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라 메뚜기가 지천이다. 가을 들녘은 추수하느라 바쁘고 메뚜기는 사방천지 뛰어다닌다. 어르신들은 그 메뚜기를 잡으러다니느라 동심으로 돌아간다.
저녁에 퇴근하고 보니 거실 위 테이블을 메뚜기가 점령했다. 오늘도 엄마는 들판을 누비고 다니셨나보다. 엄마의 얼굴이 빨갛게 익었다. 엄마의 빨간 볼에 가을이 담겼다. 엄마의 마음에 장난꾸러기 어린아이가 가득찼다. 오늘 밤 꿈에 엄마는 어린아이로 돌아가 예전 어릴 적 동무들과 신나는 놀이를 하느라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겠다. 엄마가 잠든 뒤 방문을 살짝 열어봐야겠다.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농경과 목축이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이지만, 아직도 자연 속에서 인간의 손길과 무방하게 자유를 누리며 풀숲에서 그 생을 살다가는 자유로운 생명에 감탄한다.
더불어 그 자유로이 뛰어다니는 존재를 잡으러다니다 자유가 옮아붙은 어르신들의 늙은 동심에 미소가 배어나온다.
마당에 몇 포기 심어져있던 고추를 하나 뚝 따보았다. 자연의 정수를 가득 담고 있는 생물을 따는 기분은 왠지모를 영광스런 느낌이었다.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흙을 어머니 삼아 쑥쑥 자라난 어린 생물은 어느듯 수확의 계절을 맞아 저마다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자연의 탯줄을 달고 있는 고추를 뚝, 소리를 내면서 따는 일은 그래서 경건하다.
조카에게 메뚜기 반찬을 한 번 먹어보라고 했더니 얼굴을 구긴다. 살아있는 입체적 모양 그대로인 것을 입 안에 넣을 수 없다고 했다. 작년까지의 나와 같은 말이다. 올해의 나는 뭐가 달라졌을까. 올해의 나는 메뚜기를 입에 넣어보았다. 탐욕스레, 게걸스레 먹진 못하고 그저 오래오래 씹으면서 메뚜기에 대해 생각했다. 매끼 밥상을 자연에서 빌려오는 입장으로 쌀과 메뚜기와 기타 다른 것들의 차이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그저 고마워하는 마음을 조금더 가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