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내가 그것을 받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또는 모든 깨달은 이들이 말하듯이, 그것은 이미내 안에 있는지도 모른다. - P80
고향이란 기억과 연결된 장소이다. 따뜻하고 소중한 경험을나눈 기억 속의 사람과 사물이 붙박여 있어서 나의 일부 또한늘 그곳에 남아 있는 곳이다.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을 먹여 살리는 일이 달라지면서 고향의 의미도 변했다. 이제는 떠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모두 떠나버린 곳이 고향이다. ‘고향을 지킨다‘라는 표현이 감상적 판타지로 남은 고향의 정체성을 말해주고 있다. - P117
내가 모르는 젊은 세대에게 고향이라고 부를 만한 곳은 저기 가상 세계 속, 롤이니 배틀그라운드니 하는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감히 짐작해본다. - P118
이제 육십 년의 세월을 살아온 내가 지난 시간을 생각해봐도, 그저 ‘잠깐‘에 불과하다. 스무 살 때에도 과거는 그저 ‘잠깐‘이라는 느낌이었을 테고, 지금 창밖을 내다보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도 오롯이 ‘잠깐‘일 뿐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잠깐의 순간들이다. 그래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조차 그토록 소중하게 느껴지나보다. - P123
누군가가 손을 뻗어 좁은 구석에서 끌어내주기를 바라던 어린 마음을 이제 나는 경멸하지 않는다. 달리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두려움으로 굳게 잠긴 문을 스스로 여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님을 알려주고 싶기는 하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통념도 상상하는 것처럼 높고 견고한 장벽이 아니라는 것도. 물론 언젠가는 스스로 알게 되겠지만. 알고 보면 나는 우여곡절 끝에 꿈을 이룬 사람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거다. - P128
평생 공동체의 한구석에서 옹색하게 살아온 어설픈 개인주의자의 고백이다. 공동체 없이는 개인이라는 개념도 성립하지않는다. 행복한 개인의 필연적 조건은 공동체의 좋은 구성원이되는 것이다. 지난 세월 좌충우돌하며 깨달은 것은 공동체의 좋은 구성원이 되려면 실수하고 배우고 또 실패하고 학습하는 일을 거듭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바람직한 시민이 되고자 노력하지 않아도, 타인을 돕기 위해 내 것을 내줄 생각이 전혀 없어도, 나누면서 살아갈 도리밖에 없었다. 개인주의자로 천명하며 웅크리고 살 수는 있어도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는 고립된 개인으로 살 수는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라. 스스로 개인주의자라고 공언하는 이들도 웅성웅성 모여서 무리를 이루려 애쓰고 있음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 P153
윤리는 의무나 당위가 아니라 인간이 존재하는 방식을 아름답게 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름답게 살아보자. - P154
자기 시신을 수습할 사람들을 위해 빳빳한 새 돈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판단에 따라 삶을 마감했으리라 믿는다. 자기연민이나 자학이나 값싼 감상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한나라의 경제를 들었다 놓았다 할 힘은 없었을지 모르나, 열다섯평 공간에 살면서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노모를 돌볼 힘을지녔던 사람이다.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난 속에서 어머니를 저버리지 않고 아버지를 욕하지 않을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드문지 아는가. 세세히 모르는 그의 삶을 함부로 동정하거나훼손하고 싶지 않다. 그의 기품 있는 죽음을 존중한다. - P157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가만히 앉아서 남을 비난하며 훈수를 두는 일이다. 미리 계산할 수 없는 우연과 조건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곳이세 상이며, 세상은 또한 끊임없이 변한다 - P184
인간을 바라볼 때 드론의 시점을 취하기 쉬운 위치가 있다. 한 집단의 리더, 군대의 지휘관, 대통령, 기업의 경영자, 고위 관료처럼 높은 지위와 권력이 밀어올려놓은 자리들이다. 이런 자리에 오르게 되면 역할의 특성상 인간의 눈이 아니라 드론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이들은 인간을 개인으로 마주보는 게 아니라집단의 구성요소로 바라보기 때문에, 집단의 움직임과 위치를근거로 개인의 희생을 유도하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 P187
해답을 찾고 분석할 능력은 나에게 없다. 다만 스스로 가난하다고 믿는 내가 먼 나라의 풍광을 구경하러 가는 사치를 누릴수 있도록 해준 시스템의 힘을 떠올린다. 한국인의 생각과 행동을 바꾼 것은 아마도 그 힘일 것이라 짐작한다. 자연재해나 불의의 재앙 앞에서는 아주 잠시라도 사람들 사이에 긴밀한 연결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이제 여기, 대한민국에서는 유효하지 않은것 같다. - P192
"초원에서는 풀이 가장 큰 생명체이고, 나머지는 모두 작은 생명체에 불과해. 작은 생명체는 큰 생명체에게 의지해야만 살아갈수 있다. 늑대와 사람조차 작은 생명체에 속하지. 그래서 풀을먹어치우는 것은 고기를 먹는 것보다 더 나쁜 해악이야. 너는 가젤이 가련하다고 하지만 풀은 가련하지 않으냐? ……………가젤 무리가 필사적으로 풀을 뜯어먹는 것은 살생이 아니냐?" - P202
앎이라는 것은 자신이 안다는 것을 아는 것과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다소 거칠게 나눌 수 있다. 마찬가지로모름 역시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과 자신이 안다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이제까지의 앎을 되돌릴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우리는 이따금 알아도 모르는 상태에 머물러야 하지 않을까. 모름의 영역이 넓어지면 꿈의 지평도 넓어질 테니.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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