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들은 언제나 나에게 하나의 물음을 던진다.
<연금술사>는 나에게 가장 절실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는 나의 사랑을, <브리다>는 생에서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 보았다.
사랑, 운명, 소망, 인생, 영적 존재.
우리의 인생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코엘료의 소설은 이렇게 언제나 나에게 긴 침묵을 흐르게 만들어 주었고, 나의 생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것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하게 해준다.



이번에 읽게 된  <알레프>도 나에게 어떤 긴 여운을 남겨줄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조심스럽게 펼치게 된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은 어떤 영감을 얻어서 글을 쓰게 되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순례자>는 그동안 코엘료가 하던 일인 음악, 저널리스트, 록스타, 극작가 등의 다양한 직업에서  세계적인 소설가로 자리매김을 하게 해주었던 작품인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순례하는 중에 영감을 받아서 쓰게 되었고, <브리다>는 순례길의 한 코스를 관할하는 '브리다 오페른'으로부터 자신이 걸어온 영적 탐색의 길을 들려주는 것에서 소설의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진정한 순례자인 것이다.



" 산다는 것은 경험하는 것이지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 내가 항상 같은 곳에만 머물러 있다면 내가 원하는 곳에 결코 도달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사막과 도시와 산과 길 위에 있을 때만 내 영혼과 대화할 수 있다. " (p99~100)

 <알레프>도 역시 1986년에 산티아고 순례기를 떠났던 때에서 약 20년이 지난 2006년에 다시 순례길에 오르게 되고 그 마지막 코스로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타기로 하게 되는데,  모스크바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터키 여인 힐랄과의 인연을 토대로 쓴 작가 자신의 체험이 담긴 소설인 것이다.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어디까지가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고, 어디서부터가 소설적 허구의 세계인지 궁금해 질 정도로 진실과 허구가 구별되지 않는 자전적 소설인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번 순례길을 떠나기 전에 여러 번의 영적 경험을 하기도 했고, 튀니지에서는 사밀이라는 청년이 어떤 건물에 대한 설명을 하는 순간 천분의 일초동안 과거로 이끌려 들어가기도 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영적 순간은 힐랄을 만나는 순간부터 더 명료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힐랄은 브리다와 마찬가지로 스물 한 살의 여인.
힐랄의 첫 등장은 너무도 당돌하고 맹랑한 힐랄의 행동에 황당함을 느끼게 하지만, 어느 순간 그녀의 존재가 아련하게 떠오른다.
모든 것이 한 시공간에 존재하게 되는 공간, 알레프에 나와 힐랄이 놓이게 되면서 그들은 전생의 어떤 한 시점에서 함께 존재했던 사람들임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아주 짧은 순간 열렸다가는 다시 닫히게 되는 그 문 앞에서 그 문 뒤에 숨겨진 자신의 전생을 엿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미 그는 자신이 19세기 프랑스 작가였던 전생을 보기도 했는데, 이번에 그가 보게 되는 전생은 어떤 모습일까.
그와 힐랄은 어떤 관계로 얽혀 있었을까.
그가 본 전생은 마녀사냥이라 일컬어지는 이단자를 심판한다는 종교재판의 모습.
그는 자신의 전생에서 힐랄에게 용서를 빌어야만 했던 사람이기에...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9288 킬로미터를 여러 날에 걸쳐서 몇 개의 도시를 거쳐야만 하는 긴 여행이건만, 그 기차 안에는 전생에서 아픔을 가진 두 남녀가 함께 하는 것이다.
그들은 전생에 사랑한 사람이기도 했고, 상처를 준 사람이기도 하고, 배신을 했던 사람이기도 한 사람으로.
코엘료는 <알레프>를 통해서 환생을 이야기한다.





우린 결코 한 번의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님을 이야기한다.
전생이 있었고, 전생에서 맺어진 사람들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른 생에서 만나게 됨을 이야기한다.
어떻게 보면 현실감이 없는 그런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끝난다고 해서 아주 끝나지 않음을,
그리고 그 끝은 또 다른 시작이자 출발점임을 이야기한다.

"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절대로 잃지 않아요. 그들은 우리와 함께 합니다. 그들은 우리 생에서 사라지지 않아요. 다만 우리는 다른 방에 머물고 있을 뿐이죠. 나는 옆 객차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분명히 나와 당신과, 우리 모두와 같은 시간에 여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것, 다른 객차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아요. 그들은 거기 있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여러 개의 객차로 이루어진 기차와도 같은 것입니다. 때로는 이칸에 탔다가 저 칸에 타고, 꿈을 꾸거나 기아한 경험에 휩쓸리면 이 칸에서 저 칸으로 가로지르기도 하는 것이지요.
(...) 사랑은,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언제나 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울 필요는 없는 것이죠. 그들은 언제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고, 우리 곁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 (p179~180)

" 생은 기차이지 기차역이 아니다" (p181)

시공간을 초월하여 그들이 체험하게 되는  전생의 이야기는 상당히 가슴 아픈 이야기이기에 책 속에 또 다른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더해진다.
파울로 코엘료는 확실히 평범한 작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영적 체험을 할 수 있는 기이한 인물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에는 운명, 인생, 영성 등의 주제가 바탕에 깔리게 되는 것이다.
" 우리는 영원이 다하도록 서로 만나고  또 헤어지길 반복합니다. 한 번 돌아온 후에 떠나고, 떠난 후에는 또 돌아오기를 계속하는 거죠? " (p 181)

<알레프>는 나에게 "당신은 지금 몇 개의 인생을 살아가느냐? 아니 "당신은 지금 몇 개의 인생을 살고 있느냐?"고  묻고 있다. 
그런데, 나는 자신있게 대답할 수가 없다.
분명히 나는 그와 힐랄의 인생을 이 책을 통해서 읽었고, 또 느꼈건만....

파울로 코엘료는 순례여행 중에 사랑, 용서, 증오, 희생, 기쁨, 불행 등의 퍼즐 조각을 마주했고, 그를 맞추어 나갔던 것인데, 나에겐 그 퍼즐 조각이 맞주어지지 않는 것일까.
<연금술사>,<오 자히르 >, < 브리다>등이 남겨 주었던 인생의 질문들을 <알레프>도 역시 긴 여운과 함께 던져준다.

 

" 그 무엇도 탄생과  더불어 시작하지 않고
  죽음과 함께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결코 잃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합니다. "    ( 책 속의 글 중에서)

     

<알레프>가 출간되면서  예약판매가 있었는데,  <연금술사>와 <순례자> 미니북이 한정으로 증정이 되었다.
미니북이라고 해서 내용을 간추린 책이거니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미니북은 책만 작을뿐이지, 실제의 책과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순례자>는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이기에, 이번에 미니북으로 읽으려고 하는데, 또 다른 독서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알랭 드 보통 지음, 박중서 옮김 / 청미래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랭 드 보통' 하면 떠오르는 작가만의 독특한 스타일의 글들이 있다.
나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처럼 특이한 연애소설을 읽어 본 적이 없다.
연애가 진전되어 가는 과정에서 드러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철학, 역사, 종교 등의 다양한 방법을 총동원해서 쓴 자전적 소설이었기에 더 흥미로웠다.

또한 <일의 기쁨과 슬픔>, <공항에서의 일주일>처럼 작가 자신이 직접 그 일을 체험하면서 일상의 가치를 재발견해 나가는 에세이들에게 신선함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작가를 '일상 속의 발명가'라고 일컫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출간된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는 내년 2월에 영어판으로 출간될 예정인데, 예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먼저 출간된 책이기도 하다.
이에 맞추어 지금 '알랭 드 보통'은 한국을 방문했고, 사인회를 비롯한 강연 일정들이 잡혀 있다.
그가 한국을 방문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어 보기도 했고, 자신의 새로운 책의 집필이 완성된 것을 알고 런던까지 찾아온 한국 출판사의 발빠른 열정때문이었던 것이다.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끊이지 않고 샘솟는 샘물같은 지식의 원천이 또한 그의 책을 가까이하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인데, 역시 그는 한국 방문을 앞두고 한국의 역사를 공부했고, 앞으로도 한국 역사를 더 알고 싶다고 한다.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는 그 제목만으로도 상당히 어려운 이야기를 풀어 나가야 할 것같은 느낌이 든다.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그릇되게 이야기하면 심한 비판을 가할 수도 있는 사안이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또한 이 책은 <무신론자를 위한 >이라는 수식어가 붙기에 이건 또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알랭 드 보통'이 무신론자인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는 책의 도입부에서 용감하게 밝히는 한 구절이 눈길을 끈다.
" 하늘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의미에서 진실한 종교는 물론 하나도 없다. " (p11)







종교하면 머리에 떠 오르는 것이 영적 존재, 믿을 수 없는 기적을 이룬 사례들, 인간의 부족함과 어려움을 채워줄 수 있는 신의 존재 등을 생각하게 마련인데, 그리고 유신론자들에게는 그 어떤 것과도 비견할 수 없는 존재가 신인데, 앞으로 펼쳐질 책의 내용이 궁금해진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종교에 대한 비판서는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작가는 종교 전반과 세속적인 영역을 비교하기 위한 방법으로  세계적으로 많이 믿는 종교 중에서 3개의 종교, 기독교, 유대교, 불교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그 중에서도 기독교와 유대교의 비중이 불교보다는 상대적으로 많이 다루어진다.
이 3 종교를 선정한 이유는 작가가 유대인이기는 하나 무신론자의 집안에서 자랐가에 유대교에 대해서 알고 싶었고, 기독교는 흔히 유대교의 적이라고 생각하기에, 불교는 건축양식에 관심이 있어서 좀더 깊게 알고 싶었다고 한다.







작가의 다른 책들을 읽었다면 알 수 있듯이, 그는 한 주제에 대해서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해석하고 분석하는 특징을 가진 내용의 에세이를 많이 쓰고 있는데,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에서도 종교 (기독교, 유대교, 불교)라는 주제를 여러 개념을 토대로 해석하고 분석한다.
풍부하고도 수준높은 지적 탐구를 함께 따라가면서 종교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교리가 없는 지혜, 공동체, 친절, 교육, 자애, 비관주의, 관점, 미술, 건축, 제도 등으로 나누어서 종교를 심도있게 다룬다.
기독교의 성찬식, 기독교 교육과 세속교육의 비교.
유대교의 속죄의 날, 중세의 '바보들의 축제'
불교의 '선', '다도' '걷기 명상' 등은 그중에서도 흥미롭게 접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작가는 3 종교를 중점적으로 다루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정한 종교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전반적인 종교에 관한 내용을 담아낸다.
종교는 오랜 세기동안 내려왔기에 그 자체를 거부하기보다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따르기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결코 종교 자체를 비판하기 위한 책은 아니다.
분석적 측면에서  종교를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책인 것이다.
작가는 무신론자이기는 하지만, 종교의 실용적 가치는 높이 평가한다.
신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종교가 가지고 있는 미덕과 제도는 여전히 가치가 있으며, 그것을 통해서 인간은 위안을 받을 수 있고, 종교의 미덕을 실천하여 사랑으로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신앙의 지혜는 온 인류의 것이며, 심지어 우리 가운데 가장 합리적인 사람의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초자연적인 것의 가장 큰 적들이라도 이를 선별적으로나마 다시 흡수해야 할 것이다. 종교는 매우 유용하고, 효과적이고, 지적이기 때문에 신앙인들만의 전유물로 남겨두기에는 너무 귀중한 것이다. " (p3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구려 3 - 미천왕, 낙랑 축출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김진명 작가가 쓴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가 쓴 책들을 골라 읽게 되는 것은 그만큼 작가의 작품에 대한 신뢰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진명 작가의 데뷔작인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읽은 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책을 읽던 순간의 감동이 살아 있기에 그의 작품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에게 <고구려>는 우리 역사를 바로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의미있는 작품이기도 한 것이다.


 


<고구려>가 미천왕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앞으로 긴 장정을 거쳐서 장수왕의 이야기까지 이르러야 하니, 작가의 갈 길도  멀고, 독자들이 <고구려>를 끝까지 따라잡을 수 있는 길도 멀기만 한 것이다.
그 첫 번째 이야기의 미천왕의 일대기로 <고구려 3>에 이르게 된 것이다.
1권과 2권의 이야기가 상부의 눈을 피해서 떠돌이 신세가 되었던 을불이 가는 곳마다 새로운 인물들과의 인연을 맺게 되고, 고구려의 새로운 왕이 되기 위한 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는 이야기라면
3권은 봉상왕 상부를 몰아내고 고구려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는 장면에서 시작이 된다.

"나는 안국군의 손자이며, 고추가 돌고 공이 아들이다.! " (p7)


  

 

상부의 악정에 시달리던 백성들에게 을불 태왕은 백성을 먼저 생각하는 어진 왕인 것이다.
2권에서 을불이 타지에서 조선의 유민들이 당하는 고초와 굶주림을 몸소 함께 체험했기에, 그가 숙신에서 베풀었던 유민들에 대한 마음은 그대로 고구려의 왕이 되어서도 백성을 먼저 생각하는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미천왕에게는 백성만을 보살필 수 만은 없는 것이다. 그동안 상부가 고구려의 철을 낙랑에 바쳐왔기에, 고구려의 군사들은 제대로 된 무기조차 없었으니...
그렇게 믿었던 아달휼의 배신이었던가.
아달휼은 낙랑으로 가는 철을 빼돌리는데, 그것은 을불에 대한, 고구려에 대한 배신이 아닌 반란을 가장한 아달휼의 지략이었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고구려와 낙랑을 비롯한 근처 나라들과의 전쟁을 불가피하게 되는 것이니,
<고구려 3>은 미천왕의 등극을 시작으로 전쟁의 장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 전쟁의 중심에는 언제나 미천왕 자신이 직접 나서게 되는 것이고, 여기에 충정과 지혜로 가득찬 창조리의 활약이 돋보이는 것이다.
개마대산 전투에서 고구려군은 현도군 군사를 물리치는 것으로 고구려의 첫 승리는 시작되지만, 그것은 전쟁의 시작에 불과한 것이다.

1권과 2권의 이야기에서 재미를 더했던 주아영과 양소청.
그 두 여인들은 미천왕과 어떤 인연으로 다시 얽히게 될 것인지도 궁금해지게 되는 이야기이다.
패기 넘치고 영리하고 아름다운 주아영.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은 누구일까
모용외일까? 아니면 을불이었던가?
만약에 아영이 사랑한 사람이 을불이라면 모용외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텐데....
소청은 또 을불과 새로운 인연으로 만날 수 있을끼?
전쟁 이야기 속에서도  두 여인에 관한 이야기는 감초와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낙랑의 최비와 문호가 이끄는 낙랑군은 지난 십여 년간에 걸친 싸움에서 패한 적이 없는데, 미천왕이 이끄는 군사들은 낙랑군을 이겨야만 하는 것이다.
낙랑군과의 마지막 전투에서의 이야기는 <고구려> 미천왕편의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천왕은 그동안 활약을 보이던 창조리의 지략도 받아들이지 않고 다만 힘과 힘, 숫자와 숫자로 맞붙는 싸움을 하게 되고...

" (...) 최비가 왼 손을 쓴다기에 나도 따라서 써보는 것이오, 최비가 새우잠을 잔다기에 나도 새우잠을 잤고, 최비가 서수필을  쓴다기에 나도 낭호필을 버리고 궁중의 쥐 수염을 뽑았소"
"최비의 생각을 읽기 위함이시군요"
을불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힘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큼 나는 이기고 싶었소, 낙랑을 몰아내어 우리 고구려를 비로소 당당한 나라로, 황하족의 위에 서는 강한 민족으로 만들어내고 싶었소, 낙랑이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강성한 지금, 온 황하족의 힘을 모조리거느리고 낙랑을 다스리는 최비라는 걸출한 인물, 그자를 이기고 우리 고구려의 미래를 준비하고 싶었소." (p297)


  

마지막 전투에서 낙랑성으로 진겨하던 고구려 군사들은 성 앞에 발이 묶여 인질이 된 조선의 유민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품성이 고운, 백성들에게 직접 밥을 해 먹였던 을불이 과연 이 고비를 어떻게 넘길 것인가?
책을 읽는 동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에 맞닥들이게 된다.
조선의 유민을 살릴 것인가.
아니면 그들을 죽이면서까지 낙랑성을 찾을 것인가.

여기에서 작가의 마음이 보이는 것이다.
그가 쓰는 미천왕의 성품이 보이는 것이다.
미천왕을 돕던 창조리의 생각이 보이는 것이다.
미천왕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 놓았던 노장수 저가의 충직함이 다시 생각나는 것이다.
여노, 아달휼, 소우, 양우, 고구,
그리고 봉상왕시대에 자신을 욕보여서 고구려를 구했던 국상 창조리의 충정이 엿보이는 것이다.
지금의 미천왕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들 모두의 힘이 아니었을까....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은 한참을 생각에 잠기게 한다.
어진 왕에 그를 보필하는 신하들의 마음이.
그리고 그를 따를 수 있었던 조선의 유민들의 마음이.
고구려 백성들이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 장면.
그래서 나는 고구려의 미천왕 편에서 기대이상의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고구려 400 년간, 조선 땅을 지배했던 낙랑은 미천왕에 의해서 완전히 축출되는 것이다.
미천왕과 미천왕을 따르던 사람들에 의해서
그들이 그 시대에 하늘 높이 외쳤던
"고구려를 위하여 ! "




이것이 바로 진정한 고구려의 역사가 아닐까.....
지금이라도 고구려의 역사를 바로 알게 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 참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아파보기 전에는 절대 몰랐던 것들 - 인생의 크고 작은 상처에 대처하는 법
안드레아스 잘허 지음, 장혜경 옮김 / 살림 / 201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아파 보기 전에는 절대 몰랐던 것들>
이 책은 읽으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는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 생각난다.
우리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영혼의 상처들.
그것은 큰 물결이 아닌 잔잔한 물결이 누군가의 가슴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큰 상처로 자리잡을 수 있음을 시사해 준다.

이 책의 저자인 '안드레아스 잘허'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이메일의 사연들을 보더라도 아주 어릴 적의 기억이 30 ~40 년후에도 가슴에 아프게 남아 있음을 이야기한다.
생각없이 누군가가 한 행동이 얼마나 큰 상처를 줄 수 있으며, 얼마나 오랫동안 기억되는 상처인가를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서 소개해준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고, 혹은 자신의 경우과 비슷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 영혼의 상처라는 빙산은 얼마나 클까? "
" 물 위로 드러난 얼음 덩어리 밑으로 얼마나 큰 빙산이 숨어 있을까?"

그런데, 이런 영혼의 상처가 스쳐가는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면 그래도 다행한 것이다.
유럽에서는 해마다 58,000 명이 자살을 하는데, 실제로 자살 시도를 하는 사람들은 그보다 10 배가량 많다는 것이다.
가난과 불행, 행복하지 못한 유년기를 극복할 수 없어서 인생을 실패한 사람들도 많지만,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여  이렇게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기도 하는 것이다.
긍정 심리학에서는 감사와 같은 전통적인 덕목이 행복과 성공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함을 입증한 사례들도 상당수 있다.

"가장 쓰라린 상처에 가장 커다란 재능이 숨어 있다." (p147)

넬슨 만델라
27년간 감옥생활을 한 후에 석방되어서 정적들에게 용서를 베풀었고, 그 결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화해의 장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아놀드 히틀러 어린 시절 권위적인 아버지의 극심한 폭력과 모욕을 당하게 되는데, 그것들이 영혼의 상처가 되어 부적격한 인간의 복수심으로 화한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세계를 잔인하게 짓밟은 것이다.
두 사람의 예를 통해서 우리는 어린시절의 불우환경이나 권력의 압박 등에 의한 심리적 상처가 꼭 인생을 실패로 이끌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성품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성품은 꼭 유전이 아닌 것이다. 성품은 각자의 삶의 과정에서 서서히 형성되는 것이다.

나는 알게 모르게 타인에게 어떤 상처를 입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고의적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나의 말 한 마디가, 행동 하나가 영혼의 상처가 되어 누군가의 가슴에 박혔다면....

 
  
☆ 상처를 받아들이는 승자의 자세 ☆
1. 최초의 상처를 피하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 다 한다.
2. 다양한 우회로를 통해 우리는 능력을 계발한다.
3. 승자는 상처를 패자와 다르게 해석한다.
4. 승자는 타고난  재능에 노력을 쏟아 붓고 강점을 자신과 타인을 위해 활용한다.
5. 승자는 상처에 의미를 부여한다. (p185~187 중에서 발췌)

그런데, 쉽게 상처받는 마음만이 사랑하는 마음일 수 있단다.
상처를 당당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랑을 향해서도 다가갈 수가 없기에.



이렇게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지혜를 풍부한 사례들을 중심으로 풀어 나가기에 읽으면서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내가 아파보기 전에는 절대 모르는 것"이 영혼의 상처인가보다.



" 감정을 조심하라. 감정은 생각이 된다.
  생각을 조심하라. 생각은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하라. 말은 늘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하라. 행동은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하라. 습관은 성격을 형성한다.
  성격을 조심하라. 성격은 인생을 결정한다. " ( 탈무드, p 213~2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라서 예쁘지
이행내 지음, 조장은 그림 / 톨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흔히 지금의 할머니들의 세대에서 입버릇처럼 나오는 말 중의 하나가  "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몇 권이 될거다." 라는 말을 많이들 하신다.
그만큼 할머니 세대들은 가난했고, 남편들의 사랑도 받지를 못했고, 자녀들을 키우느라고 희생하신 세대들이기 때문에 그 분들의 삶이 한으로 남아 있기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세대들은 전 세대의 희생이 있었기에 그래서 평탄한 삶을 살아 왔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40대 중반 이후의 세대들도 학창시절에 굶주리기도 했고,  한국 전쟁후의 정치적 불안정으로 힘겨운 젊은 시절이 있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인  '이행내'는 50대 중반으로 접어드는 중년의 가정주부이다.
저자가 살아온 시대도 전반적으로 생활이 넉넉하지 못하여, 학비 걱정을 해야했던 사람들이 많았던 때이고,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서 대학을 간다는 것도 포기해야 했던 많은 여자들이 살아 왔던 시대인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부모 잘 만나서 고생없이 돈 많이 드는 미대를 다닐 수 있었고, 일본 유학까지 꿈꾸지만,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그 꿈을 이룰 수는 없게 된다.
이 당시만해도 여자들이 대학을 나오면 결혼을 하는 것이 하나의 수순이었기에, 그녀는 결혼을 하게 되고, 자녀들 키우게 된다.
IMF시절 남편의 사업이 잘못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리 힘들게 살아오지도 않았던 것같다.
물론, 전보다 경제적 어려움을 따랐겠지만, 카페와 돈가스 가게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 책은 저자의 이런 소소하고 사사로운 이야기들이 담긴 책이다.
엄마인 이행내가 글을 쓰고, 딸인 조장은이 그림을 그린 에세이집인 것이다.
딸은 오랫동안 일기를 쓰는 엄마의 일기 장 속에 담긴 내용들이 한 사람의 일생이 오롯이 담겨 있기에 엄마의 일기에 18 점의 '엄마라서 예쁘지' 시리즈의 그림을 겉들인 것이다.

    

  
 
책의 내용은 '내가 아이였을 때', '소녀시대'.... 이렇게 살아온 삶의 자취들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순서대로 담고 있다.
처음에 '내가 아이였을 때'을 읽기 시작하다가 잠깐 이 책의 저자가 도대체 엄마인가, 딸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글의 내용이나 필치가 어느 학생의 일기를 들어다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성장기의 이야기니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지만, 어른이 되어서의 이야기들도 그리 마음에 와닿는 어떤 것들이 전혀 없는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이었다.

물론, 에세이의 종류에 따라서 이런 일상적인 소소한 이야기들을 담기도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도 너무도 개인적인 저자 자신의 삶의 자취인 것이다.
가족 문집이라면 몰라도, 세상에 내놓고 독자들에게 읽히기에는 아무런 느낌도 줄 수 없는 그런 이야기라고나 할까.




 
50대 중반에 접어드는 저자라면 삶의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삶의 여운이 있을 법도 한데, 많은 아쉬움을 가져다 주는 책이다.

" 앞만 보고 달리다 아름다운 샛길을 놓쳐버리는 우리들.
남들이 좋다는 것을 좇느라 살면서 귀중한 걸 놓치고, 아름다운 것을 스쳐 지나친 적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이제는 조금 느리게, 서둘지 말고 천천히 걸어야겠다.
삶의 고개마다 숨어 있는 작고 예쁜 샛길 찾아보며 슬렁슬렁 가야겠다. "  (P2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