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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알랭 드 보통 지음, 박중서 옮김 / 청미래 / 2011년 9월
평점 :
'알랭 드 보통' 하면 떠오르는 작가만의 독특한 스타일의 글들이 있다.
나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처럼 특이한 연애소설을 읽어 본 적이 없다.
연애가 진전되어 가는 과정에서 드러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철학, 역사, 종교 등의 다양한 방법을 총동원해서 쓴 자전적 소설이었기에 더 흥미로웠다.
또한 <일의 기쁨과 슬픔>, <공항에서의 일주일>처럼 작가 자신이 직접 그 일을 체험하면서 일상의 가치를 재발견해 나가는 에세이들에게 신선함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작가를 '일상 속의 발명가'라고 일컫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출간된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는 내년 2월에 영어판으로 출간될 예정인데, 예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먼저 출간된 책이기도 하다.
이에 맞추어 지금 '알랭 드 보통'은 한국을 방문했고, 사인회를 비롯한 강연 일정들이 잡혀 있다.
그가 한국을 방문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어 보기도 했고, 자신의 새로운 책의 집필이 완성된 것을 알고 런던까지 찾아온 한국 출판사의 발빠른 열정때문이었던 것이다.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끊이지 않고 샘솟는 샘물같은 지식의 원천이 또한 그의 책을 가까이하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인데, 역시 그는 한국 방문을 앞두고 한국의 역사를 공부했고, 앞으로도 한국 역사를 더 알고 싶다고 한다.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는 그 제목만으로도 상당히 어려운 이야기를 풀어 나가야 할 것같은 느낌이 든다.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그릇되게 이야기하면 심한 비판을 가할 수도 있는 사안이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또한 이 책은 <무신론자를 위한 >이라는 수식어가 붙기에 이건 또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알랭 드 보통'이 무신론자인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는 책의 도입부에서 용감하게 밝히는 한 구절이 눈길을 끈다.
" 하늘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의미에서 진실한 종교는 물론 하나도 없다. " (p11)


종교하면 머리에 떠 오르는 것이 영적 존재, 믿을 수 없는 기적을 이룬 사례들, 인간의 부족함과 어려움을 채워줄 수 있는 신의 존재 등을 생각하게 마련인데, 그리고 유신론자들에게는 그 어떤 것과도 비견할 수 없는 존재가 신인데, 앞으로 펼쳐질 책의 내용이 궁금해진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종교에 대한 비판서는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작가는 종교 전반과 세속적인 영역을 비교하기 위한 방법으로 세계적으로 많이 믿는 종교 중에서 3개의 종교, 기독교, 유대교, 불교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그 중에서도 기독교와 유대교의 비중이 불교보다는 상대적으로 많이 다루어진다.
이 3 종교를 선정한 이유는 작가가 유대인이기는 하나 무신론자의 집안에서 자랐가에 유대교에 대해서 알고 싶었고, 기독교는 흔히 유대교의 적이라고 생각하기에, 불교는 건축양식에 관심이 있어서 좀더 깊게 알고 싶었다고 한다.


작가의 다른 책들을 읽었다면 알 수 있듯이, 그는 한 주제에 대해서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해석하고 분석하는 특징을 가진 내용의 에세이를 많이 쓰고 있는데,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에서도 종교 (기독교, 유대교, 불교)라는 주제를 여러 개념을 토대로 해석하고 분석한다.
풍부하고도 수준높은 지적 탐구를 함께 따라가면서 종교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교리가 없는 지혜, 공동체, 친절, 교육, 자애, 비관주의, 관점, 미술, 건축, 제도 등으로 나누어서 종교를 심도있게 다룬다.
기독교의 성찬식, 기독교 교육과 세속교육의 비교.
유대교의 속죄의 날, 중세의 '바보들의 축제'
불교의 '선', '다도' '걷기 명상' 등은 그중에서도 흥미롭게 접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작가는 3 종교를 중점적으로 다루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정한 종교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전반적인 종교에 관한 내용을 담아낸다.
종교는 오랜 세기동안 내려왔기에 그 자체를 거부하기보다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따르기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결코 종교 자체를 비판하기 위한 책은 아니다.
분석적 측면에서 종교를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책인 것이다.
작가는 무신론자이기는 하지만, 종교의 실용적 가치는 높이 평가한다.
신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종교가 가지고 있는 미덕과 제도는 여전히 가치가 있으며, 그것을 통해서 인간은 위안을 받을 수 있고, 종교의 미덕을 실천하여 사랑으로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신앙의 지혜는 온 인류의 것이며, 심지어 우리 가운데 가장 합리적인 사람의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초자연적인 것의 가장 큰 적들이라도 이를 선별적으로나마 다시 흡수해야 할 것이다. 종교는 매우 유용하고, 효과적이고, 지적이기 때문에 신앙인들만의 전유물로 남겨두기에는 너무 귀중한 것이다. " (p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