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케인스는 현명하고 자신감도 넘치는 기득권 세력인 자신과 동료들과 선배들 모두가, 막상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 이 경고의 신호들을 모두 무시한 채 그저 수수방관했다며 이렇게 말한다. "[1914년 이전의 경제성장이라는] 낙원에 군국주의와 제국주의, 인종적·문화적 경쟁, 독점, 각종 제약, 배제 등의 문제가 스멀스멀나타나면서 결국 에덴동산의 뱀처럼 낙원을 망쳐놓는 역할을 하게되건만." 이런 문제들을 "그저 일간지에 실리는 재미난 읽을거리이상으로 보지 않았었다." _ 북방세계의 민주화 중 - P156
인도는 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내가 그것을 받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또는 모든 깨달은 이들이 말하듯이, 그것은 이미내 안에 있는지도 모른다. - P80
고향이란 기억과 연결된 장소이다. 따뜻하고 소중한 경험을나눈 기억 속의 사람과 사물이 붙박여 있어서 나의 일부 또한늘 그곳에 남아 있는 곳이다.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을 먹여 살리는 일이 달라지면서 고향의 의미도 변했다. 이제는 떠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모두 떠나버린 곳이 고향이다. ‘고향을 지킨다‘라는 표현이 감상적 판타지로 남은 고향의 정체성을 말해주고 있다. - P117
내가 모르는 젊은 세대에게 고향이라고 부를 만한 곳은 저기 가상 세계 속, 롤이니 배틀그라운드니 하는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감히 짐작해본다. - P118
이제 육십 년의 세월을 살아온 내가 지난 시간을 생각해봐도, 그저 ‘잠깐‘에 불과하다. 스무 살 때에도 과거는 그저 ‘잠깐‘이라는 느낌이었을 테고, 지금 창밖을 내다보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도 오롯이 ‘잠깐‘일 뿐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잠깐의 순간들이다. 그래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조차 그토록 소중하게 느껴지나보다. - P123
누군가가 손을 뻗어 좁은 구석에서 끌어내주기를 바라던 어린 마음을 이제 나는 경멸하지 않는다. 달리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두려움으로 굳게 잠긴 문을 스스로 여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님을 알려주고 싶기는 하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통념도 상상하는 것처럼 높고 견고한 장벽이 아니라는 것도. 물론 언젠가는 스스로 알게 되겠지만.알고 보면 나는 우여곡절 끝에 꿈을 이룬 사람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거다. - P128
평생 공동체의 한구석에서 옹색하게 살아온 어설픈 개인주의자의 고백이다. 공동체 없이는 개인이라는 개념도 성립하지않는다. 행복한 개인의 필연적 조건은 공동체의 좋은 구성원이되는 것이다. 지난 세월 좌충우돌하며 깨달은 것은 공동체의 좋은 구성원이 되려면 실수하고 배우고 또 실패하고 학습하는 일을 거듭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바람직한 시민이 되고자 노력하지 않아도, 타인을 돕기 위해 내 것을 내줄 생각이 전혀 없어도, 나누면서 살아갈 도리밖에 없었다. 개인주의자로 천명하며 웅크리고 살 수는 있어도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는 고립된 개인으로 살 수는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라. 스스로 개인주의자라고 공언하는 이들도 웅성웅성 모여서 무리를 이루려 애쓰고 있음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 P153
윤리는 의무나 당위가 아니라 인간이 존재하는 방식을 아름답게 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름답게 살아보자. - P154
자기 시신을 수습할 사람들을 위해 빳빳한 새 돈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판단에 따라 삶을 마감했으리라 믿는다.자기연민이나 자학이나 값싼 감상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나라의 경제를 들었다 놓았다 할 힘은 없었을지 모르나, 열다섯평 공간에 살면서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노모를 돌볼 힘을지녔던 사람이다.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난 속에서 어머니를 저버리지 않고 아버지를 욕하지 않을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드문지 아는가. 세세히 모르는 그의 삶을 함부로 동정하거나훼손하고 싶지 않다. 그의 기품 있는 죽음을 존중한다. - P157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가만히 앉아서 남을 비난하며 훈수를 두는 일이다. 미리 계산할 수 없는 우연과 조건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곳이세 상이며, 세상은 또한 끊임없이 변한다 - P184
인간을 바라볼 때 드론의 시점을 취하기 쉬운 위치가 있다.한 집단의 리더, 군대의 지휘관, 대통령, 기업의 경영자, 고위 관료처럼 높은 지위와 권력이 밀어올려놓은 자리들이다. 이런 자리에 오르게 되면 역할의 특성상 인간의 눈이 아니라 드론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이들은 인간을 개인으로 마주보는 게 아니라집단의 구성요소로 바라보기 때문에, 집단의 움직임과 위치를근거로 개인의 희생을 유도하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 P187
해답을 찾고 분석할 능력은 나에게 없다. 다만 스스로 가난하다고 믿는 내가 먼 나라의 풍광을 구경하러 가는 사치를 누릴수 있도록 해준 시스템의 힘을 떠올린다. 한국인의 생각과 행동을 바꾼 것은 아마도 그 힘일 것이라 짐작한다. 자연재해나 불의의 재앙 앞에서는 아주 잠시라도 사람들 사이에 긴밀한 연결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이제 여기, 대한민국에서는 유효하지 않은것 같다. - P192
"초원에서는 풀이 가장 큰 생명체이고, 나머지는 모두 작은 생명체에 불과해. 작은 생명체는 큰 생명체에게 의지해야만 살아갈수 있다. 늑대와 사람조차 작은 생명체에 속하지. 그래서 풀을먹어치우는 것은 고기를 먹는 것보다 더 나쁜 해악이야. 너는 가젤이 가련하다고 하지만 풀은 가련하지 않으냐? ……………가젤 무리가 필사적으로 풀을 뜯어먹는 것은 살생이 아니냐?" - P202
앎이라는 것은 자신이 안다는 것을 아는 것과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다소 거칠게 나눌 수 있다. 마찬가지로모름 역시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과 자신이 안다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이제까지의 앎을 되돌릴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우리는 이따금 알아도 모르는 상태에 머물러야 하지 않을까. 모름의 영역이 넓어지면 꿈의 지평도 넓어질 테니. - P206
평범하게 살아온 덕분에 더 많은 이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세상에는 평범한 사람이 더 많으니까. 이해한다는 것은 나에게매우 중요한 일이었기에, 좋았다.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세상을바라볼 수 있어서도, 좋았다. 살다보면 평범은 비범과 대치되는 자리에 있는 게 아님을 알게 된다. - P10
변명삼아 남긴다. 베네치아에서 마주친 덴마크 여인이 고향의 언어로 말테에게 속삭인 말이다. "노래하라고 해서도 아니고,그냥 보여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지금 여기서 노래하지 않을 수없기 때문이에요." - P24
시인이 되고자 하는 꿈이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단 한 줄의 시도 쓰지 않았다. - P24
모든 게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에는 빈틈이 있다. 마음이란 오직 나만의 것이 아니다. 마음은 내가 살아가는 시공간 속사람들이 내면화한 가치나 시선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가난이나 질병에 대한 편견. 계층 혹은 계급이라는 구별. 중심이 되는미학적 기준. 이런 것과 상관없는 마음이라는 게 있을까. - P41
그런데 이상하다. 지금 씻고 침대에 누워 책을 펼쳤는데 어디선가 생선 썩는 냄새가 솔솔 난다.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그렇다면 냄새의 진원지는 그가 아니라 바로 나? - P44
사랑의 놀라운 면은 세상 사람들이 좋은 사람 예쁜 사람 멋진사람 부유한 사람 유능한 사람만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쁜 사람 예쁘지 않은 사람 가난한 사람 이상한 사람도 사랑한다.때로는 아주 깊이 사랑한다. 사랑은 성공이나 행복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증거 아닐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것이 자유임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 P49
둥글게 감겨 있는 투명 테이프의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더듬어 찾듯 계절의 시작과 끝을 머뭇머뭇 감지하는 중이다 - P52
부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할 때 나는 경멸과 굴종을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고 말하는 셈이 된다. 정신승리일 뿐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아큐다. - P57
오늘 낮에 읽은 건데, 잠을 토막토막 자고 신경이 예민해지는건 칼슘 부족이라고 한다. - P60
행복이란 아무일 없이 무탈하게 사는 것. 몸과 마음이 바른 자세를 잃지 않게 조심조심 사는 것. - P67
<다시 지도의 시대> 구글맵이나 티맵이 일상화된 시대에 지도책을 찾았다. 종이위에 펼쳐진 지도는 단순 교통과 지명 검색을 뛰어넘는다. 지도 바탕위에 말하려는 무언가를 덧칠하고 강조한다. 지정학이 되기도 하고 지경학이 되기도 한다. 역사와 문학 그리고 미래를 예측하는 도구로 까지 확대된다. 생각보다 읽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정성스레 그려진 지도의 사실을 이해하고 맥락을 해석하는 시간이었으리라. 이 책의 저자가 미국이 아닌 유럽(프랑스)라는 점에 이념적 치우침에 자유로운 측면이 있다. 미국과 중국위주의 신냉전 시대에 경직된 내용은 어쩔 수 없지만, 한 쿠션 경감된 유럽의 시각이 투영되어 있다. 유럽저자이니만큼, EU-아메리카-아시아-중동-아프리카의 순으로 마지막 장에는 이전과 이후의 세계를 지리적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난 당연히 제3장 아시아부터 읽었다. 아무리 우리나라 k-시리즈를 강조하지만, 한반도의 대표 상품은 분단이고 DMZ이고 판문점이다. 일요일 어제 이스라엘의 헤즈볼라 폭격 속보가 뉴스를 장식한다. 중동편을 읽으면 중동내 제 세력간의 관계와 대외 관계를 단순에 정리했다. 이후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예측 가능할 정도의 콘텐츠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아쉬움이란(사실 책을 여러번 내려두었다 ㅠ) 지도내 텍스트 너무 작아 노안 초기 증상을 보이는 나같은 경우에 안경을 벗고 책을 가까이 가져오는 과정을 반복해야만 했다. 사실 이 책의 용도가 참고서(reference book) 용도가 아니다. 그리고 도서 제작의 아쉬움으로 양면에 펼쳐있는 지도책의 특성상 180도 펼친면이 되는 제본 방식은 사실 제작의 디폴트 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지도 설명은 도형이나 색상인데, 인쇄 색상의 아쉬움으로 설명하려는 내용이 곤란해진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디지털 지도가 단점을 보려거든 이 책 <지도가 보아야 보인다>를 읽고 봐야한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지역명이 아니라 관계와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지도를 보는 근본 이유 아니겠는가?
이러한 세계화 스토리의 한 부분은, 국제적으로 명확히 갈라진분업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열대‘ 지역은 고무, 커피, 설탕, 식물 기름, 면화 등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은 농업 생산물을 유럽에 공급했다. 유럽인이 대거 이주해서 정착한 온대지방-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칠레, 우루과이 그리고 아마도 남아공 등-은 주요 곡물, 육류, 양모를 생산해서 유럽으로 수출했다. 독일농부들은 이제 미 대륙뿐만이 아니라 오데사 Odessa 에서 들어오는러시아의 곡물과도 경쟁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서유럽은 이러한 수입품의 대가를 공산품의 수출로 지불했다. 미국 동북부도 그러했다. 1910년이 되면 미국의 수출 품목 가운데 절반은 미국 동북부에서 나온 공산품 및 재료들이 차지하게 된다._ 세상을 세계화하기 중 - P72
어쨌건 19세기 말 세계경제에서 주변부가 되는지역들의 비교우위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었다. - P73
케인스가 1919년에 썼듯이, 세계의 중상층은 1914년이면 "낮은비용으로 별다른 수고를 들이지 않으면서도 이전 시대에 최고 부자들이나 가장 강력한 군주들이 누렸던 것 이상의 편리함, 안락함, 편의시설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 P78
언어가 발명된 이래로 인류의 위대한 힘들 중 하나는 수다와 뒷얘기에 대한 욕구가 우리를 집단지성으로 변모시킨다는 점이다. - P80
1870년 이후가 다른 점은 가장 선진적인 북대서양 경제들이 발명을 발명했다invented invention 는 것이었다. 이들은 단지 섬유기계와철도만 발명한 것이 아니라, 기업 연구소와 근대적 대기업을 낳은조직 형태도 만들어냈다. 그 후 기업 연구소에서 발명된 기술은 한나라 혹은 한 대륙 전체의 규모로 활용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발견은 이 선진 경제들이 기존의 것을 더 잘 만드는 방법뿐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것을 발명함으로써 큰돈을 벌고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_ 기술 주도 엔진의 시동을 걸다 중 - P92
에디슨의 직류 시스템을 선택하면 발전소를 여러 군데에, 심지어동네마다 하나씩 세워야 한다. 테슬라의 교류 시스템은 몇 개의 큰발전소만 있으면 된다. 이 몇 개를 가장 편리한 곳에 세우고 그다음에는 강력한 진동-높은 교류 전압을 통해 전력을 장거리 및단거리의 전력선을 통해 보낼 수 있고, 변압기를 통하여 그 진동을높일 수도 있고 또 낮출 수도 있다. 따라서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는것은 테슬라 쪽이며, 그것도 아주 강력하다. - P102
미국이 상대적으로 매우 번영했던 데다 1차 대전 이전에 기술발전 속도가 서유럽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에, 사람들은 미국에 준거하여 밝아오는 20세기가 어떤 모습이 될지를 상상했다. 17세기에 대부분의 유럽은 네덜란드에서 미래를 찾았고, 19세기에는 대부분의 세계가 영국으로 눈을 돌렸다. 장기 20세기가 시작되면서 거의 전 세계, 특히 유럽 전체가 미국을 주목했다. 관찰자들에게 미국은 질적으로 다른 문명처럼 보였다. 미국은 유럽 국가들과 달리정치를 제약하고 국민을 억압하는 과거의 유산에 매여 있지 않았기 때문에 대담하게 미래로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 P113
유토피아의 깃발을 높이 들고 세계의 리더이자 길잡이가 되겠다고 약속하고 있던 것은 미국이었다. - P116
"가격은 우리가 직접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구현하는 소통과 안내의 도구"이기 때문에 심지어 준수하게 효율적이고 생산적일 수 있는 시장 자본주의였고, "단지 명령을 통해 분업에 기반한 동일한 질서를 이끌어 내겠다는 생각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하이에크는 썼다.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희생시켜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보상하기 위해 시장의 소득분배를 재조정하려는 시도는 시장 자본주의를 약화시킬 것이었다. - P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