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을 읽은 이후에 작가의 소설이 나올 때마다 빼놓지 않고 읽게 되었다. 최근에는 <막다른 골목의
추억>그리고 <사우스포인트의 연인>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활발한 집필활동을 하는지 꾸준히 새로운 책들이 출간되는데, 대부분의 책들은 앉은 자리에서 읽고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짧은
소설들이다.
<도토리 자매>도 역시 장편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짧은 130쪽이 약간 넘는 내용이 담긴 얇고 작은 책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들을 출간될 때마다 따라 읽다 보니 이제는 작가의 소설이 가지는 특징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쩌면 그건 작가의 작품에
익숙하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소설이 같은 맥락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모님을 일찍 잃었거나 부모님이 이혼을 하여서 화목한 가정을 가지지 못한 경우, 연인과의 헤어짐으로 어딘가로 떠나 온 경우, 이런 상실
속에서 소극적으로 자신의 삶에 힘겨워 하다가 작은 계기로 치유를 하여 가는 과정을 다룬 경우 그리고 빠지지 않고 나올 정도로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는 음식과 여행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행과 음식으로 상실된 것을 치유하는 경우가 소설 속에 감초처럼, 아니 주요 내용으로 등장한다.
이 소설의 처음의 시작은 도토리 자매가 만든 홈페이지의 이야기이다.
'누구에게든 메일을 보내고 싶은데, 아는 사람에게는 보내고 싶지 않을 때 마침 딱 좋은 존재'라는 콘셉트로 시작된 홈페이지'을 도토리
자매는 개설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그 이야기가 주를 이룰 것이라고 생가하지만 그 보다는 도토리 자매의 상실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언니 이름 구리코와 주인공인 나의 이름 돈코다에서 '돈'과 '구리'를 합쳐서 '돈구리' .
일본어로 '돈구리'는 도토리이다. 도토리 자매는 10살 때에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되면서 삼촌집에서 이모네집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집을 전전하면서 살아간다. 물론 그들 친척들이 도토리자매를 구박하지는 않았지만 화목한 가정에서 지내지는 못했다. 이모네집에 살 때에는
이모의 결혼 권유로 언니인 구리코가 가출을 하기도 한다.
언니 구리코와 동생 돈코다의 성격은 자매이지만 성향이 많이 다르다. 언니는 현실적이고 연애는 잘하지만 결혼에는 부정적이다. 동생은 현실에
순응하는 듯하지만 반은둔현 외톨이이다.
자매가 30살, 28살이 된 성인이지만 성장기의 상실감때문에 힘겨워하면서 그 치유 방법을 찾는 과정이 그려진다.
언니인 구리코는 여행을 통해서 치유의 과정을 갖게 되는데, 그 여행지가 한국의 서울이다. 남자 친구와 함께 떠난 한국여행. 여기에서
음식 이야기가 나온다, 삼계탕, 간장게장, 김치 등.
그래서 이 소설의 중반 이후에는 서울의 거리가 소개된다. 일본인들이 주로 관광하는 서울의 모습과 음식점 등의 이야기는 일본 소설에서 접하게
되는 이야기이기에 이 책을 읽는 재미가 더해지기도 한다.
구리코가 여행을 통해서 치유를 경험한다면 돈코다는 어떻게 자신의 상실감을 이겨나갈까.
학창시절 스치듯이 잠깐 좋아했던, 그렇다고 연애 감정이 있었던 것도 아닌 동창생 무기가 꿈에 죽은 모습을 보게 되면서 그를 찾아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무기의 소식이 궁금해서 유일한 동창생에게 메일을 보내서 알게 된 내용은 그가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고 하여 옛 추억을 찾아 찾아간 동네에서
꿈 속에서 본 것과 같은 현실에 맞닥들이게 되고....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즈음에 도토리자매의 홈페이지에 올려졌던 남편을 잃은 야쓰미의 메일 내용이 꼭 무기와 관련이 있는 듯하니...
이런 어수선한 마음을 다스려 주는 것이 바로 언니가 서울 여행을 하면서 동생에게 도토리자매 홈페이지를 통해서 보내 오는 메일이다. 그래서
그 역시 오키나와로의 여행을 결심하게 된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자극적이거나 거창한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항상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인물,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듯하지만 현실의 장벽에 힘겨워하고 있다. 그렇다고 아우성 치지도 않고 마음 속으로 그 힘겨움을 다지고 있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것을 통해서
상실을 치유하여 나간다. 여행을 통해서, 음식을 통해서, 아니면 작은 어떤 것이 계기가 되어서....
<도토리 자매>도 역시 소소하고 사소한 일상들 속에서 따뜻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우린 모두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지 않을까.
" 인터넷 속과 마찬가지로 임시로 가득한 이 세상. 대답을 가리키는 화살표는 역시
하나였다. 대답 주위를 빙빙 맴돌면서 나는 지난 반년 동안 무의식 중에 차분하게 근신하고, 언니의 연애에 무언가가 환기되기도 하고, 야스미씨의
메일이 유독 마음에 걸리고, 그러다 결구 무기의 꿈까지 도달한 것만 같았다. 이 혼돈스러운 세상에서는, 죽은 무기가 내게 포착될 만한 타이밍에
꿈을 통해 찾아 온 것도, 야스미 씨가 무기 부인의 이미지와 겹쳐진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전부, 누구든 유영하는 무의식의
바다, 익명으로 구상된 세계 안에서는 개성을 지니지 않을지도 모른다. 의미가 비슷한 정보만 떠 있어서 어디를 포착해도 알 수 있다. 사람이 죽어
그 파문이 주위 사람들에게 퍼지는 모양도 그렇다. 모두가 사람들의 마음으로 이뤄진 거대한 바다 어딘가에 확고하게 동그마니 존재하고 있고, 그
정도도 아마 똑같으리라. 그런데도 우리는 저마다 다른 색을 지닌 사람들의 슬픔을 기억한다. " (p.p..
83~84)
이 책을 읽으면서 며칠 전에 조카가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대학교 같은 학과 학생 중에 아주 밝은
남학생이 있었는데,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을 통해 알았다고 한다.
'교통사고일까? 자살일까?'하는 의문을 품고 있었는데, 곧 기숙사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항상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 밝은 학생이었다고 하는데... 한국이 아닌 미국 뉴욕에서 일어난 일이다. 죽음으로 젊은 날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던 그에게 고독을 치유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
이 소설처럼 마음 속에 간직된 상실과 고독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낯선 여행지에서 보게 되는 풍경 속에서,
또는 누군가 함께 걷고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에서 우리는 행복을 되찾을 수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가 소설을 쓸 때마다 여행을 이야기하듯이 여행지에서 느끼는 작은 기쁨과 깨달음들이 우리 가슴속에서 치유의 역할을 하게 된다.
아니 꼭 여행을 떠나지 않더라도 오늘 하루를 나만의 의미있는 날로 생각한다면 결코 고독하지 않으리라.