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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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의 작품들은 언제나 나에게 하나의 물음을 던진다.
<연금술사>는 나에게 가장 절실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는 나의 사랑을, <브리다>는 생에서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 보았다.
사랑, 운명, 소망, 인생, 영적 존재.
우리의 인생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코엘료의 소설은 이렇게 언제나 나에게 긴 침묵을 흐르게 만들어 주었고, 나의 생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것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하게 해준다.



이번에 읽게 된  <알레프>도 나에게 어떤 긴 여운을 남겨줄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조심스럽게 펼치게 된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은 어떤 영감을 얻어서 글을 쓰게 되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순례자>는 그동안 코엘료가 하던 일인 음악, 저널리스트, 록스타, 극작가 등의 다양한 직업에서  세계적인 소설가로 자리매김을 하게 해주었던 작품인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순례하는 중에 영감을 받아서 쓰게 되었고, <브리다>는 순례길의 한 코스를 관할하는 '브리다 오페른'으로부터 자신이 걸어온 영적 탐색의 길을 들려주는 것에서 소설의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진정한 순례자인 것이다.



" 산다는 것은 경험하는 것이지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 내가 항상 같은 곳에만 머물러 있다면 내가 원하는 곳에 결코 도달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사막과 도시와 산과 길 위에 있을 때만 내 영혼과 대화할 수 있다. " (p99~100)

 <알레프>도 역시 1986년에 산티아고 순례기를 떠났던 때에서 약 20년이 지난 2006년에 다시 순례길에 오르게 되고 그 마지막 코스로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타기로 하게 되는데,  모스크바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터키 여인 힐랄과의 인연을 토대로 쓴 작가 자신의 체험이 담긴 소설인 것이다.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어디까지가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고, 어디서부터가 소설적 허구의 세계인지 궁금해 질 정도로 진실과 허구가 구별되지 않는 자전적 소설인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번 순례길을 떠나기 전에 여러 번의 영적 경험을 하기도 했고, 튀니지에서는 사밀이라는 청년이 어떤 건물에 대한 설명을 하는 순간 천분의 일초동안 과거로 이끌려 들어가기도 하는 체험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영적 순간은 힐랄을 만나는 순간부터 더 명료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힐랄은 브리다와 마찬가지로 스물 한 살의 여인.
힐랄의 첫 등장은 너무도 당돌하고 맹랑한 힐랄의 행동에 황당함을 느끼게 하지만, 어느 순간 그녀의 존재가 아련하게 떠오른다.
모든 것이 한 시공간에 존재하게 되는 공간, 알레프에 나와 힐랄이 놓이게 되면서 그들은 전생의 어떤 한 시점에서 함께 존재했던 사람들임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아주 짧은 순간 열렸다가는 다시 닫히게 되는 그 문 앞에서 그 문 뒤에 숨겨진 자신의 전생을 엿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미 그는 자신이 19세기 프랑스 작가였던 전생을 보기도 했는데, 이번에 그가 보게 되는 전생은 어떤 모습일까.
그와 힐랄은 어떤 관계로 얽혀 있었을까.
그가 본 전생은 마녀사냥이라 일컬어지는 이단자를 심판한다는 종교재판의 모습.
그는 자신의 전생에서 힐랄에게 용서를 빌어야만 했던 사람이기에...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9288 킬로미터를 여러 날에 걸쳐서 몇 개의 도시를 거쳐야만 하는 긴 여행이건만, 그 기차 안에는 전생에서 아픔을 가진 두 남녀가 함께 하는 것이다.
그들은 전생에 사랑한 사람이기도 했고, 상처를 준 사람이기도 하고, 배신을 했던 사람이기도 한 사람으로.
코엘료는 <알레프>를 통해서 환생을 이야기한다.





우린 결코 한 번의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님을 이야기한다.
전생이 있었고, 전생에서 맺어진 사람들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른 생에서 만나게 됨을 이야기한다.
어떻게 보면 현실감이 없는 그런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끝난다고 해서 아주 끝나지 않음을,
그리고 그 끝은 또 다른 시작이자 출발점임을 이야기한다.

"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절대로 잃지 않아요. 그들은 우리와 함께 합니다. 그들은 우리 생에서 사라지지 않아요. 다만 우리는 다른 방에 머물고 있을 뿐이죠. 나는 옆 객차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분명히 나와 당신과, 우리 모두와 같은 시간에 여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것, 다른 객차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아요. 그들은 거기 있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여러 개의 객차로 이루어진 기차와도 같은 것입니다. 때로는 이칸에 탔다가 저 칸에 타고, 꿈을 꾸거나 기아한 경험에 휩쓸리면 이 칸에서 저 칸으로 가로지르기도 하는 것이지요.
(...) 사랑은,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언제나 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울 필요는 없는 것이죠. 그들은 언제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고, 우리 곁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 (p179~180)

" 생은 기차이지 기차역이 아니다" (p181)

시공간을 초월하여 그들이 체험하게 되는  전생의 이야기는 상당히 가슴 아픈 이야기이기에 책 속에 또 다른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더해진다.
파울로 코엘료는 확실히 평범한 작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영적 체험을 할 수 있는 기이한 인물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에는 운명, 인생, 영성 등의 주제가 바탕에 깔리게 되는 것이다.
" 우리는 영원이 다하도록 서로 만나고  또 헤어지길 반복합니다. 한 번 돌아온 후에 떠나고, 떠난 후에는 또 돌아오기를 계속하는 거죠? " (p 181)

<알레프>는 나에게 "당신은 지금 몇 개의 인생을 살아가느냐? 아니 "당신은 지금 몇 개의 인생을 살고 있느냐?"고  묻고 있다. 
그런데, 나는 자신있게 대답할 수가 없다.
분명히 나는 그와 힐랄의 인생을 이 책을 통해서 읽었고, 또 느꼈건만....

파울로 코엘료는 순례여행 중에 사랑, 용서, 증오, 희생, 기쁨, 불행 등의 퍼즐 조각을 마주했고, 그를 맞추어 나갔던 것인데, 나에겐 그 퍼즐 조각이 맞주어지지 않는 것일까.
<연금술사>,<오 자히르 >, < 브리다>등이 남겨 주었던 인생의 질문들을 <알레프>도 역시 긴 여운과 함께 던져준다.

 

" 그 무엇도 탄생과  더불어 시작하지 않고
  죽음과 함께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결코 잃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합니다. "    ( 책 속의 글 중에서)

     

<알레프>가 출간되면서  예약판매가 있었는데,  <연금술사>와 <순례자> 미니북이 한정으로 증정이 되었다.
미니북이라고 해서 내용을 간추린 책이거니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미니북은 책만 작을뿐이지, 실제의 책과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순례자>는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이기에, 이번에 미니북으로 읽으려고 하는데, 또 다른 독서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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