄에서 오사카 거리쯤으로 느껴지는 에든버러 역에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였다. _ 오리엔트 특급열차 중 - P285

죽음을 앞두고도 아버지는 여전히 젊은 날의 여행을 생각하고있다. 파리에서 심플론 고개를 넘어 밀라노, 베네치아, 트리에스테까지, 분주한 시간 속을 달려 도시의 소란에서 소란으로 젊은 그를 데려다준 푸른 열차를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움켜쥐고 있던 와곤릿 사의 파란색 침대차 모형과 흰색 커피잔을, 병자가 놀라지 않도록 살며시 침대 옆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곁눈으로 그것을 보던 아버지의 의식이 점점 희미해져갔다. _ 오리엔트 특급열차 중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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